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일기 - 윤자영 장편소설
윤자영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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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대한 나의 인상을 말하자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다. 학교 폭력이나 따돌림을 당한 건 아니고 오히려 있는 둥, 없는 둥 하는 존재감 없는 경우였다. 적당히 이름 불릴 때 답하고, 적당히 눈에 띄지 않아 그림자 같은. 그저 한 반에 정해진 인원을 채워주는 역할 정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별로 좋지 않다고 여기는 이유라면 아무런 의미 없는 곳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얻어가는 것 없이 시간만 때우는 곳.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랑 뒤에서 벌어지는 일이 따로 있고 항상 무슨 일이 터지고 나서야 모두에게 밝혀지는 이면의 세계. 그때도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은 더 심각해진 것처럼 보인다.

 

 충덕 고등학교의 이승민이라는 학생이 자살시도를 했다는 사실이 학부모를 통해 담임에게 전달된다. 승민의 아버지는 학교생활에서의 문제를 알아보면서 자신이 연락한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한다. 얼마 뒤, 공원에서 살인으로 보이는 학생 사망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의 관련자로 이승민 학생이 지목되는데...


 제목과 프롤로그에서 받은 첫 인상에서 일본 작가 우타노 쇼고가 쓴 <절망 노트>가 떠올랐다. 학교 폭력이라는 주제. 피해자 측 학생이 주목받는 전개에서 그랬다. 그러나 비슷한 느낌만 있지 내용 전개나 전체적인 주제에서 차이점이 많다. <절망 노트>는 다소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의심되는 요소와 서술트릭 형식 속에서 학생 개인이 느끼는 고립감과 절망감을 나타냈다면, <파멸일기>는 교차되는 시점을 통해 피해자 학생을 비롯한 주변 사회상을 조명한다. 특히 학교라는 공간에서 얽인 교사, 학부모의 모습을 말이다.

 

 한쪽에서는 사건 수사, 다른 시점에서는 사건 발생 과정을 다루는 구성이라 도치형 추리 구성이라 해야겠다. 도치형 추리는 범행이 일어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진행하는 형식이다. 범행을 저지르는 당사자의 행동이나 주변 상황, 심리상태가 메인이 되어 지켜보는 것이 핵심이다. 사건의 동기가 가장 중요한 이 소설에 가장 어울리는 추리구성이라 할 수 있다


 단순한 피해자, 가해자로 구분지어지지 않는 지능적인 학교폭력.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자기 자식만 옳다는 학부모. 소통 없이 경직된 가정. 문제 해결보다는 경제적 이득과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학교 관계자들. 사심으로 학생을 바라보는 몇몇 선생님의 충격적인 실태. 이 모든 것들이 서서히 쌓여 범죄로 이어지는 과정은 진짜 현실에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사실상 학생 간의 문제가 전부가 아닌 사회 문제라고 해도 될 정도다. 학교는 일종의 작은 사회라고 하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온갖 문제점들이 점점 교묘해지고 빠르게 번지는 것과, 이를 해결해야 될 공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은 학교 밖 사회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도 이런 식으로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일이 많은데 현실 사회에서는 얼마나 더 심각한 일이 많을까.


 사건 수사만 놓고 보면 추리소설인 이상 결국에는 해결이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의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해결할 의지가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그렇다. 당장 눈앞에 벌어진 일만 보이고 정작 핵심적인 문제는 뒤로 밀려나가는 수많은 사례를 생각하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남는 건 여전한 피해자와 가십거리로서의 관심뿐. 재발 방지를 위한 반성이나 노력은 전혀 없이 오히려 악화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현실이 계속 이어진다. 결국 현실에서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둘 다 죽어야 끝나는 것일까. 가해자는 정당한 처벌이 불가능하니 최후의 선택으로 남은 건 사적 처벌이자 복수 밖에 없다. 그 사적 처벌로 인해 피해자 역시 산산조각. 절망조차도 남지 않는 극한의 종착점. 파멸 그 자체인 것이다. 세상이 파멸로 가득하지 않게 희망이 되어줄 이들이 점점 많아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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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속 지옥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6
유메노 큐사쿠 지음, 이현희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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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북


 북을 잘 다루기로 유명한 오토마루 집안에는 기괴한 북에 대한 소문이 있다. 옛 선조가 좋아하던 여인이 쓰루하라 재상과 결혼하면서 혼수로 준 북으로 이걸 치게 되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이 소문이 진짜라는 것과 절대 이 북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당부를 들은 규야. 하지만 집안의 내력인지 운명인지, 기괴한 북에 점점 관심을 가지고 마는데...


 전반적인 스토리를 보면 저주받은 물건으로 인해 벌어지는 괴기소설, 괴담소설 같은 느낌이다. 문제의 북이 실존한다는 부분에서 나타나는 긴장감, 북과 관련된 자들이 보이는 괴이한 반응, 기묘한 북소리에 반응해서 나타나는 감정의 소용돌이. 심리적인 부분에서 격한 반응이 여럿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북이라는 악기로 인해 다소 뒤틀려버린 형태로 발전한 행위도 나오면서 무서운 요소가 전혀 없는데도 기괴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찬찬히 살펴보면 추리소설 요소가 존재한다. 일단 사건 발생 위주로 다루었고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여럿 있지만, 그 어떤 초자연적 현상이 개입하지 않은 현실적 사건은 분명하다. 이걸 누구나 납득이 가능할 결론으로 정리하면서 사건 해결까지 확실하다. 다만 이 결론이라는 것이 보통 사람의 시선에서 납득할만한 추론이라는 것이지 사실을 나타내고 있지 않다. 이렇게 되면 사건 해결이 된 게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건 이 소설을 읽어보지 않고서 하는 말이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하느냐. 시대적 배경, 증거, 알리바이의 문제를 떠나서 이 사건 자체를. 다양한 추리소설에서 기묘한 트릭이나, 엽기적인 살인 방법, 동기 같은 것이 나왔고 그 광경 자체는 충격적이지만 적어도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는 설명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사건은 그게 불가능하다. 아니, 설명을 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해야 정확하다. 그것도 소설 속의 사건 당사자가 아닌 이들에게 말이다. 이 때문에 독자는 진실을 알게 되도 소설 상에서는 전혀 다른 결론이 나버리는 걸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소하지만 지금에서 보면 서술트릭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어서 꽤 놀랍다.


 장인의 손을 탄 제품에는 정성이 들어간다고 들었다. 이 정성이란 장인의 마음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제품을 받을 손님을 생각한 장인의 마음. 그렇기에 사적인 감정이 들어간다고 한들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것도 자기 자신도 알 수 없는 부분까지. 문제는 소리가 나는 제품. 특히 북 같은 악기라면 이게 표출되어 나올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제작 당시의 장인이 가진 감정이 소리에 묻어나오는 악기. 지금으로 따지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녹음 파일 같은 것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시골의 사건


 어느 시골마을에서 발생하는 사건 여러 개를 간략한 분량으로 모아 놓은 것이 전부인 내용이다. 각 사건마다 짧으면 한 페이지, 아무리 길어도 세 페이지 안에 끝날 정도라 가벼운 엽편 소설로 보일 법하다. 하지만 짧은 분량에 기승전결이 완벽함에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아 금방금방 넘어가기 어렵다.


 시골 동네에서 벌어진 사건 모음집이다 보니 다양한 사례를 볼 수 있다. 절도, 폭력사건, 살인, 치정싸움, 자살미수, 사건이라 해야 할지 애매한 사건 등등. 문제는 이거다. 진짜 이런 생각을 하거나 착각을 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 어쩌면 당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이런 비슷한 일이 실제로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소설인 이상 믿거나 말거나 겠지만. 자세히 보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나서 어떻게 끝나는지 핵심은 나타나있다. 종종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정도 유추 가능할 단서가 있는 편이라 난해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사후의 사랑


 러시아 연해주에 파견 나온 일본 군인을 붙들고 자신의 운명을 정해달라고 부탁하는 어느 미치광이 신사. 그는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의 말로와 연관된 사후의 사랑으로 인해 불가사의한 운명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는데...


 주로 러시아 내전, 또는 적백내전이라 불리던 시기를 다루는 내용이다. 참혹한 내전의 양상을 나타내면서 그 안에서 놀라운 미스터리 요소를 더했다. 전장에서 겪는 처절한 생존 본능과 참혹한 살육 현장을 통해 느껴지는 공포. 그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표출되는 인간의 뒤틀린 심리. 온갖 요소들이 섞여 만들어내는 혼란의 소용돌이와 소소한 걸로 보였던 미스터리의 진실이 결합되면서 형언할 수 없는 기괴함이 생성된다. 다만 이 소설에서 쓰인 미스터리 요소는 세계사 미스터리 하면 종종 다루어지던 소재라 지금에서 보면 기괴함을 제외하고는 신선함이 약간 떨어져 보일 수도 있다.




유리병 속 지옥


 해변에서 발견된 유리병 3개 안에서 발견된 편지들. 그 안에는 어느 두 사람의 처절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는데...


 이 단편집의 표제작인 단편인데, 확실히 그에 걸맞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보기에 따라서는 단순한 반전이 전부인 소설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다른 단편에서 누누이 말했듯 심리 묘사 면에서 깊이 파고든다. 짧은 분량임에도 기본적인 인간의 욕망과 도덕적 관념이 충돌하는 심리를 격렬하고 잔인하게 나타내 생각 그 이상으로 여운이 깊게 남는다. 왜 일본에서 유메노 큐사쿠의 단편 중 가장 인기 있는지 이해가 간다. 또한 제목 역시 상당히 잘 지었다는 것도.




사갱


 작업도중에 사망자가 나오면 탄광 입구까지 운반하면서 소리를 질러 안내를 해야 한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어느 광산. 채굴 작업 중이던 후쿠타로는 문득 목수 겐지가 자신에게 원한을 가질 만 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불안감이 생겨난다. 설상가상으로 급하게 갱도를 올라가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마는데...


 역시나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는 내용인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심리 묘사가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사실상 범행 동기에 해당되는 부분이 진짜인지 아닌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문득 떠오른 기억. 아니면 작중 초반부터 보였던 심리상태로 인해 나타난 왜곡된 망상. 둘 중 하나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현실과 허상이 구분되지 않는 미치광이 같은 심리 묘사 때문에 무엇이 진실이든 간에 충격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담으로 지방 탄광촌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묘사도 꽤 인상 깊다.




기괴한 꿈


 각 소제목에 나온 배경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상황을 다룬 일종의 단편 모음이다. 처음에는 꿈이라고 해서 상황자체가 진짜가 아니거나, 어딘가 몽상적인 내용인가 싶었다. 그런데 그냥 상상 속의 기괴한 걸 썼다고 하기는 작가가 살던 시대적 배경이 반영되어 있는 듯한 부분이 은근 있는 편이다. 진짜 같은 가짜가 아닌 가짜 같은 진짜로 보인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여기서 말하는 꿈이란 공상적인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를 나타낸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장래의 소망, 나 자신의 멋진 인생이나 먼 미래의 기술 발전 같은 걸 예로 들 수 있다. , 한 가지 더. 생각했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것도. 하나하나 내용을 살펴보면 그렇게 보이는 부분이 많다. <공장>에서는 가혹한 노동환경 속에서 부상당하며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공중>에서는 아름다운 절경도 잠시, 곧 허공이라는 공포감이. <도로>에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부유층을 보며 느끼게 되는 장래에 대한 두려움. <병원>은 이중인격, 혹은 치료를 목적으로 한 감금? 같은 병원에 대한 낯설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한 듯한 느낌. <일곱 개의 해초>는 얼핏 보면 해저를 배경으로 한 기담처럼 보이지만 마지막에 가서 사실관계를 비트는 결말을 내버려 기괴한 꿈 그 자체가 돼버린다.


 마지막 <유리세계>는 굉장히 독특하다. 제목 그대로 전부 유리로 만들어진 세계에서 탐정과 범인의 추격전을 보여주다가 익명성의 아이러니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한 번 읽어봤을 때는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모두가 모두의 행동을 지켜 볼 수 있는 세계이지만 정작 눈앞에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러니까 겉모습, 탐정과 범인이라는 건 알아도 이름 같은 신원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탐정이 진짜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넘어 내가 알던 사람인가 아닌가, 아니면 나를 아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어디 살던 누구인가. 처음에는 별거 아니던 게 생각하면 할수록 공포 그 자체가 되는 것이 느껴진다. 해설을 보면 이게 작가가 느낀 현대 도시의 모습이라는데 정말 환상적으로 잘한 비유라고 본다.




미치광이는 웃는다


 두 개의 단편을 통해 미치광이의 심리를 나타내는 내용으로 인간의 내면을 깊이 있게 다룬 걸로 알려진 작가인 만큼 상세한 심리 묘사가 특징이다. <파란 넥타이>는 짧은 분량 안에서 망상이 발전하는 과정과 그로 인해 발생한 범죄와 현재 상황을 인상적이게 다루고. <곤륜차>는 꽤 긴 분량 안에서 녹차와 중국을 소재로 하는 장황하면서 기괴한 스토리가 돋보인다. 뭔가 나사 빠진 듯하면서도 묘하게 설득력 있는 주장. 기괴한 녹차에 대한 설명과 그와 관련된 기담에 가까운 설화. 미치광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음에도 진짜라고 믿게 되는 게 있었다는 짧은 반전. 어떻게 보면 <도구라 마구라>를 쓰기 위해 이런 식으로 연습한 게 아닐지 모르겠다.




미치광이 지옥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려고 원장과의 상담을 요청한 어느 환자. 본인은 범죄자이며 홋카이도의 탄광왕 집안의 양자라고 설명한다. 양자로 들어가게 된 계기는 어느 생명의 은인 덕분이라고 하지만 그 은인은 자신의 운명을 가지고 노는 악마이기도 했다는데...


 앞선 <미치광이는 웃는다>와 분위기면에서는 비슷하지만 <도구라 마구라>의 선행 작품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더 치밀하고 탄탄하다. 횡설수설하는 듯한 면이 거의 없는 굉장히 차분하고 담담한 서술로 화자가 정상인 같다는 방심을 하게 만드는 면에서부터 그렇다. 중간 중간 당황하거나 혼선이 있어도 보통사람이 할 법한 단순한 동요 및 해깔림으로 보일 법하고. 기괴한 일이 발생한 원인과 근거가 명확하게 설명되고. 여기에 정보의 공백이 있어도 크게 부각되는 편이 아니라서 나중에 밝혀지는 반전과 충격이 상당하다.


 추리요소 역시 인상적이다. 보통 범인이나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이 선의를 가지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의 추리는 그 의도가 악의의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 주목할 점이다. 또한 추리로 인해 화자의 주장 속에서 발생한 일의 근거를 뒷받침 해주긴 하나, 그게 종합적인 진실이 맞느냐는 혼란을 준다는 점에서 흔히 생각되는 추리의 틀을 넘어섰다고 본다. 이 작가가 연구한 추리소설의 극한이란 이런 것일까.




노순사


 별다른 실적 없이 승진도 못하고 그냥저냥 지내던 노순사 무쓰다는 야간순찰 도중 고급진 담배꽁초를 발견하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무시해버린다. 그런데 다음 날, 순찰 경로에 있던 부유층 집에 2인조 강도가 들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범행 시각이 무쓰다의 순찰시각과 일치하면서 근무태만으로 결국 해고당하게 된다. 그 후 무쓰다는 어느 공장의 경비원 자리를 얻어 일하던 중, 문제의 고급진 담배를 다시 보게 되는데...


 여기까지 읽다보면 느꼈겠지만 그 동안 나온 작품 속에서는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역할의 캐릭터가 거의 없었다. 탐정 같은 캐릭터가 나와도 제 역할을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고. 그래서 좀 수사관다운 캐릭터가 나오는 평범한 추리물로 보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단편 은 추리라기보다는 무능한 인생을 산 어느 노순사의 죄책감과 불안감을 담은 심리 드라마에 가깝다. 범죄수사라는 점을 빼면 크게 특별한 추리요소 없이 대부분 노순사의 심리를 다룬 부분이 많아서 그렇다.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 죽었다는 죄책감. 이 죄책감이 점점 커지면서 발생하는 심리적 불안. 아 모든 것이 합쳐져 요동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서히 무너지는 인간의 내면. 결국에는 스토리 구조만 약간 다를 뿐이지 다른 단편들과 똑같다고 볼 수 있다.




장난으로 죽이기


 경찰출입기자인 나는 평소와 같은 퇴근길에 어느 낯선 이의 차에 타게 된다. 낯선 이는 다름 아닌 2주일 전부터 실종신고가 된 안면 있는 여배우였다. 그렇게 비밀스러운 만남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녀의 별난 성격으로 인해 완전범죄를 저지르고 마는데...


 평범한 인물이 서서히 살의를 가지게 되는 과정과 그렇게 완성된 완전 범죄 이후의 모습이 여러모로 기괴하게 나타난다. 범행동기가 얼핏 이해될 듯하면서도 굉장히 뒤틀린 느낌이 만연하는 탓에 이질감이 강하게 느껴지고. 완전 범죄를 저지르다 못해 그 틀에 갇혀 버린 듯한 심리. 여기에 1920년대 일본의 동물학대 문제를 부각시킨 듯한 여자의 상상도 못할 잔혹 행위까지. 모든 면에서 그로테스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결말을 보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긴가민가한데 제목을 생각하면 이런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에는 장난이었다는 게 아닐까? 주인공이 죽인 여자가 별난 성격으로 벌인 그 잔혹행위처럼 말이다.




인간 레코드


 시모노세키 항에 정박 중인 배의 일등석에서 나온 창백한 인상을 가진 서양인 노인.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열차를 타러 가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어떤 신사가 있었다. 다름 아니라 노인이 러시아 공산당의 밀사라 확신하고 만주에서부터 미행해온 자였다. 밀사로 가져온 메시지를 확보하기 위해 온갖 함정을 팠지만 별 소득이 없어 난감하던 상황이다. 그런데 그 신사를 보낸 중국인으로 보이는 거한은 그 노인 자체가 메시지, 즉 인간 레코드라고 하는데...


 20세기 초반 러시아 혁명 이후 공산주의가 한창 확산되던 시기의 분위기를 담은 첩보물의 성격이 강하다. 대부분 당대의 정치,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터라 별 감흥이 없는 편이나 인간 레코드라는 소재에 대해서는 흥미롭다. 인간의 정신적 내면을 기계와 합쳤다는 점에서부터 그렇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존하는 형태를 가진 게 아닌 뇌의 기억력과 기계의 원리를 말이다. 어떻게 보면 그 당시의 기술력 안에서 나온 굉장히 특이한 SF적인 발상으로 보이기도 하다. 보통은 특이한 장치나 기계 같은 실존하는 이미지를 생각할 텐데, 작동 원리만 가져와서 인간의 내면에 적용시킨 것이 전부니까.




악마 기도서


 폭우가 내리는 날 단골 헌책방을 방문한 대학교수. 헌책방 주인은 자신이 헌책방을 하면서 겪은 온갖 일을 늘어놓던 중, 악마 기도서를 구매하게 된 일을 들려주는데...


 뭔가 살벌해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좀 교훈적인 옛날 무서운 이야기 같은 내용이다. 헌책방이라는 책을 주제로 한 배경, 그 안에서 나타나는 책으로 인한 사건들, 존재 자체가 기괴함 그 자체인 책. 책을 통해 주는 교훈. 여기에 덤으로 책이 메인이 되는 소소한 추리까지. 시작부터 끝까지 책 얘기만 나와서 책에 대한 애정을 담아 쓴 작품이라 해도 될 정도다. 한편으로 작중에 나타나는 악마 기도서의 내용을 보면 물질주의적인 세상에 대한 비판과 분노로 느껴진다. 그냥 악마 기도서라는 이름답게 그냥 그럴싸하게 쓴 것인지, 작가가 그 시대를 살며 느낀 생각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기에 수록된 소설들 중에서 가장 난해하지 않고 유쾌한 작품인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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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홈즈
전건우 지음 / 몽실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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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열정적이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꿈이 많고 무엇을 하든 두렵지 않은 희망찼던 시기.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 하지만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이 삶의 한 귀퉁이로 치워지고 만다. 대부분 가정이 생기고 먹고 살기 바빠지면서 그렇게 된다. 특히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집안 일하기 바쁜 주부들이 그럴 것이다. 누구는 이러고 살고 싶어서 사나, 나도 왕년에는 꿈이 있었다, 이렇게 말해도 정작 주변에서 들어주는 이가 거의 없다. 그저 집에서 밥이나 하라고 하지. 나이는 먹어가고,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 속에서 어찌하겠는가. 한 번 뿐인 인생, 지금이 기회라고 여겨진다면 패기 있게 도전해봐야 하지 않은가?


서울의 광선주공아파트에서 어느 순간부터 통칭 쥐방울이라 불리는 바바리맨이 자주 출몰한다. 현상금이 걸렸는데도 별다른 대책이 없자 왕년의 탐정 지망생 미리는 동네 슈퍼에서 모여 소일거리하던 주부들과 함께 탐정단을 결성한다. 조금 서툴고 실수를 하는 탓에 주변에서 핀잔을 듣지만 주부 탐정단의 조사는 계속된다. 그러던 중, 쥐방울의 범행이 점점 대범해지고, 아파트 쓰레기통에서 잘린 손목까지 발견되면서 일이 커지는데...


 주부들이 탐정단을 만들어 수사한다는 점과 초반에 나타난 범죄의 수위를 보면 살짝 가볍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설 것이다. 이를테면 일상 미스터리 정도? 그러나 중반부부터 사건이 점점 심각해지면서 제법 섬뜩한 스릴러 분위기까지 올라간다. 이 부분 한해서는 공포소설 전문 작가다운 면이 돋보인다. 이런 부분만 보면 또 무서운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겠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어디까지나 이 소설은 추리물이자 열정이 많은 주부들을 메인으로 그려내고 있으니까.


 사건 구조와 추리 과정을 보면 나름 심플한 구성이라 금방 예측이 가능할 법도 하다. 딱히 복잡한 트릭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앞서 말한 탐정소설 구성 속에서 두드러지는 스릴러 경향. 그리고 평범한 주부에서 전문 탐정으로 발전하는 과정. 즉 평범한 사람이 멋진 주인공이 되는 모습. 처음부터 재능 있고 막 띄워주고 그랬으면 느끼지 못했을 것이 많다. 미혼모를 포함한 다양한 주부들이 겪는 현실. 한 아이의 엄마라서 참고 살았던 것들. 삶의 공허감 속에서 찾아가는 오래된 열정. 가벼우면서도 현실적인 무게가 있는 진지함. 딱 이런 느낌으로 정리된다.


 나름 작중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무엇을 하는데 반드시 이유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무엇이 발생하려면 그에 따른 이유가 있다고 여긴다. 막연하지 않고 구체적이고 자세한 목표. 그렇기에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하면 진정성을 의심받고는 한다. 무작정 떠들기만 하고 그저 무언가를 회피하기 위한 구실 아니냐고. 그런데 세상에는 즉흥적으로 벌이는 일이 셀 수도 없이 많다.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든. 좋은 짓이든, 나쁜 짓이든. 거창한 의도, 야망 같은 게 있어야 그럴싸한 것도 그저 무료한 일상에 변화를 주기 위해 시작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일상의 무게와 범죄 스릴러를 함께 담은 주부 탐정단, 살롱 드 홈즈. 이대로 끝내기 아쉬운 감이 많아 속편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시리즈물로서 캐릭터성도 충분하고 아직 제대로 활약하지 못한 캐릭터도 남아 있으니 딱이다. 번창하길 기원하며 다음 사건으로 돌아오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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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톰의 발라드
빅터 라발 지음, 이동현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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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품성과 별개로 작가가 비판받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대체로 잘못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거나 그런 면이 작품 속에 반영된 경우에 해당된다. 공포문학에서는 러브크래프트가 이런 경우인데, 특히 후대의 영향을 받은 많은 창작자들도 비판하는 점인 극심한 인종차별적인 면이 그렇다. 필자 역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과 공포 스타일을 굉장히 선호하는 편이긴 하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바다. 아닌 건 확실하게 아닌 것이니까. 이렇듯 작품의 유명세와 작가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탓에 현대에 와서 재해석이 이루어지는 듯하다. 좋은 점은 놔두고 비판 받을 부분을 개선하거나 지적하는 방향으로.

 

1920년대 미국 할렘 가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 살던 토미 테스터. 배달 일을 마치고 도박으로 운 좋게 마련한 돈으로 기타를 사서 어설픈 실력으로 거리 공연을 시도해 본다. 그런 그에게 로버트 수댐이라는 노인이 거액을 제한하며 자신의 집에서 공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하루아침에 돈벼락을 맞아 신난 것도 잠시, 토미에게 탐정과 형사 말론이 접근해 노인에 대해 추궁하기 시작하는데...

 

인종차별적인 면이 강해 상당한 비판을 받은 <레드 훅의 공포>를 재해석 했다는 소개답게 곳곳에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이었던 말론 형사,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인 로버트 수댐(러브크래프트 전집에서는 쉬댐으로 번역됨.), 레드 훅에서 벌어지는 대사건 등등. 전반적인 틀은 <레드 훅의 공포>와 거의 흡사하지만, 여기에 토미 테스터라는 새로운 인물의 행적이 추가되면서 인종차별 문제를 지적하는 면으로 변주시킨다.

 

음악이 은근 자주 나온다는 면에서 <에리히 잔의 선율>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인상은 이러했다. 제목은 <에리히 잔의 선율>에서, 내용은 <레드 훅의 공포>에서. 그런 탓에 토미 테스터와 에리히 잔을 은근 비교해 볼 수 있어 보였다. 독일인 노인과 미국 이민자 출신 흑인 청년. 비올라와 기타. 오제이유 가와 레드 훅(가상의 지명과 실제 지명이라는 비교와 빈민가라는 공통점은 덤). 각각 악기를 연주하는 의도의 차이는 있어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청각적인 공포라는 공통점.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보니 토미 테스터에게서 에리히 잔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 같다. 그 때문인지 기타 연주하는 부분을 좀 더 깊이 있게 나타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자만,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레드 훅의 공포>에 기반을 뒀다. 음악적인 부분이 너무 강하게 부각되면 그건 그것대로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재해석 작품이라서 그런지 흔히 생각하는 코즈믹 호러스러운 면이 약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토미 테스터의 시점인 1장은 사건의 발단 과정을 다루지만 1920년대 인종차별적인 분위기가 만연한 일상 비중이 많은 편이고. 말론 형사의 시점인 2장은 원작과 비슷한 스토리 구성 속에서 오리저널 호러 요소가 나름 부각되는 편이지만 확 강렬한 뭔가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전혀 안 무섭다는 건 아니다. 점점 사건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속도감이 붙어 긴장감이 고조되는 게 고딕소설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하지만 상당히 절제됐다고 해야 될까? 전개 면에서는 분명 나쁘진 않은데 그 주변을 휘감는 기분 나쁜 분위기와 묘사가 너무 정리되어 있어 심심하다는 인상이라고 해야겠다. 깔끔한 문장이면 보기에 좋을지는 몰라도 그 만큼 묘사 면에서 강렬함을 약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공포소설이긴 하지만 이 소설은 여러모로 비극적이라 할 수 있다. 시대적 배경이 반영되긴 했지만 현대에도 여전한 인종차별이라는 문제로 어느 개인이 망가져 버리는 내용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딱히 특별한 걸 바란 건 아니다. 그저 지금과 같이 평범하게 사는 것. 그리고 이 생활을 유지할 만큼의 돈벌이를 하는 것.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꿈꾸었으나 영문도 모르게 갑자기 모든 것이 무너지고. 결국 자기 자신을 포함해 모든 걸 내던지고만 청년. 코즈믹 호러하면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우주적 괴물이나 현상을 생각하겠지만, 이것 역시 똑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알던 세계의 붕괴. 이해 할 수 없이 벌어진 일. 나 자신이 순식간에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전락한 것 같은 절망. 굳이 멀리가지 않아도 현실에서 금방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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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공포소설가 놀놀놀
전건우 지음 / 북오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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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장르의 소설을 보는 편이지만, 사실 본격적으로 소설을 읽어보려고 한 초창기에는 공포 장르 위주로 봤던 편이다. 그저 막연히 무서운 걸 좋아했고 조금만 둘러봐도 그게 그거인 문방구 괴담집 같은 것이 아닌 소설로 나온 걸 본 적이 거의 없다보니 그렇게 됐다. 하나하나 접하던 그 순간이 정말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그저 단순한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뼈가 굵고 탄탄한 무언가가 확실하게 존재했다. 하지만 그때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라 다양한 걸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1년에 번역서나 국내 작품이 얼마나 나올지 걱정될 정도고 갑작스럽게 책 읽을 여건이 안 되다보니 이전보다는 많이 못 보는 편이다. 그럼에도 나는 공포 장르를 여전히 좋아하고 신작이 나오면 바로 못 보더라도 쌓아놓고 몰아볼 생각이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 이쪽 장르 전문 작가님의 에세이가 나와서 아주 좋은 일이다. 국내에서 이 장르에 대해 공감대가 있는 얘기를 들어볼 곳이 거의 없었기에 더 그렇다.

 

 전건우 작가님을 처음 접한 건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4>에 수록된 <배수관은 알고 있다>라는 단편이다. 읽은지 꽤 됐긴 하지만 나름 짙고 어두운 공포가 인상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또한 꽤 여러 작가님들이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꾸준히 신작이 나오고 있는 국내 공포소설작가라 여러모로 기대가 됐다. 이 작가님이 만들어내는 공포의 원천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특히 이 부분이 궁금했다. 해외 작가들을 보면 어디서 나온 것인지 기원이 언급되는 경우가 있었기에 그렇다.

 

 전반적인 내용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내용지만 공포 장르에 대한 애착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나에게는 그저 환상이나 다름없는 오래 전의 <전설의 고향>이라든지, 익숙한 공포소설 작가나 공포 영화들이 언급된다던지. 하지만 역시 가장 큰 공포는 현실에서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것일 테다. 어릴 적의 호기심으로 시작한 작은 모험, 갑작스럽게 다가온 현실적 공포. 이 부분에서 공포의 근원이 보였다. 모두가 하나씩은 가지고 있지만 각양각색인 이미지 말이다. 그래서 작가의 책을 읽어본 분들이라면 여기서 이 소설의 소재가 나왔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다.

 

 마이너 장르 작가만의 고충이 느껴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공감이 된다.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 업계에서의 반응, 공포 장르의 현 위치. 특히 일시적 유행이라는 말이 먹먹하게 만든다. 모든 장르가 각자의 개성과 애독자를 가지고 있는데 유행이 끝났다고 사장되는 거나 마찬가지니. 시장논리와 문화적 유행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잘나가는 장르와 별로 유명하지 않는 장르가 같이 남아 있을 수는 없겠냐는 거다. 유명 장르에서 신작을 기대하듯, 비인기 장르에서도 똑같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공포소설 작가의 에세이는 해외 작가, 특히 스티븐 킹 작가의 책 밖에 본 적이 없던 탓에 매우 반가웠다. 여전히 시장이 작고 협소한 편이지만 나는 여전히 기대해 본다. 좀 더 다양하고 많은 공포 작품이 나오기를. 어쩌면 나 역시 써볼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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