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키의 해체 원인 스토리콜렉터 31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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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소설 속에서 가장 잔인한 살해방법이라면 단연 토막살인이다. 단순한 운반 목적이나 신원을 알 수 없게 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오고는 하지만, 거기에도 해당되지 않으면 대체로 정신이 나갔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토막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단순하지 않다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상상할 수 있는가?

 치아키의 해체 원인은 기상천외한 미스터리가 특징인 니시자와 야스히코 답게, 토막살인에 의한 토막살인을 위한 미스터리다. 토막살인이라는 게 잔혹성 또는 트릭을 위해 이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왜 토막이 일어났나, 왜 이런 토막이 벌어졌나 하는 걸 따지다보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목베기는 기본이고 오체분시에 거기에서 더 세밀한 토막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어서 토막살인의 집대성이라 해도 될 정도다. 이것만 들어도 엄청 잔인하겠다 싶겠지만, 이상하게도 각 토막살인 사건의 관계자들은 너무 담담하게 지켜본다. 게다가 분위기가 좀 웃기게 흘러가는 구석이 있어서 블랙유머틱하다 해야겠다. 보기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진지한 면이 별로 없는 편이라 무거운 느낌을 원하는 분들에게는 별로일 수도 있다.

 많은 토막살인 중에서 가장 독특했던 것은 제 5인 해체 수호였다. 보기에는 시시할지 몰라도 토막살인이 반드시 잔인할 것이라는 점을 깬 것이라 가장 인상 깊었다. 이를테면 전혀 자극적이지 않고, 사람도 죽지 않은 일상 토막살인 미스터리랄까.

 이 연작집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라면 세세한 수사장면이 생략되거나 사건에 직접적인 개입없이 간접적으로만 추리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미 벌어지고 있거나 끝난 사건의 전개과정을 듣기만 하고 아마 진실은 이럴 것이다, 하고 추측하는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사가 주연으로 나오는 부분은 조금 나은 편이지만, 우연이 조금 지나친 면이 있어서 이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나름 기발하고 맞는 것 같은 추리라도, 직접적인 증거가 없고 우연과 만약에라는 가정만 난무하기 때문에 잘못하면 탁상공론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은 이게 작가의 완전 초기 작품이라는 점과 마지막 반전에 달렸다. 그 반전도 잘 이해하면 충격적이지만, 그냥 보면 그냥 정신없게 엮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지만. 최신작이 이 정도였다면...

 참고로 여기에 등장하는 치아키는 작가의 시리즈 작품인 닷쿠 & 다카치 시리즈(한스미디어에서 번역판 발행)에 나오는 다카치 치아키다. 시리즈를 먼저 접했다면 작가의 데뷔작 속의 치아키를, 해체원인을 먼저 봤다면 시리즈 속에서 이어지는 치아키를 보면 좋을 것이다.

 제목이 치아키의 해체원인이지만, 치아키라는 인물이 직접적으로 나오는 내용은 몇 파트 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치아키냐? 그건 결말을 보면 다 알 수 있다. 참고로 이 작품은 토막살인 단편집이 아닌, 토막살인 연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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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밀리앙 헬러
앙리 코뱅 지음, 성귀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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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소설의 시초는 에드거 앨런 포의 오귀스트 뒤팽. 장편 추리의 시초는 에밀 가보리오의 르코그. 그리고 추리의 열광을 이끈 주역이자 사립탐정의 시초는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라 알고 있었다. 이 흐름사이에서 앙리 코뱅의 막시밀리앙 헬러가 끼어들어서 적지 않이 놀란 이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막시밀리앙 헬러가 셜록 홈즈의 원조일지도 모른다는 주장까지.

 서문에서 보아하니, 이 문제는 서양에서는 은근히 많이 다루어진 문제인듯 한데 막시밀리앙 헬러가 이번에 처음 번역된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당황스러울 것이다. 각종 연구에서 막시밀리앙 헬러와 셜록 홈즈의 연관성을 분석했듯이 이번에는 우리의 의견이 만들어질 차레인듯 하다.

 쥘 H의 부탁으로 변호사 막시밀리앙 헬러의 건강상태를 보러온 나. 상당히 괴짜스러운 모습에 당황하고 있던 중, 경찰서장이 방문을 해 사건 참고인으로 막시밀리앙을 부른다. 은퇴한 은행가가 독살당한 사건의 용의자가 막시밀리앙이 사는 곳에 살던 정황 때문이었는데, 막시밀리앙은 그가 절대 범인이 아니라면서 자리를 떠난다. 다음날 쥘 H는 독살당한 은행가를 직접 부검했다고 알리면서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논란의 중심인 막시밀리앙 헬러의 첫 인상은 괴짜스럽고 비범하지 않은 게 확실히 셜록 홈즈를 떠올릴 만 했다. 거기에 서술자가 의사라는 점까지 보면 왓슨 박사의 포지션까지 완벽하다. 다만, 막시밀리앙 헬러의 서술자는 그를 처음에 환자로서 만나고 이 사람의 상태가 점점 좋아지는구나, 하는 어조로 생각하는 걸로 봐서는 조금 친한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 더 가깝게 보였다. 하숙집에서 룸메이트로 만나는 셜록과 왓슨을 생각하면 이건 확실히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이 서술자가 왓슨처럼 막시밀리앙과 붙어다니며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아니라서 정말 단순한 의사와 환자의 관계라는 것에 더욱 확신이 간다.

 분량에 비해 사건 스케일이 거대한 편이다. 그냥 단순한 사건으로 보였던 것이 엄청난 거대한 구조로 연결되어 있어서, 마치 홈즈의 첫 장편인 <주홍색 연구>를 연상시킨다. 거기에 독살, 암호문, 변장, 잠입액션, 화학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있어서 이 한 작품 안에서 충분히 막시밀리앙 헬러의 다재다능함을 보여준다. 다만, 홈즈와 비교하면 평범한 수준이 아닐까 생각한다. 바이올린에 권투, 펜싱, 고문서 연구 등의 능력을 가진 홈즈에 비해 막시밀리앙은 변호사 출신에 범죄 수사에 도움되는 요소와 글쓰기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말한대로 환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아픈 모습을 자주 보여서 홈즈 같은 천재의 이미지 보다, 두뇌 사고가 폭주해서 제어하기 힘들어 하는 보통 사람의 이미지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 한 권으로 끝났다는 게 많은 아쉬움을 나타내는데, 마치 설록 홈즈가 <주홍색 연구> 하나로 끝이 난 것 같은 인상과 비슷하다. 나름 모리아티 교수 만큼 악질적인 범인을 충분히 구상할 수 있고, 막시밀리앙의 개인사나 행적에 대해 구체적으로 풀어내지 않은 상황이라 후속의 여운이 많이 남는다.

 일단 셜록 홈즈가 막시밀리앙 헬러를 표절한 것이냐 아니냐에 생각을 말하자면, 셜록 홈즈의 그림자가 있다는 걸 확실히 느끼지만 표절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막시밀리앙 헬러가 셜록 홈즈의 이미지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정도다. 기초는 막시밀리앙 헬러에서 참고 했을지는 몰라도 그 위의 토대는 아서 코난 도일 본인의 역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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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파일 : 아무도 믿지 마라 Part B 엑스파일
레이 가튼 외 지음, 안현주 옮김 / 손안의책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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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노말 퀘스트_레이 가튼


 1997년 8월 2일 캘리포니아. 멀더와 스컬리는 심장이 폭발해 사망한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사건이 발생한 가정에서는 심령현상을 조사하는 쇼 프로그램 촬영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은 멀더는 직접 그 현장을 찾아가는데...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방송에서 찾아보면 심령스팟을 찾아다니며 소개하고 심령현상을 직접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온갖 장비를 이용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의 증거를 발견하고, 그 현장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모든 방송 촬영에 대해 비판하는 시각이 있었다.

 굳이 심령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방송촬영을 하는 종종 조작이 가해지는 경우가 있다. 흔히 악마의 편집이라는 것부터 있지도 않은 상황 연출. 아무리 프로그램 쇼라고는 하지만 연출과 실제상황은 하늘과 땅 차이고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작중에서는 미스터리 현상이 비유로서 쓰였지만, 현실에서 방송조작이 얼마나 최악의 상황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준 것 같기도 하다.



 심해왕_팀 딜


 2000년 5월 21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앞바다에서 선박 습격 사건이 벌어진다. FBI에서는 인근 해적들의 소행으로 보려고 하지만, 사건 관련 영상이 돌면서 멀더와 스컬리가 조사하러 떠난다. 중동문화로 인해 불만이 많은 상황에서 습격당한 선박을 조사하던 스컬리는 피바다 속에서 무지개 빛의 비늘조각을 발견하는데...

 바다와 관련있고 등장하는 괴생명체의 생김새를 보고서 크툴루 신화의 데이곤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사실 러브크래프트의 데이곤이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나오는 다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기 때문에, 여기에 나오는 괴생명체는 보다 더 중동 신화적인 면이 강하다고 해야겠다. 솔직히 이집트 신화처럼 유명한 신화라면 여기저기서 많이 쓰이지만, 메소포타미아 신화처럼 다채로운 구성이 있어도 잘 쓰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꽤 의미 있게 보이기도 하다.

 배경이 배경이다보니 중동문화에 대한 부분이 많이 보였다. 크게 비판적인 면은 없고,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개인적 불편함과 알라딘으로 한정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중동 신화를 다양하게 활용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하수관_지니 코흐


 1990년 12월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네 명의 아이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멀더는 단순 실종사건이라 여기지만, 1963년에 벌어진 악어 인간 사건과의 유사점을 무시하지 못하고 당시 수사관이던 아서 데일리를 찾아간다. 데일리는 당시, 놈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생각에 멀더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향하는데...

 미국의 대표 도시전설인 하수도의 악어를 다루는 내용이다. 다만, 그냥 돌연변이 괴수에 가깝기보다는 뭔가 주술적인 분위기가 강한 특징이 있다. 좀 특이성이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게 보통 하수도의 악어 괴담은 버려진 애완악어의 변이나, 야생 악어가 침범해서 발생한다는 래퍼토리가 많은 편이라, 이 괴담을 종교 주술로 해석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할 수 있다.

 스컬리가 파트너가 되기 전의 내용이라 스컬리를 만나기 전에 멀더가 어떻게 지냈는지 많이 나온다. 몇몇 시즌의 특정 에피소드와 연관성 있는 내용이라 엑스파일 드라마를 오래 전부터 보아왔다면 익숙한 인물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달빛_W. D. 갈라이니, 데이비드 밴턴


 1994년 10월 4일 캐나다 오타와 남부. 멀더와 스컬리는 폭설을 뚫고 한 죄수를 호송 중이다. 뒷좌석에 수갑을 차고 누워있는 카를로는 계속 오늘은 집 밖을 나서면 안 되는 날이라며 호소하지만, 멀더와 스컬리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 계속된 폭설에 결국 멀더는 가까운 모텔에 차를 세우게 된다. 스컬리가 프런트로 나간 사이 멀더는 카를로의 이상증세를 관찰하면서 심상치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제목으로만 유추해도 다들 알 법한 유명한 전설의 오컬트 생명체가 주제가 되는 내용이다. 이 단편을 세, 네 페이지만 읽어보면 웬만해서는 뭐가 주제로 쓰였는지 단 번에 알 수 있기에 여기에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큰 복선이나 사건이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이 작품의 주제가 되는 오컬트 생명체의 정체에 무엇인지 애매모호해서 상당히 의문스러웠다. 분명 이게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생각지 못한 결과가 나오는 바람에 여기서 벌어진 사건의 구조를 전혀 파악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냥 정체를 알 수 없게 애매모호한 것도 아니고 여기저시서 암시를 뿌리고 다녀서 예측이 가능하고 무슨 일이 벌어지겠다는 상황도 충분했다. 하지만 막상 중요한 정체는 알 수 없거나,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것이 되버렸다. 이건 앞서 Part A에 있던 <긴장증>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미스터리적 음모론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눈에 담겨 있다_헤더 그레이엄


 2009년 10월 30일 메사추세츠추 에섹스 카운티에 위치한 괴물 모형 상점에서 기괴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상점에서 유일한 생존자인 해나 바턴은 시체 모형 인형이 살인을 저질렀다 주장하지만, 진지하게 듣는 건 멀더 뿐이다. 이어서 인근 묘지에서도 벌어진 기이한 일도 조사하던 중, 멀더와 스컬리는 상점 점장이 외계인을 보았다는 주장을 듣게 되는데...

 인형이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인형에 대한 괴담부터 유명 공포영화인 사탄의 인형까지 연상되었다. 그런데 외계인으로 직결되서 다소 흥미가 떨어진 감이 있었지만, 나름 소름끼치는 상황을 만들어서 만족스러웠다.

 여기서도 외계인에 대한 편견이 언급되는데, 역시나 SF영화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가 정형화를 불러와 수 많은 예를 떠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과 반드시 이럴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지적하였다. 솔직히 여기 등장하는 외계인은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스타일이긴 했지만, 앞에서 외계인에 대한 편견이 언급되었기에 지루하지는 않았다.

 눈에 대한 언급이 많은 편인데, 사실 사람의 신체 기관 중에서 겉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은 눈 밖에 없다고 본다. 눈에서 뭔가 이상한 걸 느낀다면 괜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는 일이다.



 히코리 언덕의 집_맥스 앨런 콜린스


 1997년 12월 29일 메사추세츠 주, 베네위치에 위치한 오래된 저택. 마을 사람들은 오래 전에 발생한 살인사건으로 인해 기피하고 있어서 그곳으로 이사 온 해더는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어느 날 밤 이상한 소리를 듣고 깬 헤더가 집 전체가 기묘하게 요동치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녀의 언니 채리티가 납치를 당한다. 그것도 수십 년 전 이 집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에게...

 오래된 집에서 발생하는 괴이 현상이라는 점이 딱 아미티빌 호러와 비슷해 보일 법했다. 하지만 아미티빌은 말 그대로 호러미스터리로 끝나는데, 히코리 언덕의 집은 오컬트와 현실적인 범죄가 서로의 영역을 과도하게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공존하고 있는 구성이라 신비롭게 보였다.

 사건 자체가 미스터리하기는 하지만 그 동안 나왔던 외계인의 존재가 은폐되는 등의 음모론적이지 않고, 또 완벽하게 스컬리가 주장하는 현실적인 사건이 아니기도 해서 추리소설적인 구성과 호러미스터리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멀더의 마지막 이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스컬리, 당신도 거기 있었어야 해요."


 시간_게일 린스, 존 C. 셀던


 2000년 메인 주 포클랜드에서 세 명의 아이들이 FBI가 관리하는 옛 군사기지 벙커의 괴현상이 발생하는 창문 너머로 사라진다. 멀더와 스컬리는 그 창문이 시공간 균열로 발생한 통로라 여기고 창문 너머로 아이들을 구조하러 간다. 창문 너머는 지금의 포클랜드와 비슷하면서 완전 다른 곳으로 사람을 잡아먹는 기묘한 기체덩어리가 출몰하고 있었는데...

 시공간 이동이라는 다소 복잡한 전개임에도 엄청난 스릴러가 느껴졌다. 그냥 시간여행과 달리 과거, 미래,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의 습격까지.

 현실과 비슷한 이세계에서의 정체불명의 습격자라는 배경도 공포 그 자체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무섭게 느껴진 것은 시간이었다. 현재의 내가 잠깐 사이에 다르게 변하는 것, 그 잠깐의 변화가 시간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는 착각을 주기도 했다.



 조각상들_케빈 J. 앤더슨


 1995년 5월 11일 데스밸리 국립공원에서 자원개발 회사 탐사원이 사람들 앞에서 석화되버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스컬리는 중금속 오염이 의심된다고 여기고 멀더와 함께 탐사원이 자원조사를 했던 곳을 지나던 중 한 괴짜 조각가를 만난다. 조각가의 행동과 이번 사건의 연관성을 본 멀더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그의 담당자를 만나러 가는데...

 처음 제목을 보고 영국 드라마 "닥터 후"의 천사 조각상들 같은 내용인가 했는데, 전혀 성격이 다른 내용이었다. 생명체의 석화가 은근히 신화나 전설 속에서 많이 나오는 요소인데, 다소 과학적인 접근으로 해석한 것이 돋보였다. 그래서였는지 모르지만, 마지막치고는 상당히 끔찍한 내용으로 보이기도 했다.

 석화가 주제로 나오는 와중에 예술에 대한 몇몇 시각도 있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게 예술이라는 논조를 보이며 마르셀 뒤샹의 <샘>처럼 오브제 작품을 쓰레기라 평하고 차별하는 시선을 비판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작품 속 석화된 사람을 생각하면 예술의 잔혹성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름다움을 창조해도 그 과정이 공정하지 않다면 그건 예술이 아니라 끔찍한 도륙일지도 모른다. 정교한 예술품이라도 나쁜 손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결국은 타인을 무자비하게 갈아넣은 희생의 결과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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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 살인 아르테 누아르
카밀라 그레베 지음, 서효령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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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많이 다루고 쉽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어렵다고 느껴지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기저기 널린 감동스토리, 인생역전 스토리를 보면 쉽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현실을 보면 전혀 매칭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저 대리 만족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드라마보다 더 행복하게 사랑하는 사례도 있지만, 여기저기서 보면 사랑으로 사소하게 싸우는 것부터 극단적으로 치닫는 경우까지 있는 걸 보면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기도 하다. 그저 성격차이, 가치관 차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결국은 사랑에서 발생한 문제이고, 지금의 사랑 이전의 사랑에서 받은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보면 사랑은 정말 어려운 문제로 보인다.

 약혼 살인은 살인사건을 다루면서 사랑의 비중이 많은 편이지만, 따뜻한 인과관계라던가 감동적인 장면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발생하는 온갖 문제점들만 있을 뿐이다. 출판사에서 이 책의 시리즈를 아르테 느와르로 정해 놓았는데, 정말 어울리는 명칭이다. 보통 느와르하면 정치나 도덕처럼 깊게 고민할 거리가 많이 나오는데, 생각해보면 사랑도 정말 깊게 고민할 거리에 해당된다고 본다.

 스웨덴의 유명 의류 회사의 CEO 예스페르 오페의 자택에서 머리가 잘린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페테르와 만프레드는 사라진 예스페르를 용의자로 지목한 상태에서 10년 전 발생한 살인사건과의 유사점을 발견하고, 당시 자문역할로 초청된 심리학자 한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한편 사건 발생 2개월 전, 의류 회사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엠마는 예스페르와 연인 사이로 발전하고 비밀연애를 계속하던 와중에 이상한 일을 계속 겪게 되는데...

 재벌과 보통 사람 간의 사랑이 사건의 중심이라 국내 드라마에서 자주나오는 구성처럼 뻔한 게 나오지 않을까 약간은 걱정했었지만, 전혀 상관 없이 내용은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분위기였다. 불안한 사랑의 끝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살인사건 수사관인 페테르. 자문역할인 한네, 그리고 사건의 직접적인 관계자인 엠마. 이 셋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각각 사랑에 대한 다양한 시점을 보여주면서 진행된다.

 페테르는 유일한 남성의 시점인데, 독선적이고 과시욕 있는 스타일과 정반대의 느낌을 가졌다. 회피적인 분위기가 많은 편이라 다소 줏대 없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변덕이 심하고 가정사에 무관심하다 할 수도 있지만, 묵혀둔 개인적인 고민과 과거를 보면 책임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한 심리 충돌로 볼 수도 있었다.

 한네는 중년 여성들이 느끼는 현재 사랑에 대한 회의감 같은 게 많이 보였다. 더불어 페테르에게서 보이지 않은 독선적이고 과시욕 있는 남자의 스타일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권리를 잃고 통제당하는 모습이 가부장적인 가정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중년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과 고민이 더해진다.

 엠마의 경우, 젊은 여성의 이상적인 러브스토리와 냉혹한 현실에 상처받는 모습이 많았다. 주로 예스페르와의 관계에서 오는 상실감이 크게 나타났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 속에서 다소 애정결핍이 있어 보인다고 느꼈다. 유독 엠마가 어린 시절의 과거 회상이 많은 편인데, 어린시절 부모가 주는 사랑의 정도가 성인이된 자녀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걸 볼 수 있었다.

 이 셋을 보다보면 현재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뭔가 자극을 준 사건이 하나씩 있었다. 그래서 개개인이 가지는 사랑의 이미지라던가, 만족도가 제각각인 것이 이러한 원인이 있던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어린 시절에 겪은 게 더 기억에 오래남고, 그 사람의 가치관에 영향을 준다고 하지 않은가.

 사랑 관련 내용이 많다보니 사건 수사 관련된 부분이 지지부진하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약혼 살인은 인과 관계와 그 사람이 생전 겪은 일을 알아야 이해할 법한 사건이다. 그냥 싸이코스러운 사건이라 넘기다보면 그냥 자극성이 짙은 치정싸움에만 그칠 뿐, 그 사람의 심리상태는 안중에도 없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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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의 박물관
아라리오뮤지엄 엮음 / arte(아르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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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살면서 가장 아픈 순간이라 하면 실연이 많을 것이다. 실연이라 하면 연인과의 이별을 생각하겠지만 다양한 이별을 포함한다. 때로는 가족, 소중한 인연, 오래전에 살던 곳, 만남 등등. 이렇게 보면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서 올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시시각각 다양한 실연을 경험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연의 박물관은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 실제로 존재하는 박물관이다. 처음에는 설립자이자, 아티스트인 연인의 사연 있는 물건들을 시작으로 이제는 전세계의 실연을 모아놓은 곳이 되었다. 올해 우리나라 제주도에서 이 실연의 박물관에 들어갈 기증품을 모집했고, 82가지의 실연이 여기에 모였다. 우리나라에서 느끼는 실연은 어떤 모습일까?

 대체적으로 연인과의 실연이 많았다. 하지만 뻔하고 뻔한 사랑이야기라 하기에 깊이가 전부 제각각이었다. 아쉬운 이별, 구체적이지 않고 짧게 담담한 이별, 그리고 아직까지도 상처로 남아 있을 듯한 이별. 그리고 이 실연 뒤에 남은 그때의 흔적들. 그냥 물건만 보면 그냥 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 물건에 담긴 사연까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보면 왜 사연 있는 물건을 못버리게 되는지 이해할지도 모른다.

 사연 있는 물건들을 보면서 시대의 흐름이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은 안 쓰고 불편한 물건이 그 당시에는 인연을 만들어준 증거가 되고,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물건이 먼 옛날에 있었던 사연의 증인이 되기도 해서 사연이 담긴 물건은 그 당시 시대와 공간을 공유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연인이나 가족 간의 실연 사이에서 독특해 보이던 실연도 종종 있었다. 사소한 만남이지만, 그걸 짧은 인연과 실연이라 생각하는 경우. 타인의 미래와 기회를 위해 자신의 기회를 양보해 경험한 실연. 자신의 재능과 실연했던 일. 추억의 장소와의 실연. 자신의 과거와의 실연. 이런 사연을 보면 우리는 수 많은 인연과 실연을 겪고 살면서도 특별한 몇몇 순간 밖에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냥 당연히 있고,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하는 물건이라도 결국은 사연과 함께 남을지도 모른다. 손이 타서 잘 잡히는 도구, 오랫동안 함께해서 익숙한 물건, 기쁘고 슬플 때나 같이 했던 물건,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준 물건. 이들은 실연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지나온 역사를 상징하면서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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