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날레 - 끝까지 강하고 자유로운 나
수전 구바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나이 든 여자들을 위하여 『피날레_끝까지 강하고 자유로운 나 』





수전 구바 저/정지인 역 | 북하우스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나이 든 여자를 위하여. 그리고 나이 들고 있다는 걸 믿지 못하는 우리를 위하여.

문장의 의미가 깊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를 오래 머물게 했던 문장이다. #다락방의미친여자#여전히미쳐있는 을 울면서 읽었던 나에게 이 책이 주는 의미는 서문부터 장렬하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노년을 삶의 한 시기로 받아들이기보다 어떻게든 미뤄야 하는 사건처럼 여긴다. 나이 드는 것은 실패한 몸의 증거처럼 취급되고, 젊음을 유지하는 것이 하나의 능력이 되어버린 이상한 세상이다.

하지만 수전 구바는 이 책의 첫 장부터 그 통념을 부순다. 암 생존의 경험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저자의 문장들. 현대 의학은 그녀에게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예언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살아 있다. 아니, 단순히 생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쓰고, 사유하고, 질문하고 있다. ( 감사하기까지 한 !!!! )




이 책의 매력은 아홉 명의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는 즐거움이다. 수전 구바는 이들을 단순한 위인전의 주인공처럼 소개하지 않는다. 오히려 늙어가는 몸과 함께 어떻게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나갔는지 보여준다.

1부의 연인들에서는 조지 엘리엇, 콜레트, 조지아 오키프를 만난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도 끝내 자기만의 목소리를 잃지 않았던 여성들이다. 특히 조지 엘리엇이 빅토리아 시대의 편견을 뚫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과정이나, 콜레트가 사회가 부여한 역할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재창조해나가는 모습이 언급된다. 그리고 조지아 오키프는 노년에도 자신의 감각을 멈추지 않으며 예술가로서의 생명력을 이어간다.

2부의 이단아들은 더욱 흥미롭다. 이자크 디네센, 메리앤 무어, 루이즈 부르주아는 사회가 정한 정상성의 바깥에서 살아간 인물들이다. 이들은 주변부에 머무르는 대신 자신만의 언어를 발명해냈다. 특히 루이즈 부르주아의 삶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처럼 느껴진다. 나이가 들수록 창작의 불꽃이 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렬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해 보이는 분이다.

3부의 제목인 현자들은 더욱 마음에 남는다. 메리 루 윌리엄스, 궨덜린 브룩스, 캐서린 더넘은 오랜 세월 자신이 걸어온 길을 공동체와 나누는 존재들이다. 단지 오래 산 사람이 아니라, 오래 살아낸 사람들이다. 자신이 살아낸 시간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되어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수전 구바가 이들을 특별한 천재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들도 늙어가는 몸 앞에서 흔들리고, 상실을 겪고, 불안을 마주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창조를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노년의 롤모델이 이렇게 많았는데, 왜 우리는 지금껏 만나지 못했던 걸까. 어쩌면 이 책은 잊혀졌던 끝까지 살아내는 지성에 관한 여성들의 계보를 복원하는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인상 깊었던 것은 손택이 말하는 노년의 이중 잣대에 대한 이야기였다. 흔히 남성의 노년은 어떤가? 흔히 원숙함, 권위, 연륜이라는 언어로 포장된다. 하지만 여성의 노년은 어떤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거나, 관리의 대상으로 취급되거나, 더 이상 욕망과 창조의 주체가 아닌 사람처럼 여겨진다.

같은 시간의 흐름조차 성별에 따라 다르게 평가받는 것이다.


수전 구바는 바로 오래된 불균형에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더욱 좋았던 것은 노년을 낭만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늙어감에는 상실이 있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시간도 많아진다. 그런데도 그 상실만으로 노년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후에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집중한다. 그래서 책 속에서 만나는 노년기의 창조성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뜨겁게 다가온다.








1장의 문장 '노년의 시간은 더 빨라진다.'

젊은 시절에는 시간이 무한한 자원처럼 느껴지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간은 유한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더 소중해진다. 더 이상 남의 시선을 위해 살기보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선택하게 되고, 불필요한 관계를 줄이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노년은 시간이 사라지는 시기가 아니라 시간의 밀도가 높아지는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된다. 우리는 노년을 준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경제적 준비에 대해서는 수없이 이야기하면서도,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거의 배우지 못했다. 어떻게 자유로워질 것인가. 어떻게 끝까지 호기심을 잃지 않을 것인가. 어떻게 마지막 순간까지 창조하는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

수전 구바는 그 질문에 아주 강렬한 대답을 내놓는다.

피날레는 끝이 아니라고!!!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자신을 완성해가는 또 하나의 시작이다.

너무나 뜨거운 책이다.




노년을 두려움의 언어가 아니라 가능성의 언어로 다시 쓰게 만든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늙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서가 아니라, 나이 든 여성들의 삶을 충분히 보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수전 구바는 그 빈자리를 아주 강렬하게 채워준다.

이 책은 앞으로의 삶이 아니라, 앞으로의 나를 기대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책의 제목 『피날레』 우리는 흔히 피날레를 끝이라고 생각한다. 막이 내리고, 박수가 끝나고,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순간!!!

하지만 수전 구바가 말하는 피날레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가장 농축된 시간이다. 오랜 시간 축적해온 경험과 상처, 실패와 기쁨, 지성과 감각이 한데 모여 마침내 자기만의 목소리를 완성해내는 순간이다. 그래서 피날레는 가장 화려한 절정이면서 동시에 가장 자유로운 시기이기도 하다.







내가 남자인 척하는 일에 서툴고 젊은 데 서툴다면 이제부턴 그냥 늙은 여자인 척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 누구라도 늙은 여자를 발명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을 것 같다 p473




















젊은 시절에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바쁘고, 중년에는 책임의 무게에 짓눌리기 쉽다. 하지만 노년은 오히려 그 많은 것들을 하나둘 덜어내며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덮으며 피날레라는 단어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끝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자기 삶의 저자가 되는 마지막 창조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이 드는 일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자신의 피날레를 너무 일찍 포기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수전 구바는 말한다. 삶의 마지막 장은 부록이 아니라고. 누군가의 여생이 아니라, 또 하나의 본편이라고.



얼마 후면 쇼가 우리 없이도 계속되리라는 사실을 매일같이 그들에게 가르쳐주었다 p 508


마지막 문단을 읽었을 때 왜 그리 눈물이 나는걸까? 누구에게나 노화는 곧 닥칠 일 혹은 언제가 도래할 미래다. 그러나 우리는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내가 모든 것을 붙잡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끝내 사라질 존재이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노년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유한함을 받아들이며 삶을 더욱 선명하게 살아내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수전 구바는 두려움 대신 기개를 이야기한다. 상실 대신 창조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 하나를 건넨다.



당신은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가 아니라, 끝까지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책의 제목은 이토록 강렬하다.

피날레는 끝이 아니라,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세상에 남는 마지막 예술이다.



#피날레 #수전구바 #북하우스 #다락방의미친여자

#여성주의독서 #노년의창조성 #노년에대하여

#노년의시간 #끝까지강하고자유로운나

#에세이추천 #인문교양 #여성예술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