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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0 (완전판) - 푸아로의 크리스마스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작에 이어서 한 가족, 리 집안이 등장한다. 부유하고 괴팍한 아버지 시메온 리, 순종적이다 못해 아버지에게 의존적인 큰 아들 앨프리드 리와 그의 아내 리디아, 재산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의무는 다하는 속물적인 둘째 아들 조지 리와 부인 맥덜린, 어머니에 대한 애정으로 아버지를 증오하는 셋째 아들 데이비드 리와 아내 힐다, 그리고 아버지를 가장 닮았지만 반항적이고 범죄성향이 짙은 막내 아들 해리 리, 죽은 딸 제니퍼가 남긴 손녀 필라르 에스트라바도스. 그리고 리 가문사람은 아니지만 시메온의 동업자였던 에버니저 파의 아들 스티븐 파까지.
제목에도 나와있듯이 시간적 배경은 크리스마스로, 각 장도 12월 22일부터 12월 28일까지의 날짜로 되어 있으며, 일주일간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시기는 온 가족이 모여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서로의 관계를 다지는 시기이다. 그렇다 보니 일반적인 가족 미스터리와 같이 공간적 배경은 시메온 리의 저택, 고스턴 홀로 한정된다. 이 저택에 사람들이 모이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위에서도 소개했지만 이 네 아들들은 성격이 제각각인데다 서로 친하지도 않다. 특히 첫째 앨프리드와 막내 해리는 해리가 말하듯 한번도 친했던 적이 없다. 앨프리드는 해리를 가문의 수치 정도로 여기고, 해리는 그런 앨프리드가 고루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항상 점잔한 체 하고 있는 조지와 예민하고 불안정한 데이비드까지.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가족들이 모였지만 따스한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긴장감만 흐른다.
시메온 리는 저런 아들들을 보며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 하나 없다고 한탄하고, 외려 처음 본 손녀 필라르에게 본인이 속내를 털어놓는다. 시메온 리 또한 평범한 사람은 아닌데, 남을 속이거나 물건을 훔치는 등 사악한 짓을 저질렀고, 여성편력도 화려하다. 그나마 본인 스스로 사악하게 살았다고 인정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자기 객관화는 하고 있는 인물이긴 하다. 자기 중심적이고 다혈질인 인물이지만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해서 자신이 두 며느리, 리디아(앨프리드의 아내)와 힐다(데이비드의 아내)에 대해서는 좋게 평가한다.
기껏 가족들을, 심지어는 한동안 떠나있던 해리까지 부른 시메온 리는 정작 크리스마스 이브날 온 가족을 모아놓고는 가족들에게 분노를 터트리고, 이내 끔찍하게 살해당한다. 때마침 등장한 서즌 경정이 상황을 파악하고 이내 수사가 시작되고, 3막의 비극으로 경찰서장 존슨 대령과 인연을 맺었던 푸아로도 등장한다.
다이아몬드 원석이 도난된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서즌 경정과 푸아로는 가족들과 손님인 스티븐 파와 이야기를 나누며 사건을 조사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과거가 탄로나기도 하고, 성격이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면서 독자적인 캐릭터성을 구축해 나간다. 워낙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강해서 이 많은 인물상이 이 한 작품에서 다 소진되는 점이 아쉬울 정도이다.
푸아로 또한 시메온 리가 지닌 성격, 그 캐릭터성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고, 결국 드러난 진실은 황당하기 까지 하다. 시메온 리 스스로가 자신의 여성편력에 대해 말하긴 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알고 보니 얘도, 쟤도 시메온 리의 아들이었다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시메온 리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해 후회는 안 한다고 했지만 그 결과가 자신이 처참한 죽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다르게 생각했을까.
사건 해결 후 해리는 앨프리드와 화해를 한 뒤 떠나고, 조지는 여전히 한껏 점잔을 빼며 호들갑을 떤다. 데이비드는 시메온 리의 죽음 이후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극복하고 평안을 되찾는다. 그렇게 모두가 떠나고 고스턴 홀에 남은 앨프리드와 리디아. 앨프리드 또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리디아와 새로운 삶을 살겠다 다짐한다. 필라르와 스티븐은 결혼해서 남아프리카로 살겠다고 하고, 모두가 크리스마스의 정신을 되살려 각자의 행복을 찾아 일상으로 돌아간다. 사실 가장 불쌍한 사람은 졸지에 부하를 잃은 존슨 대령이 아닐까...
"스페인에 이런 속담이 있어요. ‘신이 말씀하시기를 원하는 것을 취하면 그 값을 치러야 하는 법이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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