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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ㅣ 박완서 아카이브 에디션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5월
평점 :
『나목』 봄에의 믿음으로 겨울을 건너는 마음
박완서 첫 장편소설/ 세계사 (펴냄)
또르르 눈물이 난 것은 『나목』의 첫 문장뿐만 아니라, 그 앞에 놓인 헌정사 때문이었다.
작가들의 작가이자, 한국문학의 큰 어른 박완서 선생님. 존경하는 분은 언제나 선생님이라 부르게 된다.
김금희와 최은영이 남긴 헌사는 한 사람을 기리는 문장이면서 동시에, 박완서 문학이 지금의 작가들에게 어떤 윤리로 남아 있는지를 또렷하게 보여주었다. 김금희 작가가 읽고 또 읽었다는 이 책!! 나목!!
1970년에 쓰인 이 소설은 과거의 작품이 아니라 여전히 말을 걸어오는 가장 현재적인 텍스트이기도 하다.
박완서 선생님이 생전에 가장 사랑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나는 1976년에 쓰인 작가 서문을 통해 다시 확인했다. 반세기를 건너온 문장에는 시대의 간극에서 오는 낯섦과, 지금의 독자에게는 다소 예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표현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거리감 덕분에 이 소설이 얼마나 정직한 언어로 자신의 시간을 통과해 왔는지가 또렷해졌다.
전쟁을 겪은 젊은 화자의 이야기이지만, 이 소설을 관통하는 감정은 전쟁 그 자체보다 더 깊은 개인의 삶에 해석에 있다. 작품 초반, “회색빛 고집”으로 표현되는 삶의 방식은 마지못해 견디듯 살아가는 자세이며, 그 고집 앞에서 화자의 다채로운 욕망들은 지쳐간다. 이 문장은 단순한 자기혐오가 아니다. 살아 있고 싶고, 재미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끝내 꺼지지 않았기에 가능한 행동이다. 아~~ 50년 전 여성의 소망과 지금 나의 무엇이 다른가!!
인상적인 것은 화자가 ‘자기 것’을 발견하는 순간들이다. 남의 흉내, 빌려온 감정이 흥을 잃고 사라진 뒤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지점은 첨단과학 AI 시대를 살아가는 나와 다르지 않았다. 소설은 여성의 성장소설처럼 보이지만, 단순히 성장을 아름답게 비추지 않는다. 전쟁은 이 소설에서 끊임없이 배경음처럼 울린다. 북녘 하늘에서 들려오는 포성, 승전도 휴전도 믿지 않는 화자의 인식이 비관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전쟁이 지나가도 삶은 나아지지 않고, 다만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다시 빠져나갈 뿐이라는 체념. 그러나 이 체념은 냉소로 굳지 않는다. 박완서 선생님 소설의 인물들이 그러하다.
중반 이후, 타인에 대한 감정 VS 연민, 적의와 증오 이 모든 것이 선명해지는 과정 역시 인상 깊다. 특히 “남을 미워한다는 게 이다지도 흐뭇하고 기분 좋은 것”이라는 고백은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다. 박완서의 문학은 인간의 도덕성을 쉽게 단정하지 않으며 선과 악의 구분보다 감정의 진실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해석은 고마운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나 역시 한 사람을 지독하게 미워하며 그의 불행을 빌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나목’의 상징이 드러나보인다.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서 있는 나목, 그 곁을 지나가는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 앞에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게는 아직 멀지만 분명한 봄에의 믿음이 있다. 이 대비는 희망을 감상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아... 나의 봄은 멀다. 그러나 믿음은 이미 존재한다. 나목을 의연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믿음이다.
한 사람의 문학이 이미 출발점에서 완성이라니 놀랍고 놀랍다... 이런 재능은 신만이 주시는 걸까요 ㅠㅠ
소설을 덮으며 나는 깨닫는다.
왜 박완서 선생님이 이 작품을 가장 사랑했는지를.... 그것은 첫 작품이어서가 아니다. 가장 자기 자신에게 가까운 언어로 쓴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세기가 지나도 이 소설이 여전히 현재형으로 읽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전쟁을 말하지만, 살아가는 태도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는 과연 어떤 고집으로, 어떤 믿음으로 이 겨울을 건너고 있는가. 좌표를 늘 겨울에 두며 살아가는 내게 너무나 '겨울'적인 소설이다. 소설이 이렇게 뜨거울 수 있는가! 놀라운 소설이다
나의 옥희도 씨......
나는 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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