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탱고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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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러스너 호르커이 라슬로 / 조원규 옮김/ 알마







사탄탱고의 첫머리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문장이 제사처럼 놓여 있다.

'그러면 차라리 기다리면서 만나지 못하렵니다.....'

카프카 소설 문장 (그렇다면 나는 기다리다가 그것을 놓치게 되겠군....)을 라슬로 식으로 은유한 문장이다. 이 문장은 소설 전체를 미리 설명하는 열쇠처럼 보인다. 마을 사람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어떤 변화가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기다림은 끝내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오지 않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지옥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지옥 속에서 그 고통을 견디느니 차라리 죽음을 소망하지만 뫼비우스 띠처럼 지옥은 순환되고 그들은 끝내 그곳을 벗어날 수 없다 ( 너무 강력한 스포인가 ? 이 소설을 읽은 한 문단 소감이기도 하다. 고통을 견딜 수 없을 때 사람들은 결국 죽음을 선택하기도 하는데 이곳은 전혀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 ) 카프카의 세계에서처럼 구원은 언제나 도착 직전에 미뤄지고, 인간은 그 사이에서 끝없이 시간을 견디는 존재가 된다.


카프카를 읽지 않을 때에도 그를 생각한다는 라슬로 작가...




진입 장벽에 워낙 높다는 얘길 들어서 지난겨울부터 라슬로 읽기 선작업으로 먼저 케르테스 임레 작가님의 작품 《운명 3부작》을 읽었다.

케르테스 임레가 역사 속에서 인간의 운명을 묻는다면, 크러스너 호르카이 라슬로는 시간 속에서 인간의 미약한 희망을 묻는다.









탱고라는 제목

탱고는 헝가리의 춤이 아니다. 남미 항구 도시에서 태어난 춤이다. 그런데도 작가는 이 소설에 탱고라는 이름을 붙였다. 탱고의 리듬은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갔다가 다시 뒤로 물러나는 구조를 가진다. 바로 그 리듬이 『사탄탱고』의 서사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희망을 향해 움직이는 듯하다가 결국 같은 자리로 되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구원을 기다리지만 그 기다림은 언제나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원을 그린다. 뫼비우스의 띠.....


인간들이 파멸을 향해 춤추듯 움직이는 세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리듬 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삶.








마을이라는 폐허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고립되어 있다.

  • 후터키

  • 슈미트와 슈미트 부인

  • 크라네르 부부

  • 헐리치 부인

  • 페트리너

  • 그리고 이리미아시



이 마을은 이미 공동체가 무너진 공간이다.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않고, 서로에게서 돈을 빼앗을 계획을 세우며, 간절히 구원자를 기다린다. 이리미아시는 그런 기대 위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구약성서의 예언자 예레미야를 연상시키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인물은 구원자가 아니라, 인간들의 믿음을 이용하는 존재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악이 아니다.

희망이다.








가장 잔혹한 장면

작품의 중심에는 호르고시의 막내딸 에슈티케가 있다. 그녀와 고양이 미추르의 이야기는 이 소설에서 가장 잔혹한 장면으로 남는다.

이 장면은 단순한 잔혹 묘사가 아니다.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가 얼마나 무정한지를 보여준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폐허 속에서 가장 약한 존재가 먼저 무너진다. 5장에서 소녀가 죽는 장면은 리뷰를 쓰며 다시 읽어도 또 울음이 터져 나온다.

이 장면을 지나며 독자는 알게 된다.

이 마을에는 이미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 ( 소설은 아니 불행은 여기서 끝나야 했다. ) 그럼에도 작가는 냉철한 눈으로 인간들을 관찰하기만 한다. 도스토옙스키식 폭발적인 지옥에 익숙해 있는 내게 일말의 다정함도 없는 라슬로 작가는 참으로 충격이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이 마냥 비극적이지 않은 이유 (이렇게라도 말하고 싶다. )

처음에는 이 소설을 종말론적인 분위기 속에서 읽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이미 무너진 세계, 인간들이 그 폐허 위를 맴도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읽어서일까. 이상하게도 이 작품이 마냥 비극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간의 악의와 절망을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작품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잔혹한 본성, 혹은 악령 속 니콜라이 스타브로긴 같은 인물은 훨씬 더 종말론적인 인간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에 비해 『사탄 탱고』의 세계는 파멸을 향해 폭발하는 세계가 아니다. 이미 무너진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갖 추한 모습들. 인간은 어디까지 무너져내릴 수 있는가?

그래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의 종말은 폭발하는 악이고

크라스나호르카이의 종말은 지루하게 계속되는 붕괴다.









사탄탱고』에서 인상적인 것은 사람들이 종소리를 듣는 장면이다. 그 소리는 어떤 사건의 신호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소리에 가깝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소리를 징조로 받아들이고, 그 위에 이야기와 믿음을 덧붙인다. 마치 인간이 세계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 내는 방식 자체를 보여 주는 장면처럼. 이리미아시가 구원자로 떠오르는 과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소리가 계시가 되듯, 어떤 인간은 어느 순간 메시아가 된다. 그리고 그 믿음이 바로 이 마을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헝가리 문학이 우울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다.

헝가리 문학을 이해하려면 한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1920년의 트리아농 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헝가리는 영토의 약 3분의 2를 잃었고, 수백만 헝가리인이 하루아침에 다른 나라의 소수민족이 되었다. 이 사건 이후 헝가리 문화에는 잃어버린 나라의 기억이 깊게 남게 된다.

그래서 헝가리 문학에는 이런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붕괴된 제국, 버려진 마을, 돌아올 수 없는 시간





역사가 잔인할수록 문학은 깊어진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아이러니인가!!


헝가리 문학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시선도 있다. 역사적 경험만 놓고 보면 헝가리는 폴란드와 닮아 있다. 강대국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상처 입은 나라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문학적 정서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계의 부조리와 인간 존재의 공허를 바라보는 시선은 오히려 아일랜드 문학과 닮아 있다.

특히 사뮈얼 베케트의 세계와 그렇다.

그래서 『사탄탱고』를 읽다 보면 동유럽의 황폐한 평원 위에서 어느 순간 베케트적 세계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절망을 과장하는 문학이 아니라, 무너진 세계 속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인간 시간을 묵묵히 바라보는 시선 말이다.



이 소설은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라기보다, 이미 종말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사람들은 구원을 기다리지만 결국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마치 한 곡의 탱고처럼,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갔다가 다시 뒤로 물러나면서.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 역시, 사탄 탱고 속 배경과 다르지 않다. 자기 이익만 챙기는 정치인, 가짜 뉴스, 소비를 충동질하는 자본주의의 민낯... ( 자본주의의 노예인 난 오늘도 지적인 쾌감을 위해 시집 두 권을 샀다) 이미 오래전 시작된 사탄의 탱고 한 곡의 중간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소설이 결국 보여주는 것은 한마을의 몰락이 아니라 구원자를 기다리는 인간의 심리다. 사람들은 삶이 무너질수록 누군가 나타나 모든 것을 바꿔 주기를 기대한다. 종교에서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정치에서는 지도자를 기다리며, 역사 속에서는 혁명을 기다린다. 이 마을에서 그 역할을 맡은 인물이 바로 이리미아시다. 그러나 그는 진짜 구원자가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 낸 기대와 환상이 빚어낸 그림자에 가깝다. 인간은 종종 구원을 믿기 때문에 속는 것이 아니라, 속더라도 구원을 믿고 싶기 때문에 속는다. 그런 점에서 『사탄 탱고』가 보여주는 세계는 특별한 마을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축소판이다.



종말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은 계속 희망을 만들어 낸다


종말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은 여전히 종소리를 기다리고, 누군가를 구원자로 믿으며,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다. 마치 끝나지 않는 탱고의 리듬처럼.



이 지점에서 헝가리 문학을 조금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는 아일랜드 문학과의 비교를 통해 이 세계의 정서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아일랜드 작품 읽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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