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물화 속 세계사 -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사물들
태지원 지음 / 아트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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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지원 지음/ 아트북스(펴냄)









정물화를 통해 세계사의 흐름을 알게 해주는 책!!

역사를 공부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학창 시절 역사가 재미없었던 이유는 뭘까? 세계사를 이해할 만한 거시적인 안목은 성인이 되어서야 생겨난다. 종과 횡을 아우르는 세계사를 다 담기에 내 시각은 좁고 파편적이었다.






아름다운 표지의 책, 정물화가 어떻게 세계사를 담아낼 수 있는지 궁금했다. 어떤 면에서 분야 전공자가 아닌 분이 담아내는 역사, 미술 전공자가 아닌 분의 책이 더 역사에 가깝고 미술에 가깝다는 것을 여러 차례 독서를 통해 체험했다.

정물화 (still life)

한때 생명이 있었지만 현재는 그것이 사라진 물체 혹은 처음부터 생명이 없던 물체...


각 챕터마다 세계사 연표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하나의 주제에 관해 이렇게 다양한 작품이 있었다니 놀라웠다. '흑사병'이라든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 칼뱅의 종교개혁, 동양의 청화백자가 유럽에 소개된 시기 등 관련 주제를 선택하고 주제에 맞는 작품을 여러 편 소개한다. 작품 배치에서 이왕이면 시대순으로 정렬되었으며 어떨까 생각을 해봤다.







역사적 사료로써 정물화를 소개하다 보니 저자의 세계관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바스쿠 다가마의 인도 항로 발견이나 대항해 시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도착!! (이 부분에서 대항해를 아프리카 식민지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 그리고 콜럼버스의 신대륙에 따라붙은 단어가 '발견'이 아니라 '도착'이라는 점은 획기적이다!!) 아메리카 선주민 입장에서 멀쩡히 잘 살고 있던 이미 존재하던 대륙인데 '발견'이라니 이것은 유럽 중심적인 시각이 아닐까 싶다. 우리 역시 그런 교육을 받았다. 콜럼버스가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 개척이라고 쓰고 그 실상은 무자비한 폭력과 죽음만 가득했던 역사를!!

아시아나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입장에서 뒤집어 역사를 생각해 보자.

서양 함대가 해변으로 들어오는 순간, 식민지가 되어 오랫동안 인력과 자원을 수탈당하는 처지로 전락하지 않았던가. 겉보기에는 모험과 탐험의 대서사시였으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씁쓸하기 짝이 없는 착취의 시작이었다 p83 ( 무척 공감하는 문장이다. 이런 시각을 가진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바니타스화 속의 튤립이 건네는 교훈, 물론 튤립 그림은 수많은 미술책의 소재가 되었다. 같은 튤립이 저자에 따라 다르게 서술되는 장면 참 재밌다. 이전에 내가 본 미술책에서 튤립 그림들은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의 탐욕 정도로 언급되었다.

but 이 책에서 튤립이 주는 가치, 혹은 상징성 그 교훈은 뭘까? 비교하며 읽는 재미!!! 튤립과 함께 그려진 원숭이의 모습 상징적이다. 얀 브뤼헐 2세의 그림 《튤립 마니아》

꽃은 화려하게 피고 결국 지고 만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도 결국 지기 마련이다. 삶은 유한하다는 경고!!! 조바심 내는 비이성적인 투기에 대해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주는 튤립 정물화의 경고!! 우리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다. '삶이 영원할 것 같지? 곧 끝날 거야'라는!!!







내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두 가지 정도다. 하나는 식민지 관련 그림, 또 하나는 산업시대 부품이 되어버린 인간상에 대한 그림!!!

독일 화가 토마스 하이네의 그림 《식민지를 지배하는 방식》이라는 작품이다. 요즘 세계대전 책을 병렬 중이라서 그런지 더 와닿는다. 착취당하는 흑인의 모습은 일제강점기의 조선인과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있다.







제국주의, 식민지 착취가 나쁜 이유는 뭘까?

나라 vs 나라의 깊은 원한 감정이 아니다. 독일이나 일본은 유대인 혹은 조선인을 말살하고 이용해먹은 게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범죄다! 그들은 특정 민족이나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 희생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진심 어린 반성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방식은 독일이나 일본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즉 희생된 분들이 정해야 마땅하다. 정권에 따라 온갖 정치적인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희생자의 고통이 가려지고 은폐 혹은 이용된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보지 않는가 ㅠㅠ






책을 덮으며 역사의 수많은 장면이 떠오른다. 히틀러나 나치당이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할 때 이를 적극적으로 동조한 독일인 방관하고 침묵한 독일인 혹은 유럽 전체가 가해자하고 쓰면 무리인가. 총리가 무릎 꿇는 퍼포먼스, 일종의 클리셰 물론 그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은 그 유족들은 여전히 트라우마와 상처 속에 사는 중이다.

조선도 마찬가지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생전에 하신 말씀 중 "나는 돈을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총리가 대표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그 한마디면 된다. 그러면 나는 용서하고 편히 죽을란다."라는 말씀, 우리는 그 간절한 소망조차 이뤄드리지 못했다.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그 많은 죄 없는 사람들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인 전두환 씨는 천수만수를 다 누리고 제 명대로 죽었다. 그 많은 사람을 죽인 독재자 하나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우리의 사법 나아가 국민들 우리 모두의 죄다. 《식민지를 지배하는 방식》 이 하나의 그림으로도 리뷰 수십 편을 나올법한 책이다. 저자의 역사관이 돋보이는 문장이 많았다.







학창 시절 식민사관의 교사들에게 역사를 잘못 배워서라며 남 탓만 했다. 이제 내 역사관의 주체는 나라는 생각이 든다. 주체성, 주인의식이 없이 바라보는 세상이 어찌 나와 내 자녀들에게만은 공정하기를 바라는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힘'을 '합리화'하는 말, 거대 힘 뒤에 숨는 행위로 보인다. 모두가 힘을 방관하거나 동조한다. 역사에 승자도 패자도 없다. 역사는 그 모두가 함께 만들어왔다. 역사의 그늘에서 잊힌 사람은 누구인가? 위안부 할머니들, 강제노동의 부역자들, 묘비조차 없이 죽은 홀로코스트의 유대인들..... '잊힌 반쪽을 기억하는 것'이 '진짜 역사'라는 생각이다.







세어보면 15개의 챕터에 총 91편의 그림이 소개된다.

한 폭의 정물화를 통해 정지된 사물이 아니라 여전히 지속되는 세계사 단면을 만날 수 있었다. 삶은 끝없이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기억하는 자만이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책에 소개된 정물화들은 물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이며 하나의 기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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