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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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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지음)/ 소담출판사
우리가 사랑한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모든 작품 번역을 김난주 역자가 하시는 듯. 작가의 대표작인 《냉정과 열정 사이》 초판이 출간된 것이 2000년이라고 한다. 무려 2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한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번역하고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신작 소설 역시 '세월'을 말한다. 삶이란 무엇일까, 여전히 대답 없는 질문을 나에게 던져본다. 삶에 어떤 공식이 있어서 명확한 답이 예측된다면 그 삶은 행복할까? 잠 못 드는 수많은 밤을 마치 죽은 채로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시간이다.
여기 50대 여성 세 명이 있다.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다미코, 외국 생활을 하며 화려한 삶을 살아온 리에, 남편 & 두 아들과 살아가는 말수가 적은 사키
너무나 다른 듯싶은 세 사람은 오랜 친구로 인연을 이어간다.
갑자기 귀국하게 된 리에가 다미코의 집에 들어가 살면서 이들의 만남은 다시 이어진다. '쓰리 걸스' 이제는 더 이상 girl이 아닌 걸들의 이야기^^
작가는 세 여자 말고 또 한 명의 여자 스와 가오루의 시점에서 잠시 삶을 이야기한다. 다미코의 어머니다. 과거 남편의 손님들을 접대했으나 이젠 딸의 손님을 자신이 접대할 필요는 없는 노년의 가오루. 결혼을 두 번 하고 해외 생활에 익숙한 활동적인, 가오루가 만든 음식을 다 잘 먹는 리에의 모습, 이와 대조적인 자신의 딸을 바라보는 시점. 딸의 삶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가오루. 어머니의 입장에서 내 딸보다는 남의 딸이 뭔가 더 어른스럽게 보이긴 할 것이다.
가오루는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그 오랜 인간관계가 사소한 우연에 좌우되었다니 p28
치매에 걸려 자신의 입가를 닦을 줄도 모르고 배변 실수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 대한 아픈 마음이 이해는 되지만 남자들은 가끔 어머니를 보러 오는 일조차 아내에게 떠맡긴다. ( 알고 있었지만, 일본의 남자들도 마찬가지 군, 씁쓸하다)
사키( 중년의 여성)의 눈에 남편도 집도 없는 리에가 안쓰럽겠지만 내 눈에는 주도적인 삶을 살아간 리에가 멋있기만 하다. 내게도 그런 용기가 있다면...
셋이 모이면 리에는 가장 말이 많고, 다미코는 그 말 하나하나에 반응한다. 그리고 사키 생각에는 자신이 가장 그 자리를 즐긴다. p70
세 사람의 삶을 통해 고교 시절 나와 내 친구를 떠올려본다. 물론 우리 셋도 소설 속 세 여자들처럼 저마다 다르다.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삶은 더욱 달라질 것이다.
아무튼 일본은 젠더에 뒤처져 있다니까. 결혼하면 아내성이 남편 성으로 바뀌 문제도 그렇고, 동성혼에 대해서도 그렇고 p104
무심결에 지나칠 수 있는 이런 문장에서 일본의 모습을 본다. 얼마 전까지도 에쿠니 가오리는 이런 문장을 소설에 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의외라 생각기 들면서 반가워서 눈에 쏙 들어왔다. 포르노 왕국?답게 정말 대단하고 파격적인 영상을 구사하면서 정작 일본 여성들의 성생활은 어떤지 궁금하다. ( 왜 이런 게 궁금한가? ㅎㅎㅎ 그녀들의 현실 삶이 궁금하다는 말이다...) 반면, 성은 그대로 두기를 허용해 주면서 결혼하면 친정보다는 시댁의 생활이 우선인 우리 여성들, 특히 어머니 세대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임)의 삶은 일본의 그것보다 좀 나은가? ㅎㅎㅎ
책을 덮으며 제목을 다시 떠올려본다. 셔닐이라는 단어 처음 보는데, 패션 사전에서 검색된다. 송충이? 모충과 같은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존재들의 털과 같은 느낌이 직물이지만 고급 드레스나 코트의 소재로 사용된다고 한다. 고급스러운 면직물인 셔닐 손수건은 속살 노란 멜론과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겉은 울퉁불퉁 거칠고 딱딱한 멜론, 그러나 그 속살의 맛은 물기 많고 달달하다.
우리들의 소녀 시절, 부드럽고 유순한 가공되지 않은 속살 멜론의 모습. 세월을 거치면서 딱딱하고 거친 삶을 살게 되기도 하고 셔닐처럼 고품격의 상류사회 삶을 살기도 한다. 삶은 모르는 것, 그것이다!!
이십 대에 만난 에쿠니 가오리보다 지금의 에쿠니 가오리가 더 좋다 ^^ 웬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