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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의 과학 - 과학자가 풀어 주는 전통 문화의 멋과 지혜
이재열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이재열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살림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과학의 언어로 쓰인 인문학, 혹은 사물에 깃든 인간의 윤리이다. 책의 카테고리를 찾아보면 분류상 ‘과학’ 카테고리에 놓여 있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질문의 방향이 바뀐다.
이 책은 정말 과학 책일까... 과학도의 시선에서 본 인문학적인 사유가 가득한 책이다. 사물을 통해 인간의 삶과 태도를 사유하는 인문학적 텍스트.
저자는 미생물학을 전공한 학자다. 그는 늘 보이지 않는 세계—균, 발효, 침식, 순환—를 연구해 온 사람이다. 그런 그가 현미경을 잠시 내려놓고, 대신 오래된 살림살이를 들여다본다니 더욱 의미가 크다.
갓, 반닫이, 맷돌, 소반, 토기, 석빙고… 관찰하는 대상은 달라졌지만, 관찰의 태도는 그대로다. 보이지 않는 작동 원리를 끝까지 묻는 태도, 그것이 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집의 방향과 시간 감각에 대해 좌향·배치·해의 이동 등 자연을 닮은 집이 자연을 보는 집인지, 자연과 같이 늙는 집인지를 묻는다. 또한 부엌은 부엌은 실험실이자 돌봄의 공간이라는 점을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저자는 책을 통해 사물은 말을 하지 않지만, 삶의 태도를 드러낸다. 이 책을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읽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저자가 살림살이를 도구가 아니라 사유의 매개로 다룬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맷돌은 곡식을 가는 장치가 아니라 노동과 시간, 몸의 리듬을 품은 사물이고, 반닫이는 수납 가구가 아니라 은폐와 노출, 사적 영역에 대한 감각을 보여주는 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과학적 설명은 언제나 ‘왜 그렇게 생겼는가’에서 멈추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질문은 이동할 수밖에 없다. 왜 우리는 이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했는지, 왜 완벽한 밀폐보다 숨 쉴 틈을 남겼는지, 왜 한 번에 많이가 아니라, 천천히 오래를 택했는지도....
이 질문들은 기술의 문제 즉 과학만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책은 생활 과학을 다루지만, 동시에 절제·균형·공존이라는 인문적 가치를 말한다.
‘담장 속의 과학’은 생활 철학이다. 저자가 말하는 담장 속의 과학이란 무엇인가? 단지 생활 속 재발견의 일차원적인 의미는 아니다. 계량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신뢰다.
살림은 문명의 태도를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는 장소다.
그렇기에 이 책은 K-문화의 뿌리를 찾는 책이기도 하고,
동시에 기후 위기와 과잉 기술의 시대에 다른 삶의 속도를 상상하게 하는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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