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시간 - 제2차 세계대전 패망 후 10년, 망각의 독일인과 부도덕의 나날들
하랄트 얘너 지음, 박종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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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랄트 예너(지음)/ 위즈덤하우스(펴냄)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은 진짜 반성을 했을까? 책은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독일은 스스로를 분석하고 반성했던 거 아닌가? 반면, 일본을 그렇지 않다고 나는 알고 있었다. 학창 시절 배운 역사교육이 그렇게 가르쳐 주었다.






독일인 저자가 말하는 독일!! 독일 경제가 패망의 잿더미 위에서 다시 일어서게 된 것은 그들의 근면성 때문일까. 책 서두에 묘사된 베를린의 현실은 정말 참혹했다. 베를린으로 진격해 들어간 소련 점령군의 시점, 시청 직원의 시점, 나치당원 여성의 시점, 노약자의 시점 등 다양한 각도에서 전후 베를린을 묘사해 보여주었다. 카메라 앵글이 다양한 각도로 돌아다니며 영화를 보여주는 느낌으로 읽었다. 중반쯤 가자, 왜 책의 제목이 늑대의 시간인지도 알 수 있었다.......... 하! 전쟁이란 ㅠㅠ





일본 여행을 갔을 때, 가이드는 각종 전시장으로 안내했다. 역사적으로 갈등의 소지가 있는 곳은 한국인 출입 못하게 다 막아놓은 상태였다. 뭔가 팔아야 수당이라도 떨어지는 걸까? 건강 보조제라며 판매하는 매장에 한국의 중년들이 줄을 섰고, 지난번에 오셨던 분인지 모르겠지만, 더 많이 구입하려고 캐리어를 들고 온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한국인 가이드가 언급하기를, 731부대가 생체 실험 역사와 그 결과물로 얻은 건강보조재라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는 자주 일본과 독일을 비교한다. 그 비교는 객관적인 해석보다는 우리 편의에 따른 역사교육이 아닌가 싶다. 세계 대전 후 남의 태도를 논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하는 게 아닌가? 내 나라 안에서 보이는 한국의 모습이 밖에서는 더 극명하게 보였던 여행이었다.






『폐허의 아름다움과 잔해를 구경하는 관광』이라는 챕터를 읽으며, 왠지 찔리는 마음이 들었다. 세계대전은 흔히 흑백영화나 사진으로 접해왔다. 밀덕인 나는 불면의 밤에는 주로 전쟁사를 읽고, 관련 영상을 찾아본다. 베를린 상공에서 전투기가 포탄을 수십 발 떨어뜨리는 장면, 건물이 와르르르 무너지는 장면, 방금 서있는 사람이 튕겨나가고, 으스러지는 장면, 한쪽 눈을 잃은 사람이 피를 닦으며 그래도 나는 살았다며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터뜨리는 장면을 보았다. 이 책에도 비슷한 상황이 언급된다. 전체 가옥의 약 45%가 파괴된 폐허 영상을 보고 또 봤던 나 자신이 왜 그리 부끄러운지.....





무덤덤한 군인들조차 충격을 받았다는 쾰른의 어느 폐허를 보며 작가들은 글을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영화가 되기도 한다. 수프 한 접시를 얻기 위해 12시간 맨손으로 벽돌을 나르고 잔해를 치우던 여자들, 폐허 아래에는 시체도 많았다. 남자들이 전쟁에서 죽었기 때문에, 잔해 철거 작업에 여자들이 많이 동원되었던 도시 베를린. 보수적인 시골의 경우는 물론 좀 달랐다고 저자는 썼다.






수용소의 상황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지붕 없는 거대한 포로수용소, 동물 아닌 인간 사육장이라 표현하면 맞을듯싶다. 웃픈 것은 그 안에서도 민족 간에 서로 갈등이 있었다. 나치 치하에서 살아남은 얼마 안 되는 폴라드 국적의 유대인들은 재차 끔찍한 희생양이 된다. 이에 일부 유대인들은 독일로 도망치는데, 그들은 나치의 나라에서 피난처를 찾아야 하는 아이러니를 겪어야 했다. 독일계 유대인, 동유럽 유대인, 정통파 유대인, ○○계 ○○계... 무슨 계.... 어쩌고 이게 다 무슨 의미인지 .... 사람 목숨보다 귀한 건가 싶은 의문이 든다. 빨갱이로 몰아붙여 어린아이까지 마구 죽이던 나라나 이곳이나 다 같은 지옥이구나 싶다. 책에서도 하나의 문장으로 묘사된다.



인종주의는 죽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그 창끝이 내부로 향했다고...... ᅲᅲ










독일인의 정체성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국가 사회주의에서는 드높은 이념으로 뜨겁게 숭배되던 민족 공동체가 전쟁 후에는 미움받는 종족들의 강요된 동맹으로 느껴졌다. 그 동맹이 비약적인 경제 발전의 시기에, 모두가 웬만큼 잘 대우받고 있다고 느끼는 비감상적인 타협 공동체로 바뀌었다. p123






절름발이로 책에서 표현된 상이용사, 그들을 시로 표현한 독일의 문학, 한국전쟁 이후의 우리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전쟁은 시공간이 다른 곳에서 일어날 뿐, 그 모양새는 어쩜 그리 같을까? 오늘 뉴스를 보니 가자 지구에서 어른들의 전쟁에 어린이가 공식적으로 10명 사망... 그것도 굶어서 죽었다고 한다. 첨단과학 대우주 시대 c 발!!!!







4, 5, 6장에서 사회 문화적인 부분을 언급한다. 전쟁이 갓 끝난 시점에서 광란의 파티가 열렸던 점. 남자들이 부족해서 거의 춤추는 것은 여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시장?에서 미군이나 연합군 남자와 결혼하는 여자는 도덕적으로 상당히 타락한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7, 8장에서 재분배와 화폐 개혁 등 경제적인 부분이 언급된다. 이렇게 짧게 쓰지만 4~8장이 가장 흥미롭게 읽혔다. 저널리스트이자 교수인 저자의 이력을 몇 번이나 검색해 볼 만큼 유려한 문장에 놀란 책이었다. 전쟁사 하면 흔히, 딱딱하다는 편견을 깨주는 책이었다. 암흑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이것이 독일인 정신인가? 저자의 글쓰기를 통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독일인 저자가 독일에 대해 이렇게 까발리는 글쓰기, 그러나 읽다 보면 인류 보편적인 공감이 형성된다. '독일인이다' '아니다'라는 이분법적 가치를 떠나, 전쟁을 겪으면 누구가 개가 될 수 있고, 본능의 욕구는 더 크게 작동한다는 생각도 해봤다.






과연 마지막 문장에서 저자는 무엇을 말할까 정말 기다려졌는데, 저자는 독일 철학자 야스퍼스를 언급했다. 야스퍼스의 가르침을 왜 갑자기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의대 증원 갈등'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크다. 한계상황에서 '그들이 현존'을 택할지, '실존'을 택할 것인가? 저마다의 양심을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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