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이상 천 분의 일 초 후든, 며칠 후든, 몇 달 후든, 76.5년 후든 누구나 죽어야 한다. 태어난 것은 모두 죽어야 한다. 그 말은 우리 삶이 고층 빌딩과 같다는 의미이다. 연기가 번져오는 속도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불길에 휩싸여 있기는 다 마찬가지이고, 우리는 모두 그 안에 갇혀 있다. (p.340)
우리가 살아야 한다는 것은 치욕이다. 그러나 우리 삶이 단 한 번뿐라는 것은 비극이다. (p.247)
"세상은 무시무시한 곳이 아니란다!" 노인은 캄보디아에서 가져온 가면을 얼굴에 쓰며 말했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인간들은 득시글대지!" (p.215)
흡입력 있는 소설. 1부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2부에서는 등장인물이 번갈아 나오는 구성이 신선했다. 각 파트가 길지 않아서 빠른 호흡으로 내용이 전개되고 긴장감도 고조된다. 반전 자체는 이런 류의 소설에서 흔하게 쓰이는 트릭이라 새로울 것이 없지만 반전에 이르기 까지의 전개가 짜임새 있고 탄탄하다.
오랜만에 한국소설을 읽었는데 여운이 오래 가서 두 번 읽었다. 두껍지 않지만 무게감 있는 책. 해언의 죽음으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삶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 열린 결말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소설은 열린 결말이 잘 어울린다.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도 남은 이들의 삶에 정해진 결말은 없을 것이므로. 복수에 성공해도, 그 복수가 아무리 통쾌하고 악을 확실하게 징벌했을지라도, 또 다시 삶은 이어진다.
나는 이런 삶을 원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살고 있으니, 이 삶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이 삶을 원한 적은 없지만 그러나, 선택한 적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p.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