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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빛을 따라서
권여름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10월
평점 :
지이언트북스(펴냄)
우리들, 삶의 빛은 어디에 있을까? 무엇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걸까?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조차 빛을 따라가기를 포기하지 않는 서민들의 이야기, 작은 섬마을 사람들, 섬 특유의 문화, 1990년대 후반의 이야기다.
《2의 세계》 공저자인 권여름 작가의 작품. 숫자 2를 테마로 한 앤솔러지였는데, 작년 5월에 출간되자마자 읽었던 작품이다. 《시험의 미래》는 파이널 점독관의 이야기였다.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다시금 그때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느낀 권여름의 소설은 우리 일상의 이야기를 잘 다루며 가독성이 매우 좋다. 그러나 가벼운 터치가 아니라, 진중한 삶의 고민을 가벼운 붓 터치로 독자에게 전해주는 느낌^^ 왜 내게 딱딱한 돌멩이를 전해주는 거지? 하고 펼쳤는데 그 안에 초콜릿이 들어있는 그런 느낌이다.
슈퍼를 소재로 한 작품. 실제로 저자는 어렸을 때 슈퍼집 딸이기도 했다. 은세, 은동, 은율 세 자매 중 주인공 은동은 가운데 둘째 딸이다. 인구 절병의 시대 요즘은 형제, 자매 없이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 둘째의 이미지는 어떤가? 언니에 비해 덜 대우받고 동생에게는 양보해야 하는 끼인 딸^^ 작가는 은동과 할머니를 실감 나게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할머니의 사투리가 얼마나 정겹게 느껴지는지, 나 역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 (평상시에는 듣기 싫은) 사투리들이 소설에서 만나면 어찌나 정겹고 반가운지....
교회 사람들이 신방을 왔을 때 글자를 몰라서 성경 봉독을 하지 못해 진땀 뻘뻘 흘리는 할머니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 예전에 TV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어르신들이 글자를 배워서 그림과 함께 동화책을 만드신 미담이었는데 눈물겨웠다. 우리네 어르신들은 학교 문턱에도 가지 못했던 공부에 한 맺혔던 시대가 불과 수십 년 전이라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 요즘이다. 불과 수십 년 사이 학교 문턱에도 가지 못했던 우리네 어르신들이 이룬 일들. 소설에서 필성 슈퍼가 대형 프랜차이즈 마트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장면, 마침내 대형 슈퍼에 밀린 우리네 동네 슈퍼들. 지금은 보려야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골목골목마다 슈퍼가 있었던 자리에는 프랜차이즈 편의점들이 그 위세 당당한 모습으로 들어서 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은 채로....
주인공 은동이 개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할머니가 한글을 깨치고 아들이 운영하는 슈퍼가 잘 되길 바라는 모습, 은동의 엄마 아빠가 슈퍼를 운영하며 겪는 사회 이슈적인 문제 등 여러 문제가 서로 중첩되어 있지만, 그들의 소망은 서로 어긋나지 않고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잘 돌아간다. 작가 후기의 문장이 와닿는다. 조지 손더스의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에서 작가가 작품을 쓰고 나서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그 깊은 책임감은 작가 만의 몫이 아님을.... 바통은 독자에게 넘겨졌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