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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正熙) - 우리들의 대통령 이야기
김용삼 지음 / 플로우북스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정희(正熙) 위인전 속 한 인물을 다시 읽는다는 것
과외를 하러 갔다가 아주 오래된 위인전 한 권을 보았다. 그 안에 박정희가 있었다. 순간 의아했다. 왜 박정희가 위인전에 들어가 있을까?
어린 시절 위인전은 대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인물들의 이야기였다. 책 속 인물들은 무언가를 성취했고, 세상을 바꾸었으며, 본받을 만한 삶을 살았다고 여겨졌다. 그래서인지 위인전에서 박정희라는 이름을 발견했을 때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겼다. 한 인물을 위인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기준은 무엇일까.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성과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함께 살펴야 할까.
『정희(正熙)』를 읽으며 그때의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박정희라는 인물에게는 쉽게 하나의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여러 면이 겹쳐 있다. 가난했던 한국 사회가 산업화를 거치며 크게 변화한 역사, 그 과정에서 추진된 경제개발 정책, 그리고 장기간의 집권과 민주주의·인권을 둘러싼 문제까지. 어느 한쪽만 들여다보면 다른 한쪽이 가려진다.
나는 특히 경제개발의 성과를 한 사람의 업적으로만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국가의 방향을 정하고 정책을 추진한 지도자의 역할은 분명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경제개발은 지도자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들, 농촌에서 땀 흘린 사람들, 기술을 익히고 산업 현장을 지킨 사람들, 자녀를 교육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부모들. 이름이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국민이 있었기에 변화는 현실이 될 수 있었다.
위대한 국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도자의 결단을 이야기하는 동안 그 결단을 실제 삶의 변화로 만들어 낸 사람들의 몫이 지워져서는 안 된다. 한 시대의 성취를 특정 인물의 공으로만 돌린다면, 그 시대를 살아낸 국민은 역사의 주인공이 아니라 누군가의 업적을 완성하기 위한 배경으로 남게 된다.
그렇다고 경제성장의 성과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가 발전하면 인권과 민주주의도 저절로 해결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먹고사는 문제가 나아지는 것과 자신의 권리를 지키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저절로 같은 결과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려 18년이라는 집권 기간을 돌아볼 때도 경제개발의 성과만큼이나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었는지, 시민의 자유와 권리는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질문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피를 먹고 자란다 !!
이 책은 박정희의 사적인 생활과 인간적인 면모, 경제개발을 둘러싼 선택,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여러 장면으로 보여 주려 한다. 한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들여다보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적인 면모를 이해하는 것과 정치적 책임을 평가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개인의 삶에 대한 이해가 공적인 권력의 행사까지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오래전 위인전에서 박정희를 발견했을 때 내가 품었던 의문은 어쩌면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는 누구를 위인으로 기억하는가. 경제적 성과를 이룬 지도자라면 그 과정에서의 다른 문제들은 어디까지 함께 평가해야 하는가. 한 인물의 업적을 기억하는 일과 그를 본받을 만한 인물로 제시하는 일은 같은 것일까.
한 시대의 역사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요약될 수 없다. 지도자의 결정도 역사의 일부지만,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노동과 희생, 기대와 좌절 역시 역사의 일부다. 박정희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그를 위인으로 인정할지 말지를 서둘러 결정하는 일보다, 우리가 역사를 어떤 기준으로 기억해 왔는지 돌아보는 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앞으로 수년 후 지금의 정치인들이 또 어떻게 평가될 지 후손들에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