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숨 섬 - 마음을 찾는 사람들
김한수 지음 / 생각정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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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 쉼 숨 섬 」 마음을 찾는 사람들

김한수 지음 | 생각정원




표지부터 아름다운 이 책, 처음엔 소설인가 싶었다.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제목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쉼. 숨. 섬. 세 글자가 이상할 만큼 천천히 마음에 들어왔다. 우리는 쉬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숨을 쉬면서도 정작 자신의 호흡을 의식하지 못하며,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면서도 끊임없이 나만의 시간을 원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답이 아니라 잠시 멈춰 내 마음이 무엇을 말하는지 들어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쉼 숨 섬』은 27명의 사람에게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신부와 스님, 목사와 불교학자 같은 종교인뿐 아니라 만화가, 래퍼, 야구선수, 화가, 정신과 전문의, 물리학자, 작가까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책의 이야기는 특정 종교의 가르침으로 좁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마음을 돌보고, 삶의 균형을 되찾았는가를 보여준다. 그래서 더 좋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음을 바꾸라’고 다그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을 없애려고 하기보다 그 흔들림을 바라보는 법을 이야기한다. 존 카밧진의 명상 이야기에서처럼 명상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어려운 수행이 아니라 숨을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할 수 있다. 마음의 고통을 없애려 하기보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 그 단순한 행위가 생각보다 깊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여러 사람의 삶을 통해 반복된다.




특히 마음에 남았던 것은 고통을 삶에서 떼어내야 할 불필요한 것으로 보지 않는 점이다.

박대성·정미연 화가의 이야기처럼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고통마저 나의 일부라면, 삶을 회복한다는 것은 상처가 전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품은 채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는 자꾸 괜찮아지려고 한다. 빨리 털어내고,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어떤 마음은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바라보아야 비로소 자기 자리를 찾는다고 책은 말한다.




4부에서는 종교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지만 오히려 종교의 경계를 넘어선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수와 명상, 불교와 마음공부, 신의 침묵에 관한 이야기가 서로 다른 언어로 이어진다. 그들의 답이 모두 같지는 않다. 오히려 다르기 때문에 더 흥미롭다. 신을 만나는 방식도, 침묵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삶을 바라보는 방식도 다르지만 결국 그들이 향하는 곳에는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쉼’과 ‘숨’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숨을 쉰다는 것은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행위만도 아니었다.



쉼은 나를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고, 숨은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는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섬’은 무엇일까. 혼자이되 고립되지 않는 자리라고 읽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도 대신 들어갈 수 없는 자기만의 마음이 있다. 이 가을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숨 고르기 해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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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는 어떻게 권력이 되는가 - 문명을 이끈 50가지 발명품으로 읽는 세계사
신무연 지음, 정기문 감수 / 다산초당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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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 도구는 어떻게 권력이 되는가」 문명을 이끈 50가지 발명품으로 읽는 세계사

신무연 저 · 정기문 감수 | 다산초당



우리는 흔히 역사를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왕이 바뀌고, 전쟁이 일어나고,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면서 시대가 움직였다고 배워왔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진다. 어쩌면 문명의 방향을 바꾼 것은 위대한 인간의 의지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와 그것을 둘러싼 힘의 관계였을지도!!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불, 바늘, 쟁기, 문자, 바퀴처럼 너무 익숙해서 역사적 의미를 생각해본 적조차 없는 것들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불은 인간이 자연의 위협을 견디게 했고, 바늘은 몸을 추위로부터 보호했으며, 쟁기는 농업 생산력을 바꾸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도구가 인간을 편리하게 만든 순간, 그 도구를 가진 사람에게는 새로운 힘이 생긴 것은 아닐까.



쟁기는 단순히 농사를 편하게 만든 도구가 아니라 토지와 생산력, 그리고 사유재산의 문제와 연결된다. 문자는 지식을 기록하는 기술이면서 동시에 정보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간격을 만들었다. 화폐는 교환을 편리하게 했지만 국가의 신용과 경제 질서를 만들어냈다. 콘크리트는 건축 재료를 넘어 거대한 제국의 질서를 물질적으로 구현했다.

이렇게 읽다 보면 발명품이 더이상 과학의 발명품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종이는 지식을 멀리 전달했고, 인쇄기는 지식의 확산 속도를 바꾸었다. 증기기관은 인간의 노동과 생산방식을 재편했고, 철도는 단순히 사람과 물건을 이동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과 공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했다. 전신과 전화가 등장하면서 정보의 속도 자체가 권력이 되었다.

기술은 누구를 자유롭게 했으며, 누구에게 새로운 통제력을 주었을까.



기관총과 원자폭탄에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진보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예를 들면 책에 언급된 하버-보슈법은 식량 생산을 크게 늘리는 기술이면서 동시에 폭약 생산과도 연결된다. 페니실린은 수많은 생명을 살렸지만, 기술의 가치가 발견 그 자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대량생산되고 사회에 배분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발명’보다 ‘소유’와 ‘독점’이라는 단어였다.

무언가를 발명하는 것과 그것을 지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누군가는 그것을 이용해 더 많은 부를 얻고, 누군가는 그 기술에 접근하지 못해 새로운 격차의 아래쪽에 놓인다. 이 책이 발명품의 역사를 따라가면서 특허와 제도의 문제를 반복해서 짚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기술은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기술을 둘러싼 법, 자본, 국가, 시장, 독점이 함께 움직인다.



그런 점에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을 다루는 부분은 특히 더 몰입해서 읽게된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매일 사용하고 알고리즘의 추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책은 익숙함 때문에 보이지 않게 된 질문을 다시 꺼내놓는다.

내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인가, 아니면 도구가 나의 행동을 설계하고 있는 아닌지에 대해!!!!



월드 와이드 웹은 무료처럼 보이는 서비스 뒤에 어떤 가치가 거래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소셜미디어와 알고리즘은 우리의 관심 자체가 경제적 자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블록체인에서는 국가나 제도 없이도 신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로봇, 유전자 가위, 인공지능에 이르면 이야기는 더 이상 과거의 세계사가 아니다.

특히 인공지능을 다루는 마지막 부분에서 던지는 질문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생각하는 능력마저 도구가 대신할 수 있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무려 50개의 도구를 따라가며 인간의 사유를 다시 묻는 책이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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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는 책
사라시나 이사오 지음, 이진원 옮김 / 까치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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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 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는 책」

사라시나 이사오/ 까치




2025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읽었기 때문에 이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종의 기원의 경우...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자연선택과 생존 경쟁, 변이, 적응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따라가며 읽었는데도 책을 덮으면 머릿속에는 커다란 줄기 몇 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고전은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서 『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는 책』이라는 제목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읽어보니 이 책은 정말로 『종의 기원』을 읽은 척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라기보다, 이미 읽어본 사람에게 다시 읽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현대 생물학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이지만, 오늘날의 독자에게는 꽤 까다로운 책이다. 19세기의 문장과 당시의 과학적 지식 속에서 쓰였고, 일단 문장이 복문이라 번역을 넘어 난이도 허들이 높다.


하나의 논점을 여러 장에 걸쳐 반복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다윈이 자신의 이론에 제기될 수 있는 반론을 예상하고 하나하나 답해가는 과정까지 담겨 있기 때문에, 처음 읽는 사람에게는 핵심 논리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책은 바로 그 복잡한 원전을 다시 펼쳐 보여준다.


특히 좋았던 것은 처음부터 다윈의 이론을 단순한 몇 개의 문장으로 압축해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육과 재배 환경에서 나타나는 변이 → 자연 상태의 변이 → 생존 경쟁 → 자연선택으로 이어지는 해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선택이라는 결론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선명해진다.

다윈에게 중요한 것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생물은 끊임없이 변이를 만들어내고, 모든 개체가 동일한 조건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며, 환경 속에서 유리한 차이를 가진 개체가 더 많이 생존하고 번식하면서 그 특성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그렇게 아주 작은 차이가 긴 시간 동안 축적되면서 생물의 모습과 종의 분화가 이루어진다.

원전을 읽었을 때는 여러 장에 흩어져 있던 이 생각들이 이 책에서는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다시 읽으니 다윈이 얼마나 집요하게 자신의 이론을 방어하고 있었는지도 보였다.

본능, 잡종 형성, 지질학적 기록의 불완전성, 지리적 분포, 발생학과 흔적 기관까지. 지금의 생물학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보이는 것들도 당시에는 거대한 반론이 될 수 있었다. 다윈은 자신의 이론에 불리해 보이는 사례들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책 안으로 끌어들여 설명하려 했다.


그 점에서 『종의 기원』은 단순한 ‘진화론 책’이 아니라 하나의 과학적 가설이 어떤 의심과 반론을 견디며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했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며 중요한 것은 다윈의 모든 설명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옳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19세기의 다윈이 알고 있던 유전학과 현대 생물학의 지식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다. 당시에는 유전의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알지 못했고, 이후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이 발전하면서 진화론은 훨씬 정교한 형태로 확장되었다.

그래서 이 책이 ‘오류는 바로잡고 핵심은 꿰뚫는다’는 방향성을 말하는 것이 더 설득력있게 느껴진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모든 문장을 현재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니깐...

그 문장이 어떤 시대의 질문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어떤 지식에 의해 수정되고 확장되었는지를 함께 보는 일일 테니까.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진화’라는 말인데...

우리는 진화를 너무 쉽게 ‘더 나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선택에서 중요한 것은 더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고 번식하는 데 유리한 특성이 남는 과정이다. 진화에는 목적지가 없고, 생명은 어떤 완성된 형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환경과 관계를 맺으며 달라진다. 살아남은 것은 반드시 가장 강한 것도, 가장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그저 특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데 조금 더 유리했던 특성이 다음 세대로 이어졌을 뿐이다.


2025년에 『종의 기원』을 읽었고, 그 뒤에 이 책을 읽었다.

덕분에 원전을 읽었을 때 지나쳤던 문장들에 눈이 떠지는 기분이다. 처음에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다윈의 설명이 이번에는 하나의 큰 지도 위에 놓이는 느낌이었다.



종의 기원을 다시 펼쳐보고 싶다. 간절하다.



#종의기원

#과학추천

#다윈

#진화론

#종의기원을읽은척할수있는책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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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 인류세 - 인간과 생태계를 잇는, 인류학의 새로운 자연사
애나 로웬하웁트 칭 외 지음, 김희정 옮김 / 해나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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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패치 인류세』인간과 생태계를 잇는, 인류학의 새로운 자연사

애나 로웬하웁트 칭 · 제니퍼 데거 · 올더 켈러먼 색세나 · 페이페이 저우 지음 | 해나무



인류세, 그리고 ‘패치 인류세’라는 개념부터 알아야 했다. 그래서 찾아봤다. 지구는 하나이지만, 인류세는 하나의 얼굴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인류세를 말할 때 떠올리는 것은 지구 전체를 뒤덮은 인간의 영향이다. 기후변화, 오염, 생물다양성의 감소처럼 거대한 규모의 변화들이다. 정작 지구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데 집중하다 보면, 정작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구체적인 장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을 저자들은 말한다.


패치(patch)는 서로 다른 역사와 생태,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얽혀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현장이라고 한다. 숲과 농장, 도시와 하수구, 강과 습지, 식물과 동물, 인간의 노동과 기술이 각각의 방식으로 만나며 만들어내는 하나의 장면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인류세를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로 봉합하지 않고, 오히려 잘게 나누어 바라본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인류세라는 거대한 이름 아래에서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궁금했다.


저자들은 빅데이터와 전 지구적 규모의 분석만으로는 인류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세계 전체를 한눈에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한 동시에, 한 장소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오래 들여다보는 시선도 필요하다. 거대한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는 쥐 한 마리, 강을 뒤덮은 부레옥잠, 멀리 날아온 방사성 물질, 특정 지역에 퍼진 황소개구리 같은 존재들이 오히려 인류세의 작동 방식을 선명하게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재밌었던 것은 하노이의 하수도와 쥐 이야기였다.

근대적 도시와 위생이라는 인간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하수도는 예상하지 못했던 쥐들의 번식지가 되었다. 인간이 만든 인프라가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생물에게도 새로운 삶의 조건을 제공한다는 사실은 흥미롭기도 하고 또 놀랍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자연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문명의 질서 안에 숨어 있던 비인간 존재들이 오히려 그 질서의 허점을 드러내는 셈이다.


부레옥잠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었다. 어렸을 때 자연 교과서에서 만났던 부레옥잠은 내게 참 시닙로운 존재인데....

처음에는 아름답고 희귀해서 식물원들이 앞다투어 들여온 식물이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정착한 뒤에는 강과 호수와 운하를 뒤덮으며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 여기에서 저자들이 던지는 질문은 더 흥미롭다.


인프라를 반드시 인간이 만든 것으로만 정의해야 할까?


부레옥잠의 군집도 물의 흐름을 바꾸고, 산소량을 변화시키고, 다른 생물들의 삶의 조건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생태적 인프라가 아닐까.

인간이 만든 도시와 도로만 인프라가 아니라, 식물과 동물과 미생물 역시 자신들의 방식으로 환경을 만들고 바꾼다. 인류세라는 이름은 인간이 지구를 지배한다는 선언처럼 들리지만, 책을 읽다 보면 오히려 반대의 장면들이 보인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세계를 다른 생명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점유하고 변형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인류세는 인간의 시대인 동시에 인간만의 시대가 아닐지도 모른다.


후쿠시마에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이 바람을 타고 지구 반대편까지 이동하고, 식물과 균류가 그것을 흡수하고, 다시 그것을 먹은 생명체의 몸으로 이동한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이 연결망을 실감했다. 한 장소에서 발생한 사건이 그곳에 머물지 않는다. 물질은 국경도, 인간이 그어놓은 지도도 모른다. 인간이 세계를 분절해서 이해하는 동안 지구는 끊임없이 연결되어 움직인다.


서로 다른 장소와 생명, 역사와 지식에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것. 한 지역에서 얻은 설명을 다른 곳에 그대로 적용하지 않는 것. 각각의 패치가 가진 차이를 충분히 들여다본 뒤에야 비로소 전체를 생각하는 것.

어쩌면 이것은 인류세를 바라보는 태도이면서 동시에 세상을 읽는 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꾸 전체를 알고 싶어 한다. 특히 최근에 인공지능 시대에는 그런 현상이 가속화된다.

하나의 원인을 찾고,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고, 하나의 숫자로 세계를 정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세계는 그렇게 단정하게 생기지 않았다. 숲에는 숲의 시간이 있고, 인간에게는 인간의 시간이 있으며, 쥐와 부레옥잠과 균류에게는 또 다른 시간이 있다. 서로 다른 시간들이 한 장소에서 포개질 때 우리가 마주하는 것이 바로 하나의 ‘패치’일 것이다.



#인류세

#패치

#해나무

#과학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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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설명되지 않는다
이윤서 지음 / 더블:엔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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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되지 않는 그림의 이면을 읽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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