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멸일기 - 윤자영 장편소설
윤자영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4월
평점 :
학교에 대한 나의 인상을 말하자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다. 학교 폭력이나 따돌림을 당한 건 아니고 오히려 있는 둥, 없는 둥 하는 존재감 없는 경우였다. 적당히 이름 불릴 때 답하고, 적당히 눈에 띄지 않아 그림자 같은. 그저 한 반에 정해진 인원을 채워주는 역할 정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별로 좋지 않다고 여기는 이유라면 아무런 의미 없는 곳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얻어가는 것 없이 시간만 때우는 곳.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랑 뒤에서 벌어지는 일이 따로 있고 항상 무슨 일이 터지고 나서야 모두에게 밝혀지는 이면의 세계. 그때도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은 더 심각해진 것처럼 보인다.
충덕 고등학교의 이승민이라는 학생이 자살시도를 했다는 사실이 학부모를 통해 담임에게 전달된다. 승민의 아버지는 학교생활에서의 문제를 알아보면서 자신이 연락한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한다. 얼마 뒤, 공원에서 살인으로 보이는 학생 사망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의 관련자로 이승민 학생이 지목되는데...
제목과 프롤로그에서 받은 첫 인상에서 일본 작가 우타노 쇼고가 쓴 <절망 노트>가 떠올랐다. 학교 폭력이라는 주제. 피해자 측 학생이 주목받는 전개에서 그랬다. 그러나 비슷한 느낌만 있지 내용 전개나 전체적인 주제에서 차이점이 많다. <절망 노트>는 다소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의심되는 요소와 서술트릭 형식 속에서 학생 개인이 느끼는 고립감과 절망감을 나타냈다면, <파멸일기>는 교차되는 시점을 통해 피해자 학생을 비롯한 주변 사회상을 조명한다. 특히 학교라는 공간에서 얽인 교사, 학부모의 모습을 말이다.
한쪽에서는 사건 수사, 다른 시점에서는 사건 발생 과정을 다루는 구성이라 도치형 추리 구성이라 해야겠다. 도치형 추리는 범행이 일어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진행하는 형식이다. 범행을 저지르는 당사자의 행동이나 주변 상황, 심리상태가 메인이 되어 지켜보는 것이 핵심이다. 사건의 동기가 가장 중요한 이 소설에 가장 어울리는 추리구성이라 할 수 있다.
단순한 피해자, 가해자로 구분지어지지 않는 지능적인 학교폭력.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자기 자식만 옳다는 학부모. 소통 없이 경직된 가정. 문제 해결보다는 경제적 이득과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학교 관계자들. 사심으로 학생을 바라보는 몇몇 선생님의 충격적인 실태. 이 모든 것들이 서서히 쌓여 범죄로 이어지는 과정은 진짜 현실에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사실상 학생 간의 문제가 전부가 아닌 사회 문제라고 해도 될 정도다. 학교는 일종의 작은 사회라고 하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온갖 문제점들이 점점 교묘해지고 빠르게 번지는 것과, 이를 해결해야 될 공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은 학교 밖 사회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도 이런 식으로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일이 많은데 현실 사회에서는 얼마나 더 심각한 일이 많을까.
사건 수사만 놓고 보면 추리소설인 이상 결국에는 해결이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의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해결할 의지가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그렇다. 당장 눈앞에 벌어진 일만 보이고 정작 핵심적인 문제는 뒤로 밀려나가는 수많은 사례를 생각하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남는 건 여전한 피해자와 가십거리로서의 관심뿐. 재발 방지를 위한 반성이나 노력은 전혀 없이 오히려 악화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현실이 계속 이어진다. 결국 현실에서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둘 다 죽어야 끝나는 것일까. 가해자는 정당한 처벌이 불가능하니 최후의 선택으로 남은 건 사적 처벌이자 복수 밖에 없다. 그 사적 처벌로 인해 피해자 역시 산산조각. 절망조차도 남지 않는 극한의 종착점. 파멸 그 자체인 것이다. 세상이 파멸로 가득하지 않게 희망이 되어줄 이들이 점점 많아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