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꽃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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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서리꽃』 1권




조정래 장편소설/ 해냄








참 오래 살아낸 사람이 쓴 사랑 이야기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작가가 말했다. 사랑 이야기는 수없이 많은데, 왜 하필 ‘슬픈 사랑’일까. 나는 그 슬픔의 근원이 궁금했다.

『서리꽃』 1권에서 만난 사람은 화가를 꿈꾸는 윤소인, 철학을 공부하는 이재이, 그리고 재이의 절친 민태석이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사랑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처음부터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사랑의 주변을 서성이는 느낌이다.




윤소인은 화가를 꿈꾼다. 하지만 꿈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실용과학자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소인에게 남겨진 것은 그림에 대한 재능이나 꿈만이 아니라 감당해야 할 빚이다. 어머니도 파출부 일을 하게 되었으니...결국 소인은 미술학원에 나가 아이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생계를 꾸려가야 한다. 예술을 꿈꾸지만 현실은 생활비를 요구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에게 정작 그림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삶의 문제가 놓여 있는 것이다.




이재이는 또 다른 의미에서 자신의 삶을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한다. 철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아버지의 강압적인 뜻 앞에서는 꼼짝하지 못한다. 자신의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도이면서 정작 자신의 인생에서는 주체가 되지 못하는 사람. 재이의 모습에서는 지식과 삶 사이의 묘한 간극이 보인다. 그리고 그 곁에 민태석이 있다. 재이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태석은 두 사람의 관계를 바라보면서 이야기에 또 다른 결을 만들어내는데 흥미진진하다.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간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가 계속 이상했다. 대화가 옛스럽다. 처음에는 배경이 꽤 오래전인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소설의 배경은 2020년이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살아가는 시대, 무엇이든 검색하고 연결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순간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단순히 작가가 시대의 언어를 따라가지 못해서 생긴 낯섦만은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그 어색함 속에서 조정래 작가가 2020년이라는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고, 물질적으로는 어느 때보다 풍요로워졌지만 과연 우리는 그만큼 행복해졌을까.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보다 화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지고, 원하는 것을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된 만큼 욕망은 더 커졌다. 인물들이 나누는 조금은 오래된 듯한 대화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돌아보게 한다.

조정래 작가에게 스마트폰과 물질문명은 편리함의 상징인 동시에 인간의 삶을 잠식할 수 있는 문명의 얼굴처럼 보인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에 예속될 수도 있다는 염려. 물질이 풍요로워질수록 사람의 마음은 빈곤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 그것이 소설 곳곳에서 은근하게 느껴졌는데 나만 그런가





서장에는 여러 차례 큰 수술을 받은 작가가 의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글을 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대목에서는 숙연해졌다. 한평생 글을 써온 사람에게 글쓰기는 결국 삶을 놓지 않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읽을수록 작품 속 이야기와 작가의 시간이 겹쳐 보였다. 오래 살아낸 사람이 바라보는 사랑, 인간, 문명에 대한 생각이 한 권의 소설 안에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슬픈 사랑’으로 돌아온다.

윤소인은 자신의 꿈을 위해 살아가지만 현실은 빚과 생계를 요구한다. 이재이는 철학을 공부하면서도 아버지의 권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민태석은 친구의 곁에서 그들의 관계를 지켜본다. 세 사람의 사랑은 단순히 마음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꿈과 현실, 가족과 책임, 시대와 개인의 욕망이 끊임없이 그들 사이에 끼어든다.






어쩌면 조정래 작가가 말한 슬픔은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것만으로는 삶을 선택할 수 없는 순간, 바로 그곳에서 슬픔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1권 후반부 소인에게 닥친 불행 뭔가 슬픔을 암시하는데 나의 착각이기를!!






1권에서는 아직 그 슬픔의 정체를 모두 알 수 없다. 다만 윤소인과 이재이, 그리고 민태석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한 가지 질문은 점점 선명해진다.

사람은 사랑만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랑이 끝내 ‘서리꽃’이 된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2권에서 그 답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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