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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대연쇄
단요 지음 / 사계절 / 2026년 6월
평점 :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존재의 대연쇄
단요 | 사계절
단요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면 늘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도대체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해내는 걸까.
『존재의 대연쇄』 역시 그랬다. 처음에는 낯설고 기묘한 설정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이야기 속에 깊이 들어가게 되고, 책을 덮은 뒤에는 소설 속에서 던진 질문이 현실까지 따라온다. 인간과 기계, 신과 인간, 생명과 비생명,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흔들어놓으며 결국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독자를 세운다.
SF를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좋은 SF의 의미를 떠올렸을 때 단순히 미래의 기술을 상상하는 소설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계의 질서를 한 번 뒤집어 보여주는 장르가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의 대연쇄』는 꽤나 지적인 독서였다.
여러 작품 가운데 특히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세상의 이름은 기린」이다.
첫 묘사부터 색다르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의 질서가 조금씩 비틀어진다. 별과 달의 색이 왜 창백해졌는지, 밤과 낮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리고 그것이 숨결과 시간과 갈증과 열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읽고 있으면 단순한 SF 단편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문장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별과 달의 색이 창백해진 이유, 밤과 낮이 생긴 이유를 이야기하면서 숨결과 시간과 갈증과 열망이라는 단어를 가져오는 순간, 우주적인 이야기가 갑자기 아주 인간적인 감각으로 느껴지는 따뜻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계의 풍경 하나하나에 기원과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 신화 같기도 하고, 아주 오래된 우화를 읽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읽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여기서 화자는 누구일까?
이 질문 하나 때문에 이야기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화자가 바라보는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와 어딘가 다르고, 그가 말하는 '세상'의 기원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설명과는 다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낯선 이야기가 어느 순간 너무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SF가 반드시 미래의 우주선이나 인공지능, 새로운 문명만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세계의 기원을 새롭게 상상하는 것,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에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것 역시 SF일 수 있겠구나.
특히 '세상의 이름은 기린'이라는 제목도 마지막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어떤 존재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존재를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는 일일까. 아니면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규정하는 일일까.
이 작품은 아름다운데, 그 아름다움이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다.
아름다운 문장 뒤에 질문이 있고, 그 질문 뒤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
그리고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를 읽을 때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감탄했다.
정말이지 이런 작품을 읽고 있으면 'SF 작가란 도대체 얼마나 똑똑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아이디어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와 철학적 질문, 인간의 감정과 세계의 구조를 한꺼번에 설계해야 한다. 독자는 그 복잡한 구조를 모두 이해하지 못해도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며 무언가를 느끼게 되는데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짧지만 강렬했던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구원'이라는 단어를 바라보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흔히 구원이란 마지막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구하고, 무언가를 되돌리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면 이야기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목부터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 문장이 작품을 읽고 난 뒤에는 더 무겁게 다가온다.
무엇을 구한다는 것은 동시에 무엇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구원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완벽하게 모두를 만족시키는 구원이란 애초에 가능한 것일까.
이런 질문을 SF의 설정 안에 밀어 넣는 작가의 사고가 놀라웠다.
책에 실린 작품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서로 연결된다. 신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기술과 인간의 경계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기원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는 작품도 있다.
그런데 결국 계속해서 돌아오는 것은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인간을 기준으로 생명과 비생명을 나누고, 자연과 문명을 구분하고, 현실과 가상을 나눈다. 하지만 그 경계가 정말 절대적인 것인지 묻는 순간 모든 것이 조금씩 불안해진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때문에 이런 질문이 더욱 가까워졌다.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대화를 나누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기억일까, 감정일까, 몸일까, 의식일까.
책을 덮고 나서 생각했다.
기묘하고, 지적이고, 때로는 아름답고, 무엇보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세계를 조금 낯설게 만드는 소설집.
읽은 뒤 질문이 시작되는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