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물리학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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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 문학동네 (펴냄)








불가리아 작가의 소설은 처음 접해본다.

“나는 1913년 8월의 끝자락에 남성 인간으로 태어났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소설이 평범한 이야기의 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게오르기는 타인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을 체험하는, 일종의 ‘병적 공감’을 겪는다. 낯선 설정이지 이상하게도 설득력이 있다. 우리는 실제로도 누군가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며, 때로는 그 감정을 자신의 것처럼 끌어안고 살아가니까.







이 소설은 줄거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전개된다.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기억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 스며든다. 어린 시절의 기억, 할아버지의 과거, 이름 모를 타인의 삶까지 뒤섞이며 하나의 거대한 미로를 만든다. 그 미로를 따라가다 보면, ‘슬픔’이라는 감정이 단순한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인간을 연결하는 어떤 물질처럼 느껴진다.






내가 관심을 쏟는 것들은 무게가 없다. 과거, 슬픔, 문학

이 문장은 너무 슬프게 느껴졌다. 아니 슬퍼서 아름답다.

무게가 없다는 건 붙잡을 수 없다는 뜻이고, 붙잡을 수 없다는 건 결국 흘러가버린다는 뜻이니까.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슬픔은 손에 쥐려 하면 더 희미해지고, 문학은 읽는 순간조차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만 그런 것들에 마음을 준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로 사랑하는 건 무게를 가질 수 없는 것들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문장은 어딘가 체념처럼 들리면서도 한편으로 다정하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끝내 마음을 주고 마는 사람의 고백 같다.










불가리아 내셔널 어워드 소설 부문 수상

PEN 문학상 번역서 부문 최종 후보



병적 공감 증후군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 병적 공감 혹은 강박적 공감. 신체화 증후군....


읽는 내내 인상적이었던 건, 이 작품이 슬픔을 다루는 방식이다. 보통 슬픔은 극복해야 할 감정으로 그려지지만, 이 소설은 오히려 슬픔을 통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문장들은 종종 쓸쓸하면서도 아름답고, 낯설면서도 따뜻하다. 나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그 모든 감정의 최상위에 있다고 가끔 생각한다. 왜냐면 슬픔은 언제나 무언가를 깊이 사랑했던 자리에서만 생겨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는 슬픔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슬픔은 상실의 증거이자, 그 이전에 존재했던 애정의 흔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슬픔 앞에서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쁨은 나눌 수 있어도, 슬픔은 겹쳐질 때 더 깊어지니까.






타인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는 설정은 결국 타인의 슬픔을 온전히 겪어보려는 시도가 아닐까? 작가가 슬픔이라는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덮고 나면 슬픔을 밀어내야 할 감정이 아니라고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가장 깊고 오래된 통로가 아닐까?





나는 이제 슬픔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견뎌야 할 것이 아니라, 어쩌면 끝내 이해하고 싶은 감정으로.







#장편소설 #게오르기고스포디노프 #불가리아 #슬픔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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