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 - 김솔 짧은 소설
김솔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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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인물들은 작가가 포착한 아주 짧은 찬라의 순간, 삶의 균열에 붙박여 있다. 그들은 일상이 기묘하게 흔들리며 틈을 벌리는 순간을 저마다 경험하는데, 이 작은 균열을 통해 본능적으로 '세상의 이면'을 감지한다. 아무도 직접 경험해본 적 없고 인간의 인식을 넘어선 장소인 그 미지의 영역은 김솔이 글쓰기를 통해 끈질기게 부딪혀온 경계, 지우며 나아가고자 했던 궁극의 가장자리와 맞닿아 있다.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은 이 경계를 마주한 소설 속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 내고 있는 이야기이자, 김솔 작가의 끊임없이 잔잔한 일상을 흔드는 '시도'의 기록이기도 하다. -책소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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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깜찍해 보이는 책 표지, '보건교사 안은영'처럼 명랑한 소설일 것 같기도 하고, 따뜻한 에세이일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책을 펼쳐보면 몽상적인 짧은 소설들이 이어진다. 몽상적이라는 말 그대로 누군가의 꿈들을 훔쳐보고 온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내 꿈은 주로 장조보다는 단조, 컬러보다는 흑백의 어두운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꼭 김솔 소설의 분위기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순간에 선량하다. 그리고 살짝 뒤틀리는 어느 순간에는 놀라울 정도로 이기적일 수 있는 입체적인 존재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은 누군가의 내면이 살짝 뒤틀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짧은 소설들을 읽다 보면 소름 돋는 순간에는 김동식 작가의 <회색 인간>이 떠오르고, 기괴한 순간에는 박민규 작가의 <더블 side>가 떠오르기도 한다. 김동식 작가와 박민규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자 이제 책장을 덮고 깜찍해 보이는 표지를 다시 본다. 신나게 자동차를 뒤쫓고 강아지, 버려진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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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멀 피플 아르테 오리지널 11
샐리 루니 지음, 김희용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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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변호사인 부유한 집안의 딸 메리앤과 그 집 가정부의 아들인 코넬은 같은 학교 동급생이다. 메리앤은 학교에서 괴짜로 이름나 있고 코넬은 축구부 주장을 할 만큼 인기 있는 학생이었다. 이렇듯 서로 절대 어울리지 않을만한 둘은 남몰래 이러한 차이를 뛰어넘은 감정을 키워간다. 그러나 거칠고 부끄럼 많은 10대 시절이었기에 코넬은 매리엔에게 큰 상처를 주게 되고, 메리앤이 고등학교를 그만둔다. 그 후 한동안 서로 만나지 못하다가 같은 대학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인연을 이어나간다.

메리앤은 코넬의 몸짓과 말 하나하나에 크게 동요했고, 코넬 또한 메리엔과 함께 있을 때만 온전히 자기 자신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사람 간에 케미가 있다고 말하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둘에게는 둘만 느낄 수 있는 그러한 화학 반응이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는 느낄 수 없는, 메리앤과 코넬이 만났을 때만 일어나는 어떠한 작용이. 같이 있으면 편안해지는 사람, 말투와 사소한 행동거지까지 왠지 좋은 사람, 다들 한 번쯤은 만나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

서툴렀던 두 사람이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서 상처를 받기도 하는 과정을 보며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어떤 인연은 나를 성장시키지만 어떤 인연은 나를 망가뜨린다. 보통 어린 나이에는 내가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해서, 잘못된 인연 옆에서 상처 입고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한다. 그리 오래 산 편은 아니지만 23년 살며 느낀 것은 나쁜 인연에 얽혀 망가지는 것보다는 혼자 외로운 것이 나에게 훨씬 이롭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정말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다정한 마음을 아끼지 않고 표현하는 게 좋다는 것.

책에 나온 대사처럼 이십 대 초반이라는 나이는 참 기묘해서 사소한 결정, 곁에 있는 작은 인연 하나로도 삶이 크게 바뀔 수 있는 것 같다. 가끔은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들과 이 기묘한 시기를 보냈다면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고는 한다. 어쨌거나 나의 사소한 결정들이 만든 지금의 나에 만족하지만, 그런 상상은 언제나 부질없고 또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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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무새 2020-06-10 0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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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프렌즈, 그건 사랑한단 뜻이야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흔글·조성용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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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의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마지막 편! 고등학생 때 캡쳐해서 종종 인스타에 올리기도 했던 흔글님이 글을 맡으셨다. 같은 시리즈의 다른 책인 <어피치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는 팔로우 중인 서귤님이 맡으셨던데, 아르테에서 저자 라인업을 트렌디하게 하려고 신경을 많이 쓴 게 느껴진다. 몇 년 전, 한때는 상투적인 위로 열풍에 질려버렸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신경 쓸 일이 많은 지금 이 책을 읽으니 귀여운 일러스트들과 따뜻한 말들 덕분에 잠시나마 복잡한 일들도 잊혀지고 위로가 되었다. 어찌보면 당연하게 들리는 말들이 큰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어렵고 알찬 책들을 잔뜩 읽고 잠시 쉬고 싶을 때 아르테의 라인 프렌즈 시리즈/ 카카오프렌즈 시리즈가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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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하는 얘기를 모두 마음에 담아둘 필요 없어. 나로 살아본 사람은 세상에서 오직 나 하나니까.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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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의 위로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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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의 세상에는 분노와 폭력이 없다. 대신 우울이 있지만 모두가 묵묵히 옆에서 우울이 지나갈 때까지 함께 해준다. 숲속에서 다람쥐와 개미, 코끼리 등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모두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그 누구도 '너는 왜 나와 달라?'하고 물어보지 않는다.
반딧불이는 태양을 좋아하고, 지렁이는 어둠을 좋아하기에 함께 태양을 볼 수 없다. 대신에 둘은 밤에 만나 반딧불이의 옅은 빛에 의지에 신나게 춤을 추다가 동틀 녘이 되면 헤어진다. 반딧불이는 하늘을 날아오르며 찬란한 태양빛에 감탄하고 지렁이는 땅속에서 어둠의 안락을 만끽한다.
그 숨통 트이는 거리와 관계가 좋았다. 노래 '서울이곳은'의 가사처럼 연인 또는 타인뿐인 세상에서, 적당히 가깝고 적당히 먼 관계만큼 위로가 되는 것도 없는듯하다. 뜨거운 사랑도, 눈물 나는 희생도 좋지만 요즈음엔 묵묵히 옆에 앉아 있어주는 고요한 우정에 위로를 받는다. 우리도 숲속의 동물 친구들과 같다. 누군가는 땅속이 편한 지렁이, 누군가는 하늘을 나는 반딧불이. 지렁이가 반딧불이에게 너는 왜 땅속에 살지 않냐고 물어도 아무 의미가 없다. 반딧불이는 반딧불이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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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해석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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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몇 가지 단서를 설렁설렁 훑어보고는 다른 사람의 심중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고 여긴다. 낯선 이를 판단하는 기회를 덥석 잡아버린다. 물론 우리 자신한테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은 미묘하고 복잡하며 불가해하다. 하지만 낯선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책에서 내가 당신에게 한 가지를 설득할 수 있다면, 이런 사실일 것이다. 낯선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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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가림 왕이기 때문에 타인의 해석이라는 제목과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라는 소제목에 확 끌려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장을 펴기 전까지는 낯선 사람을 대하는 기술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책은 아니었고 책 띠에 있는 것처럼 왜 우리는 모르는 사람을 안다고 착각해서 비극에 빠질까에 대해 말하는 책이었다. 저자는 이 비극의 사례들을 쭉 열거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무래도 비극적 사례들이다보니 일상적인 것들 보다는 대부분이 범죄에 관련된 사례들로 예시 들어져 있다.

인간은 타인이 진실하다고 믿는 신뢰를 기본값으로 두고 살아간다. 그러는 과정에서 사기꾼에게 속거나 나쁜 일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사람들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을 의심하다가 당할지 안당할지도 모르는 사기를 피해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진실 기본값이라 한다. 저자는 진실을 기본값으로 두었다가 비극을 맞은 사례들과, 모든 사람을 의심하다가 비극을 맞은 사례를 모두 보여준다. 두 경우 모두 결과는 비극이라는 것인데 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 첫째는 우리는 타인을 완벽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자는 것이다. 타인을 완벽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한데, 상대를 완벽하게 간파하고 있다고 착각할 때 상황은 비극으로 흘러간다. 둘째로 타인을 신뢰하는 우리의 본성 자체를 모독하지 않아야 한다. 합리적인 의심은 좋지만 인간 사회는 신뢰로 굴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례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서 두꺼운 책이었지만 금새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서론이 지나치게 길고 책의 대부부분이 사례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그래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엄청난 미괄식 도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궁극적 결론이 궁금하다면 인내심을 갖고 읽어야 한다.

다 읽고 나서는 몇 년 전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 <청춘시대>의 한 대사가 떠올랐다.

[나만 참는 줄 알았다. 나만 불편한 줄 알았다. 나만 눈치 보는 줄 알았다. 말해도 소용없을 거라는 생각. 말하면 미움 받을 거라는 두려움. 비웃을 거라는 지레 짐작. 그러고 보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무례하고, 난폭하고, 무신경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무례했다. 나는 오만했다. 나와 같다. 나와 같은 사람이다. 나만큼 불안하고, 나만큼 머뭇대고, 나만큼은 착한 사람.]

모두 나와 같이 복잡한 존재들인데 자꾸 그걸 잊고 파악하려하고 판단하려 한다. 나만해도 집에서, 학교에서, 연인에게, 친구에게 보여주는 서로 다른 모습이 수만 가지이다. 다른 사람이라고 그렇지 않을까. 쉽게 판단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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