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회관 밀실 살인사건 한국추리문학선 3
윤자영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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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시체소실, 클로즈드 서클. 국내 추리에서도 이걸 보게 되네요
고전적인 트릭을 선호하는 편이라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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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와, 너에게 꽃을 주려고
박진성 지음 / 미디어샘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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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많이 읽어본 편은 아니지만 짧은 문구 안에서 오는 강한 인상이 뭔지는 어느 정도 안다. 작은 물방울이 잔잔한 수면에서 넓게 퍼져 나가는 듯한. 짧고 깊은 울림이라고 해야될까?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짧은 글을 따라 그림 한 폭이 그려지는 느낌이기도 하다.

 이 시의 주제는 사랑이다. 행복한 시절은 물론이고, 쓸쓸한 순간, 그리운 순간, 문득 생각나는 순간 등. 연애할 때 느껴질만한 모든 순간들이 들어 있다. 간단할 것 같으면서 의외로 여러운 주제다. 그래서 짧은 문구라도 깊이 있게 느껴지는 게 많아 꽤 고민하며 읽은 편이다.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봤지만 시 하나하나에서 설렌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소하고 일상적인 장면들이 대부분이라 더 크고 화려한 걸 바라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행복일까, 라는 문제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정도가 딱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 하지만 너무 익숙해지기 쉽기에 소중함을 금방 잊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별이나 잠시 떨어진 순간을 나타낸 시 역시 꽤 인상적이다. 직접적으로 보고 싶다, 슬프다,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공허하거나 텅 빈 느낌이 깊게 다가온다. 행복한 장면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어느 정도 보인다. 아무리 작고 소박해도 함께 있으면 가득찬 분위기였던 만큼 그 빈자리가 크게 다가오는듯 하다.

 연애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해보고, 이랬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더 많을 것이다. 서로 간의 차이점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럼에도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작은 것 하나에도 웃을 수 있다면 그게 행복한 것이 아닐까. 그 어떤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한다해도 소박한 행복을 모른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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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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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수록 발전되고 있는 정보화 사회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기만 하면 빠르게 유통된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개인적인 일이든 공적인 일이든 퍼지기만 하면 누구나 다 안다. 다만,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구분하기 어렵다. 검증이 되기도 전에 이미 사실로 퍼져 나가기 바쁘고 진실과 거짓의 판단 유무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내 편이라는 이유 하나로 진영논리에 빠져 진짜인데도 숨길 수도, 가짜인데도 진짜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일이다. 뻔히 눈 앞에서 있는 그대로를 보았거나 명백한 사실 증거가 있음에도 매체, 특히 언론에서 사실대로 말하지 않기도 하다. 지금에와서야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 옛날부터 상습적으로 알게 모르게 벌어졌을지 누가 알겠는가.

 변변치 않은 글을 기고하거나 대필작가 일을 하며 지내던 콜로나는 저널리스트 관련 책 출간을 기획하는 시메이 주필을 만난다. 이 책을 쓰기까지의 과정은 이렇다. 끝내 창간되지 않을 신문이 제작되는 과정에 참여해서 그 과정을 기록하는 것. 그렇게 창간 예비판인 <제 0호>는 여러 기자들을 불러모아 제작에 들어간다. 그런데 브라가도초라는 기자가 무솔리니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가설과 함께 증거를 확보해 기사를 준비한다는 걸 콜로나가 알게된다. 그저 소설 같은 음모론이라 여기며 콜로나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던 중, 브라가도초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가짜 뉴스를 주제로 다룬 것 답게 작중에서 기획되는 신문부터가 가짜이며 거짓이라는 점이 어떻게 보면 꽤 재미있는 부분이다. 태생부터 가짜라면 온갖 가짜 소식이 쏟아져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시메이 주필이 기사는 이렇게 써야 한다면서 말하는 부분을 보면 이래저래 충격 받을 만한 부분이 너무 많다. 별거 아닌 걸로 꼬투리잡기가 쉽고. 단어 몇 자 차이로 지역 차별을 조장하고. 사진 하나로 존재하지 않는 다수의 의견을 만들어내고. 관련 없는 사건들을 키워드로만 짜집기 해서 이슈를 만들어내고. 애매모호한 표현 하나로 뭔가 있는 듯이 당당히 주장할 수도 있고. 증거나 사실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것도 가능하고. 당장 눈에 들어오는 것 아무 거나 가져와서 그럴 싸 해보이는 허위사실을 만들어내는 건 순식간이다. 이익에 방해가 된다면 중요 기사거리라도 망설임 없이 눈에 띄지 않도록 배제한다.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없고, 또 어떻게 보기에는 겨우 이런 것에 불과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이런 짓을 할 사람이 누가하고, 이렇게 나온걸 누가 믿겠냐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현실에서는 이 보다 더 한 짓이 넘쳐나고, 아무리 말도 안 되는 걸 믿는 일이 너무나도 많다.

 이렇듯 대부분의 내용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사가 들어갈 신문을 만드는 과정이다. 여러 의견들이 오가는 와중에 때로는 웃기게 보이기는 부분도 있다. 언론은 늘 쓰는 단어나 문구만 써서 표현력이 떨어져 진부하다느니, 굳이 문학적 표현을 써서 무슨 의미인지 못 알아보게 만들 필요가 있나, 하는 논쟁이 제일 웃기지 않았나 싶다. 더 보기 좋게 전달력을 높이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사실을 전달하기 보다는 무엇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 것인가가 제일 중요하다고 여긴다면 자극성만 가득한 프로파간다나 다름없다. 이런 것에 해당되는 사례 역시 당장 주변에서 찾아봐도 많다.

 어떤 기사를 쓸 것이냐가 아니고 만드는 것이라 표현되는 것도 참 적절하다. 만든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던 걸 실체적으로 나타낸다는 걸로 볼 수 있다. 즉,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실제로 있지 않은 걸 만들어낸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솔리니 관련 부분을 담당하는 브라가도초를 보면 의심을 넘어선 음모론이 발생하는 과정이 나타나 보인다. 자동차를 고르는 과정에 관한 대화 부분이나, 눈 앞에 있는 증거를 확인하지 않는 이상 아무 것도 믿지 않는 그의 태도만 봐도 그렇다. 계속되는 믿음의 배신과 눈 속임을 겪을 수록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직접 자료를 찾아보거나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현장을 찾아가 직접보는 등의 여러 방법이 있다. 그럼에도 의혹이 계속 생겨나고 만다. 이게 전부가 아닐 지도 모른다. 더 높은 인물들이 숨겨놓은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대중은 모르고 당사자들만 아는 숨겨진 진실이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음모론의 시작이다. 그럼에도 브라가도초가 공감이 되는 건 왜일까. 단순히 음모론적인 구조가 흥미로워서? 아니면 현실에서 겪은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지금도 각종 언론에서는 여러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 중에서 믿을 만한 것이 얼마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아니, 전부 다 믿지 못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듯 하다. 현재 벌어지는 문제와 상관 없이 이익만 따지며 대중을 속이고 싶어하는 이들은 도처에 널려있으니까. 근거없는 음모론은 나쁘다고는 하지만 이런 음모론이 나오도록 조장하는 건 누구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실망과 배신이 계속된다면 더 이상의 기대는 없다. 나중에 가서 바른 소리를 한다해도 돌아오는 건 전혀 없다. 진정으로 호소한다해도 돌아오는 건 영원할지도 모를 냉소 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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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별에 서툴러서 - 이별해도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
최은주 지음 / 라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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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겪는 일에는 뭐든 서툴기 마련이다. 만남도 그렇고 이별도 그렇다. 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만남은 한 순간이고 이제 좀 친해졌다 싶으면 끝난다. 영원히 곁에 있을 것 같더라도 어느 순간 갑자기 예고도 없이 떠난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도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면 언제나 힘들다. 뭔가 거창하고 드라마틱한 것일 수도 있고, 남들에게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소중한 인연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 소설은 이별을 앞둔 이들의 다양한 사연과 그걸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흔히 생각하는 사람 간의 이별, 인생의 전환점을 위한 이별, 겉으로 봐서 알 수 없는 이별, 소중한 것과의 이별, 좋은 이별, 나쁜 이별. 생각보다 이별은 여러가지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이별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이 있으며 어떻게든 다시 살아간다는 점이다.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떨까. 무엇과 이별하느냐에 따라 무조건 슬픈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다가올 것이었다면 후련할 수도 있고. 기다리고 있던 이별이라면 오히려 기쁠 수도 있다. 마침표로 끝이 나지 않고 새출발의 지점이 되기도 할 것이다. 다양한 결과가 나오는 만큼 이별의 준비는 쉽지 않을 것이다.

 쉽지 않은 이별에 위로를 주는 건 작중의 대부분의 배경으로 나오는 이별카페다. 소소한 인테리어 속에서 차분한 분위기가 조성되며 이별 하나하나가 정리되어 간다. 아무런 뒤탈 없이, 미련없이, 잔잔하게. 이별의 당사자들에게 준비된 이별노트 위에서 정리된 문장이 마침표를 찍는 순간 모든 것이 마무리 된다. 놓지 못하고 잡던 미련, 혹시나 걱정하던 부분, 그 동안의 추억.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한 파트가 마지막 장에 도달하고 이제 새로운 첫 페이지를 향해 나아갈 차례다.

 인연은 멈출지라도 인생까지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이별이라도 그 이후가 있으며 인생의 마지막은 아니다.

 소중했기에 더 안타깝고, 아쉽겠지만 그럴수록 더 좋은 순간으로 끝내는게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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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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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것은 밖에서 다가온다.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재앙으로 보이겠지만 빈틈을 노린 침입자일 가능성도 있다. 그것은 문단속이 허술한 틈에 들어온 강도일 수도. 아니면 보통 방법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것, 즉 사람이 아닌 존재일지도 모른다. 모르는 사람이면 문을 안 열어주면 그만이다. 심각한 상황이라면 경찰을 부르면 된다. 그런데 사람 아닌 존재에게도 통할까? 집요하게 방문하고, 언제 어떻게 찾아갈지 모를 정체불명의 그것. 보기왕은 상상 그 이상으로 무서운 것이었다.

 다하라 히데키는 어린 시절 돌아가신 삼촌과 병상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찾는 정체불명의 존재를 접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긴지 몇 년이 지난다. 결혼하고 딸까지 생겨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히데키에게 누군가의 연락이 온다. 치사 씨, 바로 딸을 찾는 연락이다. 문제는 아직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않았던 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점점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히데키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영매사까지 찾아가게 되는데...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오는 내용이라 기대를 많이했다. 밖에서 불러내고 절대 문을 열거나 대답하면 안 된다는 점만 보면 다양한 옛날 이야기에서 나올 법한 설정이긴 하다. 그럼에도 보기왕이 나타났을 때의 분위기는 섬뜩 그 자체다. 아무한테 알려주지 않은 이름을 부르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 그것은 집요하다. 자신이 찾는 상대를 만나기 위해 여기저기서 연락을 한다. 게다가 교활하고 잔인하기까지. 진짜 피를 말려 죽인다는 게 제대로 느껴진다.

 전반적인 스토리는 퇴마물 형태다. 가족이 중심이 된다는 부분까지 보면 마치 컨저링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다만, 미국 호러영화 특유의 하우스 호러와는 좀 차이가 있다. 일단 보기왕은 밖에서 오는 존재고 사건 발생까지 여러 인과관계가 엮여 있어 더더욱 정체를 알기 어렵다. 단순한 악령, 악마 같은 것이 아닌 요괴라 더 그렇다. 옛기록을 찾아보면 대부분의 요괴는 자연에서 목격된다. 그리고 목격되는 지방의 자연환경과 역사적 배경에서 발생 이유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본다고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가족 문제가 들어나기 때문에 호러부분만 집중하고 봤다면 좀 놀랄 수도 있는 부분이다. 총 3파트마다 화자가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이전 파트에서 보았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게 보인다. 이런 걸 보면서 아무리 화목한 가정이라도 다 같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자기 만족이 곧 가족의 행복이 될 수는 없다. 내 생각이 모두의 의견이 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의견조율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문제 없어 보여도 분명 어디선가 놓친 부분이 있고, 알게 모르게 무시하고 있던 점이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보다 보기왕이라는 존재를 체계적으로 잘 만들었다. 기원이 되는 부분에서 모티브를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의외였다. 서양의 유명한 괴담을 일본 스타일로 재해석한 것 치고는 너무 자연스럽게 잘 만들어서 그렇다. 재미있는 건 원본인 서양 괴담의 설정이 보기왕의 특성에서는 반대로 나타나는 부분이 있는 점이다. 확실히 무엇이다라는 정체는 나오지 않지만 숨겨놓은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윤곽이 보여서 난해하다는 인상은 없다. 외형 역시 끔찍함 그 자체라 상당히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결말까지 그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인상이 끝까지 잘 유지되서 좋았다. 한 번 엄청난 인상을 남기면 그걸 또 한 번 만들기가 은근 어려운데 이 소설은 가면 갈 수록 점점 커진다. 각 파트 단계별로 보자면 첫 인상, 약간의 윤곽, 실체 순으로 보기왕이 점점 본 모습이 들어난다고 보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클라이막스가 총 3번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보기왕에게 맞서는 퇴마부분 역시 부족한 부분 없이 강렬하다. 화려한 주술이나 눈에 띄게 특별한 도구 없이 단조로움에도 분위기는 하나는 엄청 크게 몰아간다. 싱겁게 압도적으로 빨리 이기는 것도, 그렇다고 너무 약해 보이게 패배하는 것도 아닌 정도의 벨런스라 후반부로 갈수록 실망할 부분도 없다. 이기기 어려운 최종보스를 어떻게 잡을지 기대하며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보기왕이 메인이기 앞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건 가족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녀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자녀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한창 좋은 경험을 많이하고 사랑 받을 나이에 환경이 나쁘면 안 된다. 어린 시절일지라도 한 번의 경험은 오래남고 먼 미래까지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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