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의 머리 형상은 건축물 형태와 중첩된다. 판테온 신전 천장에 난 ‘오쿨루스oculus‘라는 구멍을 통해 태양 빛이 내리쬐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의 주인공 라파엘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천사 중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는 대천사다. 둥근 돔 지붕의 판테온은 신들의 공간인 하늘을 상징한다.
비키니 섬에서 진행된 핵폭발 실험과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위력은 실로 엄청났다. 핵폭탄은 인류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전 세계가 핵무기의 파괴력에 압도되었다.
달리가 <비키니 섬의 세 스핑크스> 이후 폭발을 의미하는 글미을 연속해 그린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자신을 스스로 파괴한 인간에 대해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순간, 한 줄기 빛과 함께 등장한 건 다름 아닌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는 대천사 라파엘이다. 아래쪽을 지그시 내려다보는 라파엘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것처럼 보인다. 극렬한 공포와 고통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듯 라파엘의 미소가 절묘하게 중첩되어 있다. 이 순간을 이토록 처절하고 아름답게 묘사할 수 있는 화가가 달리 말고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