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순례
헤르만 헤세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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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해르만 헤세/ 이화북스(펴냄)








읽고 나니 왜 제목이 동방순례인지 새삼 와닿는다. 이 책을 읽으며 중학교 때 읽었던 [데미안]을 다시 읽었고, 《유리알 유희》와 《싯다르타》까지 병렬 독서로 읽었다. 나아가 구스타프 융을 모르고서는 헤세를 채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해서 융의 분석 심리학 3부작 중 제1권을 읽고 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융의 언어는 의외로, 헤세의 문장만큼이나 친숙했다.


이 책이 『유리알 유희』의 모태라는 평가는 평면적이다. 그보다 훨씬 깊다. 헤세는 먼저 길을 잃었고, 그다음에야 제도를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지?







먼저 무너졌고, 그다음에야 유희를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자 체계가 아니라 헤세가 스스로를 치유한 방식은 아니었을까? 가장 먼저 헤세를 만났던 『데미안』이 자아의 분열을 말한다면, 『싯다르타』는 그 분열을 지긋이 바라보는 느낌의 책. 『유리알 유희』는 그 관조를 제도로 승화시킨 책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은 결말 비슷한 느낌. 작가로서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유리알 유희의 결말은 소설 중 최고의 결말이다. 물론 호불호가 있다. 열린 결말을 별로 안 좋아하는 독자라면 조금 망설여지기도 할 것이다.





이 작품의 어떤 부분은 ‘미완성’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은 결함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완성에 가까운 결말을 씀으로써 헤세는 이 소설에서 완성된 세계관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글을 써야만 했던 시기의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 그 점이 노벨문학상 수상에 이어지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스스로 말하기를, 너무 사적인 것을 많이 쓴 건 아닌가라고 말했고 그 말은 진실이었다.

과연 헤세가 이 책에서 말하는 자기실현이란 무엇일까. 『동방 순례』에서 헤세가 그리는 ‘자아실현’은 흔히 말하는 성취나 완성의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이 작품의 결말은 헤세가 1933년 11월 19일에 쓴 한 편지와 깊게 연결된다. 그는 이렇게 적는다. 젊음의 과제는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고, 늙음의 과제는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인간은 먼저 하나의 온전한 인격이 되어야 하며, 그 형성 과정에서 겪은 고통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내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깊이 각인되어 오래 남을 헤세의 문장이다.


언젠가 시간이 좀 지난 후 꼭 다시 읽어볼 책이다.



#동방순례,

#헤르만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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