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판사란 무엇이며, 판결이란 무엇인가
손호영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를 받아들이는 당사자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를 신뢰할 때 비로소 판사와 판결에 정당성이 생기고, 그에 힘이 실린다. 따라서 AI 판사를 도입할지 말지를 결정짓는 것은 ‘AI 기술의 발전 수준‘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의 판단을 신뢰할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 P11

가진 권한의 한계를 거듭 살펴보고 내 판단이 잘못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그러니까 말뚝을 항상 돌아보는 것, 혹시나 새끼줄이 풀린 것은 아닐까 살펴보는 것.  - P23

‘이것은 정의인가?‘와 같은 구체적 질문에 실질적인 답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때 내가 얻어낸 답이 ‘법‘이라는 뿌리에 단단히 서 있길 바라는 동시에, 그 답이 ‘시대적 요청‘이라는 말 뒤에 숨기를 바라지 않는다. - P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질의 세계 - 6가지 물질이 그려내는 인류 문명의 대서사시
에드 콘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작년, 작년 무역 관련 업무를 하면서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많이 봤다. 전쟁, 파업 등등 각종 외생 변수로 인해 각종 원자재 가격이 요동치고, 또 원자재가 원활하게 수급되지 않으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여파로 이어지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에드 콘웨이의 '물질의 세계'를 읽는 내내 그때 생각이 났다. 하나의 물건이 내게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자원이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칠까. 평소에는 너무나 쉽고, 당연하게 구할 수 있는 물건(물질이건 비물질이건)들이 공급망에 단 하나의 균열만 발생해도 희귀해질 수 있다. 그러면 이 공급망의 밑바닥에 있는 가장 기본적인 물질들은 무엇일까?
 에드 콘웨이는 고대에서부터 현대 문명을 아울러 정말 기초적이고 중요한 물질 중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 6가지를 선정하였다. 그리고 그 물질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고 앞으로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설명한다.
 샘플북을 통해 1부 모래를 읽었는데, 이 파트는 모래로 만들 수 있는 유리, 콘크리트, 반도체 3가지 물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역사, 과학, 지질학, 지정학 등 다양한 학문을 바탕으로 모래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인류가 모래를 어떻게 사용해 왔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인간 승리의 역사이면서, 파괴의 역사, 어쩌면 예정된 패배의 역사를 보여준다. 사실 6가지 물질 모두 무한하지 않고 채굴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각종 환경 이슈를 야기한다. 그리고 해당 물질을 둘러싸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심화되기도 한다. 환경 친화적 공법을 개발하거나 대체품을 만들려는 노력도 있지만 정말로 물질주의적인 사고, '경제성'이라는 벽을 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1부 모래가 유리, 콘크리트, 반도체가 되어 나의 일상으로 스며드는 여정만으로도 정말 흥미롭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은 내게 또 어떤 여행길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 일부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실리콘 칩은 모래알이 아니라 주먹 크기의 돌 상태로 생애를 시작하는데, 채석장에서 석영암을 캐내는 사람들 중 누구도 그 돌의 최종 목적지를 알지 못했다. - P23

물질 세계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아이디어가 구체적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P25

모로코와 사하라 서부 일대의 기다란 해안 지역이 모래를 준설하는 바람에 사라졌다. 여기서 나온 모래는 유럽과 카나리아 제도로 운반되어 관광 명소로 유명한 해변의 모래를 보충하는 데 사용됐다. 유럽 해변들이 실제로는 수입 모래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당신은 크게 놀랄지도 모르겠다. - P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뮤스가의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왕수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거서 크리스티의 중편선으로 뮤스 가의 살인, 미궁에 빠진 절도, 거울 속의 살인, 로도스의 삼각형 4편이 수록되어 있다. 치밀한 퍼즐형 추리소설이거나 섬세한 심리 스릴러는 아니지만 4편 모두 뻔해 보이는 사건을 한번씩 비틀어 반전을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고, 이게 바로 이 중편들의 묘미이다.

뮤스 가의 살인 : 명망있는 남자와 결혼 예정인 여자, 그리고 그 여자의 과거를 아는 남자... 뻔하디 뻔해 보이는 이 통속극의 결말은? 친구의 우정이 눈물겹고, 복수를 위한 행동력과 빠른 판단력은 감탄만 나온다.

미궁에 빠진 절도 : 사건 자체만 보면 셜록 홈즈의 브루스파팅턴 호 설계도가 생각나고, 배경을 보면 침니스의 비밀이 떠오른다. 스파이로 의심되는 매력적인 여인과 사라진 설계도라니. 사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스파이물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이 작품은 스파이물이기 보다는 추리소설에 가깝다.

거울 속의 살인 : 전형적인 애거서 크리스티 식 소설. 부유한 가문, 시골의 대저택, 가족 친지들에 비서 등등. 여기까지만 봐도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푸아로의 크리스마스 등 여러 작품들이 떠오른다. 중편임에도 장편 못지 않게 탄탄한 작품. 독특한 캐릭터에, 촘촘한 트릭, 납득 가능한 동기까지. 푸아로 또한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사건을 해결해 내는 예의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로도스의 삼각형 : 한 여자와 그녀의 남편, 다른 남자(심지어 유부남...!) 간의 삼각관계가 펼쳐진다. 당연히 남편은 다른 남자에게 적개심을 내보이고, 다른 남자의 아내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전전긍긍한다. 두 부부를 둘러싼 기묘한 관계가 지속됨에 따라 점점 긴장이 고조되던 중, 여자가 독살되는데... 4명의 중심인물과 삼각관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크리스티의 장편 '백주의 악마'와 비슷한 작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삶은 흐른다 (특별판 트레싱지 에디션) - 삶의 지표가 필요한 당신에게 바다가 건네는 말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이주영 옮김 / FIKA(피카) / 2023년 4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 바다에 가서 ‘물멍‘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파도가 치면서 밀려오는 물결, 쏴아쏴아 시원한 파도소리, 따스하게 반짝이는 윤슬 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모든 걱정거리도 사라지고 생각의 진공 상태가 된다. 또, 바다는 변화무쌍해서 어느 날은 평화롭다가도 어느 날은 높은 파도가 모든 걸 집어삼킬 듯 무섭게 몰아친다. 같은 바다를 여러 번 가도, 동일한 바다를 볼 수 없다. 그때그때 다른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이게 바다로 가는 묘미 아닌가? 오늘은 바다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기대하는 마음. 가만 보면 변화무쌍한 바다는 우리의 삶 그 자체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우리의 삶을 바꿔 놓는 환경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책도 삶을 바다에 빗대어 삶을 대하는 자세와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단순히 바다뿐만 아니라 섬, 빙하, 닻, 해적, 난파, 등대, 소금 등 바다와 연관된 아주 다양한 존재들을 통해서도 삶에 대한 깊은 사유와 통찰을 보여준다. 철학자가 쓴 책이지만 복잡하고 난해한 철학적 개념이 등장하지 않고, 정말 쉽고 일상적인 언어로 인생의 지혜를 풀어낸다. 어떻게 하나의 사물에서 이런 깊은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읽으면서 신기하고, 공감도 많이 됐다.
 사실 하나하나 다 좋은 내용이라 밑줄도 정말 많이 쳤지만, 헤엄과 자아에 대한 통찰이 신선하고 인상깊었다. 수영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물 속에서 평화롭고,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수영이 나르시시즘을 덜어내는 연습이라고 한다. 확실히, 물 속에서는 나 자신의 호흡과 움직임, 나를 감싸는 물의 흐름에 집중하게 되어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만 남게 된다. 어차피 물 속에서 나를 보는 사람도 없는데, 물 속에서까지 타인의 눈을 신경쓸 필요는 없으니까.
직장동료가 농담으로 ˝가장 속 편한 때는 물 속에 있을 때야˝라고 한 적이 있다. 그때 맞장구치면서 ˝근데 물 밖에 나오자 마자 현실로 돌아오게 되잖아˝라고 대꾸하며 같이 깔깔 웃었던 기억이 있다. 물 밖에 나와서도 그 평안함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없는걸까? 이에 대해 저자는 수영을 통해 나 자신 그 자체가 아닌 내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아의 무게를 바다에 내려 놓는 연습을 하라고 한다. 타인의 인정과 주목, 경쟁과 승리 등등 덜어낼 것이 많다.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내려놓기는 쉽지 않다. 사실 내려 놓았다가도 다시 주섬주섬 챙겨올 수도 있다. 그래도 가벼운 자아를 위해서는 계속 노력하는 수 밖에. 외부에서 밀려오는 시련과 고난도 벅찬데, 나 스스로까지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너무 괴롭지 않은가. 앞으로는 수영 연습뿐만 아니라 물 속에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들을 하나씩 놔주는 연습도 해야겠다.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견디기 힘든 가장 무거운 것은 자아다. 자아가 무거운 이유는 지금 나의 모습 때문이 아니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 때문이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주목받고 싶은 욕망이 만든 그것 말이다. 지금의 내가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모습 때문에 자아는 점점 더 무거워진다. 정작 나는 나 자신과 함께 사는 것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자아의 여러 이미지와 함께 살고있다.
수영을 하면 이러한 자아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 되는 걸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전체에 속한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바다를 느끼는 것은 광활한 세계와 소통하는 것만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자아에서 해방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기를 증명하기, 자랑하기, 타인을 무시하기, 포기하기 등 자아가 지시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중략)... 그 후에 내가 얻는 것이 뭐냐고? 그것은 자유, 무중력, 그리고 영원하다는 것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일 것이다. - P1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푸아로 셀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은 에르퀼 푸아로가 처음 등장하는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추리소설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 아닐까. 범행 방법도, 법을 활용해 처벌을 피하려는 범인의 트릭도 흥미롭다. 평화로운 듯 하지만 물자 통제, 병원 자원봉사 등 전시 상황임을 드러내는 요소들도 스타일스 저택의 분위기와 겹쳐져 태풍 속 고요와 같은 느낌을 준다.

 아 참, 헤이스팅스의 금사빠 기질은 이때도 여전했다... 그런 순간에 그렇게 청혼을 한다니 내게는 작품의 반전보다도 더 쇼킹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