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격차 - 넘볼 수 없는 차이를 만드는 격
권오현 지음, 김상근 정리 / 쌤앤파커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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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삼성 반도체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입사하여 후발 주자였던 삼성 전자의 '반도체 신화'를 만들어낸 일등공신, 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의 책이 출판되었다. 사실, 저자에 대한 관심보다는(세상은 넓고 잘난 사람들은 수두룩하고 그들이 쓴 책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기에) 제목에 눈길이 갔다. 어떤 대상에 대해 넘볼 수 없는 탁월함을 느껴본 사람으로서 그 차이를 만드는 힘에 대해 늘 호기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과 부제 '넘볼 수 없는 차이를 만드는 격'은 그런 면에서 내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책일 것 같아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의 첫 장은 리더의 탄생과 진화에 대해 다루고있다. 여러 예들을 죽 나열하기 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설명하다보니 단조롭기는 해도 다른 자기계발서들에 비해 진솔한 느낌이 있었다. 리더의 덕성이나 능력에 대해 다루면서 신선한 관점을 보여주기 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어서 다소 실망스럽기도 했다. 읽다보니 내가 이 책에 기대한 것이 '누구도 예상못한 한 방'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책은 그런 마법같은 것을 다루지는 않는다.
'조직-원칙과 시스템'을 다룬 2장에서는 실무에 도움이 될만한 조직관리 팁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고있다. 시프트 프론트, 처벌의 세 규칙 등은 조직의 위기 관리에 실제로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었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3장은 '전략 - 생존과 성장'으로 본격적인 초격차 전략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비효율적인 시스템의 개선을 위해 제조팀과 기술팀을 분리해 조직을 매트릭스 형태로 만들면서 기존 방식의 고수를 원하는 이들의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다고 한다.

초격차란 규모나 자본에 의해 그 실현 가능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과감한 혁신을 향한 리더의 의지, 구성원의 주도적 실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지막 장인 '인재 - 원석과 보석' 부분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리더의 혁신을 현실화 시킬 인재들을 어떻게 알아보고 선발할지가 무척 궁금했는데, 신선한 관점이나 특별한 비책보다는 기본에 충실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책의 내용이 전반적으로 기본을 강조하는 편이다.
인재의 선발과 배치 부분에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도움이 될 법한 정보들도 담겨있는데, 직급이 낮을 때는 강점을 만들어주는 교육을 시키고 직급이 높을 때는 약점을 보완해주는 교육으로 전환시켜야한다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이 되었다. 일관성과 지속성, 역경에 대한 돌파력 등 조직 생활을 하면서 한번쯤 떠올려볼만한 유익한 내용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구체적인 데이터나 디테일한 전략들이 제시되지는 않아 실무를 맡았던 저자의 책이라는 데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기술의 특성상 구체적인 데이터를 밝히기 어렵다고 본문에 쓰기도 했는데 현장의 생생함이 와닿지않아 다소 아쉬움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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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사랑을 잘못 배웠다
김해찬 지음 / 시드앤피드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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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해서 더 알아야할 것이 있을까? 여러 연애를 거쳐 결혼에 이르고도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살면서 여전히 결혼을 유지하고있는 기혼자로서 이 책의 제목을 보며 사춘기적 감상이 가득한 사랑타령을 짐작했다. 펼칠까말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막상 읽기를 시작하고서는 생각만큼 간지럽고 오글거리는 글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과 함께 옛추억에 빠져서 피식 몇번쯤 웃기도 했는데, 요즘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이라는 캠퍼스 드라마(?)를 보며 옛 생각에 빠져있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꼭 사랑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관계에 적용해도 될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오가는 여러 감정들에 대해, 서툴게 좌충우돌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기보다 이렇게 간접경험을 통해 깨닫는다면 훨씬 수월한 인생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전부 다르고, 서로가 영향을 미쳐 변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정작 크게 변하는 건 몇 없다. 그건 그저 함께하는 순간을 공유할 때 서로가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고 생각해서 닮아간다고 착각한 것이지, 인간은 모두 태생부터 다르다. 그 순간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해서 그 두 인간이 같은 인간인 건 아니다. 같은 음식을 먹었다고 좋아하는 음식이 같은 게 아니듯. 눈을 마주하고 있다고 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듯.
감정의 거리가 가까운 사이일수록 좋은 것이 잘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함께 미소 지을 수 있다. 허나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감정의 사이가 가까울수록 서로의 나쁜 점도 잘 보인다는 거다. 우적우적 음식 씹는 소리, 까르르 귀청을 찌르는 웃음소리, 따박따박 잰걸음으로 걷는 걸음걸이까지. 가까이에서 보기 전엔 절대 알 수 없는 그런 것들마저도 '좋거나 싫거나'한 대상이 된다. 너무 가까우면 너무 많이 판단하게 된다.

사춘기 때 읽던 '사랑의 팡세' 류의 아포리즘이 담겨있으리라 짐작했던 것에 비해 이 책은 사랑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관계에 적용해도 될만한 사색들이 담겨있다. 분량이 길지않은 짧은 글 모음이어서 쉽고 편안하게 공감하며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진지하고 무거운 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없이 가벼운 것도 아닌,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의 다양한 관계에 대해 한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사랑학 개론서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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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이유 -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10가지 원리
노엄 촘스키 지음, 유강은 옮김 / 이데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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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한책서평단 오디오클립 로사입니다>

노엄 촘스키라고 하면 언어습득이론(유니버셜 그래머) 뿐만 아니라 수많은 정치와 경제에 대한 논의와 신랄한 비판을 담은 저서들, 사회참여적인 활동들이 연이어 떠오른다. 연세가 90세 가까이 되셨다는데, 아직도 그 에너지는 그대로인 것 같다. 이 책은 특별히 미국 사회의 부와 권력이 집중되고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는 현실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원리를 설명한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라는데에, 얼마간이라도 미국에 체류해본 사람들은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유와 평등 아래 꿈을 펼쳐 아메리칸 드림을 마침내 실현시키라는 미국의 구호의 이면에는 부와 권력에 불평등에 바탕을 둔 체제의 존속이라는 교묘한 위선이있다.

오늘날 우리는 정책 형성 과정에서, 예컨대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공격에서 이런 태도를 목도한다.(중략) 사회보장 제도는 매우 효과적인 정책 프로그램이며, 관리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지금부터 20~30년 동안 잠재적 위기가 존재하는 정도만큼 위기를 바로잡는 손쉬운 방법도 있다. 그러나 정책 논쟁이 사회보장에 집중되는 것은 대체로 지배자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사회보장을 혐오했다. 그것은 일반 대중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로 사회보장을 혐오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사회보장제도는 연대라는 하나의 원리에 근거한다. 연대란 타인을 돌보는 것이며, 사회보장제도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근로소득세를 내야 시내 건너편에 사는 과부가 먹고살 수 있다."많은 국민들은 이런 사회보장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상위 부유층에게는 사회보장이 전혀 필요 없기 때문에 그것을 파괴하려는 시도가 일사불란하게 벌어진다. 한 가지 방법은 사회보장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다. 어떤 제도를 없애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우선 예산을 삭감하라. 그러면 그 제도가 작동하지 않을테니. 사람들이 화를 낼 테고, 뭔가 다른 것을 원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어떤 제도를 민영화하기 위히 흔히 쓰이는 기법이다. - p96
핀란드, 독일, 멕시코에서는 대학 등록금을 한푼도 내지 않음을 언급하며
모든 사람에게 무상교육 혜택을 주어서는 안 될 경제적 이유 같은 것은 없다. 사회적, 정치적 이유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이유는 사회적인 결정이자 정치적인 결정이다. 실제로 더 많은 사람들이 고등교육을 통해 자기를 발전시키고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갖게 된다면, 경제가 발전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 p105
빈곤층이 늘상 듣는 말은 이런 식이어싸. 시장 원리가 지배하게 내버려 둬라! 정부로부터 일절 도움을 기대하지 마라! 정부는 해법이 아니라 문제다! 바로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본질이며, 그 안에는 경제사에서 다시 없을 이와 같은 이중성이 있다. 부유층에게는 부유층의 규칙이 있고, 빈공층에게는 정반대의 일련의 규칙이 있는 것이다. - p123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가 분업은 정말 놀라운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호되게 비난했었다는 부분은 놀라웠다. 스미스는 <국부론>의 뒷부분에서 지적 능력과 창의력을 계발하고 활용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업무를 반복하게 하는 분업은 사람을 어리석고 무지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명사회에서 정부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개입해야한다고 촉구했다고 한다. 이에 촘스키는 인간은 기계가 아니므로 인간이기를 멈춰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며 동의한다.
이 말은 곧 인간이라는 것은 풍부한 문화 전통(우리 자신의 문화 전통만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문화 전통까지)의 혜택을 누리고, 기술만이 아니라 지혜까지 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창의적이고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탐구하고 질문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사고가 없으면 로봇으로 대체되어도 무방하다. 우리가 살 만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이런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 p153
촘스키는 책 전체에 걸쳐 미국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과 이를 존속하려는 위선적 제도에 대해 비판하며 시민을 일깨우고자 한다. 데이비드 흄의 <도덕, 정치, 문예 에세이>의 인용을 통해, 다수가 소수에게 쉽게 지배되고 암묵적으로 복종하는 불가사의한 일에 대해 탐구해보면 '언제나 피지배자들 쪽에 힘이 있기 때문에 지배자들은 여론 말고는 자신을 뒷받침할게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된다'고 강조한다.
촘스키는 미국 사회에 대해 비판하지만 이 비판은 우리 사회에도 유효하다. 이명박근혜 시절을 살면서 내가 느꼈던 분노와 피로감의 원천은 모든 것이 부에 의해 판단되어지는 사회 정서 - 배금주의, 천민자본주의, '돈이 곧 권력이며 신분'이라는 온갖 매체에서 토해내는 메시지였다. 이에 전혀 동의할 수 없는, 해서는 안되는 부류마저도 복종에 가깝게 동의하는 상황을 보면서 거대한 모순마저 덮어버리는 욕망에 치가 떨렸고, 나 역시 어느새 그 복종의 세계로 이끌려가 있음을 확인할 때마다 비참했다. 정권이 바뀐 이후로 가장 반가운 것은 사람들이 욕망이 아닌 '가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말 큰 변화이자 희망인 것 같다. 촘스키는 개인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사회의 추악함과 위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미국 사회 안에서 설명해 온 이런 경향들이 역전되지 않는다면 극도로 추악한 사회가 될 것이다. '모든 것은 우리가 챙기고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는 애덤 스미스의 비열한 좌우명과 '자기 자신 빼고는 모두 무시하고 부를 쌓으라'라는 새로운 시대 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지는 이런 사회에서는 공감과 연대, 상호지원이라는 인간의 통상적인 본능과 감정이 밀려난다. 이렇게 추악한 사회에서 과연 누가 살고 싶을까? 내 자녀들이 그런 사회에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떤 사회가 사적인 부에 의한 통제를 바탕으로 한다면, 그 사회는 탐욕의 가치와 타인을 희생시ㅕ서 개인적인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욕망을 반영할 것이다. 이런 원리에 바탕을 둔 사회는 추악하지만 그래도 생존할 수 있다. 그런데 글로벌 사회가 그런 원리에 바탕을 둔다면 대량 살상으로 치닫게 마련이다. - P187

정치, 경제, 철학자들의 다양한 참고서적을 인용한 이 책은 압축적으로 미국 사회의 정치, 경제 전반의 화두들을 시민의 눈높이에서 설명하고 있다. 읽다보면 여러 분야로 생각이 확장되고, 가독성도 좋은 편이어서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불평등의 이유를 깨닫고 문제의식을 갖게 되길 바란다. 우리나라 연로하신 분들을 떠올리면 당장 태극기 부대가 떠올라 한숨이 푹 나오는데, 90세 학자의 책에서 희망을 느낀다. 적어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면 해결의 희망은 있지 않겠는가?
자기파괴적인 방향을 향한 '초점이 맞지 않는 분노'라는 표현이 깊이 와닿았다.
서로 증오하고 두려워하며, 오직 자기 자신만을 살피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만드는 일이 바로 그들이 노리는 것이다. '초점이 맞지 않는 분노'를 거두고 내 이익과 타인에 대한 혐오에 집중하기 보다는 '연대'에 보다 관심을 쏟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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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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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의 저자 프레드릭 배크만의 작품을 몇 편 읽었는데 특별했던 소설도 있고 안타깝게도 전혀 기억에 남지않은(읽었다는 흐릿한 인상만 남은) 작품들도 있다. 그래서 이번 신작은 어떨지 호기심이 생겼지만 막상 책을 펼치자니 두께에 압도가 되어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바쁜 일도 있다보니 다른 가벼운(분량 상) 책들을 주로 읽다가 얼마전에야 작정하고 책을 폈는데, 생각외로 술술 읽혀 금세 책장을 덮었다.

이 책의 제목이자 소설의 배경인 '베어타운'은 쇠락한 도시이다. 아이스하키만이 동네의 에너지원이랄 수 있는 작고 조용한 동네. 예전에 솔트레이크 시티에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곳은 알려진 것처럼 동계올림픽 개최지이다. 올림픽의 열기가 지나간 후에는 그런 날이 과연 있었을까 싶을만큼 조용하고 한적한 도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는데, 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그 도시가 연상되어 더욱 몰입이 잘되었다.
어릴 때 친구 중 한명이 아이스하키 선수였기에 종목에 대한 배경지식도 조금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아이스하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보아도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이 소설이 다루는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 우리네 일상과 크게 다르지않기 때문이다.

자라며 처음으로 깨닫게되는 격차에는 어떤게 있을까.
실력의 격차, 운의 차이, 외모나 성격의 차이 같은 것들보다 더 크게 체감하는 것이 빈부의 격차(신분의 차) 인 것 같다. 현대 사회에는 드러나는 신분 제도는 없지만, 어느 공동체이던 보이지않는 신분의 차이가 있다.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부를 기준으로 등급을 나누는(또는 나눠진) 경험을 누구나 해본 적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도 이 책을 읽으며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있었던 묘한 계층의 구별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의문은, 약국집 딸과 사진관집 아들과 문방구집 딸과 분식집 아들은 모두 다 친구더라도 그 엄마들이 친구가 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약국 아줌마는 다른 아줌마들과 다르다, 그게 내가 처음 경험한 계층의 구별이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가정에서 각기 다른 지위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책을 읽다보면 케빈, 벤야민, 마야, 아맛 등 여러번 입장을 바꿔 감정이입을 하게되는데 소설의 초반부에 다소 장황할 정도로 자세하게 각 인물들에 대한 배경 설명이 이루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알면, 이해하게된다. 처한 환경을 알게되면 연민을 갖게된달까.

극의 중반부쯤 '그 사건'이 일어나고 이후 마을 사람들의 반응과 대처는 정의롭거나 상식적이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베어타운 밖에서도 이런 부조리를 수없이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비슷하게 살고있는 것이다. 인간과 세상에 배신감을 느끼고 희망을 가졌다가 다시 실망하고 또 녹았다가 얼어버리고...
특히나 근래 여론에 의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경우나 진실을 알 수 없는 진흙탕 싸움을 접해서인지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대세나 분위기에 편승하기보다, 진실에 다가서려는 노력으로 숙고한 후에 판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나 아렌트의 '내면적 저항이란 없다. 세상에는 외면적 저항만 있을 뿐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기껏해야 심리유보만 있다. 그것들은 허깨비들이 하는 거짓말이다.'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정직에는 힘이 있지만 그러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결말은 스포가 될 것 같아 적을 수 없겠지만, 동화같은 표지의 따뜻하고 유쾌한 소설을 기대하고 책을 펼친 독자들을 정직과 용기에 대해 숙고하게 만드는 묵직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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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의 덴마크 - 오해와 과장으로 뒤섞인 ‘행복 사회’의 진짜 모습
에밀 라우센.이세아 지음 / 틈새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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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한책서평단 오디오클립 로사입니다.>

 

훌쩍 계획에 없던 여행을 오면서 얄팍한 이 책을 들고나온 것은 운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거창하긴하지만, 정말 운명적이다.
그동안 매일매일이 힘들었던 것도, 대책없이 몇 분만에 짐을 싸 집 밖에 나온 이유도 모두 '휘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할 일은 많지만 복잡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나, 그리고 가족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낸다. '지금'이라는 시간을 나와 가족을 위해 선택하는 것이다.


덴마크의 행복지수 1위 비결이라고 알려져있는 휘게.
휘게(hygge)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삶을 뜻하는 덴마크 유래 용어다. 이 외에도 소박하고 균형 잡힌 생활을 뜻하는 스웨덴의 라곰(lagom), 여유롭고 편안한 삶을 일컫는 프랑스의 오캄(au calme)이 있다. - 출처 <헤럴드경제>

이 책과 함께 정말 오랜만에 '휘게'의 시간을 누렸다.
사실, 이 단어를 몰랐다뿐 여태 평생을 시시때때로 '휘게'하며 살아온 것 같다.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 새벽녘 동네 친구와 함께 했던 조깅, 신혼 때 거실에 두터운 담요와 맥주를 꺼내두고 빈둥거리며 만화책이나 미드를 보던 추억, 육아휴직의 기간동안 새벽에 홀로 깨어 따뜻한 조명 빛 아래에서 아기가 깨기 전까지 책을 읽던 시간들...
그 때 내가 느낀 안락함과 충만함... 상상만으로도 미소지어지는, '휘게'임이 분명했던 기억들이다.

소확행이 유행어가 되면서 이런 기획의 책들이 다양하게 출판되고 있는 것 같다. 근래들어 덴마크 등 북유럽의 생활방식에 관심이 많아지고 관련 아이템들이 인기를 끄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많고 아주 절실하게 행복과 만족을 원하고 있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행복은 거창한게 아니라지만 그것을 느낄만한 형편이 못되는 상태로 살다보니 '어떻게 시작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는' 지점에 많은 이들이 멈춰있는 것 같다. '휘게'는 이런 이들에게 심플하고 정확하게 지침을 주는 마법의 단어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휘게'뿐만 아니라 덴마크의 일상적인 부분부터 사회, 경제, 문화적인 부분까지 두루 접하게된다. 시작 부분에서 다뤄지는 덴마크 아이들의 독립 과정은 실로 놀라운 지경이었다. 딴나라 이야기인거 맞지만, 읽으면서 '덴마크는 정말 딴나라(다.른. 나라라고해서는 전혀 느낌이 안 산다)구나!' 수도없이 감탄하고 놀랐던 것 같다. 내가 가진 북유럽이나 덴마크에 대한 지식이 빈약해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정말이지 덴마크는 상상이상의 나라였다.

그렇다고 이 책이 덴마크를 환상적으로 미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덴마크인인 저자는 문제점에 대해 솔직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독자들이 이미 갖고있던 환상을 오히려 깨주기도 한다. 객관적으로 기술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달까.
하지만, 지식인의 가정에서 성장하였으며 이주하여 한국에서 생활한지 오래지만 덴마크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있는 덴마크인이 쓴 책이기에, 저자의 주관적인 경험들이 아무래도 주를 이룬다. (그 경험이 너무나 이상적이어서 덴마크의 모든 가정이 그러리라고는 차마 믿을수가 없달까...)

저자는 덴마크 가정의 분위기는 대체로 자신이 겪은 것과 다르지않다고 하는데, 그것은 덴마크 학생들이 의무교육만으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는 것이나, 근로자들은 거의 3~4시면 퇴근을 한다는 것이나, 만 18세 이후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독립자금을 정부에서 대준다거나, 만 14세 이상의 학생은 술을 살 수 있었다(최근들어 15세로 바뀌었다고 함)는 사실만큼이나 쉽게 믿기지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 덴마크에서는 현실이고 일상이라니 놀라웠고, 덴마크라는 나라의 정서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낯을 가리고, 오랜 친구와 휘게를 나누고, 싸우지않고, 거짓말을 하지않는...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는데 그런 나라가 있다니. ^^

술술 읽히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그 세계와 거리가 아주 멀지만 계속 알아가고 관심을 갖고 지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다보면 조금은 변화를 기대할 수 있지않을까. 물론 문제점도 많이 있겠지만, 무턱대고 환상을 갖기보다는 좋은점은 취하고 문제점은 경계하는 태도로 다른 여러 사회를 탐구해보고 싶어졌다. 그러기에 이 책은 무척 흥미롭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책이라 많은 사람들이 부담없이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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