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
노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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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희 산문/ 작가정신(펴냄)


울음 저장소를 꼭 걸어 잠근 게 2년? 3년, 4년인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는 친구를 토닥이며 위로해 주면서 정작 나 자신은 울면 바보라고 생각했다. 어지간한? 글을 봐도 속으로 엉엉 울 뿐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눈가에 살짝 맺혔다가 안으로 말라버리는 눈물샘.....


최근 이런저런 일로 울음 저장소가 가득 차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노재희의 산문을 읽다가, 어느 부분에선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 이제 제대로 한번 울어봐야지 결심했으나 역시 속으로 울 뿐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속으로 우는 울음은 흐르는 눈물과 달리 가슴을 쥐어짜는 기분이란 것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주 양육자가 꼭 엄마일 필요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세상은 노동력의 거의 절반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니 국가가 육아 지원을 하는 것은 사실 국가에도 이익이 되는 일이다. 주 양육자만으로 육아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국가의 육아 지원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p16


7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저자. 엄마 아빠가 다 일하러 나가면 빈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빈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 마당에서 장독에 고무줄을 묶어 혼자 고무줄놀이를 하고, 오빠가 다니는 학교 운동장에서 모래 위에 그림을 그렸다. 정부에서는 북한의 탁아소는 엄마가 당연히 해야 할 육아를 빼앗아가는 행위라고 맹비난했고, 정작 남한의 엄마들은 우는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일을 하러 가면서 울어야 했던 시대라고 한다.


어린아이에게 기다림이란, 그 시간이 얼마나 가혹했을까 싶다.


태어나면서부터 뭔가를 기다리기만 하던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더는 아무것도 기다릴 것이 없는데도 그 마음은 기다림의 관성으로 달리고 정신은 도래힐 뭔가를 지향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아채지 못한다. p20


기다림을 언급하면서 작가는 하이데거의 권태를 언급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가, 위대한 하이데거나 영국의 과학철학자 파울 파이어아벤트,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 시리즈, 위대한 내 인생 소설 《마의 산》의 작가 토마스 만, 스타니스와프 렘, 로저 에커치의 사유를 작가의 산문에 밑그림처럼 끼워 넣다니! 책을 펼치고 채 몇 페이지 읽었을까 말까 한순간 이미 필사하고 싶은 문장이 많았던 이유를 유려한 문장을 쓰는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철학을 읽고 이해하고 생활에 가까이하는 소설가의 글을 사유의 깊이가 다르다.


(오지 않는 것에 대한 기다림 그것을 잘 참을 줄 알며 검은 고양이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하고, 현재를 살면서 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느라 현재를 가장 모른다는 점, 청각이 예민해져서 거의 자다 깨다 불면증인 점, 철학이나 소설가를 많이 모르지만 저자가 언급한 작가들은 정말 신기하게도 다 아는 작가이며 심지어 좋아하는 분이라는 점, 어느 모임에 가든 주위를 한번 쭈욱 둘러보고는 가장 아웃사이더의 자리를 먼저 발견해 앉는다는 저자는 나와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아 놀랍다. 내 얘긴가 싶다)


( 나는 기다리는 것을 정말 잘한다.

사랑은 기다림이라고 배웠다. 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또 누르면 잠 못 자는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온다는걸.

나는 안다...... 눈물도 아마 그때 말라버린 것 같다.)


나는 자주 과거를 생각하고 자주 미래를 생각한다. 아니, 자주 생각한다는 것은 거짓말. 사실은 과거와 미래에 사로잡혀 있다. 과거는 후회의 형태로 나를 붙들고 있고 미래는 불안의 형태로 나를 물들인다. 후회와 아쉬움과 부끄러움으로만 이루어진 과거는 내가 생각했던 내 인생이 아니었으므로 진짜 내 인생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있었다. 진짜 내 인생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지 못하면서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나는 그것이 미래의 어느 날에 나타날 어떤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현재는 진짜 내 인생이 펼쳐질 미래로 건너가기 위한 징검돌 같은 것이다. 현재의 나는 어쩌면 현재를 가장 모르는 사람. p77


덧. 어제 퇴근길에 뉴스를 들었다. 가자 지구에서 현재 10분에 한 명꼴로 어린아이가 죽고 있다는 기사였다. '이스라엘 이런 씨8넘들 '


희안하네! 욕을 하면서도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오늘은 진짜로 울고 싶다....



. 노재희 작가는 늘 이 책이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늘 이 리뷰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늘 오늘만 살 것처럼 오늘이 삶의 전부이자 끝인 것처럼....


덧. 책의 제목이 왜 나무와 함께 정처없음이지 생각했다. 그나마 나무와 함께라서 다행인지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말이야.....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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