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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여인의 선물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6월
평점 :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 바다 여인의 선물 』 삶의 끝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다섯 편의 이야기

데니스 존슨 / 다산책방
헤밍웨이 이후 가장 시적인 문장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화려한 수식이 아니라 오래 침잠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들. 담담하게 흘러가는데도 문장 하나가 마음에 남는 소설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흐린 하늘이 맑게 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다섯 편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인물과 서로 다른 삶을 보여주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하나의 질문 앞에 서게된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가는가. 그리고 삶의 끝에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첫 번째 이야기 「바다 아가씨의 후한 인심」에서 어느덧 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보다 길어진 한 남자가 자신의 삶을 천천히 돌아본다. 젊은 날에는 중요했던 것들이 희미해지고, 기억조차 조금씩 바래가는 시간을 그는 담담히 받아들인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삶. 사랑하는 이의 추도식을 겪으며 그 초연함이 오히려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아이다호의 별빛」은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으로 재활 시설에 머무는 한 남자의 독백으로 이어진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고,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그의 내면은 불안하면서도 이상하리만큼 현실적이다. 교황님과 사탄에게 보내는 편지는 웃음과 비극이 한 문장 안에서 공존하는 듯 싶었다. 데니스 존슨 특유의 문체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교살자 밥』에서는 장르소설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에는 죽음을 앞둔 작가도 있고, 기이한 집착 속에서 무덤을 파헤치는 시인도 등장한다. 얼핏 보면 모두 엉뚱하고 비현실적인 인물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들은 모두 삶을 견디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누구도 완전히 구원받지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무너지지도 않는다. 그 애매한 경계가 오히려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읽다 보면 이 소설은 사건보다 분위기가 먼저 기억에 남는다. 바다 냄새가 배어 있는 공기, 황혼이 내려앉은 도시, 허무와 농담이 한 문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섞이는 순간들. 그래서 줄거리를 따라가기보다 문장을 천천히 음미하게 된다. 문학은 이야기 자체가 주는 즐거움도 크지만 언어를 오래 바라보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만든다.
책을 덮고 나니 제목이 새롭게 다가왔다. 『바다 여인의 선물』에서 말하는 선물은 특별한 행운이 아니라,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삶은 끝없이 상실을 안겨주지만, 그 안에서도 기묘하게 아름다운 순간을 남긴다. 데니스 존슨은 그 순간들을 누구보다 조용하고, 누구보다 시적으로 건져 올린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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