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따위 멸망해도 ㅣ 사계절 1318 문고 155
남유하 지음 / 사계절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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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세상 따위 멸망해도】 멸망의 끝에서 발견하는 일곱 조각의 사랑과 구원

남유하/ 사계절 펴냄




청소년 소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되는 일일까, 아니면 세상이 생각만큼 다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하나씩 알아가는 일일까. 그래서인지 청소년 소설을 읽을 때면 오래전 지나온 나의 청소년 시절을 떠올리다가도, 지금의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마음을 발견하곤 한다.


남유하 작가의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늘 흥미롭다. SF와 판타지, 호러를 넘나들며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을 그려내는 작가이기도 하고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무엇보다 따뜻하다. 이 소설집은 제목부터 그렇지 않은가? 세상이 정말 멸망하기를 바랄 만큼 버거운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특히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환경과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청소년이라면, 세상 따위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이 단순한 투정일까?


이 책에는 서로 다른 사연을 지닌 일곱 명의 청소년이 등장한다. 세상이 사라지기를 바랐던 아이, 완벽함을 기준으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세계에서 태어난 아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은 아이, 죽은 친구를 다시 마주한 아이,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벗어나려는 아이까지. 이야기의 배경은 기묘하고 한편으로 또 섬뜩하지만, 그들이 겪는 외로움과 불안,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표제작 「세상 따위 멸망해도」에서 주인공은 어느 날 눈을 뜨자 가족도 이웃도 사라진 세상과 마주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2년 반 전에 헤어진 연인 재이를 만난다. 두 사람은 텅 빈 편의점에 앉아 삼각김밥과 바나나 우유를 먹으며 지난날의 이야기를 나눈다. 세상의 종말이라는 거대한 사건 앞에 놓인 장면이 고작 편의점 탁자와 간단한 음식이라는 점은 어쩌면 사랑스럽다. 세상이 무너져도 사람은 누군가와 마주 앉아 먹고, 이야기하고, 지난날을 기억한다.


가족에게 폭력을 당하는 아이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상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타인의 상처까지 헤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랑이 있었는데도 관계는 끝났고, 세상에서 둘만 남게 된 뒤에야 그들은 자신들이 놓쳤던 마음을 돌아본다.

그렇다면 사랑은 모든 것을 구원할 수 있을까. 작가는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는다. 돌아가야 할 세상에는 여전히 고통이 남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고 해서 현실이 저절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누군가 나와 함께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게 해준다면,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단편에서 멸망은 모든 것의 끝이면서, 한때 끝났던 관계와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시작이기도 하다.





「에그」는 또다른 디스토피아 소설이 떠올랐다.

벽한 인간을 만들겠다는 사회의 욕망이 섬뜩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인공 자궁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대부분이 우수한 유전자를 바탕으로 설계되는 세계. 그 안에서 불완전하다고 판정받은 주인공은 자신이 잘못 태어난 존재인지 의심한다. 하지만 작품을 읽다 보면 오히려 질문의 방향이 바뀐다. 인간을 불량품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좌우가 다른 얼굴이나 변덕스러운 성격일까, 아니면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모든 존재를 하나의 기준에 맞추려는 사회일까.


완벽함을 추구하는 마음은 얼핏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처럼 보인다. 그러나 완벽함의 기준을 정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가 자신의 가치를 의심해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려는 마음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준비시키는 일이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인지, 혹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삶에 아이를 맞추려는 것인지 돌아보게 된다.


「살아남은 아이들」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피해 거대한 무균실에 모여 사는 아이들. 그곳은 위험으로부터 보호받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삶의 많은 부분이 통제된 장소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안전하게 살아남았지만 자신이 살아 있다는 감각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 위험이 없는 세계와 살아 있는 세계는 과연 같은 것일까. 무균실같은 공간을 만들어주려는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의 어른들, 이 부분은 작가의 말을 읽으며 더욱 공감된다.




책은 마냥 비극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고통을 이겨내면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는 식으로 희망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남유하 작가가 건네는 희망은 조금 더 조용하고 단단하다. 세상이 갑자기 다정해지지 않아도, 상처가 말끔히 사라지지 않아도, 우리는 누군가의 손을 잡을 수 있고 어제의 나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


청소년의 삶을 어른의 시선으로 재단하지 않고, 그들이 느끼는 절망과 사랑을 그 자체로 바라보는 태도도 인상적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미래를 준비하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미래에 도달하기 전까지 살아내야 하는 오늘이 있다. 지금의 고통을 언젠가 극복할 과정으로만 바라본다면, 정작 그들이 오늘 겪는 외로움과 두려움은 어디에 놓일까.


세상의 끝에서도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때로는 작은 마음 하나가 다시 살아갈 세계를 만들어 준다고 말해주는 소설이다.




#남유하

#청소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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