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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이야기
러셀 셔먼 지음, 김용주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1월
평점 :
어릴 적 피아노 교습소에서 몇 년간 피아노를 배운 경험이 있다. 새로운 곡을 알아가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반복되는 연습이 힘들어서 괴로웠던 적도 있던 것 같다.. 이런 시절의 꿈처럼 나에겐 잊힌 단어라고만 느껴졌던 피아노에 대해 좀 더 성숙하게.. 알아가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건반 위의 철학자라 불리는 20세기 피아노 음악의 거장 러셀 셔먼이 들려주는 그의 음악과 삶에 대한 에세이다.
책은 총 5장으로 나뉘었으며 가장 먼저 피아노 하면 떠오를 수 있는 손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엄지손가락이 이끄는 손바닥 쪽과 네 손가락으로 이루어진 손가락 편대는 서로 밀고 당기며 춤추는 스페인 댄서 한 쌍과 같다고 말했는데 각 손가락의 역할을 나누어 설명해 주어서 글만 보고도 손가락 하나에서부터 세포가 다 일깨워져서 내가 마치 피아노 연주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상도 되었다.
글을 보면 볼수록 예술은 심오하고도 어렵구나 싶다가도.. 예술이 그래서 재밌는 거구나 하고도 느껴졌다. 책의 앞표지에도 있듯 피아노를 아는 것은 우주를 아는 것이라 하지 않았나.. 처음 읽어보고선 금방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책 자체가 어느 곳을 펼쳐도 읽을 수 있게 되어있어 두고두고 보면 더 곱씹어 보면 좋을 책으로 느껴졌다.
피아노 연주의 법칙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은 법칙이라기보다는 다른 부수적 규칙들에 대한 전제 조건이다. 이것은 매복 공격의 법칙이다. 달아나는 16분 음표를 붙잡으려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노리다가 덮쳐야 한다. 이 게임의 이름은 '준비'다. 준비가 없으면 게임의 규칙도 없고 게임이 진행되지도 않으며, 점수를 울리거나 소리를 낼 수도 없다. 준비가 열쇠이다.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여러 가지 사고가 요구된다. 맨 먼저 음악을 악절 단위로 세분하여 생각하는, 피아노 연주의 청사진이 되는 조직적 사고가 있고 손이 음악을 소화하기에 앞서 악절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동기와 운율의 집합을 인식해야 한다. 이 패턴들을 해독하고 구분해야 비로소 기교의 조절과 능숙한 연주가 가능하다(증거를 추론하고 분류하는 능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나는 학생들에게 퍼즐과 셜록 홈즈 추리소설을 권한다)
피아노 연주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넋을 잃은 사랑이 달콤한 향기뿐만 아니라 하찮은 벌레, 독사, 수증기, 심지어 은하계도 모두 피아니스트의 손안에 있다.
음악은 예술의 한 분야이지만 모든 예술에 들어있다. 음악은 귀를 겨냥한 것이지만 모든 감각과 그 정신적 대응물에 간접적으로 호소한다. 음악은 다른 모든 예술이 갈망하는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