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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 친일파 김백일부터 광복군까지
김종훈 지음 / 이케이북 / 2020년 8월
평점 :
내 초등시절, 어린 나의 기억에 현충원은 ( 80년 대 였던 당시 현충원은 국군묘지, 혹은 국립묘지 라고 불렀다 ) 향내와 소복입은 할머니, 비석앞에 세워진 검은 색 플라스틱 꽃병 마다 꽂혀있던 국화꽃과 작은 태극기, 언덕마다 일렬로 줄 맞춰 세워져 있던 하얀 색 비석들 그 사이로 문상온 가족들과 오고 가는 길 사이로 물결과도 같았던 인파와 6월의 햇볕이었다.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돌아가신 큰 아버지는 전쟁 중 산화한 관계로 시신조차 찾지 못한 체 현충원 내에서 이름 석자 새겨진 비석이 서 있는 한 평 공간이 할해 된 전부였다.
한국 전쟁 이 후 사망한 국군 장병을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는 국립묘지는 이승만의 지시로 동작동 일대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한국 전쟁 당시 이름 없이 죽어간 무명용사와 신분이 확인 된 군인들을 중심으로 안장되다가 이후 신분을 바꾼 친일파, 임시 정부 요인 묘역과 무후선열제단, 애국지사 묘역등이 마련되며 1996년에 국립 서울 현충원으로 명명돼었다.
이케이북의 신간 '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는 오마이 뉴스 사회부 기자 출신의 저자가 현충원을 돌아보며 쓴 가이드북이다 .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 우리 일상과 가까운 곳에 있지만 쉽게 찾지 못했던 여러 국립묘지를, 이 책 한 권 들고 떠나보았으면 하는 것이다'라고 출간의도를 밝히고 있다. 이 책에는 국립 서울 현충원을 비롯 국립 대전 현충원, 국립 4.19묘지, 수유리묘역, 효창공원까지를 한 권에 망라해서 다루고 있다.
얼마 전 ( 책에는 2020년 7월 10일 밤 11시 사망이라고 정확히 명시되어있다 ) 백수를 누리고 운명한 백선엽의 '현충원 안장'을 놓고 논란이 일었던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백선엽에 대해선 이름만 들었지 그의 살아 생전의 행적을 몰랐던 지라 관심이 없었는 데 이 책에서 다룬 '백 선엽' 편을 보니 현충원 안장을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친일 인명 사전 ] 에 이름이 버젓이 올라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한국 전쟁 당시의 공을 치하하고 이후 육군 참모 총장 겸 계엄 사령관, 육군 대장, 각 나라의 대사와 교통부 장관까지 지냈으니 현충원 안장을 반대하기도 난감한 사안이긴 했다. 논란이 핵심은 현충원 안장이라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닌 친일파 임에도 해방 후 대한민국 국군을 다스리는 육군 대장을 했으며 장관까지 역임했다는 것에 문제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방 공간을 포함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를 이어오는 동안 제대로 된 친일파 척결을 못한 현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사안이었다
결국 백선엽은 현충원에 안장되는 걸로 귀결되었다.
이 책에는 백선엽 뿐만이 아닌 서울 국립 현충원에 12구, 대전 현충원에 8구등의 친일파들의 살아 생전 행적을 밝히며 그들의 묘역이 애국지사를 내려다 보고 있는 구조로 조성되어있음을 꼬집고 있다.
친일을 했던 면면들의 생을 따라가다 보면 느껴지는 것이 있다. 어쩌면 그들은 그리도 신분 세탁을 잘 하고 실익이 되는 길로만 움직이는 처세를 익혔는지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그래서일까? 독립운동가인 이 상룡 지사의 후손인 이항증 선생이 인터뷰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변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 나 사는 모습을 보면 누가 애국하려고 할까 싶냐. 잘 사는 애국지사 후손들이 나와야 '나라를 위하니까 국가가 보호해주는 구나' 하고 애국하지 않겠냐"
어릴 적 고아원에 갈 정도로 어려웠었다는 그 분의 말을 들으니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라는 말이 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책을 덮으며 초등학생 이후로 가보지 못한 현충원을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땐 어른들을 따라다니느라 다리만 아프로 지루했던 그곳을 이제는 역사적 관점에서 다시 돌아보고 싶다. 서울 국립 현충원 뿐만아니라 여력이 된다면 국립 4.19 민주묘지와 수유리 묘역 효창공원까지 하나씩 방문할 계획을 짜 봐야겠다.
가을 하늘 화창하고 코로나도 잠잠해지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