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알라딘 특별판, 양장)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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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생을 살면서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순간이 종종 있다. 좋은 일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대체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차선책을 선택하는 경우다. 어떤 선택이든 쉽지 않지만, 삶이라는 멈추지 않는 열차는 생각할 시간을 많이 주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한 선택으로 인해 더 큰 일을 벌이게 되고 만다. 그때 되서야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서원은 세령호 사건의 주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아버지 때문에 모두에게 버려지고 예전에 같은 방을 쓰던 아저씨인 승환과 숨어살아간다. 하지만 어디를 가던 당시 사건이 실린 신문기사가 주변사람들에게 배달되면서 새출발은 자꾸 좌절된다. 그렇게 또 다시 새로운 장소인 등대마을에서 지내던 서원과 승환은 인근에서 발생한 잠수사고로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문제의 신문기사를 또 배달받게 된다. 그런데 신문기사와 함께 도착한 또 다른 택배 안에서 세령호 사건의 전말이 담긴 소설원고를 발견하는데...

 현재 진행형인 한편으로 과거부터 되짚어가는 전개 형식이라 사건에 휘말린 이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긴장감 있게 만든다.

 안개에 뒤덮이는 세령호와 서원의 아빠인 최현수의 행적으로 인해 섬뜩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댐 주변의 분위기를 나타내고, 불안정한 정신을 나타낸 것이겠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불길한 그림자가 기어나오는 모습이 자꾸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트라우마와 내제되어 쌓인 불안이 내면 속에서 표출된 것치고는 꽤 무서운 분위기다.

 이것만해도 벌써 서늘한데 여기에 도저히 사람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악마 같은 인물이 사건 속을 돌아다니기까지 한다. 이건 환상 같은 비현실적인 게 아닌 실존하는 위협이다. 인간의 오만함과 자기중심적 사고가 어디까지 도달해야 이런 인물이 나올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함 그 자체다.

 인생의 갈림길 위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는 심리는 세령호의 안개만큼이나 짙으면서 답답했다. 나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 적어도 이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이 사건의 당사자가 누가 되든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선택이든 스스로 감내하기 쉽지 않다. 특히 혼자라면 몰라도 가족이 있으면 더 힘들다. 나의 선택이 곧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니까. 이런 엄청난 부담까지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만큼 제 정신을 붙잡는 것도 힘에 부치질지 모르겠다.

 이런 탓에 과거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현실이 두드러진다. 일종의 낙인이나 다름없다 해야겠다. 한 순간에 선택으로 만들어진 결과가 어떻든 책임이라는 걸 피해가기 어렵다. 또,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가족까지 같이 말려들 수 있어 과거의 그림자는 한 없이 크게 느껴지게 된다. 때로는 거대한 거인, 때로는 빠른 속도로 차오르는 물처럼.

 시점이 다소 난잡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어 중간중간 읽는게 더디기도 했다. 인물이 옛기억을 떠올리는 구석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이 점도 확실하게 인지하지 않는 이상, 과거시점으로 넘어가는 건지 구분 못할 때도 있었다.) 이게 지금 날짜에 일어난 일인지, 과거에 있던 일인지, 며칠 전 인지, 아니면 몇 시간 전에 있던 일인지 살짝 구분이 되지 않기도 했다.

 과거는 흘러가도 그 밑의 잔재물은 언제든지 남아도 이상하지 않다. 문제는 그걸 털어내느냐, 같이 썩어가며 망가지느냐의 선택이다.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잔재물이 어디에 얘기하기 힘든 거라든가, 자신과 관련된 좋지 않은 것이라면 더 그렇다. 하지만 언젠가는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자신에게 붙은 것은 자신 만이 털어 낼 수 있으니까. 그 어떤 파장이 일어난다해도 후회 없을 것이라 확신하는 건 오직 자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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