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세계사,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
이희철 지음 / 리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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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양의 교차점으로 유명한 튀르키예지만 정작 그 장대한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서유럽사 중심의 한국 세계사 교육과정에서 비잔틴 제국이나 오스만 제국은 그저 곁다리로 나올 뿐 역사의 주연으로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고, 파편적으로 남은 지식들이 그저 튀르키예 역사에 대한 전부였다.


 하지만 '중간세계사,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을 읽고나서 그간 부분적으로 알고 있던 튀르키예의 역사를 하나로 이어 붙여서 이해할 수 있었다. 역사뿐만 아니라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의 정치체제나 제도, 종교와 문화, 건축, 예술까지 폭넓게 이해할 수 있어서 오랜만에 지적인 탐구를 즐기는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비잔티움,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 사이, 오스만 제국이다.


 1부 비잔티움에서는 비잔티움 예술에 대해 다룬 내용이 특히 좋았다. 왜 비잔티움에서는 서유럽과는 다른 양식의 예술이 꽃피운 것인지, 평면적으로만 보이는 모자이크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최근에 카자흐스탄에서 본 러시아 정교 교회 내부 장식이 생각났는데, 이 책을 읽고 갔다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느낄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개인적으로 2부를 특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튀르키예에서 동서양이 융합되는 지점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이슬람교의 발흥부터 시작해 셀주크 투르크나, 동방정교와 깊은 관계가 있는 러시아까지 중간세계사라는 제목에 걸맞게 아나톨리아 반도를 넘어서 아라비아 반도, 시베리아까지 광범위한 지역의 역사를 살펴본다.


  3부 오스만 제국 중 정치체제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유명한 튀르키예 사극인 '위대한 세기'가 떠올랐다. 궁정 정치극으로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복잡한 오스만 제국 내 이해관계가 잘 녹아있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튀르키예를 이해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이슬람교의 교리나 종파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어서 이슬람교라는 종교 자체에 대한 이해도도 깊어졌다.


 서양과 동양에 모두 걸쳐져 있는 나라임에도 정작 국내에서는 서양사에도, 동양사에서도 튀르키예를 깊게 다루는 경우가 없어서 참 아쉬웠다. 하지만 이 책 한 권이면 튀르키예 역사에 입문하는데 충분하다. 튀르키예 역사를 알고 나면 그간 알았던 서양사와 동양사가 얼마나 단편적인 지식이었는지 깨닫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만큼 세계사를 보는 눈을 넓힐 수 있는 책이었다.


 책에서 설명하는 튀르키예의 건축물과 예술품들은 현지에 가서 꼭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어졌다. 여행갈 때마다 꼭 그 나라에 대한 책을 들고 가는데 튀르키예 여행은 어떤 책을 가져갈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책 한 권만 있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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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슐츠 씨 -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
박상현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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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이 차별인지도 인식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꼭 읽어봐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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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슐츠 씨 -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
박상현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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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 편견인지도 모르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있다. 어릴 때 크레파스나 색연필에는 '살색'이라는 색깔이 있었다. 그때는 어리기도 했고 그게 진짜 살색이라고 생각해서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는데, 좀 더 자란 어느날 그게 차별적 용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종마다, 사람마다 살색이 다른데 특정 색깔을 살색으로 정한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점점 사회가 발전하는지 차별이나 편견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이를 고쳐나가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에 대해 지나친 검열이라고 느끼며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하고, 극단적인 공격성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보다 차별과 편견이 만연했던 과거에는 이를 깨부순다는 것이 지금보다 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 참정권 운동, 흑인민권운동 등을 펼치다 목숨을 잃은 사람만 해도 여럿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럼에도 자신이 옳은 길이라고 믿으며 꿋꿋하게 나아간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의 우리가 좀 더 편견없는 세상을 살고 있지 않을까.


 친애하는 슐츠씨는 아주 오래된 습관같이 자리한 차별과 편견과 이에 맞서 싸운 사람들에 대한 책이다. 크게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사소해 보이는 일상 속에 숨겨져 있는 차별부터 인종이나 젠더에 대한 거대담론회된 차별에 대해, 2부는 이러한 차별에 순응하지 않고 이를 극복해낸 사람들에 대해 다룬다.


 가제본 서평단을 통해 1부와 2부의 내용 일부를 읽어볼 수 있었다. 1부에서는 여성 옷의 주머니에 담긴 차별과 편견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과거 고정된 성 역할에서 비롯된 의복의 차이가 현대의 의복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하다못해 실용적이어야 하는 군복에서조차 여군에게는 주머니가 없었다고 하니, 왜 이렇게까지 여성들에게 주머니가 허용되지 않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을 지경이다. 나 스스로도 주머니가 작거나 없는 옷이 불편하다고 생각하고, 옷을 살 때 크게 고려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더욱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인류의 오래된 습관을 끊고 편견을 바꾸는 일은 일상에서 이를 맞닥뜨린 사람들의 개인적 깨달음과 결단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 책의 제목에도 등장하는 찰스 슐츠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2부에서는 찰스 슐츠에 대한 2가지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는데, 피너츠의 작가라고만 알고 있던 슐츠에 대해 새로운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슐츠는 피너츠에 나오는 페퍼민트 패티 등 여자아이들은 스포츠에 열정적으로 즐긴다. 지금은 전혀 이상할 게 없지만 피너츠가 연재되던 당시에 여자아이들이 운동을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어색한 일이었다. 보스턴 마라톤에 여성이 뛸 수 없다는 점이 성문화할 필요조차 없는 관습법이었던 것처럼.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편견을 깨기 위해 목소리를 내었고, 슐츠가 피너츠를 통해 여자아이들도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주지시키면서 이제는 여자아이들이 스포츠를 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또 하나, 피너츠에 등장하는 흑인 소년. 이 부분에서는 흑인 부모와 슐츠가 주고받은 편지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흑인 캐릭터를 등장시켜 달라는 편지에 대한 슐츠의 답장 중 '저는 해결책을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이 와닿았다. 당시에 그가 겪었을 딜레마가 절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에도 콘텐츠에서 화이트워싱 등 인종에 대한 이슈가 불거지는데 1960년대에는 더 조심스럽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슐츠는 프랭클린 암스트롱이라는 흑인 소년을 피너츠에 등장시키고, 또 그 캐릭터가 희화화되어 단순히 소모되지 않도록 굉장히 조심스럽게 다룬다. 그의 섬세함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 왜 이 책 제목이 '친애하는 슐츠씨'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이 책에서는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운 수많은 친애하는 '슐츠씨'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다. 가제본으로만 봐도 이렇게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은데 실제 정식 출판본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지 기대가 된다. 차별이 차별인지도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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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 - 아날로그 시대의 일상과 낭만
패멀라 폴 지음, 이다혜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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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줄도 모르게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와 낭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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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 - 아날로그 시대의 일상과 낭만
패멀라 폴 지음, 이다혜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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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트로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면서 Y2K 패션이나 빈티지 디자인이 많이 보인다. 이 시기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이런 것들이 힙하게 보이겠지만, 이 시대를 거쳐온 사람에게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과 비교해보면 그 때는 분명 불편한 점이 많았는데, 그래도 그 시기를 돌아보면 더 정감가고, 아늑하고 편안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어쩌면 과거를 미화하는 인간의 습성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은 인터넷이 존재하기 전,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세상과 함께 사라져 버린 또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100가지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터넷의 발명과 뒤이은 수많은 IT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인터넷에 연결된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어디 던져놔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이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과거의 불편한 삶으로부터 빠르게 벗어났지만 그 과정에서 불편함이 만들어 내는 일상과 낭만도 함께 잃어버리고 말았다.


 저자가 말하는 100가지 유실물은 물체 외에도 행동, 관념까지 포괄한다. 처음에 서문만 읽고는 도대체 뭐가 있는데 100가지나 되나 생각했었는데 목차를 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길 잃기, 티켓 분실하기, 번호 기억하기, 종이신문, 손으로 쓴 편지, 글씨체, 백과사전 등 생각해 보면 인터넷 이후로 정말 잘 쓰지 않거나,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다. 유실물 하나 하나에 대해 저자의 위트있는 단상을 만나볼 수 있는데, 같은 대상에 대한 내 생각과 비교해 보는 것은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100가지 유실물 중 인상 깊었던 3가지를 꼽자면, 1. 지루함, 28. 공연에 몰입하기,  85. 기억이다.


 1. 지루함 -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지루한 시간은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멍 때릴 필요가 사라졌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무언가를 할 수 있다. 노래를 듣거나, 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등등 시간을 보내기 위해 스마트폰이 내게 제공할 수 있는 수단은 무궁무진하다. 우리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스스로를 상시 노출시킬 수 있고, 그러다 보니 본인의 내면을 들여다 볼 시간이 부족하다. 몇 년 전부터 멍 때리기 대회가 생겨나고, 명상이나 요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외부의 신호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내면의 신호에 집중해서 그 신호를 외부로 발산하는 행위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요즘은 디지털 디톡스에 대한 관심도 점차 커지고 있고, 나 스스로도 작은 부분에서부터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려고 하는데, 길을 걷거나 대중교통을 타거나 기다리면서 스마트폰을 쓰지 않으면 생각보다 쉽게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거나, 그 순간과 과정을 좀 더 풍부하게 경험하게 된다. 적당한 지루함은 내 경험과 사고의 폭을 다채롭게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28. 공연에 몰입하기 - 이건 85. 기억과도 연관되긴 하는데, 최근에는 공연뿐만 아니라 어떤 체험을 해도 집중하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기억도 희미하게 남는다. 무언가 좋고 예쁜 대상을 봐도 그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로 찍기 바쁘다. 이 순간을 오래도록 저장하고 싶어서, 아니면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서 등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어쩐지 사진을 찍는 만큼 그 순간에 대한 몰입도는 급격히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더더욱 사진 찍는 행위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책에 나오는 아델의 말이 인상깊다. "저를 그만 찍으시면 안될까요? 저 여기 있거든요." 나와 세상 사이에 스마트폰을 두고 대상을 내 눈이 아닌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바라보는 순간, 스마트폰은 나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리시키는 것이 아닐까.


 85. 기억 - 제대로 집중해서 느끼지 못하니 기억도 희미하다. 그 당시의 감정, 생각이 명료하게 남기 보다는 좋았던 거 같은데... 하는 흐릿한 인상으로 남는다. 일상적인 정보는 이제 기억할 필요가 없고, 사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다못해 매일같이 쓰는 포털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라고 하면 당황스럽다. 지문 인식으로 로그인 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비밀번호를 굳이 입력할 일이 잘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같은 외부 저장장치에 내 기억을 통째로 맡겨놓은 기분이다. 저자의 말처럼 요즘은 인터넷 서비스가 친절하게 내가 몇 년 전 오늘 뭘 했는지, 지난달에 내가 어디를 다녀왔는지도 알려준다. 기억의 주도권을 스마트폰에게 넘긴 상황에서 나는 그럼 뭘 기억하고 있는걸까.  


 물론 인터넷은 우리에게 엄청난 편리함을 가져다 주기는 했다. 하지만 과거의 불편함이 그저 싫기만 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 그 불편함에서 오는 추억과 낭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내가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100가지를 하나하나 짚어보며 그때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왜 그렇게 생생한지 신기한 일이다. 인터넷과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시대지만 우리가 잃은 것들은 인터넷과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은 아니다. 인터넷의 편리함은 누리면서도 과거의 불편한 낭만을 되살려보는 것은 어떨까.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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