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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 - 아날로그 시대의 일상과 낭만
패멀라 폴 지음, 이다혜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5월
평점 :
인류의 거대한 물류창고 인터넷이 삼킨 존재들.... 『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
패멀라 폴 (지음)/ 생각의힘(펴냄)
며칠 전 울 동네 초등학교 앞 문구사가 사라졌다.
매일 출근길에 신호대기하며 만나는 풍경, 학교 앞 문구사에서 준비물을 고르는 학생들. 그 바쁜 아침 시간에도 게임기 앞에 앉아있는 아이들을 학교로 재촉해서 보내는 문구사 아저씨, 며칠 전 우리 학교 앞 문구사는 개업 20년 만에 폐업을 했다. 그 자리에 지금 대형 프랜차이즈 ○○○가 들어섰다. 무인 샵이기 때문에 늦은 밤에도 불이 켜져 있는 새 문구점... 알록달록 불빛은 왜 다정해 보이지 않는가!!!
늦은 밤새 문구점 앞에 차를 세워두고 잠시 머물러 본다. 단순히 학교 앞 문구사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닌 수많은 추억이 함께 사라졌다. 사라진 것이 어디 문구사 뿐인가....
난 어떤 면에서 첨단과학 대우주 시대 예찬론자인데!!! '인터넷'이라는 위대한 인류 저장소가 삼킨 것들...
무엇이 있을까? 너는 무엇을 삼켰니? 손 편지, 전화번호부, 타자기, 필름 카메라, 비디오테이프, LP 판, 아날로그 방식의 수많은 존재들을 꿀꺽 삼켰을까? 휴대폰이 나오기 전 눈이 소복 쌓인 길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며 아직 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던 사람들, 기다릴 자유마저 삼켰을까....
마치 없었던 존재인 것처럼...
죽어도 죽지 않는 시대다.
몇 년 전 너무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나의 지인이 sns 친구 추천 목록에 뜬다. 오스스 소름이 돋는다.
감사하게도 학창 시절 친구들과 주고받은 나의 편지를 고이 보관해 주신 부모님 덕분에 나는 그 시절 쓴 손 편지를 깔깔대며 가끔 열어볼 수 있다. 그중 늘 나를 아프게 하는 편지는 고3 때 같은 반 친구 정하.....
그 아이는 스물두 살 간호사 실습을 마치고 늦은 밤 귀갓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스물두 살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내 친구 정하야..
너랑 주고받은 손 편지를 나는 아주 가끔만 펼쳐본다. 스마트폰에 함께 찍은 영상이 주는 감동과 사뭇 다르다. 꼭꼭 눌러쓴 연필 자국을 내 손끝으로 더듬으면 지금도 함께인 것 같아서....
책은 첨단과학 문명시대를 역행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하철 유실물이 보관함에서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듯이, 원한다면 그 기억만은 간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소망은 지나온 sns 모든 흔적을 없애고 조용히 소멸하는 건데,
아이러니하게도 추억이 소멸되는 것은 어찌 이리 슬픈가.....
다시 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한 달에 두 번, 그저 혼자 하는 챌린지다. 손 편지를 써서 우체국에 갔던 날, 우체국 직원도 뜨아해했다. 내게 우편의 종류와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 세 가지와 그 가격을 두루 설명하더니, 등기로 보내라고 권했다. 나는 우표를 붙이고 싶어서 가장 느린 방법을 택했다. 손 편지 챌린지............
( 혹시 제 손 편지를 받으시면 제게 답장을 하는 게 아니라, 떠오르는 다른 분께 하시면 됩니다. 물론 쓰지 않아도 무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