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ㅣ 열린책들 테마 컬렉션 : 호러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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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열린책들

공포는 어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서 시작된다

포를 처음 읽었을 때와 두 번째 읽었을 때는 전혀 다른 작가처럼 느껴질 수 있다. 물론 나는 에드거 앨런 포를 처음부터 좋아했다. 그의 소설이 주는 공포 이면의 어떤 것들, 설명할 수 없는 마음들이...

처음에는 기괴한 사건과 섬뜩한 분위기가 먼저 보이지만, 다시 읽으면 오히려 사건보다 인간의 심리가 더 무섭게 다가와서 더 특별하다.

특히 수록작 구성이 좋았다. 「어셔가의 붕괴」, 「모르그가의 살인」, 「소용돌이 속으로 떨어지다」, 「구덩이와 진자」, 「검은 고양이」, 「생매장」처럼 포의 대표적인 공포와 추리, 심리소설이 한 권 안에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작품들을 묶어 읽으면 장르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한곳으로 모인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이 무너지는 순간’이 아닐까?

「모르그가의 살인」에서는 이성이 사건을 해석하는 도구가 되고, 「검은 고양이」에서는 죄책감과 광기가 느껴진다.

「생매장」에서는 죽음보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는 공포가 더 끔찍하고, 「구덩이와 진자」에서는 인간이 극한의 공포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남으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어셔가의 붕괴」에서는 공간과 인간의 정신이 서로 침투하면서 집 자체가 하나의 심리처럼 느껴진다. 일상의 공포가 가장 무서운데 가장 편안한 공간이 되어야 할 집이 주로 공포의 대상으로 느껴져서 더 무섭다.

그리고 「붉은 죽음의 가면극」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무서웠다. 죽음을 피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오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의 공포는 귀신이나 괴물 때문에 무서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무서운 괴물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번역’이다. 이미 다른 번역으로 읽었다.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다시 긴장하게 되는가!!

포 특유의 음울하고 집요한 분위기가 얼마나 살아 있는가 중요하다. 또한 역자의 해설도 흥미로웠다. 포를 단순히 ‘공포소설 작가’라고 부르는 것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그는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공포에 지배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이 그 공포를 이성으로 분석하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함께 보여준다. 한쪽에는 광기와 충동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관찰과 논리가 있다. 포의 세계가 매력적인 이유는 이 두 힘이 끊임없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공포는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이다. 포가 그것을 가장 잘 해석하여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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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르네상스의 대화
이케다 다이사쿠.루 매리노프 지음 / 중앙일보S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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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철학 르네상스의 대화」

이케다 다이사쿠, 루 매리노프|중앙일보S




철학책을 읽으며 위로받는다는 말을 예전에는 조금 낯설게 생각하기도 했다. 하나의 답을 얻으면 또 다른 질문이 따라오고,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을 의심하게 만들며, 결국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묻게 만드는 것이 철학이니까. 그런데 《철학 르네상스의 대화》를 읽으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철학이 사람을 위로한다는 것은 힘든 마음을 잠시 달래준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돌려준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이케다 다이사쿠와 루 매리노프의 대담집이다. 두 사람은 내면의 힘과 가정교육에서 시작해 격려와 낙관주의, 인간과 사회의 치유, 대화와 평화, 생과 사, 여성과 문화, 인간혁명과 세계시민에 이르기까지 꽤 넓은 주제를 이야기한다. 17개의 장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는 각각 다른 주제처럼 보였던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첨단과학의 시대 과연 우리는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


읽으면서 가장 오래 인상적인 단어는 치유였다. 우리는 보통 치유라고 하면 상처가 사라지는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치유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상처가 없었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상처를 가진 채로도 다시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회복하는 의미다. 그래서 책에서 말하는 ‘치유’와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혼자 자신의 상처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을 던져주고, 때로는 내가 가진 가능성을 다시 발견하게 해줄 때 비로소 내 삶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대화가 치유로 이어진다는 챕터였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말을 주고받지만, 정말 대화를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서도 머릿속으로 내가 할 말을 준비하고 있고, 상대의 생각을 이해하기보다 설득하려 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만나면 이해보다 승패를 먼저 생각한다. 말을 많이 하는 시대인데 이상하게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더 멀어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말하는 대화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방법이 아니다. 상대를 바꾸기 위한 말이 아니라 상대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말한다.

철학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삶이 힘들 때 빨리 답을 얻고 싶어 한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관계가 좋아지는지, 어떻게 하면 불안을 없앨 수 있는지 누군가 정답을 알려주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정답을 외워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훨씬 많다. 죽음 앞에서 무엇을 믿을 것인지, 실패한 뒤에도 다시 살아갈 이유를 어떻게 찾을 것인지,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내가 가진 삶을 무엇으로 의미 있게 만들 것인지. 이런 질문에는 하나의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은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열쇠라기보다, 삶의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꾸는 힘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점이 계속 생각났다.


힘든 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힘든 일을 바라보는 내가 조금 달라지는 것.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그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철학이 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힘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 책은 충분히 그 역할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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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ㅣ 열린책들 테마 컬렉션 : 호러
브램 스토커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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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드라큘라』 열린책들 세계문학 테마 컬렉션

브램 스토커




드라큘라를 이번에 처음 읽은 것은 아니다.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에는 다른 출판사의 판본으로 읽었고, 두 번째도 또 다른 출판사의 번역본으로 읽었다. 그리고 이번에 열린책들 판본으로 다시 『드라큘라』를 펼쳤다. 같은 이야기를 세 번째 읽는다는 건 조금 이상한 경험이다. 이미 조너선 하커가 트란실바니아로 떠난다는 것도 알고, 그곳에서 만나는 드라큘라 백작이 어떤 존재인지도 알고, 루시에게 벌어지는 일도 알고, 결국 사냥꾼들이 백작을 쫓아가게 된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무섭다. 오히려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것이 보였다. 처음 읽을 때는 “드라큘라가 무섭다”였다면, 세 번째 읽기에서는 왜 이 이야기가 1897년에 쓰인 이후 100년이 훨씬 넘도록 사라지지 않았는가가 더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드라큘라가 단순히 흡혈귀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았다. 욕망과 억압, 성적 긴장, 죽음에 대한 공포, 여성의 욕망, 질병에 대한 불안, 과학과 미신의 충돌, 빅토리아 시대가 느끼던 사회적 불안까지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고 느낀다.




우리가 이미 드라큘라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독자에게 드라큘라는 너무 유명하다. 검은 망토, 창백한 얼굴, 붉은 눈, 송곳니, 목을 무는 흡혈귀. 지금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공포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브램 스토커의 원작을 읽으면 우리가 알고 있던 ‘드라큘라’라는 이미지가 사실 이 소설에서 얼마나 천천히 만들어졌는지를 알게 된다. 특히 초반의 조너선 하커 부분은 영화에서 익숙하게 보던 드라큘라보다 훨씬 기묘하다. 하커는 자신이 위험한 곳에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낯선 나라, 이상한 마을 사람들, 밤이 되면 외출하지 말라는 충고, 그리고 아무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는 불안. 공포는 괴물이 등장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가장 강하게 느꼈던 부분 중 하나는 드라큘라의 공포가 상당히 관능적이라는 점이다. 특히 1부의 여성 흡혈귀가 조너선 하커에게 다가오는 장면. 여자의 머리가 천천히 내려오고, 입술이 그의 입과 턱 아래로 다가온다. 혀로 이와 입술을 핥는 소리가 들리고 뜨거운 입김이 목에 닿는다. 그리고 마침내 두 개의 날카로운 치아가 피부를 누른다. 흥미로운 것은 조너선이 그 순간 완전히 공포에 질려 도망치려고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흥분하고 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몽롱한 상태에서 그 순간을 기다린다. 이 장면은 단순한 흡혈 장면이 아니다. 공포와 욕망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만난다. 단순한 공포소설이 아니게 된다. 19세기 말의 소설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흥미롭다. 당시 사회가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웠던 욕망들이 괴물의 몸을 빌려 나타난 것은 아닐까? 금지된 욕망, 통제할 수 없는 성적 욕망, 낯선 타자에 대한 매혹, 그리고 그 욕망에 끌리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두려워하는 마음. 드라큘라는 어쩌면 인간이 숨기고 싶었던 욕망을 가장 아름답고 끔찍한 형태로 만들어낸 존재인지도 모른다.




피는 공포가 아니라 생명의 상징이었다

이번에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피’였다. 루시가 병들어 창백해지고, 계속해서 수혈을 받는다. 그런데 목에는 두 개의 작은 구멍이 남아 있다. “이빨로 씹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흔적. 처음 읽을 때는 그저 흡혈귀의 흔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읽으니 이 장면이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현대 독자에게는 너무 익숙한 흡혈귀의 흔적이지만, 작품 속 인물들에게 그것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상처다. 수혈이라는 당시의 근대 의학과 흡혈이라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한 사람의 몸 안에서 충돌한다. 이것이 『드라큘라』의 재미다. 한쪽에는 의사와 과학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민간 전승과 종교, 미신이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과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수혈조차 이 작품에서는 죽어 가는 루시를 붙잡기 위한 절박한 의학적 행위로 등장한다. 피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면서 동시에 생명을 빼앗는 매개가 된다. 드라큘라는 피를 마신다. 반면 반 헬싱과 의사들은 피를 공급한다. 한쪽의 피는 생명을 빼앗고, 다른 한쪽의 피는 생명을 연장한다. 결국 『드라큘라』에서 피는 생명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경계다.




드라큘라는 왜 여성의 목을 물까 생각해봤다.

목이라는 신체 부위도 생각해 보게 된다. 왜 하필 목일까? 목은 생명과 가까운 곳이다. 맥박이 뛰고 피가 흐른다. 그리고 동시에 상당히 사적인 신체 부위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목에 입술을 대는 행위는 단순한 공격과는 다른 감각을 가진다. 그래서 흡혈은 폭력이면서 키스처럼 보이고, 키스이면서 죽음처럼 보인다. 이 모호함이 드라큘라를 특별하게 만든다. 그는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괴물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생명에 침투하는 존재다. 그래서 흡혈은 살인보다 훨씬 친밀하다. 그리고 바로 그 친밀함 때문에 더 불쾌하고 더 무섭다.

좀 색다른 드라큘라를 만나고 싶으시다면 열린책들 버전으로 추천하고 싶다

#드라큘라

#공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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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 - 아무도 나를 구원할 수 없을 때, 스스로 구원이 되어라 ㅣ 흔들릴 때마다 나는 OO를 읽었다 2
빅터 프랭클 지음 / 닻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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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

빅터 프랭클 지음 | 닻

아무도 나를 구원할 수 없을 때, 스스로 구원이 되어라




강제수용소라는 극한 환경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은 그의 사유는 어디에서 왔을까? 궁금해서 펼친 책이다.

빅터 프랭클을 처음 읽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그의 문장들을 조금 다른 사유의 방식으로 읽게 되었다. 아우슈비츠라는 극한의 상황을 통과한 사람이 어떻게 인간의 자유와 존엄, 삶의 의미를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을 빼앗긴 절망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의지!!



자극과 반응 사이, 그 빈 공간에 우리의 자유가 있다.

자유란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프랭클이 말하는 자유는 조금 다르다. 내가 처한 상황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더라도, 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일상의 언어로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왜냐면 실제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프랭클의 문장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고통을 관념적으로 이야기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이 바닥까지 내려간 장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도달한 사유이기에, 그의 말에는 감히 우리가 흉내 낼 수 없는 무게가 있다.

고통을 겪는 인간을 어떻게 바라볼것인가 책은 묻는다.



프랭클에게 인간은 환경의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다. 인간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는 존재다. 삶이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기보다, 지금의 삶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특별하면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음에 남은 것은 성공에 대한 그의 태도였다.



우리는 목표를 세우고 성공하기 위해 살아가지만, 프랭클은 성공과 행복을 삶의 직접적인 목표로 삼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자신이 의미 있다고 믿는 일에 충실하게 살아갈 때 성공이나 행복은 결과로 따라올 수 있다고 본다.

이 말을 읽고 나니 요즘의 삶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우리는 너무 자주 결과를 확인한다. 얼마나 성장했는지, 무엇을 이루었는지,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지는 않았는지 끊임없이 비교한다. 그러다 보면 '나는 무엇을 위해 이것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뒤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빠른 대답을 요구하는 요즘 이 책이 주는 가치는 참 크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을 사랑하는 분 그리고 깊은 좌절감을 느끼시는 분들에게 더욱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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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의 교양 - 알고도 모른 척해야 하는 지위의 법칙 ㅣ 세계척학전집 7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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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의 교양」

이클립스





어떤 사람 앞에서 자꾸 작아지는 당신에게라는 이 책의 첫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우리는 왜 어떤 사람 앞에서는 유난히 작아질까.

왜 어떤 사람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충격받는가? 우리의 사적인 판단 그 기준은 뭘까? 어디서 오는 감정인지 궁금했다.

그렇다면 거꾸로 물어볼 수도 있다. 나는 지금, 몇 등일까....




우리는 서열을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우리 사회는 지독하게도 서열 중심이지 않은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있는지, 누가 더 많은 것을 가졌는지, 누가 인정받는 사람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1부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서열을 감지하고 만들어내는지를 들여다본다. 책이 언급하는 드 발의 침팬지 정치학부터 사폴스키의 서열 스트레스, 루소의 자기애와 이기심, 리어리의 소시오미터, 헨릭의 지배와 위신, 보엠의 평등의 기원, 순자의 예까지.




읽다 보면 서열이 단순히 인간 사회가 만들어낸 나쁜 관습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왕은 혼자 왕이 될 수 없다.

왕을 왕으로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서로를 평가하고, 인정하고, 비교하면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그래서 서열은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상적인 서열의 신호들 오히려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는 신호가 되기도 하고, 부자가 왜 한가한 척했는지 설명하는 베블런의 과시적 여가를 읽으면,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나 스스로 판단하는 내가 아니라 ‘보여지는 나’를 의식하며 살아왔는지도 알게 된다.

지위 경쟁은 끝이 없다.



한 사람이 올라가면 또 다른 사람이 올라가고,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게 되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원하는 것을 얻었는데도 허무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 책 후반부에 언급되는 켈트너의 권력 역설은 권력을 얻은 사람이 오히려 공감 능력을 잃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리지웨이의 지위 구성 이론은 우리가 믿고 인정하는 순간 존재하지 않던 서열조차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능력주의라는 말조차 원래는 이상적인 사회를 칭찬하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공정하다고 믿는 기준 아래에서도 끊임없이 줄을 세운다.

나조차도 타인의 기준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그리고 오늘 밤,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다.



나는 꼭 몇 등이어야 하는가. 그 질문이 과연 중요한지를...

인문학적 사유에 관심많으신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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