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의 테이프 스토리콜렉터 57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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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기록은 당사자의 체험 및 관찰에 독자의 상상력이 합쳐지면서 실체하게 된다. 원래부터 뜻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 상상력이라는 해석이 필요없겠지만, 의미부여와 관련없이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라면 말이 다르다. 그것도 글이라는 문자로된 기록이 아닌 소리로 기록된 녹음내용이면. 글은 나타난 묘사만으로 분위기를 느끼게 만드는 정도다. 반면, 녹음 기록은 일종의 살아숨쉬는 기록이나 다름없다. 녹음된 장소를 가늠하게 할 주변 소리, 녹음된 목소리로 전해지는 순간순간의 감정과 주변 묘사까지.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어쨌든 우리가 사는 현실이 소리로서 남아있는 것이다. 기록된 내용의 실체를 눈으로 볼 수 없는 건 글과 똑같기 때문에 역시 상상력이 합쳐질 수 밖에 없다.
 살아있는 기록에 상상력이 더해진다...
 만약 녹음기록이 무서운 내용이라면 공포가 그 만큼 더해질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기록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공포가 섞이면서 말 그대로 살아있는 공포가 되고 마니까.

죽은 자의 테이프녹취록

 편집자 시절 나는 호러 관련 출판 기획을 준비하던 중에 기류 히사히코라는 작가를 소개받는다. 다소 붙임성이 없던 그는 자살하기 직전에 녹음된 테이프 내용을 적어서 출판하는 걸 제안한다. 꺼림직하지만 잘못되면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말을 믿고, 나는 문제의 샘플 원고를 받게 되는데...
 보통 호러소설하면 생각하는 첫 문장이나 배경과는 다르게 시작하기 때문에 편집자를 주인공으로한 단편 출판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오히려 그런 점을 편견으로 여기고 이런 전개로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다. 굳이 이상한 곳에 가지 않아도, 무언가 쫓아오거나 위협하는 상황을 연출하지 않아도 호러는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편집자의 시점을 이용한 것도 만들어 낸다는 의미를 나타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녹취테이프, 그것도 자살 직전에 녹음된 테이프의 내용을 기술하는 것부터 섬뜩한 일이다. 애초에 그런걸 녹음한다는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당시 상황을 소리에만 의존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 은근히 공포스럽게 한다. 특히 실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청각으로 간접적인 판단 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지의 공포를 자극하게 된다.
 여기에 듣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가 나오기라도 한다면...
 그 다음은 개인의 상상에 맡기겠다.
 
빈집을 지키던 밤

 몇 명의 후배와 술자리를 가지던 나는 한 후배의 여자 선배가 겪은 일을 듣게 된다. 그 선배는 어느 날, 빈 집을 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기업회장 부부가 노모와 함께 살고 있는 고급 저택이었다. 다소 기묘한 분위기의 저택에서 할 일을 알려주던 부인은 그녀에게 노모에 관한 충격적인 진실을 알려주는데...
 집이 고전적이면서 아직도 여전한 호러스팟이라는 건 웬만하면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집은 호러와 거리가 멀어보이는 고급저택이다.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라 생각할 수 있지만, 호러는 그 어떤 예외인 곳에서도 덮치기 마련이다.
 흔히 하우스 호러하면 귀신 나오는 집이 대표적이지만, 마이클 마이어스로 유명한 할로윈 시리즈처럼 살인마라는 현실적인 공포도 존재한다. 뭐, 이 분야까지 가게되면 하우스 호러라기 보다는 슬래셔에 더 가깝게 되긴 하지만. 이 단편의 경우는 앞에서부터 왜 할로윈 영화 얘기를 하면서 강조를 하는지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다가오는 공포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호러 분야에 대한 나름대로의 애정을 생각하면, 이번 단편은 그 동안의 괴이한 호러라는 패턴 속에서 또 다른 형태로 허를 찌르는 호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연히 모인 네 사람

 아르바이트 동료인 가쿠 마사노부의 제안으로 네가히 산 하이킹에 가게 된 오쿠야마 가쓰야. 그런데 정작 대표인 가쿠가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오쿠야마는 같은 일행인 가쿠의 또 다른 지인 셋을 이끌게 된다. 유독 조용한 일행의 틈에서 겨우 얘기를 이어 하던 중, 가쿠가 약속날 이전에 네가히 산을 방문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낯선 사람들끼리 모였다가 무슨 일이 발생하는 내용은 추리나 호러 쪽에서 흔하다. 다만, 이 경우에는 한정된 공간이라는 제약이 발생함으로서 분위기와 인물들 간의 긴장감을 극대화 시키기에 이른다. 이 단편의 경우는 앞서 설명한 경우와 비교하면 완전 다르다. 하지만 역시 이 구조를 이용해 허를 찌르는 공포는 상당하다.
 솔직히 이 공포 단편의 구조는 어디서 들어본 무서운 이야기의 형태와 약간은 비슷하기도 하다. 하지만 일행이 문제가 아니라 산 자체가 문제로 다가오면 그건 또 얘기가 다를 것이다. 산은 한정된 공간이면서 넓은 곳이라는 걸 떠올려 보라. 또, 옛부터 사람들이 자연을 두려워했다는 점도.

시체와 잠들지마라

 중학교 동창회에서 만난 K로부터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된다. 그녀의 어머니가 입원한 병실에 들어온 노인 환자가 들어오게 된다고 한다. 눈을 뜬 채로 가만히 있던 노인은 그녀에게 무어라 말을 걸기 시작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K로부터 받은 노인의 말을 재구성해보면서, 그것이 어린 시절의 체험담으로 추정하는데...
 무서운 이야기 속에서 의미를 해석하려는 부분이 강해서, 도조 겐야 시리즈에서 보던 공포추리적인 면이 돋보였다. 추리에서 미스터리가 불가능 해보이는 걸 증명하는 과정이라면, 호러에서 미스터리는 공포의 실체를 들추는 과정이라 볼 수 있겠다. 왜, 무섭냐를 고찰한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면 <이해하면 무서운 이야기>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다만, 이 단편은 해석이 되지 않은 이야기부터 불길하고 기묘함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무섭게 보이지 않은 내용에서 공포를 찾아내기 보다는, 이미 공포가 흘러나오고 있는 내용 속에서 보이지 않게 봉인된 부분을 찾아 공포의 본질을 쏟아지게 만드는 것에 가깝다.
 문제의 노인이 겪은 어린 시절 체험담은 불길함으로 가득찬 느낌이었다. 분명 현실이라 생각되는 분위기에서 어느 순간 다른 공간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하게 바뀌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의 노인과 체험담 속의 아이와 어딘가 매치되지 않는다는 느낌도 있어 더욱 이해하기 힘든 공포로 말려든다. 그렇기 때문에 공포의 해석, 즉 공포를 추리한다는 건 해소가 아니라 오히려 증폭이 되고만다. 보통 미스터리가 해결과정을 통해 앞으로 나가는 것과 반대로 작용한다니 참으로 기이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이게 바로 호러라는 것의 매력일지도.

기우메: 노란우비의 여자

 외진 곳에 위치한 대학교에 다니던 그녀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자친구로부터 기이한 얘기를 듣게 된다. 비도 오지 않은 날인데 노란색 우산을 들고 노란 우비를 입은 여자를 목격했다고. 처음에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지만, 노란우비의 여자가 남자친구를 주시하면서부터 일이 커지기 시작하는데...
 주변 환경과 맞지 않은 모습의 존재는 언제나 무섭기 마련이다. 그것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더더욱. 보통 이런 무서운 이야기는 공포의 대상이 어떤 방식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기우메는 조금 특이한 경우로 보였다. 어딘가 어중간하다고 할까, 아니면 불분명하다고 할까. 분명 불길하게 보이면서도 확실한 무언가를 보이지 않아서 시시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무서운 이야기 속에 나오는 것이 시시하다면 무서운게 되질 않는다는 걸 생각해 둬야 한다.
 죽음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많이 나오는 걸 생각하면 기우메 역시 죽음의 한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죽음은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럽고, 알 수 없게 다가오는 것이니까. 또, 노란우비에서 연상되는 비는 음기를 나타내기도 하고.

스쳐 지나가는 것

 직장인 후지사키 유나는 평소와 같이 출근길의 철도 건널목 건너편에서 검은 형체의 사람을 목격한다. 어딘지 모르게 사람 같지 않은 기분이 들던 그녀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 중 하나로 여긴다. 그런데다음 날 출근길에도 검은 형체는 철도 건널목에서 나타났고, 점점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걸 알게 되는데...
 앞선 단편인 기우메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위기다. 길에서 낯선 존재와 마주치는 것까지는 비슷한데 분위기면에서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기우메가 불길한 기운이 점점 퍼지는 느낌이라면, 스쳐 지나가는 것은 점점 좁혀오는 공포다. 좁혀오는 공포라면 말 그대로 긴장감을 극에 다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원래 좋지 않은 것은 밖에서부터 들어온다고 하지 않은가. 그것도 당사자가 모르게 천천히.
 공포가 다가오는 한편으로 곳곳에서 주인공이 갈등하게 되는 현대적인 요소들이 눈에 띄었다. 이를 테면 직장문제라든지, 괴이한 존재에 대한 논의라든지. 솔직히 이런 무서운 상황을 현대 도시에서 어떻게 알려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다른 소설에서는 영능력자라든지, 그런 게 나오기라도 하지만 이 단편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에 발생하는 괴이한 공포는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인상을 준다.
 여담으로 작가의 다른 신간 소설이 언급되기 때문에 소소한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각 단편들을 보다보면 녹음기록 및 전해들은 이야기를 소재로 한 단편집으로 보일 것이다. 만약 진짜 그렇게 보인다면 책 맨 앞의 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해봐야 한다. 이 책은 단편집이 아니라 장편소설이다. 분명 책을 읽기 전에 표지를 확인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장편소설이라는 자각없이 읽었다는 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단순한 착각일까? 아니면 진짜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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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된 시간
사쿠 다쓰키 지음, 이수미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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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공정함 보다는 개인적인 이해관계나 대가성을 먼저 따지고, 제대로된 논의도 않고 끼워 맞출 생각만 한다. 잘못된 판결이라도 그걸 증명하는데만 몇 년의 세월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거꾸로 따지고 들어가면 대부분 사소한 부분에서 실수나 판단을 잘못한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렇다는 건, 나 또한 어딘가에서 잘못 걸려들면 말려들 수도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잡혀들어가 무고하게 유죄를 선고받은 피해자 역시 곳곳에 널려 있다는 것일테고.

 야마나시 현의 재력가 와타나베 쓰네조의 딸, 미카가 납치 당한다. 범인은 몸값 1억엔을 요구하지만, 경찰의 판단 아래 전해지지 못하고 결국 미카는 시체로 발견된다. 범인 검거에 총력을 다한 경찰은 가방에서 발견된 지문을 토대로 인근에 사는 무고한 청년을 체포한다. 청년은 무죄를 주장할 틈도 없이 경찰의 묻지마 식 수사로 범인으로 확정되어 가는데...

 형사사건 변호사가 직업인 작가답게 곳곳에서 경찰 수사 및 사법체계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 뒷바침 되어 있다. 뉴스나 관련된 부분이 나오는 소설에서 많이 나오던 장면이라도 전문가적인 코멘트로 실제현장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 짚어준다.

 시사프로그램에서 사건을 다루는 듯한 르포형식이다 보니 앞에서 한 말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그 상황에 대한 평가가 같이 기술된다. 각종 보고서 관련 부분까지 어느 정도 상세히 보여주기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조작이 이루어졌는지 확연히 볼 수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같다고 할까.

 무고 사건으로 진행되다보니 보통 여러 논의가 되야할 부분 상당 부분이 답답하게 넘어간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생각을 해보지만, 소설 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생각 밖의 실수를 저지르는 걸 종종 볼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도 그걸 책임지기 싫어 밀어붙이는 것도 그렇고. 그럼에도 중단할 수 있을 시기를 넘겨 계속 폭주하는 모습은 국내에서도 있었던 각종 누명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가장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게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이었다. 경찰의 강압수사, 허위자백 등등, 미묘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적인 구조는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항소과정에서 변호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알 수도 있었다. 간혹 보게 되는 법정 재판에서 검사와 변호사, 또는 변호사와 변호사끼리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장면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다. 여러 기관을 돌면서 절차에 필요 서류, 또 맡은 사건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활동까지. 변호사라는 직업이 이렇게 바쁘다고는 생각도 못했다. 과정만으로도 힘들텐데 의뢰인 또는 피고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까지 한다면 그 만한 좋은 변호사는 없을 것이다. 물론 역시나 예외가 있기 마련이겠지만.

 이렇듯 무고한 사람이 누명을 쓴 사건을 통해 법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게 하면서,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더 중요한 사실도 알려줌으로서 사건수사와 법정공판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게 한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명백한 증거도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진술조서가 임의로 아무렇게나 작성될 수도 있다. 또, 이것도. 누명하나로 여러 사람의 인생이 박살나고도 그 누가 책임을 질 수가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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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혼
황희 지음 / 해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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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앞에두고도 삶을 생각하는 것은 역시 미련 때문일까? 그래서 귀신이나 유령으로도 불리는 죽은 사람의 혼이 떠돌아 다니고, 귀신이 씌인다는 무서운 이야기가 많은 것일지도 모른다.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여겨진 탓에 무서운 것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죽어서 떠도는 영혼도 어쨌든 사람이었다. 말 못할 사연이 있던, 꿈이 있던, 누군가를 사랑하던, 힘들어도 살아가는 의미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옛 고문헌이나 고전문학에서도 다루어지는 영혼을 봐도 요즘 공포영화에서 볼 법한 악령과는 다른 모습이다. 죽고 싶어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삶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기점일지도 모르겠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고 사는 일러스트레이터,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에게 쫓기는 자매와 이들의 관계 파악에 나선 약사, 시어머니에게 구박받고 사는 재일교포, 죽은 형의 영혼과 한 몸으로 살아가는 남자. 이들을 하나의 관계로 연결시키는 연결고리를 보며 일상에서 전혀 보지 못하는 존재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들여다 본다.

 인생을 게임처럼 다시 시작했으면 하는 생각이 현실로 나타나면, 가장 그럴사한 경우가 이 소설에 나오는 경우로 보였다. 하지만 리셋이라기 보다는 해킹에 가깝고 이로 인해 다른 누군가는 죽는 다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섬뜩하다. 이렇게 까지 가면 심각한 전개로 엑소시스트 같은 경우까지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정도까지의 선을 넘어가지는 않는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이 소설은 사람이었던 자들의 삶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 초자연적인 악의가 아닌 사람으로서 소망하는 간절함으로 가득찬.

 살고 싶은데도 죽을 수 밖에 없고, 예상치 못하게 죽고, 죽지 못해서 살고, 늘 죽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일종의 역학관계가 성립하지 않나 싶다. 겉은 변함없이 혼의 상태만 죽고 싶은 사람은 나가고, 아직 살고 싶은 사람은 돌아오는. 무섭게 다가와야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안타까운 건 왜일까. 죽었더라도 결국은 같은 사람이라 그럴까.

 빠른 전개 속에서 누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쫓는 과정은 여러모로 색다른 미스터리였다. 인과관계에 대한 미스터리와 혼의 실체라는 금기에 다가가려는 시도라는 두 가지 구도가 있다. 얼핏보면 이 두 가지 구도는 방향이 달라 보이지만 결국에는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된다. 혼에 대해 다가가는 부분과 금단의 영역이라는 점이 어딘지 모르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타나토 노트>와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타나토 노트>가 멀리서 찾는 죽음이라면, <부유하는 혼>은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죽음으로 보였다.

 혼을 중심으로 죽음이 많이 나오는 내용이지만, 그 반대인 삶을 더 생각하게 만든다. 죽어서까지 다시 살고 싶은 이유가 있는데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은 왜 쉽게 죽음을 선택할까.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뭔가 의미 있는 걸 놓치지 않기 위해 시도를 해본 적 있을까. 삶을 너무 좁고 한정되게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오래 전, 죽음 너머를 들여다볼 생각을 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현실에서 길을 잃고 방황한 결과로 생각된다.

 살고자 부유하는 혼, 죽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

 서로 다른 세계이지만, 어떤 곳이든 사람 사는 곳은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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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알라딘 특별판, 양장)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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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생을 살면서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순간이 종종 있다. 좋은 일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대체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차선책을 선택하는 경우다. 어떤 선택이든 쉽지 않지만, 삶이라는 멈추지 않는 열차는 생각할 시간을 많이 주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한 선택으로 인해 더 큰 일을 벌이게 되고 만다. 그때 되서야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서원은 세령호 사건의 주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아버지 때문에 모두에게 버려지고 예전에 같은 방을 쓰던 아저씨인 승환과 숨어살아간다. 하지만 어디를 가던 당시 사건이 실린 신문기사가 주변사람들에게 배달되면서 새출발은 자꾸 좌절된다. 그렇게 또 다시 새로운 장소인 등대마을에서 지내던 서원과 승환은 인근에서 발생한 잠수사고로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문제의 신문기사를 또 배달받게 된다. 그런데 신문기사와 함께 도착한 또 다른 택배 안에서 세령호 사건의 전말이 담긴 소설원고를 발견하는데...

 현재 진행형인 한편으로 과거부터 되짚어가는 전개 형식이라 사건에 휘말린 이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긴장감 있게 만든다.

 안개에 뒤덮이는 세령호와 서원의 아빠인 최현수의 행적으로 인해 섬뜩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댐 주변의 분위기를 나타내고, 불안정한 정신을 나타낸 것이겠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불길한 그림자가 기어나오는 모습이 자꾸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트라우마와 내제되어 쌓인 불안이 내면 속에서 표출된 것치고는 꽤 무서운 분위기다.

 이것만해도 벌써 서늘한데 여기에 도저히 사람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악마 같은 인물이 사건 속을 돌아다니기까지 한다. 이건 환상 같은 비현실적인 게 아닌 실존하는 위협이다. 인간의 오만함과 자기중심적 사고가 어디까지 도달해야 이런 인물이 나올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함 그 자체다.

 인생의 갈림길 위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는 심리는 세령호의 안개만큼이나 짙으면서 답답했다. 나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 적어도 이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이 사건의 당사자가 누가 되든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선택이든 스스로 감내하기 쉽지 않다. 특히 혼자라면 몰라도 가족이 있으면 더 힘들다. 나의 선택이 곧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니까. 이런 엄청난 부담까지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만큼 제 정신을 붙잡는 것도 힘에 부치질지 모르겠다.

 이런 탓에 과거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현실이 두드러진다. 일종의 낙인이나 다름없다 해야겠다. 한 순간에 선택으로 만들어진 결과가 어떻든 책임이라는 걸 피해가기 어렵다. 또,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가족까지 같이 말려들 수 있어 과거의 그림자는 한 없이 크게 느껴지게 된다. 때로는 거대한 거인, 때로는 빠른 속도로 차오르는 물처럼.

 시점이 다소 난잡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어 중간중간 읽는게 더디기도 했다. 인물이 옛기억을 떠올리는 구석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이 점도 확실하게 인지하지 않는 이상, 과거시점으로 넘어가는 건지 구분 못할 때도 있었다.) 이게 지금 날짜에 일어난 일인지, 과거에 있던 일인지, 며칠 전 인지, 아니면 몇 시간 전에 있던 일인지 살짝 구분이 되지 않기도 했다.

 과거는 흘러가도 그 밑의 잔재물은 언제든지 남아도 이상하지 않다. 문제는 그걸 털어내느냐, 같이 썩어가며 망가지느냐의 선택이다.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잔재물이 어디에 얘기하기 힘든 거라든가, 자신과 관련된 좋지 않은 것이라면 더 그렇다. 하지만 언젠가는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자신에게 붙은 것은 자신 만이 털어 낼 수 있으니까. 그 어떤 파장이 일어난다해도 후회 없을 것이라 확신하는 건 오직 자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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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왓치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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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도 들어가기 전, 첫 페이지에서부터 소름이 돋았다. 그 유명한 한니발 렉터 시리즈의 작가가 언급된다는 것부터가 뭔가 심상치 않게 보였기 때문이다. 한니발의 잔혹성도 상당하지만, 스티븐 킹의 메르세데스 살인마 역시 장난아니다. 킹이 한니발 작가를 언급할 정도면 도대체 빌 호지스에게 어떤 잔혹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일지. 또, 그 만큼 얼마나 고생의 길이 열린 것일지. 결말 다운 결말을 보여주기 위해 어느 정도 크기의 판이 준비되어 있을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약간이나마 예상할 수 있는 걸로는 표지에 나타난 피바다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빌 호지스는 2009년에 메르세데스 살인마로 인해 전신마비가 된 여성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경찰과 빌은 단순 자살로 판단하는 가운데, 홀리 기브니는 자살동기를 전혀 찾을 수 없다면서 빌에게 현장에서 발견한 미니게임기를 보여준다. 그 게임기는 이어지는 여러 자살사건과 연관성을 가지면서 빌 호지스는 점차 6년 전의 사건으로 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있는 메르세데스 살인마의 그림자를 느끼는데...

 빌 호지스 트릴로지의 첫 발단이었던 <미스터 메르세데스>에서 시작된 퇴직형사와 천재 사이코의 대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번 시작된 대결은 제대로 결판이 나지 않는 이상 끝난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처럼 사건 역시 확실하게 종료되야 임무종료인 것이다. 곳곳에서 마지막이 강조되듯이 퇴직형사와 천재 살인마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한쪽은 죽을 힘을 다해, 또 다른 쪽은 최대한 잔혹하게.

 그런데 이번 작품을 보면 스티븐 킹의 공포소설에서 자주 보이던 장치를 볼 수 있다. 이 요소로 인해 다소 현실성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작가는 과도한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활용해서 나름 현실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현실과 초자연적인 부분이 경계선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분위기랄까. 어떻게 보면 스티븐 킹 식 추리로 볼 수도 있고, 책 뒷편에 적힌 평가대로 기발한 방식의 장르 파괴일 수도 있다.

 문득 작가의 이전 작품 중에서 <그린 마일>을 나쁜 방향으로 틀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삶과 죽음이라는 것의 차이지만, 그 하나 만으로도 엄청나게 다른 전개를 보여서 삶과 죽음은 진짜 한끝 차이로 보였다.

 갈수록 진화하는 천재 사이코의 모습을 보며 앞서 작가가 토머스 해리스를 언급한 이유를 점차 알 수 있게 된다. <미스터 메르세데스>에서만 해도 그냥 불우한 환경에서 만들어진 한낯 천재 사이코가 점점 거의 한니발 렉터와 비슷한 모습으로 완성되어 간다. 공포소설적인 장치가 사용된 것도 이걸 완성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살과 게임중독이 주 소재로 나와서 새삼스럽지 않게 보였다. 국내에서도 여러모로 꽤 문제로 지적되는 점이니까. 특히 자살, 그 중에서 부각되게 다룬 청소년 자살은 전세계 어디든 예외가 아닐 것이다. 비록 작중에 나오는 상황은 현실과 다를지 몰라도, 자살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 너무나 순식간이라 자살예방과 상담이 왜 필요한지 느끼게 만든다.

 아서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를 끝내려고 했을 때, 이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으로 상당한 파장이 일어난 적이 있다. 빌 호지스 역시 그런 아쉬움이 있지만, 왠지 모르게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군거더기 하나 보이지 않고 진짜 끝이라고 받아들일 만한 임무 종료였으니까. 그리고 모두가 아쉽다고 해도 빌 호지스 본인에게는 나름 만족스럽게 끝이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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