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의 테이프 스토리콜렉터 57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기록은 당사자의 체험 및 관찰에 독자의 상상력이 합쳐지면서 실체하게 된다. 원래부터 뜻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 상상력이라는 해석이 필요없겠지만, 의미부여와 관련없이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라면 말이 다르다. 그것도 글이라는 문자로된 기록이 아닌 소리로 기록된 녹음내용이면. 글은 나타난 묘사만으로 분위기를 느끼게 만드는 정도다. 반면, 녹음 기록은 일종의 살아숨쉬는 기록이나 다름없다. 녹음된 장소를 가늠하게 할 주변 소리, 녹음된 목소리로 전해지는 순간순간의 감정과 주변 묘사까지.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어쨌든 우리가 사는 현실이 소리로서 남아있는 것이다. 기록된 내용의 실체를 눈으로 볼 수 없는 건 글과 똑같기 때문에 역시 상상력이 합쳐질 수 밖에 없다.
 살아있는 기록에 상상력이 더해진다...
 만약 녹음기록이 무서운 내용이라면 공포가 그 만큼 더해질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기록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공포가 섞이면서 말 그대로 살아있는 공포가 되고 마니까.

죽은 자의 테이프녹취록

 편집자 시절 나는 호러 관련 출판 기획을 준비하던 중에 기류 히사히코라는 작가를 소개받는다. 다소 붙임성이 없던 그는 자살하기 직전에 녹음된 테이프 내용을 적어서 출판하는 걸 제안한다. 꺼림직하지만 잘못되면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말을 믿고, 나는 문제의 샘플 원고를 받게 되는데...
 보통 호러소설하면 생각하는 첫 문장이나 배경과는 다르게 시작하기 때문에 편집자를 주인공으로한 단편 출판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오히려 그런 점을 편견으로 여기고 이런 전개로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다. 굳이 이상한 곳에 가지 않아도, 무언가 쫓아오거나 위협하는 상황을 연출하지 않아도 호러는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편집자의 시점을 이용한 것도 만들어 낸다는 의미를 나타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녹취테이프, 그것도 자살 직전에 녹음된 테이프의 내용을 기술하는 것부터 섬뜩한 일이다. 애초에 그런걸 녹음한다는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당시 상황을 소리에만 의존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 은근히 공포스럽게 한다. 특히 실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청각으로 간접적인 판단 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지의 공포를 자극하게 된다.
 여기에 듣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가 나오기라도 한다면...
 그 다음은 개인의 상상에 맡기겠다.
 
빈집을 지키던 밤

 몇 명의 후배와 술자리를 가지던 나는 한 후배의 여자 선배가 겪은 일을 듣게 된다. 그 선배는 어느 날, 빈 집을 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기업회장 부부가 노모와 함께 살고 있는 고급 저택이었다. 다소 기묘한 분위기의 저택에서 할 일을 알려주던 부인은 그녀에게 노모에 관한 충격적인 진실을 알려주는데...
 집이 고전적이면서 아직도 여전한 호러스팟이라는 건 웬만하면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집은 호러와 거리가 멀어보이는 고급저택이다.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라 생각할 수 있지만, 호러는 그 어떤 예외인 곳에서도 덮치기 마련이다.
 흔히 하우스 호러하면 귀신 나오는 집이 대표적이지만, 마이클 마이어스로 유명한 할로윈 시리즈처럼 살인마라는 현실적인 공포도 존재한다. 뭐, 이 분야까지 가게되면 하우스 호러라기 보다는 슬래셔에 더 가깝게 되긴 하지만. 이 단편의 경우는 앞에서부터 왜 할로윈 영화 얘기를 하면서 강조를 하는지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다가오는 공포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호러 분야에 대한 나름대로의 애정을 생각하면, 이번 단편은 그 동안의 괴이한 호러라는 패턴 속에서 또 다른 형태로 허를 찌르는 호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연히 모인 네 사람

 아르바이트 동료인 가쿠 마사노부의 제안으로 네가히 산 하이킹에 가게 된 오쿠야마 가쓰야. 그런데 정작 대표인 가쿠가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오쿠야마는 같은 일행인 가쿠의 또 다른 지인 셋을 이끌게 된다. 유독 조용한 일행의 틈에서 겨우 얘기를 이어 하던 중, 가쿠가 약속날 이전에 네가히 산을 방문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낯선 사람들끼리 모였다가 무슨 일이 발생하는 내용은 추리나 호러 쪽에서 흔하다. 다만, 이 경우에는 한정된 공간이라는 제약이 발생함으로서 분위기와 인물들 간의 긴장감을 극대화 시키기에 이른다. 이 단편의 경우는 앞서 설명한 경우와 비교하면 완전 다르다. 하지만 역시 이 구조를 이용해 허를 찌르는 공포는 상당하다.
 솔직히 이 공포 단편의 구조는 어디서 들어본 무서운 이야기의 형태와 약간은 비슷하기도 하다. 하지만 일행이 문제가 아니라 산 자체가 문제로 다가오면 그건 또 얘기가 다를 것이다. 산은 한정된 공간이면서 넓은 곳이라는 걸 떠올려 보라. 또, 옛부터 사람들이 자연을 두려워했다는 점도.

시체와 잠들지마라

 중학교 동창회에서 만난 K로부터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된다. 그녀의 어머니가 입원한 병실에 들어온 노인 환자가 들어오게 된다고 한다. 눈을 뜬 채로 가만히 있던 노인은 그녀에게 무어라 말을 걸기 시작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K로부터 받은 노인의 말을 재구성해보면서, 그것이 어린 시절의 체험담으로 추정하는데...
 무서운 이야기 속에서 의미를 해석하려는 부분이 강해서, 도조 겐야 시리즈에서 보던 공포추리적인 면이 돋보였다. 추리에서 미스터리가 불가능 해보이는 걸 증명하는 과정이라면, 호러에서 미스터리는 공포의 실체를 들추는 과정이라 볼 수 있겠다. 왜, 무섭냐를 고찰한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면 <이해하면 무서운 이야기>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다만, 이 단편은 해석이 되지 않은 이야기부터 불길하고 기묘함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무섭게 보이지 않은 내용에서 공포를 찾아내기 보다는, 이미 공포가 흘러나오고 있는 내용 속에서 보이지 않게 봉인된 부분을 찾아 공포의 본질을 쏟아지게 만드는 것에 가깝다.
 문제의 노인이 겪은 어린 시절 체험담은 불길함으로 가득찬 느낌이었다. 분명 현실이라 생각되는 분위기에서 어느 순간 다른 공간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하게 바뀌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의 노인과 체험담 속의 아이와 어딘가 매치되지 않는다는 느낌도 있어 더욱 이해하기 힘든 공포로 말려든다. 그렇기 때문에 공포의 해석, 즉 공포를 추리한다는 건 해소가 아니라 오히려 증폭이 되고만다. 보통 미스터리가 해결과정을 통해 앞으로 나가는 것과 반대로 작용한다니 참으로 기이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이게 바로 호러라는 것의 매력일지도.

기우메: 노란우비의 여자

 외진 곳에 위치한 대학교에 다니던 그녀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자친구로부터 기이한 얘기를 듣게 된다. 비도 오지 않은 날인데 노란색 우산을 들고 노란 우비를 입은 여자를 목격했다고. 처음에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지만, 노란우비의 여자가 남자친구를 주시하면서부터 일이 커지기 시작하는데...
 주변 환경과 맞지 않은 모습의 존재는 언제나 무섭기 마련이다. 그것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더더욱. 보통 이런 무서운 이야기는 공포의 대상이 어떤 방식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기우메는 조금 특이한 경우로 보였다. 어딘가 어중간하다고 할까, 아니면 불분명하다고 할까. 분명 불길하게 보이면서도 확실한 무언가를 보이지 않아서 시시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무서운 이야기 속에 나오는 것이 시시하다면 무서운게 되질 않는다는 걸 생각해 둬야 한다.
 죽음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많이 나오는 걸 생각하면 기우메 역시 죽음의 한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죽음은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럽고, 알 수 없게 다가오는 것이니까. 또, 노란우비에서 연상되는 비는 음기를 나타내기도 하고.

스쳐 지나가는 것

 직장인 후지사키 유나는 평소와 같이 출근길의 철도 건널목 건너편에서 검은 형체의 사람을 목격한다. 어딘지 모르게 사람 같지 않은 기분이 들던 그녀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 중 하나로 여긴다. 그런데다음 날 출근길에도 검은 형체는 철도 건널목에서 나타났고, 점점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걸 알게 되는데...
 앞선 단편인 기우메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위기다. 길에서 낯선 존재와 마주치는 것까지는 비슷한데 분위기면에서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기우메가 불길한 기운이 점점 퍼지는 느낌이라면, 스쳐 지나가는 것은 점점 좁혀오는 공포다. 좁혀오는 공포라면 말 그대로 긴장감을 극에 다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원래 좋지 않은 것은 밖에서부터 들어온다고 하지 않은가. 그것도 당사자가 모르게 천천히.
 공포가 다가오는 한편으로 곳곳에서 주인공이 갈등하게 되는 현대적인 요소들이 눈에 띄었다. 이를 테면 직장문제라든지, 괴이한 존재에 대한 논의라든지. 솔직히 이런 무서운 상황을 현대 도시에서 어떻게 알려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다른 소설에서는 영능력자라든지, 그런 게 나오기라도 하지만 이 단편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에 발생하는 괴이한 공포는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인상을 준다.
 여담으로 작가의 다른 신간 소설이 언급되기 때문에 소소한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각 단편들을 보다보면 녹음기록 및 전해들은 이야기를 소재로 한 단편집으로 보일 것이다. 만약 진짜 그렇게 보인다면 책 맨 앞의 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해봐야 한다. 이 책은 단편집이 아니라 장편소설이다. 분명 책을 읽기 전에 표지를 확인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장편소설이라는 자각없이 읽었다는 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단순한 착각일까? 아니면 진짜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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