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을 거두는 시간
이선영 지음 / 비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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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영 장편소설/ 비채 (펴냄)









목차가 없는 소설을 만났다. '아! 목차가 없구나' 다 읽고서야 알아차렸다. 보통 소설을 펼치면 '작가소개'와 '작가후기'를 먼저 읽는 편이다. 전지적인 관점에서 읽고 보고 느끼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서 책이든 영화든 최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읽는 독특한 취향 ㅋ 모르는 낯선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고 안전에 대한 염려이기도 한 나의 습성.







프롤로그를 지나 소설의 첫 문장에 가만 시선이 멈춘다.


J동, K아파트, 지하 3층, 알파벳과 구체적인 숫자로 시작되는 문장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떠올랐다. 참 신기하기도하지! 숫자를 밝히고 돈 밝히는 사람은 싫어하면서 숫자가 주는 신뢰감에 안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인공 엄마의 경상도 사투리 덕분인지 초반 몰입감이 좋았다. (선임이를 스님이라고 발음 ㅋㅋㅋㅋㅋ)







이혼 후 전 남편과 비즈니스 관계로 가끔 연락을 주고 받는 대필작가 윤지, 어느날 이모의 연락이 온다. 자서전을 쓰고 싶다며....

이모가 대필작가로 왜 윤지를 골랐는지 소설을 덮으며 알았다.



이모의 자서전을 집필하며 이모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와 윤지 자신의 학창시절 회상하는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로 반복된다. 시간대가 교차되는 장면을 작가는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쓰는 사람의 관점에서 읽은 소설이다. 현재 다음에 과거 회상이 이어지는 장면을 포착해내려 노력하며 읽었는데 부러운 재능이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그물'이라는 단어와 '시간'이라는 두 단어를 놓고 독자들은 한참 생각하게된다. 삶에서 그물은 무엇이었는지, 내 삶에 주어진 시간을 나는 어떻게 썼던가를! 아마 소설 제목에 대해 느끼는 바는 독자마다 상당히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물을 거두는 시간이라고 제목을 붙이면 내가 뿌린 결과가 선의로 느껴지는데 나의 좁은 아량으로는 윤지를 용서할 수가 없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물론 사람이 죽을거라는 예상까지는 하지 못했을 것이고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더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소설 속 이모는 전업주부로 살다가 경제적인 이유로 생업에 뛰어들고 일이 잘 풀려서 마침내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성공한다. 그러나 가족들의 냉대 심지어 없는 사람 취급은 가혹했다. 그림자라는 존재가 누구였는지 궁금했고 처음에는 이모에게 내연남이 있었나 싶었는데 반전이었다.







여전히 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차별을 넘어 가혹한 실정이다. 만약 내 가족의 이야기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사람들은 쿨한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막상 내 가족이나 내 일이라면 결코 쉽지 않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에서 묻는다. 지구 평화와 우주 평화까지 말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기 주위의 이웃들, 가난하고 아파하는 지인들은 결코 돌보지 않는다고! 도대체 선의란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기 승 전 도스토옙스키 !!








외가 사람들의 반응은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일수도 있다. 외삼촌들의 경우 재정적으로 이모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끝내 유령 취급하는 모습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건을 경험했더라도 개인의 감정과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작용하는 게 기억의 실체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P233



인간의 기억은 자기중심적이다. 스스로 방어기제이기도 하지만 왜곡되기 싶다.

남에게 상처를 주었으면서 정작 당사자는 전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그 반대일수도 있고 ^^



사랑의 다양한 모습들, 너무 당연한 깨달음일까?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 할수록 모르는 게 사랑!!


덧. 소설을 읽는내내 한 사람이 떠올랐다. 길고 긴 스토킹..... 받아줄 수 없는 마음은 아마 소설의 수진과 같은 이유였울 것이다. 사랑의 감정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볼 때 그 사랑이 얼마나 비극인지를 우리는 삶에서 깨닫는다. 소설을 덮으며 이렇게 마음이 무거웠던 적이 있을까? 하필이면 소설 속 인물과 이름이 같은 그 분, 어디선가 잘 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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