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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ㅣ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오베라는 남자>의 저자 프레드릭 배크만의 작품을 몇 편 읽었는데 특별했던 소설도 있고 안타깝게도 전혀 기억에 남지않은(읽었다는 흐릿한 인상만 남은) 작품들도 있다. 그래서 이번 신작은 어떨지 호기심이 생겼지만 막상 책을 펼치자니 두께에 압도가 되어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바쁜 일도 있다보니 다른 가벼운(분량 상) 책들을 주로 읽다가 얼마전에야 작정하고 책을 폈는데, 생각외로 술술 읽혀 금세 책장을 덮었다.
이 책의 제목이자 소설의 배경인 '베어타운'은 쇠락한 도시이다. 아이스하키만이 동네의 에너지원이랄 수 있는 작고 조용한 동네. 예전에 솔트레이크 시티에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곳은 알려진 것처럼 동계올림픽 개최지이다. 올림픽의 열기가 지나간 후에는 그런 날이 과연 있었을까 싶을만큼 조용하고 한적한 도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는데, 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그 도시가 연상되어 더욱 몰입이 잘되었다.
어릴 때 친구 중 한명이 아이스하키 선수였기에 종목에 대한 배경지식도 조금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아이스하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보아도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이 소설이 다루는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 우리네 일상과 크게 다르지않기 때문이다.
자라며 처음으로 깨닫게되는 격차에는 어떤게 있을까.
실력의 격차, 운의 차이, 외모나 성격의 차이 같은 것들보다 더 크게 체감하는 것이 빈부의 격차(신분의 차) 인 것 같다. 현대 사회에는 드러나는 신분 제도는 없지만, 어느 공동체이던 보이지않는 신분의 차이가 있다.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부를 기준으로 등급을 나누는(또는 나눠진) 경험을 누구나 해본 적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도 이 책을 읽으며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있었던 묘한 계층의 구별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의문은, 약국집 딸과 사진관집 아들과 문방구집 딸과 분식집 아들은 모두 다 친구더라도 그 엄마들이 친구가 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약국 아줌마는 다른 아줌마들과 다르다, 그게 내가 처음 경험한 계층의 구별이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가정에서 각기 다른 지위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책을 읽다보면 케빈, 벤야민, 마야, 아맛 등 여러번 입장을 바꿔 감정이입을 하게되는데 소설의 초반부에 다소 장황할 정도로 자세하게 각 인물들에 대한 배경 설명이 이루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알면, 이해하게된다. 처한 환경을 알게되면 연민을 갖게된달까.
극의 중반부쯤 '그 사건'이 일어나고 이후 마을 사람들의 반응과 대처는 정의롭거나 상식적이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베어타운 밖에서도 이런 부조리를 수없이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비슷하게 살고있는 것이다. 인간과 세상에 배신감을 느끼고 희망을 가졌다가 다시 실망하고 또 녹았다가 얼어버리고...
특히나 근래 여론에 의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경우나 진실을 알 수 없는 진흙탕 싸움을 접해서인지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대세나 분위기에 편승하기보다, 진실에 다가서려는 노력으로 숙고한 후에 판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나 아렌트의 '내면적 저항이란 없다. 세상에는 외면적 저항만 있을 뿐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기껏해야 심리유보만 있다. 그것들은 허깨비들이 하는 거짓말이다.'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정직에는 힘이 있지만 그러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결말은 스포가 될 것 같아 적을 수 없겠지만, 동화같은 표지의 따뜻하고 유쾌한 소설을 기대하고 책을 펼친 독자들을 정직과 용기에 대해 숙고하게 만드는 묵직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