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양보
정민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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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빛과 어둠으로 나눈다고 한다지만, 어둠이 과한 상태에서는 과연 빛이 존재는 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또, 빛이 있어도 그게 과연 진짜 빛인가 하고도 의심하게 된다. 이래저래 진절 머리가 나서 이제는 이런 색깔 논쟁에 끼고 싶지도 않다. 어둠의 양보는 겉보기에 IMF 이후의 강남을 배경으로 한 진한 마초풍의 남성적 느와르로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현재의 우리에게 닥친 엄청난 문제와 재앙이 어떻게 왜 일어나게 됐는지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5공 시절, 중앙정보부 소속 요원이었던 김도술 미래피아 회장. 벤처기업 시대를 맞아 그는 강남의 20층 빌딩을 사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여자와 술에 환장하는 청년 문학도. 전직 중앙정보부 요원, 평범하지만 야심이 가득한 중년의 회계원 등. 어떤 이는 허송세월 젊음을 낭비하고, 어떤 이는 음지에서 양지로 나서는 야심찬 인생이 시작되는데...

 처음에는 앞서 말한 진한 마초적 느낌 때문에 큰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남자들끼리 재미있을 법한 성적 농담, 누가 더 술 많이 마시나, 어떤 여자가 더 매력적이나 같은 것들만 넘쳐나고, 룸살롱이이나 술집들만 나와 이런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입장에서 더 없이 보기 좋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부분이 한없이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나중에가서야 느꼈다. 그냥 남성적 마초를 만끽하려는 게 전부가 아니라 이 시기 자체가 한 없이 비현실적이지만, 이런 때가 있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 주목되던 것은 곳곳에 현대 역사를 이루어 온 주요 사건과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비록 실명으로 나온 인물은 거의 없지만, 그들을 알 수 있는 키워드가 있기에 한없이 소름끼칠 정도다.

 솔직히 이 소설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아직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한다. 그저 벤처기업 열풍 당시의 퇴폐적이거나 야망적인 풍경이 현재에 와서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 낸 것에 의의를 두는지, 너무 정직하게 살지 말라는 것인지, 인생은 한 방이니 있을 때 즐기라는 건지, 아니면 세상에는 정의 따위는 없고 그저 가진 자들이 양보하는 시기가 있을 뿐이라는 건지. 다만, 하나는 확실히 알 것 같기는 했다. 죽이되든 밥이 되든 가진 자들이 베풀어야 그 결과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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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시선 : 카페 프란스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9
정지용 지음 / 아티초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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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의 시와 더불어 교과서에서 많이 본 시인이 정지용이었다. 윤동주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많은 일화를 들었지만, 정지용에 대해서는 간단히 적힌 이력 외에는 들어본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제서야 좀 알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정지용의 시를 보면 배경과 주변 사물의 대한 묘사, 분위기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혼자 있다는 느낌이거나, 소외받는다는 쓸쓸함이 배어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바다나, 바람 같이 제목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시에서는 크게 부각되는 것 같았다. 개인적인 외로움은 물론이고, 표제작인 <카페 프란스>를 보면 당시의 국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우리민족의 소외감도 나타낸 것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다.

 <애국의 노래>를 기점으로 분위기와 느낌이 차츰 바뀌는 듯한데, 이때가 아마 광복 이후 현재의 이화여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한다. <여제자>라는 시와 청춘에 대한 느낌이 많은 걸 보면서 자신이 가르치던 제자들을 보며 느낀 점과 생각을 나타낸 것으로 보였다.
 시에서도 나름 깊은 느낌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큰 의미를 느낀 게 바로 정지용 시인의 산문에서였다. 맨 뒤에 산문 3편이 실려 있는데, 그 중 <대단치 않은 이야기>가 바로 내가 주목한 것이다. 어린이에 대해 쓴 글인데, 마치 현재의 입시주의 문제를 예상한 듯한 구절이 있어서 놀라웠다. 마치 먼 미래를 그대로 내다본 것 같았다. 물론 그 당시의 상황에서 쓴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현재의 문제가 과거에도 있었듯이 정지용이 살았던 시절에 느꼈던 문제점이 모습은 다르지만 본질은 그대로인 현재 진행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바이다.

 

 어린이를 두들겨 교육하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절로 자라고 잘되도록 방해를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금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늙어가는 어른들이 자라는 어린이들을 교육할 의무가 있다면 무엇보다도 자기 소년 적 지난 일을 생각하여 자기가 당한 억울하고 부자연한 옳지 못한 괴롬을 어린이에게 다시 전하여 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사업을 한 노릇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대단치 않은 이야기>156~1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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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 전집 5 - 러브크래프트 전집 5 외전 (상) 러브크래프트 전집 5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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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권을 끝으로 완성된 것으로 보였던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세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었다. 다른 작가와의 공저작을 포함해서 돌아온 전집 외전에는 특유의 기괴한 느낌과 더불어 낯선 느낌이 공존하는 느낌이었다. 더불어 다른 작가들이 창작한 크툴루 신화의 신과 그 당시에 썼다 하기에는 다소 현대 SF 같은 작품도 보여서 공저가 분들도 대단한 분들이로 보였다.

 

 헤이즈 힐즈_<박물관에서의 공포>,<묘지에서의 공포>, <석인>, <영겁으로 부터>, <날개 달린 죽음>

 이 분과의 공저작을 보면 러브크래프트 특유의 코스믹 호러 분위기를 답습하는 분위기라 그나마 낯설지 않게 볼 법한 게 있는 편이다. 하지만 낯설지 않은 만큼, 약간 러브크래프트의 본작에서 봤을 법한 구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묘지에서의 공포>가 그에 해당하는 케이스인데, 이게 어떤 느낌인가 하면 배경과 인물, 그리고 설정만 약간 다른 <허버트 웨스트-리애니메이터>로 보일 정도다. <박물관에서의 공포>와 <석인>은 그나마 나은 편이긴 하지만, 박물관은 딱 전형적인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그 자체고, 석인은 현대 창작물에서 종종 보이는 석화를 주제로 삼은 거라 현대 시점에서는 흔해 빠진 설정으로 보일 수도 있다. 

 높게 평가하는 건 <영겁으로 부터>와 <날개 달린 죽음>이다. < 영겁으로 부터>는 짧은 분량 안에서 <광기의 산맥>에서 나온 장엄한 스케일의 코스믹 공포와 현대와 태고적 세계의 충돌이 크게 나타나 있어서 현실과 미지의 세계가 혼합되는 걸 느낄 수 있다. <날개 달린 죽음>은 크툴루 신화적 요소는 없지만, 그 당시의 아프리카에 대한 느낌을 엿보며 별거 아닌 것을 소재로 극한의 공포로 몰아넣는 느낌이 최고였다.

 

 질리아 비숍_<메두사의 머리타래>, <이그의 저주>

 이 분과의 공저작의 특징이라면 주로 뱀을 소재로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두 작품 중에 나은 걸 꼽자면 <이그의 저주>를 선택하겠다. <메두사의 머리타래>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수수께끼의 저택에 숨겨진 과거의 비밀과 사라지지 않는 공포가 어딘지 고딕소설 같은 매력이 있다. 다만, 중요 공포요소로 머리카락이 많이 나오는데, 머리카락을 이용한 공포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이그의 저주>는 크툴루 신화에 북미 원주민 전설이 섞인듯한 느낌이다. 배경도 미 서부의 평원이라 더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감도 있다. 특히 후반 부의 본격적으로 이그의 저주가 나타나는 시점에서의 광란은 뱀 그 자체를 넘어선 공포를 선사한다. 다만, 작중에서 남편이 뱀을 너무나 무서워해서 기절까지 할 정도라고 나오는 게 좀 흠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러브크래프트 작품에서 툭하면 기절하는 인물들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R. H. 발로_<괴수 마법사의 보물>, <괴물 죽이기>, <모든 바다가 마를 때까지>, <붕괴하는 우주>, <밤바다>

 이 분을 특히 주목하는데, 주로 드림랜드 같은 판타지적인 느낌과 현대 SF에 가까운 느낌의 작품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판타지 느낌의 작품은 구성자체는 기발하긴 하나 스토리적으로 보면 특별할 게 없어서 실망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 어떤가 하면 <괴수 마법사의 보물>은 어떻게 보면 절망적인 판타지, 또 어떻게 보면 완전 허무한 판타지로 보일 수 있고, <괴물 죽이기>는 반전 판타지 혹은 한 페이지에 끄적 거린 판타지 낚시로 보일 수 있다.

 <모든 바다가 마를 때까지>는 이 분과의 공저작 중에서 가장 최고로 꼽는다. 지구가 태양과 가까워지면서 종말을 맞이하는 종말소설인데, 서서히 메말라가는 지구의 풍경과 그곳에서 맞이하는 종말이 얼마나 덧없는지 나타나 있다.

  <붕괴하는 우주>라는 미완성 작품은 스페이스 오페라 풍자 작품이라는데, 그 당시에 썼다고 하기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느낌이라 이게 완성됐었다면 어땠을지 궁금해질 정도다.

 마지막으로 <밤바다>는 공포의 본질을 파해치는 내용인데, 그 당대에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좀 지루한 감이 많다.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의 흔적이 나타나 그 그림자가 덮친다면 모를까, 주인공 내면에 잠재된 공포의 흔적 끄트머리만 잡고 이게 이러해서 이러니까 그래서 무섭다라는 식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해서 정말 질질 끈다고 밖에 생각 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뜬금없이 데이곤이나 심해의 미지 대륙이 솟아났으면 더 나을까 말까하다고 생각한다.

 아돌프 드카스트로_<마지막 실험>, <전기 처형기>

 

 이 분과의 공저작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미지의 공포보다는 그 당시 수준의 현대 과학에 대한 공포가 주제로 들어나 있어서 어떻게 보면 다소 현실적인 공포라 할 수도 있을 법하다. 해설을 보면 러브크래프트가 이 분과 공저를 하면서 알게 모르게 엄청 짜증을 냈다고 하는데, 공저작 두 개를 읽다보면 왜 그런지 대충은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특별한 점이 있다면 이 공저작은 러브크래프트가 추구하는 꿈도 희망도 없는 결말보다는 몇몇 인물들은 살아남아 멀쩡하게 생존한다는 점이다.

 <마지막 실험>은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전염병으로 인한 공포와 연구원이 부담감을 가지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부분이 흡사 중세 유렵의 흑사병의 재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당대 과학에 대한 공포를 내세우기 때문에 러브크래프트의 본작에 나올 법한 외우주 존재나 태고의 추종자들 같은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요소가 없거나, 별 서술없이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서 약간 지루할 수도 있다.

 <전기 처형기>는 그 당시 사형제도에 있었던 전기의자를 모티브로 한 듯한 내용으로 <마지막 실험>에 비해 러브크래프트의 색이 약간 강한 면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그렇게 좋게 평가하기가 뭐한게 대부분 기차타고 다니는 것에 치중되고, 나머지는 주인공과 미치광이의 대립이 전부라 러브크래프트의 빡침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도 있을 정도다.

 

 위니프리드 버지니아 잭슨_<초원>, <포복하는 혼돈>

 

 이 분과의 공저작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말 그대로 코스믹 호러 그 자체다. 러브크래프트의 창작물에 빠지지 않던 신화적 존재나, 추종자들, 상징, 마도서 같은 것 없이 미지의 공간 그 자체로 경이로운 공포를 선사한다보면 된다.

 <초원>은 구성부터가 코스믹 호러 그 자체인데, 고대 그리스인이 먼 우주로 날아간 듯한 내용이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거기에 <포복하는 혼돈>은 꿈인지 우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 그 자체라 무슨 마약한 사람의 시선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나마 다행인게 분량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라 좋은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이지, 조금만 더 분량이 많았다면 이게 뭐냐면서 욕하고도 남을 것이다.

 

 소니아 그린_<마틴 위치에서의 공포>

 

 러브크래프트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이 분은 러브크래프트와 한 동안 결혼 생활을 했던 분이다. 여기서 이 분의 이력을 처음 보았는데, 의외로 꽤나 멋지신 분이었던 듯하다.

 해변을 배경으로 하면서 미지의 공포를 나타내다 보니, 어딘지 모르게 죠스 같은 느낌도 들기도 했다. 차이점이라면 죠스는 사람들을 물 밖으로 도망가게 만들었지만, 여기나오는 괴물은 도리어 사람들을 물로 끌어 당겼다는 것이다. 분위기를 점점 혼돈 그 자체로 몰아가는 느낌이 포인트인데, 문제는 이게 작중 분위기로만 살렸으면 됐는데 글 자체에서까지 그 느낌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좀 정신없게 만들었다. 이를테면 혼돈이 몰아치다 못해 지나치게 흘러넘쳤다고 생각하면 된다.

 

 해리 후디니_<피라미드 아래서>

 

 아시는 분은 이름을 보면 알 법한, 헝가리 마술사 후디니 그 분 맞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해설을 보면 후디니가 소재만 제공하고 러브크래프트가 대필한 것으로 보인다.

 내용은 후디니가 제공한 만큼 후다니 자기 자신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이집트로 여행갔다가 피라미드에 감금당하는 내용인데, 어딘지 모르게 인디아나 존스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고대 유적에 관한 박식한 정보에 현지인 악당과 대립하는 모양새가 딱이다. 본격적으로 피라미드 지하에 들어갈 때부터는 이집트 풍 코스믹 호러의 범람이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다면 이게 후디니 본인이 직접 체험하고 쓴 듯한 뉘앙스가 풍긴다는 것이다.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지만 탈출 마술의 명인이니,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 알면 피곤해진다느니 하는 걸 보면 딱 후디니 본인이다. 그러나 1장에서는 이집트를 관광하는 후디니 본인이라 칠 수는 있어도, 2장의 코스믹 호러 정점에서는 아무리 우긴다 해도 툭하면 기절하는 모양새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 익명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시종일관 분명 꿈이 확실하다고 단정하는 투여서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헨리 화이트헤드_<함정>

 

 이 분과의 공저작은 산뜻한 느낌과 코스믹이 공존하는 느낌이라 한없이 음울하고, 절망적인 러브크래프트의 본작에 비하면 밝은 느낌이라 해도 좋다. 주로 이 산뜻한 느낌은 공저자인 헨리 화이트헤드의 손에서 나오고, 나머지 코스믹스러운 공포는 러브크래프트의 실력으로 보인다.

 거울을 매개체로 한 공포가 주 내용인데, 현대에도 흔한 거라 약간 뻔할 것이라는 예상을 했지만 익숙하면서 다소 충격적인 전개라 흥미롭게 보았다. 무려 4차원을 개념으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코스믹 호러가 전개된 것이다. 아돌프 드카스트로와의 공저작보다 더 확실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면서 엄청난 반전이 있어서 더욱 충격적이기도 하다.

 

 청소년기 작품_<작은 유리병>, <비밀의 동굴 혹은 존 리 남매의 모험>, <묘지의 미스터리 혹은 '죽은 자의 복수'>, <수상한 배>, <달콤한 에르망가르데 혹은 시골 처녀의 마음>

 

 크툴루 신화 본좌의 초기 작품들인데, <작은 유리병>부터 웃음이 나올 정도로 짧고 약간은 허무한 전개라 이 분이 어린 시절에는 이런 걸 썼구나 하고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보면 무언가 지정된 지점으로 가라고 전개되거나, 어떤 공간이 갑자기 나타나 움직이는 전개라 마치 어린 애들의 보물찾기 같은 분위기로 느껴졌다.

 <묘지의 미스터리 혹은 '죽은 자의 복수'>와 <수상한 배> 같은 경우는 파트가 나눠져 있으나 엄청난 속도로 급속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살 없는 소설의 골격을 본다고 보면 된다.

 <달콤한 에르망가르데 혹은 시골 처녀의 마음>은 연애코믹물이라 좀 당황스러운 감이 있었다. 에르망가르데라는 시골처녀를 주인공으로 남자가 꼬이는 내용인데, 국내 막장 드라마에 버금갈 정도로 어이없는 전개와 뒤통수를 보여줘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전개를 생각했는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의외로 의미있는 내용도 있었다. <비밀의 동굴 혹은 존 리 남매의 모험> 의 경우인데, 결말에 생명이 중요하다는 걸 은근히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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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가 너무 많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렉스 스타우트 지음, 이원열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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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와 요리. 별 관련 없어 보이지만, 저택을 배경으로 하는 추리소설에서는 그 장소에 걸맞는 음식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단지, 요리보다는 추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부각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였는지 추리와 함께 요리를 같이 주목하는 추리소설이 나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뭐, 역자후기를 보면 셜록 홈즈가 먹는 음식에 관심을 가지다가 그 뒤로 탐정들이 먹는 것을 따지고 미식에 관해 나오면서 이런 구성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나는 이렇지도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

 지금도 요리와 관련된 추리가 있지만, 본격 추리의 저택에서 나올 법한 요리가 등장하는 건 렉스 스타우트의 네로 울프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네로 울프는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요리장들이 모이는 행사에 초대를 받는다. 웨스트 버지니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네로는 오래전에 맛보고 잊을 수 없었던 요리, 소시스 미뉘이를 개발한 요리사 제로메 베린을 만나지만 그에게서 조리법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커노 스파의 포카혼타스 별관에 도착한 네로 일행은 세계 각지에서 모인 요리사들이 필립 라스지오라는 요리사를 경계하고 심지어는 증오라는 걸 목격한다. 첫 만찬이 끝난 후, 요리에 첨가된 소스를 알아맞추는 행사가 진행되던 중 필립 라즈지오가 칼에 찔려 사망한채로 발견되는데...

 들은 바에 따르면 네로 울프 시리즈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건 그 당시 미국인의 관점일지언정 현재 우리나라에서의 관점은 아니라는 건 확실히 따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호불호가 갈릴 만한 작품이었다.

 일단은 안락의자 탐정의 정석대로 네로 울프가 움직여서 수사하지 않고 조수인 아서 굿윈이 한다. 그런데, 이 작품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수사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거의 사건 현장인 커노 스파를 아서 굿윈을 통해 관람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중간중간에 범인의 행적에 관한 게 아예 나오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것도 수사를 위해서가 아닌 귀찮게 하는 이들을 쫓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 어떻게 보기에는 상당히 김빠져 보일 상황이었다.

 도대체 밑도 끝도 없이 모르쇠로 퍼트려놓고 어떻게 결말로 수습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 구성이라 이런 게 어떻게 세련된 플롯이라 평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사건 해결에 가서는 결국 아서 굿윈도 들러리에 지나지 않은 현실을 보면 왜 이게 유명작인지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이 상당수일 것이다.

 굳이 이게 왜 유명작인지 따져보자면 여러 요리장들이 모인 자리인 만큼, 요리에 대한 묘사가 잘 되어 있는 것과 네로 울프 시리즈에서 강조하는 오트퀴진의 향기가 짙어서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또한 네로 울프가 수사관들의 어리석은 행동을 비판하고, 그런 네로 울프를 존경하는 듯 하면서 이따금식 그를 놀려먹고 싶어하는 아서 굿윈의 만담스러운 상황도 나름 볼만 하다. 다만 사건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이런다면 집중해서 보겠지만,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황에서 이런 게 나오니, 이것들이 하라는 수사는 하지 않고 헛소리만 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요리에 대한 부분에 관심을 가지면 별 불만 없을지 모르지만, 요리 미스터리건 오컬트 미스터리건 트릭과 해결과정에 대한 신선함을 원하는 추리소설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을 듯하다.

 솔직히 여기서 사용된 트릭은 그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는 상상도 못할 트릭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 와서는 당시 시대작 환경이 어땠는지 이해하지 않는 이상, 정말 시시하게 밖에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리사가 너무 많다는 제목에 걸맞게 많은 고급요리가 나와서 오트퀴진 미스터리라는 이름이 장식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어필했다. 다만, 추리적인 면을 보자면 좀 호불호가 심하게 느껴져서 다른 네로 울프 시리즈가 어떤지 알지 않는 이상, 진가를 알아보기는 힘들다는 생각이다. 덤으로 원서에는 실려 있었다는 소시스 미뉘이 조리법이 번역서에는 실려 있지 않았다는 게 참으로 유감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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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이용덕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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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언제 망가지는 걸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그런 기질이 타고나서 어쩔 수 없는 경우. 또는 그런 사람이 멀쩡하게 살고 있는 사람을 꼬드겨서 시궁창에 빠뜨리는 경우. 또 어떤 이는 멀쩡한 사람을 주변 환경이 망가뜨리는 경우.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사람이 망가진다는 게 어떤건지 쉽게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 같은 현실을 보면 위에 나온 예도 반드시 정답일지 의문이 든다. 아니, 도대체 무엇이 사람을 망가뜨리고 그 현실에 무기력하게 침식되고 마는 걸까.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는 그 답을 확실하게 알려주지 않지만, 망가진다는 것의 현실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면서 그 느낌을 토대로 독자 스스로 답을 찾게 해주는 것 같았다.

 삼수생 도쿠야마는 어느 이른 아침에 아르바이트 친구들과 함께 단란주점을 방문한다. 한껏 치장한 여자들에 둘러싸여 즐기는데, 유독 하쓰미라는 여자가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어 도쿠야마는 점점 당황하고 만다. 이후, 자취방에서 공부할 때마다 하쓰미가 도쿠야마에게 끊임없이 연락해 온다. 마치 도쿠야마의 여자친구 마냥 접근하는 통에 도쿠야마 본인은 불쾌해 한다. 그런데, 한 번 속는 셈치고 그녀와 동물원에 다녀온 후 도쿠야마는 점점 망가져가는데...

 사람이 제대로 망가지는 과정이 나오는데, 그냥 퇴폐적인 것도 아니고 철없는 행동의 끝을 보여주는 것처럼 단순한 과정이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런 수준과는 전혀 다른 나락의 길이라 이걸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마음이 복잡해질 지경이다. 

 처음에는 나를 망치는 세상과 맞서는 듯 해서 나름 통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 끝은 사람을 시궁창 밑바닥까지 처박히게 만들어서 도대체 이렇게 비참한 현실로 이끄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따지고 싶을 정도였다. 하쓰미가 원흉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작중에서 일을 벌이는 건 도쿠야마 자신이고, 하쓰미를 의심하고 싶어도 상황은 주변인물을 비롯한 세상 전체 때문이라는 느낌이라 결국에는 세상이 원흉이라는 결론이 나고만다.

 어떻게 생각하든 추악한 현실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전개와 곳곳에서 등장하는 현재 진형형인 인간의 추악한 역사에 대한 논쟁을 보고서도 이 책이 나름 쉽게 읽어졌다.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구석이 많고,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왜 절망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보면 볼 수록 이 소설이 상당히 역겹다고 여겨질 만도 하다. 약간의 희망이라도 그저 현실을 직시 못하는 망상에 치부하고, 작은 꿈도 하찮게 보며 말도 안 되는 허상이라 비웃으며 비관의 끝을 보여주는데 어떻게 좋은 평가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끝까지 다 읽고나서 역겹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자신이 처한 현실은 좋지 않더라도, 그걸 개선하냐 망가뜨리냐는 결국 자신에게 달린 문제가 아닌가.

 자신이 이렇게 된 현실의 원흉을 따지고 싶어질 때, 가장 의심하기 쉬운 게 바로 세상이다.

 그리고 더 살고 싶다.

 미래설계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너무 심각하게 들여다보면 좋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삶의 끝은 결국에는 죽음이다. 그걸 인식하고 살면 뭘하든 결국에는 죽는다는 생각에 비관적으로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미래를 걱정하기 보다는 지금의 현실. 현재가 더 중요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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