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드랴프카의 차례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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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수 많은 기대가 존재한다. 무언가를 기다리며 가지는 마음이거나, 열광하고 응원하게 되는 일종의 믿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기대란 것이 언제나 좋은 인상만을 남기는 건 아니다. 기대에 배신당하는 일은 생각이상으로 수두룩하고, 누군가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다. 받아들이는 상황에 따라 같은 단어라도 받아들이는 의미가 제각각인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어쩌면 기대란 청춘과 마찬가지로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가진 복합적인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침내 개최된 카미야마 고등학교 축제날. 그런데 예정보다 초과된 수량으로 제작된 문집으로 인해 고전부원들은 어떻게 해야 완판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각자가 맡은 역할을 하며 문집 판매를 위해 힘쓰던 중, 누군가 축제를 돌아다니며 동아리마다 물건을 하나씩 훔쳐가는 도난 사건인 일명 십문자 사건이 발생한다. 사토시는 이 사건을 이용해 문집 판매를 유도하자는 의견을 내고 직접 범인인 괴도 십문자를 찾기 위해 나서고, 호타로 역시 문집 문제와 십문자 사건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데...

떠들썩한 학교 축제 진행과정을 메인으로 다루면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군상극을 다루는 구성인데, 생각이상으로 난잡하지 않게 구성을 잘한 편이다. 시리즈의 주역인 고전부원(호타로, 치탄다, 사토시, 마야카)을 개별 화자로 정해 놓음으로서 학교 곳곳을 자연스레 비추기 적절했고. 정해진 역할에 따라 다양한 상황을 보여줌으로서 복잡하지 않게 군상극을 만들기 딱이다. 축제는 축제대로 활기찬 청춘의 분위기를, 작중에서 벌어진 사건은 사건대로 축제와 관련성 있는 무게감을 주기에 어색하지도 않다.

그냥 읽으면 떠들썩한 학교 축제에 대한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는 기대란 주제를 다각도로 다룬 내용이란 생각이 든다. 고전부원들의 시점에 따라 나타나는 제각기 다른 분위기를 가진 기대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면이 나타나서 그렇다. 각 인물별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치탄다는 스스로가 가진 기대란 감정을 해석하는 부분으로 보였다. 정확히는 기대가 가진 무게에 대한 고찰이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다. 기대란 남에게 의지하는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인가. 작중에서 문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다니는 역할이라 이런 부분에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치탄다는 부탁에 서툰 성격이라 더 힘들테니 말이다. 사실 치탄다는 시리즈를 쭉 봐왔다면 알겠지만 사건만 발생하면 언제나 기대로 가득차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사방이 기대할 것으로 가득한 축제란 공간이라, 평소에 하던 기대를 다른 기대들과 비교해 볼 기회나 다름없게 된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기대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사토시는 기대란 체념이라고 설명한다. 스스로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 되버리면 자연스레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평소 사토시는 박학다식 하지만 딱 거기까지만 하는 역할이라 메인 보다 서포트에 해당된 역할이긴 했다. 그런 사토시가 의욕을 보이며 메인으로서 도전하고 좌절하는 부분이 나오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탐정의 조수 역할에 해당되는 이들도 비슷했을까. 아는 것이 많고 노력한다 해도 넘을 수 없는 한계란 것이 존재한다고 말이다. 어쩌면 기대란 것은 밝은 햇볕 같은 것이 아닌 해질녘에 드리우는 그림자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쓸쓸하면서도 굳이 내색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은 무언가.

마야카는 기대가 줄 수 있을 부정적인 면에 대해 다룬다. 이걸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요소가 바로 만화다. 고전부 외에 소속된 동아리인 만화연구부 쪽에서 축제 분위기와 상반되는 어두운 분쟁이 묘사되는데, 여기서 쟁점이된 부분은 명작은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가의 문제다. 모두가 인정하는 것만이 명작이고, 이외의 것들은 명작이 될 수 없는 것인가. 이건 사토시의 경우와 비슷하게 기대가 가진 어두운 면에 해당된다. 누군가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란, 반대로 기대받지 못한 이들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런 이들에게 기대란 스스로 자신을 깎아내리게 되는 절망이나 다름없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에 큰 슬픔으로 느껴지게 된다.

호타로는 기대를 받는 입장에 해당되면서 여기에 어떻게 반응해줘야 하는지 고민하는 위치다. 사실상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엔딩 바로 앞에서 기다리며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지켜보는 관전자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호타로의 시점은 여러모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운빨이라 할 수도 있고, 유동적으로 흘러가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발생한 변수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십문자 사건의 결말을 보면 애초에 정해진 운명이나 다름없긴하다. 모든 것이 해야 될 일인 문집 판매와 연관되어 흘러갔고, 이 흐름을 분석하고 이용해 먹는 가는 오직 호타로의 선택에 달린 것이라 그렇다. 언제나 그렇듯 호타로는 모두의 기대에 걸맞게 반응을 해주긴 하지만, 이번에는 기대받는 위치에서 자각하지 못할 사실들을 깨닫게 된 의미있는 순간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십문자 사건 자체에 대한 인상은 고전 추리 작품을 일상 미스터리 구성으로 패러디한 구조면서, 축제란 분위기와 상반되는 기대가 가진 그림자의 핵심을 찔러서 꽤 인상적이다. 고전부원들의 사례를 통해 보이듯이 기대란 상당히 복합적인 것이다. 여기서 더 자세히 정리하자면 재능이 있는 이들에게 재능 없는 이들이 보내는 선망, 또는 질투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와 반대로 타고난 재능이 있으면서 그걸 대단하게 여기지 않고 썩히는 경우도 존재한다. 누군가에게는 상당한 노력의 산물인 것이, 다른 이에게는 그저 가벼운 취미 정도인 셈이다. 기대를 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건 얼마나 아깝고 억장이 무너지는 일일까.

배신당한 기대 속에서 나온 외침이란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도 애매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상대가 하고자 하는 의욕에 달린 문제고, 잘못하면 별거 아닌 일로 싸움이 일어나거나 일방적인 강요가 되버려서 그렇다. 호타로의 경우로 놓고만 봐도 스스로가 해야되겠다고 마음 먹고서야 모두가 원하는 결말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게 했다면 오히려 제 실력이 안 나오거나 아예 재능을 쓰지 않으려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기대하는 입장에서 가진 마음을 어떻개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

제발 이 기대를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나의 기대가 이 정도니 그에 따른 답을 들려주었으면 한다. 이걸 알아주지 못하더라도 내 기대에 대한 흔적을 이렇게라도 남긴다.

쿠드랴프카의 차례에 담긴 기대는 이 정도로 보였다. 범인에 해당되는 이가 평범한 학생에 속한 경우가 아니다보니 이러한 부분이 꽤 크게 다가왔다. 쿠드랴프카란 1954년 소련에서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워 우주로 쏘아올린 개의 이름으로 우주 개발 경쟁이란 시대적 흐름 속에서 희생당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 우주 개발이란 기대를 나타내는 흔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청춘 속에서 알게 모르게 사라져간 기대들처럼. 기대받는 입장이란 걸 자각하는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점점 알 수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모르면 모르는대로 실망하는 이들을 방치하게 되는 셈이고. 알면 아는대로 부담으로 작용해 실망을 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쩌면 호타로의 방식이 답일지 모르겠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은 굳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은 간략하게. 이러면 기대 받는 입장과 기대하는 입장, 호타로와 치탄다처럼 편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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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망자,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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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착각은 한 끝 차이긴 하다. 갑자기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 상황에 닥치다 보니 판단력을 잃고 헛것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번 눈에 들어온 인상은 쉽게 바뀌지 않기에 그 실체를 영원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착각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이고, 공포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착각이란 주장은 애써 공포를 외면하고자 만들어내는 논리적인 분석일까.

도쇼 아이는 어릴 적에 겪은 무서운 일에 대한 의문점 때문에 무묘대학교 도서관 지하의 괴이 민속학 연구실을 찾는다. 도조 겐야의 연구실로 알려진 곳이지만 정작 본인은 찾아볼 수 없고 제자인 덴큐 마히토가 지키고 있다. 겁이 많아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괴이 현상을 논리적으로 바라보는 그에게 아이는 자신이 체험한 괴담을 들려주게 되는데...

어떻게 보면 도조 겐야 시리즈의 스핀오프에 해당되는 작품으로 보였다. 도조 겐야가 존재하는 세계관이지만, 제 3자에 해당되는 관련 인물들이 등장해 기묘한 사건을 다루는 내용이라 그렇다. 도쇼 아이가 사건을 가져오는 의뢰인이고, 도조 겐야의 조수인 덴큐 마이토가 탐정에 해당된다. 그런데 아무래도 보통 사람에 해당되는 이들이라 그런지 다소 일상 미스터리에 가깝게 보이긴 한다. 정확히는 직접 현장에 가지 않고 듣기만해서 해결하는 안락의자 탐정 같으면서, 구체적인 검증은 불가능하지만 그럴싸한 논리로 납득이 된다는 부분에서 일상 미스터리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다. 물론 직접 휘말리는 사건이 아닐 뿐이지, 특유의 공포 분위기는 그대로라 일상 호러 미스터리라고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그밖에도 동안 도조 겐야 시리즈에서 사건이 벌어진 장소들이 생각지도 못하게 엮여 있다 보니 여러모로 흥미진진했다. 다만 아무래도 일상 미스터리 분위기가 다소 있다보니 제법 무거운 분위기의 호러 미스터리를 선호하는 입장이라면 다소 불호의 의견이 나올 만하다고 본다.

「걷는 망자」

여름마다 세토우치 도리노우라의 나미토리초에 있는 외할머니댁을 방문하는 도쇼 아이. 동갑내기 친구인 무츠코와 오랜만에 만난 것도 잠시, 선주 집안인 구지라다니 가문 당주의 조카인 쇼지 때문에 마을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여자 문제로 인해 도망쳐 온 상황이면서 마을 여자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돌아다니는 중이라 그렇다. 얼마지나지 않아 쇼지가 저택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게 되서 조용해지나 싶었다. 하지만 밤중에 몰래 나와 밀회를 한다는 소문과 함께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망자 길에 대한 괴담이 다시 돌기 시작하는데...

세토우치라는 지명에 도리츠키지마섬이 언급되는 부분에서 도조 겐야 시리즈 2권인 <흉조처럼 피하는 것_국내 미번역>과 연관성을 가진 내용이다. 해당 작품을 몰라도 읽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긴 하지만, 미번역 작품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있다보니 개인적으로 다소 아쉽기도 하다.

해안 지방답게 바다와 관련된 괴이가 등장하는데,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다는 점이 다소 특이하게 보였다. 보통 바다 관련 괴이는 대부분 물 속이나 바다 한가운데서 목격되는 편이고. 육지에서 뭔가를 목격하더라도 바다로 끌어들이거나, 무언가 바다로 들어갔다는 패턴이 많다. 그런데 이 작품 속의 망자길 괴이는 바다에서 죽은 이가 육지를 떠돌아다니는 경우라 이렇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바다라는 죽은 자의 세상과 육지라는 산 자의 세상 사이의 경계를 떠도는 존재. 여기에 밤이 되면 빛이 전혀 없는 일본 시골 분위기 속에서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간다는 상황까지 더해지면 이보다 무서운 건 없을 것이다. 어느 순간에 산 자와 죽은 자가 뒤바뀔지 모르는 일이니까.

프롤로그에 해당되서 그런지 무묘 대학교 괴이 연구실 분위기와 망자길 관련 외에는 다소 흔한 이야기 같다는 느낌이긴 하다. 외지인으로 인해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벌어진 괴이한 사건이라는 점과 치정 싸움과 연관성을 가진다는 부분에서 그렇다. 다만 사건에 대한 해석은 꽤 나쁘지 않다. 다소 고전적인 추리 방식으로 접근해 시골 마을 특유의 문화와 공간적 배경이란 민속적인 요소를 토대로 나온 가설이라 그렇다. 호러 미스터리 다운 섬뜩한 마무리는 덤이라 보기보다 망자길은 꽤 무서운 곳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다가오는 머리 없는 여자」

중학교 3학년 무렵, 존 딕슨 카에 푹 빠지게 된 안리 가즈히라. 우연히 교내 여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던 가미나시 타케루와 자신이 관심사가 똑같다는 사실을 공유하게 되면서 가까워진다. 그렇게 타케루의 집까지 놀러가게 된 가즈히라는 뭔가 흉흉한 집안 분위기를 점차 느끼게 된다. 이런 와중에 어느 순간 타케루네 할머니의 말동무를 하게 되던 중, 가미나시 가문이 얽힌 어느 지방에 전해내려온 전설과 저주를 알게 되는데...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과 연관성을 가진 내용이다 보니 유독 섬뜩한 묘사와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작중의 메인 괴이인 머리 없는 여자는 현대적인 괴담에 가까운 분위기면서 묘한 긴박감과 압박감을 주기에 히메카미 촌의 쿠비나시와는 또 다른 공포를 준다.

굉장히 뒤틀린 집안의 모습을 외부인 시점에서 다루다보니 긴장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자연스레 눈치를 보게 되고, 원치 않게 집안의 비밀에 접근하게 되니 알게 모르게 공포가 엄습하는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게 되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어떻게 보면 현대에 가까운 배경 속에 고딕호러의 예스러움을 잘 녹여냈다고 할 수 있다.

목 없는 귀신이나 괴이는 강렬한 인상을 주기 쉽다보니 너무 자주 다루어져서 식상하다고 느껴질 법도한데, 이 작품에서는 외형적인 부분보다는 분위기와 연출로 강조한 부분을 많이 느꼈다. 해질녘의 붉은 노을과 어둑해지는 주변이 소름끼치게 보일지 상상도 못했고. 점차 좁혀오며 압박해오는 긴장감을 짧고 강렬하게 나타내서 오랜만에 제대로 무서운 것을 봤다는 감상이 남을 정도다.

사연 속 주연 인물들이 추리 소설에 관심이 많다는 점 때문인지 유독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면이 많이 나온다. 이건 목 없는 여자의 괴이함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의도적인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무섭다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해석하려 해도 도저히 말이 안 된다는 위화감을 조성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이런 부분을 보면 작가가 어떻게 해야 더욱 효과적으로 공포를 보여줄지 많이 신경썼다고 할 수 있고, 단순하지 않아서 언제나 고평가하게 된다.

강렬한 공포를 보여준 만큼 해석도 꽤 인상적이다. 오죽하면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뒤틀린 집안인 만큼 극단적인 방법이 전부였을까. 공포와 안타까운 사연은 잘 맞는 조합이라 생각하는 편이면서, 단순한 감성팔이가 아닌 씁쓸함이 너무 크게 남을 정도로 깊이가 있어 여운이 남는다.

「배를 가르는 호귀와 작아지는 두꺼비 집」

메자시라고 불리던 지방에서 근무했었다는 어느 순경이 겪은 이야기다. 곰을 잡기 위해 놓은 철창 덫 안에서 마을 아이가 연속으로 배를 갈려 죽은 일이 발생했는데 호귀라는 괴이의 소행으로 결론난 일이다. 한편 도도메라 불린 지방의 비간타케 산에서는 난쟁이가 살 법한 기이한 저택과 마주한 두 명의 체험담이 있고, 목격될 때마다 점차 작아지는 것 같다는데...

서로 다른 이야기와 괴이를 보여주면서 하나의 연결성을 보여주는 전개라 꽤 특이했다. 괴이함에서는 서로 비슷할 정도로 강렬했지만 구체적인 컨셉으로 가면 성격이 달라서 더 그랬다.

호귀의 경우는 희생자가 발생하고, 미스터리한 조사 결과로 의문만 남기는 패턴만 반복되는 형태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가능한 밀실 살인처럼 보이는 현장에 도저히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 잔혹함으로 괴물영화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짧은 분량에 단순한 구조 안에서 미스터리와 스릴러가 공존하며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두꺼비 집은 처음에는 깊은 산속의 외딴 집이라는 다소 흔한 방식으로 접근했다가 점차 괴기 판타지 같은 분위기로 가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옛날 이야기에도 비슷한 것이 있지 않은가. 산속을 헤매다가 다른 존재가 사는 세계로 들어오고 말았다 같은 내용 말이다. 잘못하면 허무맹랑한 내용이 될 위험이 있을만 했는데도 오히려 그런 현실적이지 않은 분위기를 기괴함으로 살려서 색다른 공포를 만들어낸다. 동일한 사건을 경험한 체험자가 두 명이 제시된다는 것도 현실감이 부족해 보이는 면을 채우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두 사건을 연결짓는 해석은 여러모로 신기하다. 민속학적인 부분에서 관련성을 찾아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으로 연결된 답이 나와서 그렇다. 물론 앞서 나온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증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은 정황 추리에 지나지 않아서 역시나 현실감이 떨어져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걸 오히려 끔찍하고 처절한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으로 이어지게 함으로서 더욱 공포스럽게 만드는 장치로 활용하기에 꽤 놀랍다. 때로는 현실이 상상보다 잔혹하다는 말을 많이 쓰게 되는데, 이걸 소설에서 잘 나타낸 것 같다는 느낌이라 그렇다. 타인에게는 그저 이해 못할 괴이한 사건이, 다른 이에게는 뒤틀린 삶이 만들어낸 생존 욕구였다니 이보다 더 잔혹한 현실은 없을 것이다.

「봉인지가 붙여진 방의 자시키 할멈」

어릴 적부터 요괴에 관심이 많아서 요괴 연구가인 교수가 근무하는 대학에 지원하게 된 구라베 마사요. 거기서 요괴 연구회라는 동아리를 발견하고 가입하게 되는데, 부장인 4학년 다카코와 남학생 3명이 사각관계로 이루어져 있던 곳이었다. 이들은 여름방학에 요괴 체험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자시키 할멈이 나온다는 바쿠치 지방의 오스미장을 방문하게 된다. 거기서 자시키 할멈이 나온다는 방에 봉인지를 붙이고 혼자 들어가 밤을 보내기로 했던 다카코가 누군가에게 목이 졸리는 일이 발생하는데...

분위기만 보면 밀실 사건에 해당되는데, 출입구에 해당되는 곳에 지켜보는 사람이 추가되어 더욱 철저해진 형태다. 여기에 사각관계라는 복잡한 인간관계까지 있다보니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추리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렇다보니 공포 면에서는 다소 약해서 조금 아쉽다는 인상이 드는 편이다. 전반적인 스토리도 공포 분위기의 맥을 끊는 인물들이 다수라 더 그랬다.

그나마 공포 관련으로 흥미 있었던 부분은 구석놀이라는 괴담 또는 강령술의 원본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나온 부분이다. 상당히 여기저기 언급되고 다루어진 것인데, 기원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던 중에 이 작품에서 꽤 상세한 설명이 나올 줄은 몰랐다.

추리 부분도 평소 다루던 스타일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기괴함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일본 호러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현실과 기묘함이 뒤섞인 분위기인 서양 호러 스타일에 가까워 보였다. 좋게 보면 무거운 분위기만 다루다가 조금은 가볍게 분위기를 환기 시키려는 부분이라 할 수 있고. 나쁘게 보면 호러 미스터리 치고는 일상적인 가벼움이 강한 분위기라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고 정리할 수 있다.

「서 있는 쿠치바온나」

민속학자 도키 가사이는 어느 지방의 산길을 지나던 중에 화장을 하는 순간을 목격한다. 인근에 위치한 마을 주민이자 화장꾼인 지로가 자신을 보자마자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서 분위기 전환을 위해 어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민속 탐방을 위해 마을을 돌아다니던 가사이는 흥미로운 민간전승을 접하게 된다. 밤중에 고개길을 넘으면 무서운 괴이와 마주친다. 이 괴이가 무엇인지 마을주민들은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가사이는 직접 밤중에 고개길을 넘어보기로 했다가 진짜 그것의 모습을 보고야 말았는데...

겉으로 보기에 금기시 되는 것에 외지인이 굳이 접근하다가 화를 당하는 전형적인 이야기처럼 보일 법하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고 느껴질 정도로 다른 전개를 보여준다. 보통 금기를 어긴 당사자가 무슨 일을 당하는데, 여기서는 뿌리 깊게 금기가 퍼져 있는 지역에 무슨 일이 생기니 반대의 경우나 다름없다. 괴이 역시 앞서 나온 이야기들에 비해 차원이 다른 섬뜩함과 기괴함을 보여줘서 이것의 현실적인 해석이 가능한지 의문이 생길 정도다.

쿠치바온나 전설 자체만 보면 원귀로 인한 지벌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그것도 과거의 옛 풍습으로 인한 폐단이 가져온 불합리함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런 탓에 금기라는 것도 사실상 해당 지역의 치부나 다름 없어서 숨기는 것으로 보일 만도 하다. 다른 무서운 이야기처럼 남일 같거나, 현실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경우가 아니니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 만큼 원귀의 원한이 깊다고 볼 수 있기에 무서움의 강도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마지막에 해당되는 내용이라 그런지 다양한 부분에서 상세하게 다루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덴큐 마히토의 구체적인 추리 방식이라던가, 각 인물들의 이름에 숨겨진 일본식 말장난이라던가, 별로 주의 깊게 안 봤던 등장 인물의 설정에 대한 부분이라던가. 여기에 해석이 전혀 불가능해 보일 것 같은 괴이 사건에 대한 해석도 놀랍다. 쿠치바온나 전설과 관련된 민속학적인 배경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단서가 꽤 많았고, 사건 역시 전설과 매우 관련성이 깊어서 그렇다. 과거의 업보가 변함없이 현대까지 이어진다면 지벌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지벌 그 자체를 두려워해야 되는 게 아니라 뿌리 깊은 인습으로 인한 비극을 경계해야 된다는 의미를 제대로 준다고 본다.

결말에서 작가의 또 다른 시리즈 작품과 연결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매우 놀라게 된다. 사실상 이번 작품은 서로 다른 시리즈 간의 연결고리를 하고 있던 셈이다. 다만 해당 시리즈 역시 국내 정발이 도중에 끊겼고, 다시 번역될 기회가 전혀 없어 보이기에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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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예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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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든 것의 발생에는 근원이 있는 법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발생하는 일이란 없기에 무엇이든 반드시 원인은 존재한다. 문제라면 그 흔적이 얼마나 오래됐고, 현재 얼마나 남아 있냐는 것이다. 가까운 시일 내라면 모를까, 훨씬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그건 사연을 넘어서는 역사가 된다. 현 시점 이전에 다른 무언가 존재했던 시절. 아니,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던 자연 그대로의 맨땅이었던 시절까지 가야 될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가서 마주해야 할 것이란, 과연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작가인 나는 예전에 썼던 공포소설 후기에 적힌 제보글을 통해 쿠보 씨라는 기자로부터 어떤 공포 체험담을 듣게 된다. 새로 이사한 집의 침실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그것도 자신이 지켜보고 있지 않을 때만. 이것만 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던 상황은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한다. 소리와 함께 어떤 물체가 목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걸 들은 나는 문득 기시감을 느끼다가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 동안 독자에게 받은 괴담글 중에서 쿠보 씨가 사는 곳과 번지수가 같은 편지가 있었고, 거기에 적힌 내용이 쿠보 씨의 경험담과 똑같아 보인 것인데...

하나의 괴담을 통해 공포의 근원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일종의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 시작은 단순한 탐구에 가까웠다. 이러한 괴담이 발생하게 된 배경이나 사연이 있을까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게 점차 스케일이 커지며 크기와 깊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구덩이가 되어간다. 분명 무언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파해쳐도 흔적이 나오질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어디까지 가야 실체가 나올지 알 수 없다고 해야겠다. 괴담이라는 작품 특징을 살리려 했는지 작가가 실제로 겪은 일처럼 서술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시간의 흐름이 잘 느껴지는 일상적인 면이 묘사 되고, 실존 인물인 동료 작가가 등장한다던지 말이다.

괴담의 원류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꽤 많은 걸 느끼게 된다.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전에 누가 살았고. 지금은 누가 얼마나 오랫동안 살고 있고. 지금 살던 자리에 이전에 무엇이 있었고. 그 당시에는 또 누가 살았고. 무슨 일이 일어난 적은 없을까. 하나를 따지기 시작하면 이렇게까지 많은 게 나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과거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땅에 대한 역사는 깊어지고, 수많은 이들이 거쳐간 기록은 계속 쌓여간다. 그 안에는 간혹 꺼림 직한 일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이란 존재가 생겨난 이후로 아무런 손이 닿지 않은 땅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작중에서 발생 중인 괴이를 설명하는 방식이 너무나 체계적이라 놀랍게 한다. 특히 여기서 처음 알게 되는 사예라는 것과 일본 문화에서 더러움(케가레)이란 단어를 인식하는 의미가 정말 흥미롭다. 사실 이 사예라는 건 이미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봤을지도 모른다. 일본 공포영화에서 묘사된 저주 형태로 말이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장소에서 들러 붙는 무언가. 한 번 접촉하면 죽을 때까지 따라오는 것. 당사자가 아닌 관계자에게도 따라 붙어 이어지는 공포. 이러한 것이 바로 사예이자 케가레라고 한다. 다만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무차별적으로 퍼져 나가는 형태는 아니다. 어느 정도 규칙이 있으면서 언제 어떻게 붙을지 알 수 없는 것이라 한다. 그렇기에 뭔가 더 무섭다는 인상이 든다. 생각지도 못하게 불행이 따라오는 일이 생기거나, 아니면 의도치 않게 남에게 불행을 떠넘기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니까. 이걸 보며 국내에서도 상갓집에 다녀오면 소금을 뿌리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게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보통 이렇게 괴이한 사건의 파편을 맞춰가며 점차 무서운 일을 겪게 되는 전개가 흔하긴 하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작중 주인공이 당하는 무서운 묘사가 일절 없다. 전부 과거 시점으로 들려주는 체험담이나 찾아낸 문헌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시점에서 관련 있을 어떤 사건을 알게 되도 진위를 알 수 없다는 식으로 나온다. 그러니까 전부 이야기 듣고 맞춰가며 전해지는 무서운 분위기가 전부인 것이다. 그럼에도 상당히 무섭다는 느낌이 점차 강해지기에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무서운 존재를 등장시켜서 무섭게 하는 것보다, 분위기로 이끌어가는게 더 어려운 편이라 그렇다. 영화도 그렇지 않은가. 귀신이나 괴물이 나오고 점프 스케어를 쓰는 경우라면 쉽고, 분위기와 상징성으로 불길함을 강조하는 오컬트 류가 어려운 것처럼.

그렇게 이 괴담을 통해 도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리하자면 이거다. 서로 관계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사실은 하나의 시작점에서 연계 됐을지도 모른다. 원래 있던 사람이 다른 곳으로 떠나거나, 새로 들어온 타지 사람이 생기는 과정을 통해 이야기의 잔여물이 계속 퍼져나간다. 그래서 기존의 형태를 잃고 흔적만 남을 수도, 아니면 거기서 파생된 다른 이야기로 발전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보면 무서운 이야기의 파급력을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서 설명했다 할 수 있다. 제 아무리 관여되고 싶지 않더라도 언제 어떻게 접하게 될지 모르는 것이 이야기고, 특히 괴담 같은 무서운 이야기라면 피할 수 없다고.

이 연계성이 작중에서 직접적으로 느껴져서 살짝 놀라웠던 순간이 있다. 이 소설과 연관성 있는 다른 작품인 <귀담백경>에서 본 듯한 괴담이 언급된 부분이다. 맨 처음 편지의 존재로 언급된 것과 거의 결말 쯤에 가서 언급되는 것. 이렇게 두 개다. 아니면 이렇게 생각될 여지도 있다. 사실 <귀담백경>에 나온 괴담 중에 이 소설과 알게 모르게 연결된 것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귀담백경>과 이 작품이 연관성이 있다고 들었지만 이런 식이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 또한 이야기의 파급력을 나타내는 하나의 방식이었다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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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모자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이기원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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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해 보이는 문제에서 답을 찾아내는 과정이란 퍼즐 맞추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나의 과정을 통해 그림 일부를 만들고, 이게 어느 부분과 연결되는지 다시 찾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 과정 속에서 공정성이 언급되지 않을 수 없긴 하다. 그냥 봐서는 알 수 없을 감춰 놓은 조각이나 예상하지 못할 조각이 존재하느냐고 말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시대가 지날 수록 확장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 받기에 지금 와서 보면 경직되어 보일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퍼즐형 추리소설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가에 있는 로마 극장에서 공연 도중 관객석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뉴욕 경찰청의 리처드 퀸 경감과 그의 아들인 엘러리 퀸이 현장에 도착해 조사를 시작하니 피해자는 질 나쁜 변호사로 알려진 몬테 필드다. 사인은 독살로 추정되는 와중에, 엘러리는 몬테 필드의 모자가 어디서에도 발견되지 않은 점에 의문을 가진다. 이 모자는 수사를 진행할 수록 중요 단서로 떠오르기에 엘러리와 퀸 경감은 어떻게든 찾아내려 하는데...

수 많은 인원이 있는 극장에서 발생한 독살 사건. 그 자리에 있던 범인과 연관성을 가진 다수의 인물. 정통적인 추리소설 전개로서 아주 그럴 싸한 무대다. 제목처럼 모자가 사건의 핵심으로 주목 받으며 끊임 없이 언급되기에 특이성 면에서도 주목 받을 만하다. 대체 모자가 뭐길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걸까.

모자로 시작된 미스터리를 완성 시켜 나가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롭다. 온갖 가능성 속에서 모자가 왜 중요한지 체계적으로 정리해 강조하고. 의미 있는 추리와 단서를 통해 모자의 진짜 의미를 알아내고. 이 모자 때문에 사건이 어떤 식으로 흘러갔는지 밝혀질 때는 놀라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조금만 눈썰미가 있으면 초반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낼 수 있어서 작가가 추구한 대결 구도에 어느새 빠져들게 된다.

다만 이런 기대에 비해 스토리 자체는 크게 특별한 것이 없긴 하다. 질 나쁜 악당이 살해 당했고, 범인은 그와 가깝거나 연관된 인물 중 하나. 이 구도 안에서 앞서 말한 퍼즐형 추리를 추구하기에 다소 정해진 패턴대로 스토리가 진행되는 편이다. 인물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인다기 보다는 그 자리에서 가능한 추리를 진행 시키고 단서나 용의자가 지목되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식이다.

보기보다 단순한 구성이면서 똑같은 얘기를 계속 반복하며 검토 하는 부분이 많아 좀 더디게 보일 만하다. 굳이 이렇게 복잡하게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이다. 사건의 진상 역시 당시 시대상이나 작가의 초창기 작품이라는 걸 감안해도 조금 불호의 의견이 나올 만하다. 동기에 대한 부분이 이해 못할 건 아니지만, 겨우 이 정도 밖에 안 된다는 인상이라 그렇다.

물론 이런 단점으로 지적된 부분들은 대체로 요즘 시대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엘러리 퀸의 스타일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사건 현장 도면, 주요 인물 정리 같이 사전 정보를 제공한다는 부분은 지금도 많은 작품에서 사용할 정도로 익숙한 부분이고. 독자와의 대결 구도를 추구하는 만큼 추리 과정을 상세하게 나타내기 때문에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기 쉽다. 그 만큼 기초적인 토대가 잘 들어나 보여서 추리 과정을 상세히 알고 싶은 경우라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공정성을 추구하는 만큼 탐정을 따라 다니며 과정과 결과만 보는 게 아니라, 독자 스스로 답을 찾아낼 수 있는 구조다 보니 더 그렇게 보인다.

고전이 왜 고전인지는 추리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너무 오래된 작품이라 시시하고 감성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평가 받는 의견이 나와도 굳이 찾아 읽어봐야 할 가치는 여전히 있다. 제대로 된 바탕을 다지기 시작하고, 기발함 하나로만 시도한 수 많은 가능성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의 작품인 만큼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존재한다고 본다. 이 날 것이란 이런 거다. 별거 아닌 기발함을 토대로 복잡한 논리를 구축하거나, 엄청 어려워 보이는 걸 간단한 논리로 풀어내는 것. 오로지 가능성에만 무게를 두고 진행시키기에 생각 이상으로 자유분방하다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고전 추리의 이러한 부분에 감탄하고는 한다. 그래서 이 가능성의 문제를 잘 나타내는 작품일 수록 흥미를 느끼고, 엘러리 퀸이 재미 있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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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동물 기록 - 피터 아마이젠하우펜 아카이브
호안 폰쿠베르타.페레 포르미게라 지음 / 이은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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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같은 가짜. 예전부터 이런 것에 많이 끌리고는 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때는 이런 게 진짜 있을까 싶었고. 가짜라는 걸 알았을 때도 그건 그것대로 대단했다. 상상의 세계를 현실과 구분이 되지 않게 구현했다는 것이니 말이다. 현실에 구현한 환상. 대부분의 곳이 실체가 밝혀지고 미지가 거의 사라진 현실에 큰 자극을 준다고 생각한다.

상당히 오랜 과거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미지의 생명체에 대한 소문. 이 책에서는 그러한 상상의 동물에 가까운 생명체들을 소개한다. 단순히 가벼운 도감 같은 게 아니다. 우연히 발견된 독일의 어느 생물학자(이 역시 가공의 인물이다.)가 실제로 조사한 기이한 생물 기록을 정리해 출간한 연구집이란 설정으로 나온 책이다. 그래서 생물학 연구 자료 같은 느낌의 서술에 진짜 목격하고 촬영한 듯한 사진들이 실려 있다.


대부분 기존에 알던 동물들의 외형이 섞여 있거나 어딘가 변형된 듯한 생명체들이다. 표지에 있는 것부터 원숭이와 조류가 섞인 외형이고. 그 밖에도 다리 달린 뱀, 팔이 달린 조개, 거북이 등껍질이 달린 새, 토끼 발이 달린 오리 등등. 글로 된 설명으로는 별거 아니게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진짜처럼 찍은 사진이 같이 있다 보니 상당히 기상천외한 느낌을 받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흑백사진으로 찍은 게 상당한 효과를 발휘 했다고 본다. 단순히 이 생물을 발견한 시대적 배경에 대한 고증이라 할 수 있지만, 다소 어색할 수 있을 부분을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노린 것 같기도 한다. 해당 생물의 사진 뿐만 아니라 원본 원고와 해부학 스케치 같은 사진들도 같이 있어 사실감을 더해준다.

생물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참 재미있다. 대체로 발견한 상황에 따라 어디까지 조사했는지 기술하는 편이다. 생물이 발견된 상황이나 습성에 따른 변수나 학자로서의 판단, 주변 환경에 따른 제약. 이러한 실제로 겪을 법한 상황 설정이 반영되어 있어 글로서도 꽤 현실감을 부여한다. 또한 해당 자료들이 세상에 처음 발견됐을 때 상당수가 유실됐다는 설정이 있어 설명 없이 사진으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오직 사진으로만 감상하고 해석해야 되기에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이건 어떤 상황에서 촬영한 걸까. 이건 어떤 습성을 가지고 있을까.

다소 참고해야 할 부분이라면 각 생명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이다, 라는 식의 세세한 설정이나 상황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깔끔하게 정리된 도감 같은 걸 생각하면 실망할 가능성이 없잖아 있다. 글로 된 설명은 해당 생물을 보고서 쓴 관찰 자료나 수필 같은 느낌이고. 사진만 있는 경우라면 아예 아무런 설명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라 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이 책은 단순 흥미 위주의 도감이 아니라 예술 사진을 감상하는 아트북에 가깝다고 알아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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