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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순간을 기억해?
숀 마이클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태어난 순간을 기억해?』 기계와 시를 쓰며, 인간을 다시 읽다
숀 마이클스 지음/ 문학수첩(펴냄)
이 책의 목차는 특이하게도 ‘요일’과 ‘나이’로 서술되어 있다. 시간은 흐르지만, 그 시간 속에서 인간이 겪는 감정과 선택은 단순한 선형이 아니라는 듯, 목차만으로도 이미 의미가 충분하다. 첨단과학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이 소설은 기술보다 시간을 살아내는 인간을 더 깊이 응시한다. 표지 또한 감각적이다. 절제된 디자인 속에서 이 작품이 다루는 질문 기억, 창작, 존재를 은근하게 표현하는 것 같아서...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한 설정에서 출발한다. ‘국민 시인’이라 불릴 만큼 명성을 지녔지만, 현실은 궁핍한 노시인 메리언 파머에게 글로벌 IT 기업이 제안을 보낸다. 인공지능 ‘샬럿’과 일주일 동안 협업하여 시를 창작하는 프로젝트. 하! 나라면 어떻게 할까??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큰 금액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낯선 조건 사이에서 메리언은 결국 실리콘 밸리로 향하는데...
흥미로운 지점은 인간과 AI의 대결 구도에서 독자들이 기존에 많이 접해본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그것을 의도적으로 비껴가는 느낌이 들었다. 샬럿은 수십만 편의 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정작 ‘왜 쓰는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반대로 메리언은 평생을 시로 살아왔지만,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관계와 감정들이 그녀를 끊임없이 흔든다. 두 존재의 만남은 어떤 의미일까? 의미가 소설의 주제의식일지도 모른다.
경쟁이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비추는 거울처럼 ....
처음에는 단순히 ‘기계’로만 인지했던 노시인 메리언의 마음이 서서히 변화해 가는 과정은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다. 그녀에게 AI ‘샬럿’은 감정도, 의지도 없는 도구에 불과한 존재로 시작한다. 그러나 함께 시간을 보내고 문장을 주고받는 동안, 메리언의 마음에 변화가 오는데 그것은 샬럿이 인간처럼 변해서라기보다, 오히려 메리언 자신이 인간으로서의 감각과 기억을 다시 자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변화가 주인공에게만 해당될까?
메리언의 친구와 지인들이 이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간간이 묘사되면서,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AI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엿보게 된다. 누군가는 그것을 위협으로, 누군가는 단순한 도구로, 또 다른 누군가는 무심한 편리함으로 받아들인다. 이 다양한 반응들은 낯설지 않다. 오히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공감을 이끌어낸다. AI와의 협업은 이미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단순한 협업 과정을 넘어, 창작의 윤리와 기원을 탐색해 보게 한다. 메리언은 샬럿에게 시를 ‘만드는 법’이 아니라 ‘느끼는 법’을 설명하려 하고, 샬럿은 메리언의 기억과 삶을 반추하며 인간의 내면을 역으로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가족 서사 특히 아들과의 관계가 스며들며, 이 소설은 기술 담론을 넘어서 인간 삶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는 듯하다. 소설 내용은 우리 문학의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실험이다.
시를 쓰는 과정에서 한 번도 질문하지 않았던 질문을 내게 던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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