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죽던 날 거장의 클래식 4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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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롄커 장편소설/ 글항아리 (펴냄)










대개 소설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일개 독자인 내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뻗어나가기도 하는데..

옌롄커 작가의 신작 해가 죽던 날은 표지와 책 서문 몇 장만으로도 결말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방향에 꽤 가까웠던 비극이 이렇게 오랜 여운으로 남다니 생전 처음 해보는 독특한 경험이다. 어쨌거나 내 1월을 간신히 버티게 해 준 소설!







개인적으로 2024년 올 한 해 두 사람을 멀리 보내줘야 했다. 오늘 새벽 또 한 통의 부고를 접했다. 이제 나를 떠난 세 사람이다. 나는 죽은 채로 살고 있으니 어쩌면 나를 떠난 게 아닌지도 모른다.

나만의 비유법이 있다면 아! 2024년 같군! (이건 최악의 해였다는 뜻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최고의 해이기도 했다. ) 이미 2025년이 시작된 지 14일차, 나만 혼자 2024년을 사는 기분이다.

지난 2년간 꾹꾹 눌러 참았던 울음 버튼 나는 이제 울지 않는 사람이 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졌는데 그 증상은 이러했다. 슬프지 않은 소설을 읽어도, 심지어 혼자 가만있을 때도 울컥 눈물이 난다는 것이다. 옌롄커의 소설이 그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작중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소설가 옌롄커 ( 이 책의 작가이기도 한)가 몽유하는 장면이다.

이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며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었을 때 정작 옌롄커보다 더 많이 울었던 것은 나였다. 독자 우주 씨... 내 울음이 터져 나온 이유는 정작 옌례커의 어머니 때문이다. '롄커야 글을 쓰지 않으면 어떠니, 그냥 보통 사람들 사는 것처럼 살자'는 그의 어머니 말에 정말 뜬금 지난 2년간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나는 지난 몇 주간 내내 부은 눈으로 다녔다. ( 다행히 사람들은 내게 아무 관심이 없었다. 늘 그러하듯이)







「일광 유년」이라는 작품으로 작가를 처음 만났었다. 중국 소설은 여전히 낯설다. 중국이라는 프레임을 잊게 한 소설가가 찬쉐 작가 그리고 옌롄커 작가님!

식욕과 성욕이라는 인간 본성에 새로운 가치를 담아 서술한 책으로 기억된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다 갖춘 작가, 중국에서는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이자 세계 20여 개국에 번역된 작가다. 중국에서는 비판과 금지의 대상이 된 책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저자.


#해가죽던날 황량하고 적막한 그만의 배경 묘사, 마술적 리얼리즘에 입각한 소설이라고 흔히 소개되는데 문학 전문 용어는 전혀 모르지만 읽는 내내 나도 소설 속 인물들처럼 몽유하는 기분이었다.

소설 줄거리를 다 얘기할 수는 없고, 이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몽유를 겪게 된다.

몽유하면서 누군가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이웃에 가서 사죄를 하고 또 누군가는 숲에 들어가 성욕에 불타고 누군가는 재산을 훔치고 살인을 저지른다. 한마을 나아가, 도시 전체를 삼키고 내전까지 일으킨 도대체 몽유란 무엇인가?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했다.

작가 인터뷰에서 작가는 끝내 '몽유'의 의미를 말해주지 않았다. 잘나고 똑똑한 수많은 평론가분들이 그럴듯한 말로 '몽유'를 포장하리라...







글쎄, 우리나라에서 몽유란 2019년의 코로나 팬데믹이기도 하고, 멀게는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 민주주의의 말살, 집단적 광기와 살의 더 멀리 가면 1950년 6월 25일의 새벽 같은 민족을 죽이고 찌른 비극.... 그런데 더 불행한 것은 집단적인 몽유로 밀어 넣은 독재자가 천수만 수 다 누리고 죽었다는 사실이다. 늘 부끄럽다. 좀 더 먼 미래에 후손들은 독재자가 아닌 지금의 우리들을 평가할지도 모를 일이다.


여전히 기다리는 일이 남았다.

혹은 견디는 일이 남았고 한 번 무너진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나도 이제 기나긴 몽유에서 그만 깨고 싶어요, 옌롄커 선생님 ㅠㅠ


해가 죽던 날 나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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