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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이유 -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10가지 원리
노엄 촘스키 지음, 유강은 옮김 / 이데아 / 2018년 4월
평점 :
<한주한책서평단 오디오클립 로사입니다>
노엄 촘스키라고 하면 언어습득이론(유니버셜 그래머) 뿐만 아니라 수많은 정치와 경제에 대한 논의와 신랄한 비판을 담은 저서들, 사회참여적인 활동들이 연이어 떠오른다. 연세가 90세 가까이 되셨다는데, 아직도 그 에너지는 그대로인 것 같다. 이 책은 특별히 미국 사회의 부와 권력이 집중되고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는 현실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원리를 설명한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라는데에, 얼마간이라도 미국에 체류해본 사람들은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유와 평등 아래 꿈을 펼쳐 아메리칸 드림을 마침내 실현시키라는 미국의 구호의 이면에는 부와 권력에 불평등에 바탕을 둔 체제의 존속이라는 교묘한 위선이있다.
오늘날 우리는 정책 형성 과정에서, 예컨대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공격에서 이런 태도를 목도한다.(중략) 사회보장 제도는 매우 효과적인 정책 프로그램이며, 관리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지금부터 20~30년 동안 잠재적 위기가 존재하는 정도만큼 위기를 바로잡는 손쉬운 방법도 있다. 그러나 정책 논쟁이 사회보장에 집중되는 것은 대체로 지배자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사회보장을 혐오했다. 그것은 일반 대중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로 사회보장을 혐오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사회보장제도는 연대라는 하나의 원리에 근거한다. 연대란 타인을 돌보는 것이며, 사회보장제도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근로소득세를 내야 시내 건너편에 사는 과부가 먹고살 수 있다."많은 국민들은 이런 사회보장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상위 부유층에게는 사회보장이 전혀 필요 없기 때문에 그것을 파괴하려는 시도가 일사불란하게 벌어진다. 한 가지 방법은 사회보장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다. 어떤 제도를 없애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우선 예산을 삭감하라. 그러면 그 제도가 작동하지 않을테니. 사람들이 화를 낼 테고, 뭔가 다른 것을 원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어떤 제도를 민영화하기 위히 흔히 쓰이는 기법이다. - p96
핀란드, 독일, 멕시코에서는 대학 등록금을 한푼도 내지 않음을 언급하며
모든 사람에게 무상교육 혜택을 주어서는 안 될 경제적 이유 같은 것은 없다. 사회적, 정치적 이유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이유는 사회적인 결정이자 정치적인 결정이다. 실제로 더 많은 사람들이 고등교육을 통해 자기를 발전시키고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갖게 된다면, 경제가 발전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 p105
빈곤층이 늘상 듣는 말은 이런 식이어싸. 시장 원리가 지배하게 내버려 둬라! 정부로부터 일절 도움을 기대하지 마라! 정부는 해법이 아니라 문제다! 바로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본질이며, 그 안에는 경제사에서 다시 없을 이와 같은 이중성이 있다. 부유층에게는 부유층의 규칙이 있고, 빈공층에게는 정반대의 일련의 규칙이 있는 것이다. - p123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가 분업은 정말 놀라운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호되게 비난했었다는 부분은 놀라웠다. 스미스는 <국부론>의 뒷부분에서 지적 능력과 창의력을 계발하고 활용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업무를 반복하게 하는 분업은 사람을 어리석고 무지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명사회에서 정부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개입해야한다고 촉구했다고 한다. 이에 촘스키는 인간은 기계가 아니므로 인간이기를 멈춰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며 동의한다.
이 말은 곧 인간이라는 것은 풍부한 문화 전통(우리 자신의 문화 전통만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문화 전통까지)의 혜택을 누리고, 기술만이 아니라 지혜까지 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창의적이고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탐구하고 질문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사고가 없으면 로봇으로 대체되어도 무방하다. 우리가 살 만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이런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 p153
촘스키는 책 전체에 걸쳐 미국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과 이를 존속하려는 위선적 제도에 대해 비판하며 시민을 일깨우고자 한다. 데이비드 흄의 <도덕, 정치, 문예 에세이>의 인용을 통해, 다수가 소수에게 쉽게 지배되고 암묵적으로 복종하는 불가사의한 일에 대해 탐구해보면 '언제나 피지배자들 쪽에 힘이 있기 때문에 지배자들은 여론 말고는 자신을 뒷받침할게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된다'고 강조한다.
촘스키는 미국 사회에 대해 비판하지만 이 비판은 우리 사회에도 유효하다. 이명박근혜 시절을 살면서 내가 느꼈던 분노와 피로감의 원천은 모든 것이 부에 의해 판단되어지는 사회 정서 - 배금주의, 천민자본주의, '돈이 곧 권력이며 신분'이라는 온갖 매체에서 토해내는 메시지였다. 이에 전혀 동의할 수 없는, 해서는 안되는 부류마저도 복종에 가깝게 동의하는 상황을 보면서 거대한 모순마저 덮어버리는 욕망에 치가 떨렸고, 나 역시 어느새 그 복종의 세계로 이끌려가 있음을 확인할 때마다 비참했다. 정권이 바뀐 이후로 가장 반가운 것은 사람들이 욕망이 아닌 '가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말 큰 변화이자 희망인 것 같다. 촘스키는 개인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사회의 추악함과 위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미국 사회 안에서 설명해 온 이런 경향들이 역전되지 않는다면 극도로 추악한 사회가 될 것이다. '모든 것은 우리가 챙기고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는 애덤 스미스의 비열한 좌우명과 '자기 자신 빼고는 모두 무시하고 부를 쌓으라'라는 새로운 시대 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지는 이런 사회에서는 공감과 연대, 상호지원이라는 인간의 통상적인 본능과 감정이 밀려난다. 이렇게 추악한 사회에서 과연 누가 살고 싶을까? 내 자녀들이 그런 사회에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떤 사회가 사적인 부에 의한 통제를 바탕으로 한다면, 그 사회는 탐욕의 가치와 타인을 희생시ㅕ서 개인적인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욕망을 반영할 것이다. 이런 원리에 바탕을 둔 사회는 추악하지만 그래도 생존할 수 있다. 그런데 글로벌 사회가 그런 원리에 바탕을 둔다면 대량 살상으로 치닫게 마련이다. - P187
정치, 경제, 철학자들의 다양한 참고서적을 인용한 이 책은 압축적으로 미국 사회의 정치, 경제 전반의 화두들을 시민의 눈높이에서 설명하고 있다. 읽다보면 여러 분야로 생각이 확장되고, 가독성도 좋은 편이어서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불평등의 이유를 깨닫고 문제의식을 갖게 되길 바란다. 우리나라 연로하신 분들을 떠올리면 당장 태극기 부대가 떠올라 한숨이 푹 나오는데, 90세 학자의 책에서 희망을 느낀다. 적어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면 해결의 희망은 있지 않겠는가?
자기파괴적인 방향을 향한 '초점이 맞지 않는 분노'라는 표현이 깊이 와닿았다.
서로 증오하고 두려워하며, 오직 자기 자신만을 살피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만드는 일이 바로 그들이 노리는 것이다. '초점이 맞지 않는 분노'를 거두고 내 이익과 타인에 대한 혐오에 집중하기 보다는 '연대'에 보다 관심을 쏟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