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48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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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투르게네프 저 | 이항재 역 | 을유문화사






러시아 소설을 읽는 일은 인간과 시대를 함께 건너는 일이다. 『전날 밤』을 읽으며 당대의 여성은 과연 어떤 위치에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라는 관점으로 리뷰를 써보고 싶었다.

소설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당대에 드물게 여성 인물을 소설의 한가운데 배치했다는 점이다.






《아버지와 아들》에서 여성은 사상의 한계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전날 밤》에서는 그 거울 밖으로 걸어 나와 스스로의 삶을 감당하는 주체로서의 느낌이다. 물론 현대 시각으로 보면 한~~참 멀었다. ( 워워~~ 너무 한쪽으로 밀어붙이면 투르게네프를 놓치게 됩니다. 우주 씨, 조금만 균형을 잡아서 소설의 흥미를 놓치지 맙시다 _혼잣말...) 읽는 동안 몇 번이나 스스로를 다잡았다. 너무 한쪽으로 기울지 말 것, 이 소설이 서 있는 자리를 끝까지 따라가 볼 것.


비록 서술 시점은 1인칭이 아니지만, 서사의 중심 축은 분명히 옐레나다. 이런 선택은 단순한 인물 설정일까. 이 질문에서 나의 독서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반 투르게네프는 행동하기 어려운 위치에 놓인 존재를 통해 오히려 급진적인 결단을 보여준다.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 여성은 사회적·정치적 주체로 인정받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바로 그 자리에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인간을 배치한다. 이 역설적인 구도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힘으로 느껴졌다.






옐레나를 둘러싼 남성 인물들 슈빈과 베르세네프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고 말하지만, 끝내 행동에 이르지 못한다. 반면 불가리아 혁명가 인사로프는 그들과 달리 행동하는 인물이다. 옐레나가 그를 선택하는 순간, 이 소설은 오히려 로스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선택이다. 관념의 시대에서 행동의 시대로 넘어가기 직전, 전날 밤의 감각!!!

읽는 내내 나는 이 지점에 붙들려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다른 작가들의 문장이 겹쳐졌다. 나의 대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라면 이 마지막 옐레나 장면을 어떻게 썼을까, 그는 아마 옐레나의 결정을 그대로 두지 않았을 것이다. 선택의 순간을 더 깊이 파고들며, 그 안에 숨겨진 의심과 자기 기만, 그리고 무너짐의 가능성까지 밀도 있게 서술했을 것이다. 안톤 체호프라면 이 사랑을 어떤 방식으로 서술했을까. 체호프는 이 사랑을 단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인물들이 그 이후의 삶을 계속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의 여성 인물들은 구조 속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끊임없이 다른 삶을 향한 의지를 놓지 않는 분이다. 같은 장면이 두 분 작가에 의해서 전혀 다른 결로 변주되는 상상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두 작가는 내 삶의 두 축이기도 하다.

체홉의 경우, 내가 사랑하는 러시아 문학의 작가들 중에서도 특별히 생각하는 이유는 체호프는 당대 기준으로 보면 확실히 비교적 평등한 시선을 가진 작가 중 한 분이다.

물론 현대 기준에서 체홉의 여성상을 완전히 해방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왜냐하면 구조 자체는 여전히 제한적이고 여성 인물들도 그 구조를 완전히 깨지는 못한다. 예를 들면 《 세 자매 》 작품 속 여성들은 삶의 조건에 갇혀 있지만, 끝까지 “다른 삶을 향한 의지”를 놓지 않는다는 점.


《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사회적 규범을 넘는 사랑을 다루며 도덕적 판단보다 인간의 진실로 다루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대작가 투르게네프의 설정은 일종의 역설이다.

정작 행동해야 할 이들은 머뭇거리고,

행동하기 어려운 존재가 먼저 나아간다는 점이 압도적인 소설이다.








주인공 옐레나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옐레나 당신의 선택을 지지하고, 결정을 존중해... 부모에게 자신의 결혼을 알리는 그 장면은 당대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용기로 생각해. 읽는 내내 오히려 통쾌했어^^ 그건 2026년을 살아가는 나도 할 수 없는 일이었어.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나에게는 더 이상 다른 조국이 없다"라는 문장은 너무도 슬프고 아름다웠어.

사랑이 한 개인의 삶을 넘어 하나의 좌표가 되는 순간.

나 역시,

언젠가 그런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나도 그렇게 사랑할 거야...








소설에는 이항재 역자님 번역의 국내 최초로 니콜라이 도브롤류보프의 비평 전문이 번역 수록되어 있다. 도브롤류보프의 문장은 젊고 심장이 뜨거운 젊은 비평가 느낌, 행간에서 동맥이 뛰는 기분이었다.

---왜 행동하는 인간이 러시아인이 아니지라는 문제의식에 대해

도브롤류보프가 인사로프를 러시아인이어야 한다고까지 말하는 지점에서, 그의 비평은 단순한 해석을 넘어선다. . 왜 러시아에는 아직 그런 인간이 없는가. 그 질문은 작품을 향한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향해 던져진 절박한 물음처럼 느껴졌다. 투르게네프 VS 도브롤류보프의 대립에서 두 분의 시각이 다 이해된다. 투르게네프가 편집장 네크라소프에게 결별을 선언한 지점까지도 투르게네프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었겠다 싶다.

왜 한국에는 인사로프와 같은 인물이 없는가라는 물움을 던지며 글을 닫는다.



덧: 트루게네프가 존경했던 벨린스키 선생님은 문학이 그저 예술적으로만 남아 있을 수만은 없는 시대가 있다고 이미 1855년에 말씀하셨으며

그 질문은 지금, 첨단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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