나당탐정사무소 사건일지 - 윤자영 연작소설 한국추리문학선 5
윤자영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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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에 대한 다양한 비유가 있지만 게임이라는 말이 꽤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승자와 패자가 있고 그에 따른 실질적인 보상과 손해가 존재하니까. 문제는 기회가 다시 주어지지 않는 현실임에도 공정한 게임이 아닌 반칙과 악의적인 공격이 난무한다는 것이다. 개중에는 사연 있는 일도 있겠지만 대체로 가진 자들의 횡포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잘 사는 이들은 계속 위로 올라가고, 못 사는 이들은 계속 아래로 굴러떨어지게 된다고 본다. 불공정한 사회의 현실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밝혀내는 이들의 활약을 통해 문제의식이 강조되고 있기는 하다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는 보상을 위해서 게임을 하는 게 아닌, 즐기기위해 게임을 하고 있지 않을까. 현실의 상대를 짓밟고 파괴하는 걸 즐기기 위해.

 교동회관에서 활약하고 탐정사무소를 열어 돌아온 당승표와 나승만. 마치 홈즈가 베이커가의 하숙집에 자리잡듯 확고한 터전이 생긴만큼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바다. 어떤 사건 의뢰가 들어올지, 또 한편으로는 어떤 집요한 상대가 나타날지.

 전작과 마찬가지로 개개의 사건을 다루면서 하나로 이어지는 스토리 구성이지만 1부 파트와 2부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1부는 홈즈 단편처럼 서로 관계 없는 개별 사건을 다룬 내용. 2부는 세계관 속 인물들이 다시 엮이는 사실상의 메인 스토리. 어떻게 보면 작은 게임으로 시작해서 점점 큰 게임으로 들어가는 형태로 보이기도 한다.

 이번 작품에서의 두드러지는 장점이라고 한다면 캐릭터 활용도다. 보통 시리즈물로 가면 주연 인물과 조력자 위치의 인물 외에는 거의 1회성으로 나오고 끝이다. 어쩌다가 다른 스토리에 나오는 경우도 있긴 하나 그것도 어느 정도 정해진 위치가 있다. 주인공과 대립하는 숙적이거나, 가까운 지인, 그리고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특정 스토리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경우. 그런데, 이 소설은 김민영처럼 정해진 위치 격의 캐릭터도 다시 나오면서 1회성 엑스트라로 끝날 법한 몇몇 캐릭터들까지 알뜰하게 재등장시킨다. 어떻게보면 우려먹기로 보일 수도 있지만, 아무런 의미 없이 나온 것도 아니고 엑스트라 치고는 확실한 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반갑다는 인상이 더 크다. 앞으로도 이런 구성이 좋은 효과를 발휘하려면 작품들 간에 조금씩 텀을 두고 등장시켜야겠지만.

 살인사건 위주의 사건만을 다루지 않은 점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추리소설하면 대부분 살인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탐정=살인사건 조사>라는 공식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탐정 소설의 원조나 다름없는 홈즈 단편을 몇 개만 찾아봐도 살인 사건을 다루지 않은 내용이 꽤 있다. 홈즈보다 그 이전에 존재한 탐정의 시초인 오귀스트 뒤팽 역시 <도둑맞은 편지>라는 살인사건이 아닌 추리 단편이 있고. 이런 부분을 보면서 탐정 소설로서의 초심을 제법 잘 살렸다고도 할 수 있다.

 과학적인 요소가 들어간 트릭은 여전히 기발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생각 이상으로 재미를 만들어낸다. 당승표의 추리나 침착하고 능청스럽게 위기를 해결하는 모습은 진짜 탐정다운 느낌이고, 나승만 경감은 직관적이면서도 생각 이상의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만능 그 자체라 여러모로 돋보였다고 생각한다. 김민영의 경우는 제대로 존재감을 보이는게 후반부다 보니 다소 입지가 약했지만 서브 추리담당으로 앞으로를 기대해도 좋을듯 하다. 전반적인 스토리 구성은 앞서 언급한 대로 살인사건과 그렇지 않은 사건을 적절히 섞어 넣은 건 확실히 좋았다. 마지막 최후의 대결이 다소 급하게 전개됐다는 느낌이 있긴 했지만 충격적인 결말로 마무리한 것에는 이견 없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사건을 길게 다루는 장편도 한 번 쯤은 나오는 게 어떨까 생각해본다. 현재 나당 탐정사무소 멤버라면 장편 하나의 스토리를 끌고 가기에는 충분하게 보이니까. 물론 소설을 구상하는 건 작가 마음이고 현재의 단편적인 구성도 크게 나쁘지 않아서 독자 혼자서 생각해보는 하나의 가정 정도로 여기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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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당탐정사무소 사건일지 - 윤자영 연작소설 한국추리문학선 5
윤자영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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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회관을 재미있게 읽어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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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요괴 도감
고성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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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모르던, 또는 잘 정리가 되어 있지 않던 자료가 정리되어 있으면 여러모로 편리하다. 눈에 띄는 곳에 두고 찾아볼게 있을 때마다 바로 꺼내서 보기 좋기 때문이다. 종합 사전이 대체로 그런 용도다.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사전의 쓰임새가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유용함은 여전하다. 그것도 인터넷에서도 한참을 찾아봐야 하거나 어디서 찾아봐야할지 모르는 특정 주제를 다룬 경우라면.

 

 국산 요괴 관련 정보는 인터넷에 많이 있지만 책으로 정리되어 나온 건 없었다. 그러다 요근래 들어서 나오기 시작한 몇몇이 보였는데 이 책도 그 중 하나다. 옛날 서적 느낌을 최대한 살린 디자인은 정말 잘 나왔다고 할만 하다. 하지만 사전으로 나온 이상 내용을 더 중요하게 봐야 할 필요는 있다. 정확도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만 국산 요괴 정보는 문헌과 구전의 차이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해석의 차이도 종종 있는 편이다. 대중적인 이미지와 민속적 해석에서 나타난 이미지의 차이, 여기서 더 나아가 다소 학문적으로도 접근할 수도 있지만 콘텐츠 자료 정도의 성격인 책에서 그렇게까지 깊이 파고들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의미없고 다양성과 비슷비슷한 것을 얼마나 비교하고 대조했는지 정도만 잘 보면 되겠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인터넷에 검색하면 금방 찾아보기 쉬운 것들이 많이 보이는 편이긴 하나, 사전이라고 반드시 모르는 것만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사전 안에 내가 알던 것이 있을 수도, 내가 모르던 것이 사전 안에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구성 자체는 썩 나쁜 편은 아니다.

 

 콩콩콩 귀신, 자유로 귀신, 장산범, 홍콩할매 귀신처럼 현대에 널리 퍼진 괴담 속에 나오는 것들이 포함된 부분은 꽤 괜찮다는 생각이다. 사실 요괴라는 건 옛기록에만 한정하라는 법은 없다. 서양 포털사이트에서 창작된 것이 기원인 슬랜더맨 같은 경우도 있고, 일본 같은 경우도 현대 괴담 속에 존재하는 괴이들을 요괴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을 정도다. 백두산 괴물과 한강 괴물의 경우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문헌이 실려 있어 꽤 흥미롭게 봤다. 팔척귀 부분은 이름봐서는 일본의 팔척귀신을 끼워 넣었다는 오류로 보일 법하다. 하지만 전혀 다른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순전히 이름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보면 되겠다.

 

 살짝 단정적인 조로 되어 있는 부분에서는 의문을 표하고 싶기도 하다. 특히 강철이에 대한 부분에서 그렇다. 하나의 개체가 여러 문헌에서 다르게 묘사되면 대중적인 이미지는 이렇지만, 다른 곳에서는 외형 묘사의 차이가 있다고 하면 된다. 색다른 해석으로 했어도 그럴싸하게 보였을 것이다. 아니면 여러 형상을 놓고 비교하듯이 서술해도 좋았고. 그런데 문헌에서 가장 많이 공통되게 묘사된 모습만을 가지고 확신을 갖는 건 좀 서툰감이 적지 않다.

 

 요괴로 분류하기 애매한 것들이 있는 것도 그렇다. 부처님의 사리, 자명고, 만파식적 등은 마도서나 서유기의 파초선,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 상자, 알라딘의 요술램프 같이 전설의 도구로 분류될만 하다. 물체에 붙은 요괴나 물체의 외형을 한 요괴라면 모를까 전혀 성격이 다른 부류를 굳이 요괴도감이라는 이름으로 묶었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빙의는 특정 개체가 아닌 오컬트 현상, 즉 눈에 보이는 어떤 형태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염매의 경우도 누군가를 저주하는 주술의 형태다. 여기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다른 귀신의 명칭이라면 모를까 이것 자체를 요괴로 치면 분신사바 같은 강령술이나 단순한 저주인형도 요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저런걸 크게 따지는 편이 아니라면 여러면에서 유용한 건 사실이다. 어디까지나 창작소재로서는 나쁜 게 거의 없긴 하다. 다만 전문적으로 보는 경우라면 좀 말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문헌 발췌 형식으로 써 있고, 구체적인 설명 부분도 문헌을 풀어 써놓거나 간략해서 딱히 얻어가는게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어떤 성격으로 자료를 찾느냐에 따라 평가가 상반될 가능성이 있으니 구매하기 이전에 이 부분은 참고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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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신의 아이 1~2 세트 - 전2권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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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 시절의 불행은 생각보다 깊고 오래 남는다. 인생의 가장 초반이자 앞으로의 삶에 기반이 되는 시기기 때문에 더욱 큰 흉터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주변에 보이는 평범한 삶의 모습과 자신이 비교 될수록 대못이 점점 박힌다. 아픔의 아픔이 계속 박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갈기갈기 찢겨버리고 만다. 살아있는 채로 죽어버린다고 하면 어떤 느낌일지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자각이 생기기 전부터 존재가 부정당하는 만큼 점점 내면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리게 된다. 아무리 좋은 말을 들어도, 좋은 사람들과 지내도 문을 열기란 쉽지가 않다. 좋은 의미로 한 충고나 비판이라도 도리어 자물쇠만 더 늘어나게 만들 수도 있다. 무엇이 답이냐고 묻는다면 결국은 시간이다. 불행했던 시간만큼의 무언가가 채워지기까지의 기한 없을 오랜 시간. 깊은 상처가 있을수록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꾸준히 진심을 담은 노크를 한다면 반응이 올지도 모른다.

 

호적 없이 방랑생활을 하다 살인혐의로 소년원에 들어오게 된 마치다 히로시. 학교를 전혀 다니지 않았는데도 천재적인 소질이 보이는 엄청난 지능이지만, 사람과 관계가 심각하게 단절되어 있다는 판정을 받는다. 교도관인 나이토는 이런 마치다를 맡을 생각에 걱정이 앞서는 한편으로 겉모습과 다른 면이 있는 것 같아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본다. 한편 무로이라는 자의 지시로 마치다를 탈주시키기 위해 소년원에 또 다른 소년이 들어오게 되는데...

 

 총 3부로 나눠진 큰 스토리로 마치다 히로시라는 소년이 사회에 나가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범죄로 살아온 밑바닥에서 자신이 돌아갈 자리가 있는 삶이 생기기까지. 한편으로는 겉모습으로 인한 편견과 그리고 그의 뒤를 계속 쫓아다니는 거대한 그림자. 비록 인생의 전부를 다룬 것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커다란 드라마가 되고도 남는다.

 

 각 파트 별로 살펴보면 이런 느낌이다.

 

 1부는 소년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소년 드라마 겸 스파이 스릴러다. 교도관 나이토와의 신경전 속에서 보이는 숨겨진 면, 같은 방을 쓰는 다른 소년들과의 관계를 보며 마치다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런 한편으로 겉으로 들어나지 않는 범죄조직의 그림자가 돌아다녀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긴장감이 넘친다.

 

 2부는 대학이 배경인 청춘, 성장 드라마 겸 서스펜스 스릴러다. 여기서부터는 마치다 이외의 다른 인물들이 많이 나오다보니 인물관계가 꽤 복잡하다. 주변 인물들을 여러모로 깊이 다루다보니 살짝 지루할 수도 있지만 전체 스토리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라 설렁설렁 넘겨서는 안 된다. 다른 인물시점에서 진행되는 서스펜스 스릴러를 보다보면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삶이 최고의 행복이라 느껴진다. 아무리 불행하다 못해 막 사는 인생이라도 어디에 있든 절대 안심할 수 없이 지내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래서 무엇을 하고 살든 나쁜 짓에는 손대지 말라고 하는 것이겠지.

 

 3부는 본격적으로 각종 인물들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며 벌어지는 기업 스릴러 겸 본격 미스터리다. 복잡하지 않는 선에서 기업 내부 사정을 다루며 경제계에서의 암투를 다루는 게 살짝 국내 드라마 한 장면 같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격 미스터리 파트와 연결되면서 꽤 복잡한 구성이 되기 때문에 단순하지 않다. 상당히 속도감이 있어서 이 파트에 들어서면 다음이 어떻게 될지 궁금한 나머지 계속 보게 된다. 한편으로는 약간 찜찜하면서 다소 열린 결말로 끝나는 듯한 느낌이라 살짝 아쉬운 감이 있긴 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긴 하다. 여기서 스토리가 더 불어나면 대하소설이나 마찬가지고 메인 주제가 소년 범죄인 만큼 여기에서 적정선을 끊어야 마땅하다.

 

 얼핏 보면 각 파트 별로 분위기가 따로 노는 것처럼 보여도 마치다와 무로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큰 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미스터리가 눈에 띄는 특징이다. 중요하지 않게 보였던 부분이 나중에 가서는 엄청난 반전이 되거나, 한 파트에서 끝났을 것 같던 요소가 생각지도 못한 결과로 이어지는 등. 상상 이상으로 큰 그림이 그려져 있다고 보면 된다. 마치다의 행보 역시 단순하게 봐서는 안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면서 행동과 심리 부분에서 언제나 확실한 답을 주지 않아 작중 최대 미스터리 요소 중 하나다. 여기에 메인 주제의 핵심을 다루는 만큼 생각지도 못한 결과로 이어지게 만든다.

 

 소년 범죄자의 밝은 미래와 안타까운 최후가 동시에 나타나 있어서 씁쓸하기도 하다. 한 번 생긴 전과 기록은 편견과 좋지 않은 시선으로 평생 따라다닌다. 시간이 갈수록 철없던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쏟아져 들어와 심리적 부담도 늘어날 것이고. 이렇다보니 아직 인생의 절반도 안 지난 시기에 모든 걸 내던지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심하면 다시 범죄에 다시 빠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고. 확실한 것은 동기가 어떻게 됐든 범죄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면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더러운 방법으로 최고의 자리를 노리고, 많은 걸 가질 수 있다고 한들 편히 지내지 못한 환경이라면 불행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한 번 사는 인생에 다시 시작할 기회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좋은 사람, 좋은 환경을 만나야 하는 것도 중요하나 스스로의 의지 역시 확실해야 한다. 과거로부터 도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맞서서 이겨내야 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처벌에 대한 나름의 역설도 볼 수 있다. 바로 저지른 죄에 대해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범죄 처벌이 고통을 주는 형식이라는 걸 생각하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크게 복잡한 건 아니고 좋은 환경을 경험하게 해서 피해자의 마음을 이해시키는 형식이다. 아무 탈 없는 삶에서 소중한 것을 빼앗기는 경험이 어떤 것인지를. 그냥 죄라는 이름으로 주는 형벌은 아무런 감흥 없이 그냥 신체적 아픔을 주는 것이 전부라면, 이 역설적인 형벌은 심리적 아픔을 준다고 보면 된다. 그 죄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해하고 느낄 환경에 노출시켜 마음 깊숙이 박히게 만드는 것. 어느 정도의 실효성 문제가 있겠지만 제대로 각인만 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형벌일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할 수 있다. 힘든 환경에서 나쁜 길로 빠지지 않거나, 반대로 좋은 환경이라도 나쁜 길로 빠지는 예외의 경우도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게 겉으로 들어난 대외적 이미지인지까지는 알 길이 없겠지만. 어쨌든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좋지 않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면 무언가 하나씩은 빠져 있거나 생각보다 겉과 속이 다르기도 하다. 특히 겉과 속이 다르다는 부분은 멈춰 버린 감정으로 인한 표현 부족, 또는 오랜 시간 내면을 숨기면서 가면처럼 굳어진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오랜 시간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다 보니 딱딱하고 무서운 인상이 되는 것일 테다. 이러하듯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랜 시간 좋은 환경 속에서 멈춰버린 감정이 다시 움직이고 가면이 떨어지도록 말이다. 경험하지 못했던 순간을 겪으며 빈 자리를 채워나가다 보면 끝없을 빙하기에도 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단지 기다려줄 인내와 다소의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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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바위 - 영험한 오하쓰의 사건기록부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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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원한은 깊을수록 오래 남는다고 한다. 그 원인이 무엇이고 진실은 어떠하든 당사자들만이 알겠지만, 먼 세월의 흐름 속에서 뼈대만 남아 있을 시점에는 그저 이유를 알 수 없는 재앙이 돼버릴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먼 옛날의 일이라도 어딘가에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비록 사실 그대로가 아닌, 겉으로만 들어난 단면에 불과하겠지만.

 산겐초의 공동주택에 거주하던 양초상인 기치지가 죽었다 살아났다는 소문이 돈다. 신비한 능력을 가진 오하쓰는 행정 부교의 명을 받고 어딘가 믿음직하지 못한 우쿄노스케와 함께 조사하러 나선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기름가게의 기름통 안에 던져진 아이의 시체와 엮이면서 소란을 겪는다. 겨우 사건이 정리 되는가 했더니 또 다시 아이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연쇄살인으로 이어지는데...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탐정 수사물에 가깝지만 특이하게도 범인에 해당되는 존재가 사람이 아니다. 여기에 걸맞게 메인 주인공인 오하쓰도 평범하지 않다. <말하는 검>에서 미리 접했지만 영혼을 감지하는 부분만 빼면 몇 번을 봐도 극도로 발전된 사이코 메트리라는 생각이드는 초능력이다. 보조로 끼어드는 우쿄노스케라는 인물도 유명 가문 출신에 어리숙하면서도 진지할 때는 날카롭게 파고드는 게 나름대로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보통은 홈즈역할, 왓슨역할을 나누어서 보는 편인데 오하쓰와 우쿄노스캐는 딱히 구분을 지어야할지 애매하다. 오하쓰는 기이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다는 점에서 홈즈역할이지만, 시대적 배경이라는 제한 때문에 현실적인 조사가 어려운 위치다. 반면 우쿄노스케의 경우는 사건의 윤곽을 파악하기 위해 오하쓰를 보조한다는 부분에서는 왓슨역할이지만, 직접적으로 현실 조사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보니 실질적으로 홈즈 위치다. 이렇게 보면 오하쓰와 우쿄노스케는 홈즈와 왓슨의 역할을 번갈아가면서 한다고 봐도 되겠다.

 아코 사건이라는 과거의 역사적인 부분으로 만든 미스터리는 생각보다 큰 무대를 만들어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건의 숨겨진 이면, 시대의 풍파에 휩쓸린 이들이 가진 뿌리 깊은 원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어서 불행을 겪은 이들. 세세한 일본 역사 속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잘 모르고 있어서 그런지 굉장히 관심 있게 봤다.

 대부분 사건과 연관된 인물이 높은 신분에 해당되는 이들이라는 점이 은근 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계급이 높을 수록 잘 산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한 법이라 그 안에서도 명예나 체면의 문제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일들이 여럿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민들보다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게 있었거나, 이해받지 못하는 일이 많고, 때로는 옳지 않더라도 억지로 해야 하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주신구라의 형태로 남았다지만 당사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그저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 참 애석한 일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설령 거짓이라 해도 유포되기 쉬운 법입니다. 거짓은 때로 진실보다 알기 쉽고 아름다운 형태를 갖고 있는 법이지요. 잔혹하기는 하지만 세상의 진리 중 하나입니다.”-235p

 <말하는 검>에서도 그랬지만 오하쓰 시리즈는 유독 결말 부분의 연출이 꽤 웅장하다는 느낌이다. 다시 반복되는 그 날의 현장. 오랜 세월을 내려온 원한과 현 세대의 격돌. 그리고 격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소신을 지킨 이. 단순히 원한을 해결하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아닌 잘못된 걸 끊어내는 형태다. 원한을 이해를 못한다는 건 아니다. 단지 아무리 힘든 시대, 부당한 대우를 겪었다 해도 옳고 그른 것은 가려서 판단하자는 의미라는 생각이다. 미미부쿠로에 실린 흔들리는 바위도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소신을 두고 고민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나타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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