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러브크래프트 전집 5 - 러브크래프트 전집 5 외전 (상) ㅣ 러브크래프트 전집 5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월
평점 :
4권을 끝으로 완성된 것으로 보였던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세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었다. 다른 작가와의 공저작을 포함해서 돌아온 전집 외전에는 특유의 기괴한 느낌과 더불어 낯선 느낌이 공존하는 느낌이었다. 더불어 다른 작가들이 창작한 크툴루 신화의 신과 그 당시에 썼다 하기에는 다소 현대 SF 같은 작품도 보여서 공저가 분들도 대단한 분들이로 보였다.
헤이즈 힐즈_<박물관에서의 공포>,<묘지에서의 공포>,
<석인>, <영겁으로 부터>, <날개 달린 죽음>
이 분과의 공저작을 보면 러브크래프트 특유의 코스믹 호러 분위기를 답습하는 분위기라 그나마
낯설지 않게 볼 법한 게 있는 편이다. 하지만 낯설지 않은 만큼, 약간 러브크래프트의 본작에서 봤을 법한 구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묘지에서의 공포>가 그에 해당하는 케이스인데, 이게 어떤 느낌인가 하면 배경과 인물, 그리고 설정만 약간 다른 <허버트
웨스트-리애니메이터>로 보일 정도다. <박물관에서의 공포>와 <석인>은 그나마 나은 편이긴 하지만, 박물관은 딱
전형적인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그 자체고, 석인은 현대 창작물에서 종종 보이는 석화를 주제로 삼은 거라 현대 시점에서는 흔해 빠진 설정으로 보일
수도 있다.
높게 평가하는 건 <영겁으로 부터>와 <날개 달린 죽음>이다. < 영겁으로 부터>는 짧은 분량 안에서 <광기의 산맥>에서 나온 장엄한 스케일의 코스믹 공포와 현대와 태고적 세계의 충돌이 크게 나타나 있어서 현실과 미지의 세계가 혼합되는 걸 느낄 수 있다. <날개 달린 죽음>은 크툴루 신화적 요소는 없지만, 그 당시의 아프리카에 대한 느낌을 엿보며 별거 아닌 것을 소재로 극한의 공포로 몰아넣는 느낌이 최고였다.
질리아 비숍_<메두사의 머리타래>, <이그의 저주>
이 분과의 공저작의 특징이라면 주로 뱀을 소재로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두 작품 중에
나은 걸 꼽자면 <이그의 저주>를 선택하겠다. <메두사의 머리타래>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수수께끼의 저택에 숨겨진
과거의 비밀과 사라지지 않는 공포가 어딘지 고딕소설 같은 매력이 있다. 다만, 중요 공포요소로 머리카락이 많이 나오는데, 머리카락을 이용한
공포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이그의 저주>는 크툴루 신화에 북미 원주민 전설이 섞인듯한 느낌이다. 배경도 미
서부의 평원이라 더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감도 있다. 특히 후반 부의 본격적으로 이그의 저주가 나타나는 시점에서의 광란은 뱀 그 자체를 넘어선
공포를 선사한다. 다만, 작중에서 남편이 뱀을 너무나 무서워해서 기절까지 할 정도라고 나오는 게 좀 흠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러브크래프트
작품에서 툭하면 기절하는 인물들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R. H. 발로_<괴수 마법사의 보물>, <괴물 죽이기>, <모든
바다가 마를 때까지>, <붕괴하는 우주>, <밤바다>
이 분을 특히 주목하는데, 주로 드림랜드 같은 판타지적인 느낌과 현대 SF에 가까운
느낌의 작품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판타지 느낌의 작품은 구성자체는 기발하긴 하나 스토리적으로 보면 특별할 게 없어서 실망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 어떤가 하면 <괴수 마법사의 보물>은 어떻게 보면 절망적인 판타지, 또 어떻게 보면 완전 허무한 판타지로
보일 수 있고, <괴물 죽이기>는 반전 판타지 혹은 한 페이지에 끄적 거린 판타지 낚시로 보일 수 있다.
<모든 바다가 마를 때까지>는 이 분과의 공저작 중에서 가장 최고로 꼽는다.
지구가 태양과 가까워지면서 종말을 맞이하는 종말소설인데, 서서히 메말라가는 지구의 풍경과 그곳에서 맞이하는 종말이 얼마나 덧없는지 나타나 있다.
<붕괴하는 우주>라는 미완성 작품은 스페이스 오페라 풍자 작품이라는데, 그 당시에
썼다고 하기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느낌이라 이게 완성됐었다면 어땠을지 궁금해질 정도다.
마지막으로 <밤바다>는 공포의 본질을 파해치는 내용인데, 그 당대에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좀 지루한 감이 많다.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의 흔적이 나타나 그 그림자가 덮친다면 모를까, 주인공
내면에 잠재된 공포의 흔적 끄트머리만 잡고 이게 이러해서 이러니까 그래서 무섭다라는 식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해서 정말 질질 끈다고 밖에 생각
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뜬금없이 데이곤이나 심해의 미지 대륙이 솟아났으면 더 나을까 말까하다고 생각한다.
아돌프 드카스트로_<마지막 실험>, <전기 처형기>
이 분과의 공저작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미지의 공포보다는 그 당시
수준의 현대 과학에 대한 공포가 주제로 들어나 있어서 어떻게 보면 다소 현실적인 공포라 할 수도 있을 법하다. 해설을 보면 러브크래프트가 이
분과 공저를 하면서 알게 모르게 엄청 짜증을 냈다고 하는데, 공저작 두 개를 읽다보면 왜 그런지 대충은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특별한
점이 있다면 이 공저작은 러브크래프트가 추구하는 꿈도 희망도 없는 결말보다는 몇몇 인물들은 살아남아 멀쩡하게 생존한다는 점이다.
<마지막 실험>은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전염병으로 인한 공포와 연구원이 부담감을
가지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부분이 흡사 중세 유렵의 흑사병의 재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당대
과학에 대한 공포를 내세우기 때문에 러브크래프트의 본작에 나올 법한 외우주 존재나 태고의 추종자들 같은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요소가 없거나, 별
서술없이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서 약간 지루할 수도 있다.
<전기 처형기>는 그 당시 사형제도에 있었던 전기의자를 모티브로 한 듯한 내용으로
<마지막 실험>에 비해 러브크래프트의 색이 약간 강한 면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그렇게 좋게 평가하기가 뭐한게 대부분 기차타고
다니는 것에 치중되고, 나머지는 주인공과 미치광이의 대립이 전부라 러브크래프트의 빡침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도 있을 정도다.
위니프리드 버지니아 잭슨_<초원>, <포복하는 혼돈>
이 분과의 공저작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말 그대로 코스믹 호러 그 자체다. 러브크래프트의
창작물에 빠지지 않던 신화적 존재나, 추종자들, 상징, 마도서 같은 것 없이 미지의 공간 그 자체로 경이로운 공포를 선사한다보면 된다.
<초원>은 구성부터가 코스믹 호러 그 자체인데, 고대 그리스인이 먼 우주로 날아간
듯한 내용이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거기에 <포복하는 혼돈>은 꿈인지 우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 그
자체라 무슨 마약한 사람의 시선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나마 다행인게 분량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라 좋은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이지, 조금만 더 분량이 많았다면 이게 뭐냐면서 욕하고도 남을 것이다.
소니아 그린_<마틴 위치에서의 공포>
러브크래프트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이 분은 러브크래프트와 한 동안 결혼 생활을
했던 분이다. 여기서 이 분의 이력을 처음 보았는데, 의외로 꽤나 멋지신 분이었던 듯하다.
해변을 배경으로 하면서 미지의 공포를 나타내다 보니, 어딘지 모르게 죠스 같은 느낌도 들기도
했다. 차이점이라면 죠스는 사람들을 물 밖으로 도망가게 만들었지만, 여기나오는 괴물은 도리어 사람들을 물로 끌어 당겼다는 것이다. 분위기를 점점
혼돈 그 자체로 몰아가는 느낌이 포인트인데, 문제는 이게 작중 분위기로만 살렸으면 됐는데 글 자체에서까지 그 느낌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좀
정신없게 만들었다. 이를테면 혼돈이 몰아치다 못해 지나치게 흘러넘쳤다고 생각하면 된다.
해리 후디니_<피라미드 아래서>
아시는 분은 이름을 보면 알 법한, 헝가리 마술사 후디니 그 분 맞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해설을 보면 후디니가 소재만 제공하고 러브크래프트가 대필한 것으로 보인다.
내용은 후디니가 제공한 만큼 후다니 자기 자신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이집트로 여행갔다가
피라미드에 감금당하는 내용인데, 어딘지 모르게 인디아나 존스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고대 유적에 관한 박식한 정보에 현지인 악당과 대립하는
모양새가 딱이다. 본격적으로 피라미드 지하에 들어갈 때부터는 이집트 풍 코스믹 호러의 범람이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다면 이게 후디니 본인이 직접 체험하고 쓴 듯한 뉘앙스가 풍긴다는
것이다.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지만 탈출 마술의 명인이니,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 알면 피곤해진다느니 하는 걸 보면 딱 후디니 본인이다. 그러나
1장에서는 이집트를 관광하는 후디니 본인이라 칠 수는 있어도, 2장의 코스믹 호러 정점에서는 아무리 우긴다 해도 툭하면 기절하는
모양새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 익명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시종일관 분명 꿈이 확실하다고 단정하는 투여서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헨리 화이트헤드_<함정>
이 분과의 공저작은 산뜻한 느낌과 코스믹이 공존하는 느낌이라 한없이 음울하고, 절망적인
러브크래프트의 본작에 비하면 밝은 느낌이라 해도 좋다. 주로 이 산뜻한 느낌은 공저자인 헨리 화이트헤드의 손에서 나오고, 나머지 코스믹스러운
공포는 러브크래프트의 실력으로 보인다.
거울을 매개체로 한 공포가 주 내용인데, 현대에도 흔한 거라 약간 뻔할 것이라는 예상을
했지만 익숙하면서 다소 충격적인 전개라 흥미롭게 보았다. 무려 4차원을 개념으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코스믹 호러가 전개된 것이다. 아돌프
드카스트로와의 공저작보다 더 확실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면서 엄청난 반전이 있어서 더욱 충격적이기도 하다.
청소년기 작품_<작은 유리병>, <비밀의 동굴 혹은 존 리 남매의
모험>, <묘지의 미스터리 혹은 '죽은 자의 복수'>, <수상한 배>, <달콤한 에르망가르데 혹은 시골 처녀의
마음>
크툴루 신화 본좌의 초기 작품들인데, <작은 유리병>부터 웃음이 나올 정도로 짧고
약간은 허무한 전개라 이 분이 어린 시절에는 이런 걸 썼구나 하고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보면 무언가 지정된 지점으로 가라고
전개되거나, 어떤 공간이 갑자기 나타나 움직이는 전개라 마치 어린 애들의 보물찾기 같은 분위기로 느껴졌다.
<묘지의 미스터리 혹은 '죽은 자의 복수'>와 <수상한 배> 같은
경우는 파트가 나눠져 있으나 엄청난 속도로 급속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살 없는 소설의 골격을 본다고 보면 된다.
<달콤한 에르망가르데 혹은 시골 처녀의 마음>은 연애코믹물이라 좀 당황스러운 감이
있었다. 에르망가르데라는 시골처녀를 주인공으로 남자가 꼬이는 내용인데, 국내 막장 드라마에 버금갈 정도로 어이없는 전개와 뒤통수를 보여줘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전개를 생각했는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의외로 의미있는 내용도 있었다. <비밀의 동굴 혹은 존 리 남매의 모험> 의
경우인데, 결말에 생명이 중요하다는 걸 은근히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