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코다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무코다 이발소


 작은 시골 마을 도마자와에서 벌어지는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과 크고 작은 사건들. 개인적인 비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친근하면서도 불편한 전형적인 시골 사람들. 인구는 줄어들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한때 탄광도시로 번성했던 도마자와는 에너지의 대체로 자연스럽게 쇠퇴의 길을 걸었다―이 시골 마을은 오쿠다 히데오가 창조한 세계이지만 마을의 이름과 사람들의 이름만 바꾸면 한국 작가가 창조한 세계라 해도 믿을 만큼 우리나라와 닮아 있다. <무코다 이발소>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모순된 감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무코다 이발소> <축제가 끝난 후> <중국에서 온 신부> <조그만 술집> <붉은 눈> <도망자>는 작은 도마자와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상황들을 나타내며, 그 속에서 인간의 양면성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무코다 이발소> 가업을 이어 이발소를 운영하는 50대의 야스히코가 아들 가즈마사의 직장을 그만두고 이발소 가업을 이어가겠다는 선언에 고민하는 모습이나 야스히코와 달리 아들과 같이 지낼 수 있게 되어 내심 기뻐하는 아내의 모습, 부러워하는 주변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좀 더 큰 뜻을 품었으면 하고 아쉬워하며, 젊은 청년들 몇몇이 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하는 노력들을 비관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야스히코의 모습은 시골에 사는 50대 아버지의 마음 그 자체이며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 큰 불만은 없지만 자신―야스히코―에게 다른 인생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있는 생각이 쉰세 살이나 된 중년 남자를 여전히 괴롭힌다는 야스히코의 의문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각해봤을 현재의 삶과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 혹은 의문, 그렇기에 자식에 대한 부모의 걱정은 어쩔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드러낸다.

 <축제가 끝난 후>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 많고 탈 많은 시골 특유의 풍경은 이발소의 단골 손님인 바바 할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에서 엿볼 수 있다. 해마다 아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심각한 고령화 동네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처럼 쓰러진 할아버지 바바 기하치와 그런 할아버지를 모셔야 하는 가족들을 걱정한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현실적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이자 남편인 기하치의 병세가 오랜 기간 지속될까 봐 불안해하는 가족, 남아있는 가족의 삶, 아버지를 독실로 모시고 싶지만 경제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다케시의 고민을 작가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한편 야스히코와 그의 친구 세가와, 다니구치는 자주 다니는 술집 다이코쿠에서 한잔하기로 한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역시 바바 할아버지와 그를 모시는 남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고, 그 걱정은 곧 자신들의 일이 될 것임을 50대의 남자들은 알고 있다.

 특히 60대의 술집 여주인의 거침없는 말,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다가, 그다음에는 양로원에 들어가지 뭐. 그때까지 돈 벌어서 착착 모아야 하니까, 무코다 씨가 매일 같이 마시러 오면 되겠네.”에서 부모와 자식 모두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양로원은 제2의 고향이라는 만트라를 외는, 자식에게 짐이 될까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노인들과 자식들 나름의 고충―그들의 가장 큰 부담은 경제적 부담일 것이다―, 전세계가 겪고 있는 고령화 사회 그리고 노후에 대한 복지 시스템의 서글픈 현실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또한, 젊은 청년단 일행들이 다이코쿠에 나타나 술집 여주인의 부모 봉양에 대한 물음―“우리 젊은 사람들은 부모가 나이 들면 어떻게 할 거야?”―에 “앞일을 어떻게 알겠어요.”라는 퉁명스러운 대답과 대답을 거부하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버리는 자식들의 태도가 그저 세 명의 아버지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 뿐이라는 부분은, 오늘날 현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중국에서 온 신부> 결혼하지 못한 노총각은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신부를 찾지 못해 외국에서 데려와 함께 사는 가정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마흔 살의 노무라 다이스케가 중국에서 신부를 데려와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사랑에 대한 상처와 늦은 나이에 외국인 신부를 맞았다는 수치심에 사람들을 피하는 다이스케를 아니나 다를까 동네 사람들은 보고만 있을 수 없다. 프라이버시나 개인의 삶이 없는 곳에서의 불편함은 말할 수 없이 크겠지만, 당시에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해야 하는 싫고 짜증났던 일들이 결국 더 나은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변에 간섭하고 적극적인 사람들이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 말이다. 결국 그를 설득해 피로연을 열고, 우여곡절 많던 피로연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며 다이스케의 마음을 열게 만든다.

 <조그만 술집> 한 명의 사람이 드는 것이 큰 행사인, 그런 작은 마을에 새로운 술집이 생긴다. 가게를 연 사람은 미하시 사나에라는 마흔두 살의 아름다운 여자. 그런 아름다운 여자가 나타나자 도마자와의 몇몇 남자들은 안달을 하고, 그녀가 연 술집은 남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녀를 우연히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평소와는 가지 않던 콘서트장에 각자의 이유를 대며 가는 50대 사내들 야스히코, 세가와, 다니구치의 행동, 사나에에 부탁을 받고 행복해하는 야스히코의 행동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중학생의 마음과 다르지 않은 50대 남자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게다가 사나에의 꿈까지 꾼 야스히코는 그동안 보여주었던 점잖았던 모습과 대비되면서 인간의 본성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중년의 남자들이 벌이는 귀여운 질투와 일탈은 결국 싸움으로까지 번지지만, 매일 얼굴을 보게 되는 시골에서는 시간이 해결해주기 마련이다. 마을은 한때 넋을 잃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붉은 눈> 도마자와에서 영화를 촬영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예년 같으면 봄이 올 때까지 무미건조한 나날이 계속되었겠지만 시골 사람들의 순수한 행복감은 매일 영화 촬영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운다. 하지만 영화 촬영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를 기대한 주민들은 사소한 갈등을 일으킨다. 생각지도 않은 수요에 다들 어떻게든 떡고물을 얻어먹으려는 것이다. 숙소 배분이나 도시락 납품 등 개인적 욕망을 드러내는 동시에, 마을 사람들은 물심양면으로 영화 촬영을 돕고, 단역 오디션에도 참여한다. 인간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과 순수한 기쁨을 동시에 보이는 양면성은 이 부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또한 모두가 기대했던 영화의 내용과 달리 영화는 시골 지역 사람들을 해학적으로 그린 범죄영화였고, 불쾌감을 표시하는 주민들과 그렇지 않은 주민들 사이에 또 다른 간극이 생긴다. 그러나 <붉은 눈>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제의 상을 휩쓸자, 영화를 비판했던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바꾼다. 이 역시 인간의 간사한 면과 순진하고 아이 같은 면이 동시에 보이는 부분이다. 그 외에도 영화 유치에 성공한 후지와라 과장과 마을 주민들의 사소한 의견 차이와 말다툼 등 주민들의 사소한 갈등과 해결을 통해 도마자와 사람들의 좌충우돌 살아가는 방식을 위트 있게 그려낸다.

 <도망자> 마을 주민 히로오카의 아들 슈헤이가 지명 수배자가 되어 도마자와 사람들의 모든 이목이 집중된다.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 슈헤이의 부모를 걱정하는 동시에, 가택수사를 하는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자식 걱정과 자괴감에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히로오카 내외를 위해 먹을거리를 가져다주는 당번을 정하는 등 그들의 슬픔을 진심으로 공감하며 걱정한다. 동네가 조그맣다 보니, 한 사람의 슬픔이 모두에게 전염되는 것이다. 그러나 히로오카 부인이 평소 학부모회 모임에서 아들 자랑을 많이 했던 터라 몇몇 여자들은 그녀를 딱하게 여기지 않는 듯한 분위기도 있다는 소식을 야스히코의 아내 교코에게서 듣는다. 같은 상황을 놓고도 자신들이 겪은 경험에 의해 미묘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한편 경찰들은 스물네 시간 히로오카의 집 앞에 잠복을 하고,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야스히코와 세가와의 아들 가즈마사와 요이치로에 의해 일은 마무리된다. 슈헤이의 연락을 받고 체포되기 전에 슈헤이의 어머니를 만나게 해주고 자수를 권한 그들. 죗값을 치르고 나면 슈헤이를 받아들일 거라는 젊은 사람들, 그러니 아버지들도 히로오카를 받아들이라는 가즈마사의 말. “변화가 없는 동네잖아요. 조금은 변화를 불러일으키자 싶은 겁니다.” 아들에게 감동을 받은 50대의 남자들과 결국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데에 성공한 젊은 청년단들은 도마자와의 밝고 따뜻한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만든다.


 간결한 문장으로 잔잔한 감동과 더불어 따뜻한 시골 사람들의 심정과 인간이라면 품을 수밖에 없는 이기심을 동시에 그려내는 오쿠다 히데오. 그가 창조한 시골 마을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도시에서의 메마른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사업의 성공으로 경제적 호황을 맞게 되거나 관광도시로서의 급부상 등의 변화는 없었지만, 따뜻하고 착한 심성을 소유한 도마자와 사람들에 의한 변화는 있었다. 그것이 우리에게 또 다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니와 수잔 버티고 시리즈
오스틴 라이트 지음, 박산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토니와 수잔

-녹터널 애니멀스


 그걸 보니 잊고 있었던 너무 많은 것들이 떠올라 과거와 이루었던 화해를 위협했다.


 전남편 에드워드가 보낸 편지 한 통은 수잔을 단번에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걸 읽고 여기서 빠진 걸 찾아봐, 수잔.’ 수잔은 과거에 대해 떠오르는 원치 않는 기억들과 의구심, 알 수 없는 강렬한 두려움의 잔영을 끌어안은 채 그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

 소설 속 내용은 토니 헤이스팅스라는 남자와 아내 로라, 딸 헬렌이 한밤중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레이, 터크, 루라는 괴한들에 의해 갓길에 차를 세우게 되고 그로 인해 토니의 인생에 점철될 선명한 비극이었다. 괴한들에게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아내와 딸이 납치되는 상황도 모자라 아무도 없는 검은 숲속, 어둠만이 있는 정적 속에 홀로 버려진 토니. 수잔은 에드워드의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에 완전히 빠져든다.


 이건 다르다. 그녀도 이 점은 인정했다. 이 이야기는 그녀를 사로잡았고, 좋건 싫건 그녀의 감정을 휘두르고 있었다.


 토니 헤이스팅스는 끔찍한 상황 속에 그가 얼마나 이성적이고, 평화를 사랑하는지, 법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따위를 마음속으로 되뇌며 극복해나가려 한다. 하지만 상황은 그가 얼마나 비겁하고 무력한지만을 보여주며 인간의 처절하고 나약하며 저열한 모습까지도 드러낼 뿐이었다.

 수잔은 에드워드의 소설, 토니의 이야기에서 그가 느끼는 고통과 슬픔을 그대로 느끼며 자신이 토니에게 그리고 에드워드에게 몰입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내가 왜 에드워드를 생각하고 있는 거지? 그의 기억이 마치 선잠에서 반향을 일으키는 꿈처럼 튀어나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휙휙 날아다니는 새처럼 그녀의 마음속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 에드워드에 대한 죽은 기억이 몇 년 전 장정한 책들 속에 보관돼 있는 반면, 새롭게 살아난 에드워드의 기억은 잡히지 않은 채 밖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재혼한 남편과 세 명의 아이가 있는 수잔이 전남편이 보낸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고 달라지는 지를 보고 있자면, 에드워드가 토니를 통해 준비한 게 무엇일지, 소설 속 빠진 걸 수잔이 찾을 수 있을지 하는 궁금증은 계속해서 커져간다.


 그녀에게 정해진 고통, 오래된 고통인지 아니면 새로운 것인지, 과거의 고통인지 미래의 고통인지는 그녀도 분간할 수 없었다.


 한편 토니의 아내 로라와 딸 헬렌은 강간-살해된 채 발견되고, 그의 인생은 복수와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경찰 바비 안데스와 함께 범인을 추적하고 문명인과 야만인의 경계에서 복수와 정의를 아슬아슬하게 구분하는 그들의 모습과 가족을 잃고 슬픔에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는 동시에 여자들과의 관계―프란체스카 후턴, 엘리노어 아서, 특히 제자 루이스 저메인과의 사랑이 아닌 섹스―를 꿈꾸는 토니의 모습은, 비겁하고 어설픈 동시에 잔혹하고 위태로운 토니 헤이스팅스, 에드워드 셰필드, 수잔 모로의 모습 그 자체이다.

 동시에 진실인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수잔’과 ‘에드워드’라는 남녀의 만남과 그녀와 그의 성격적 차이, 서로에게 보여주었던 진실과 가식, ‘결혼’이라는 행복과 환멸, 이기심과 배신으로 초래된 현재라는 결과, 아놀드와 수잔이 셀레나와 에드워드를 배신하고, 마릴린 린우드라는 정부(情婦)를 둔 아놀드와 에드워드의 소설을 읽으며 그를 생각하는 수잔, 그리고 토니 헤이스팅스의 파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찬성하지 않는 어떤 이데올로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종되는 일은 없기를 빌고 있었다.


 소설의 끝나지 않을 비극이 이어지고 토니가 레이에게 다가가면서, 수잔은 에드워드의 존재가 더 크게 부활하는 걸 느끼며 에드워드와의 결혼생활과 자신의 불륜, 에드워드의 글쓰기 등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이 수면으로 떠오르는 걸 바라본다. 그리고 토니, 에드워드, 자신에게서 비롯된 알 수 없는 공포의 끈을 끝까지 놓을 수 없음을 알고 저항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저항은 실패하고, 토니의 저항 역시 실패한다. 모든 용기가 사라지고 경멸과 굴욕감에 휩싸여 발사된 그의 총은 감수하기로 한 그의 가족의 죽음도, 그의 남은 생에서 기다리고 있을 루이스 저메인과의 관계도, 비록 장님이 되고 자멸의 길로 들어선 삶일지라도 그가 붙잡은 삶에 대한 의지도, 그 모든 진실을 가린 채 그를 로라와 헬렌의 품으로 되돌려 놓는다.


 책이 끝났다. 수잔은 그녀의 눈앞에서 책이 계속 마지막 챕터, 페이지, 단락, 단어로 줄어드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제 수잔은 현실로 돌아온다. 선명하게 보이는 소설 속 장면들.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두려움과 기대감.


 … 그 분노는 결국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그녀가 분노하는 건 압박감, 순전한 압박감 때문이었다. 자신이 틀렸다는 굴복을 계속 견디면서 공정한 시각을 유지해야 하는 압박감. 사흘 내내 앉아서 공정하게 책을 읽기 위해 그에 대한 사랑과 증오란 감정을 무시해야 했던 압박감.


 아놀드와 에드워드에 대한 각기 다른 압박감을 느끼며 수잔은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요구했던 것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수잔의 삶을 위태롭고도 모욕적으로 느끼게 한다. 아놀드의 정부(情婦), 의무적인 섹스와 만족스럽지 못한 아놀드의 태도,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그녀의 침묵, 에드워드를 기다리는 죄책감과 수치가 타오르며 수잔은 에드워드의 복수를―이처럼 폭력적이며 우아한 복수를 본 적이 있던가―생각한다. 과거를 붙잡을 수도, 현실을 깰 수도 없는 수잔은 「녹터널 애니멀스」속 토니처럼 형편없는 선택만이, 그리고 형편없는 결말만이 남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 전체에 미묘한 불안이 구름처럼 떠있다. 수잔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토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떠나지 않는 이 불안의 정체가 에드워드의 노림수인지, 수잔의 신경증적 성향 때문인지, 토니의 비극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불안은 수잔이 에드워드의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에 사로잡힌 것처럼 단숨에 오스틴 라이트의 「토니와 수잔」에 빠져들게 만든다. ‘수잔’의 입장에 몰입해서 읽었다가, ‘토니’의 입장에 몰입해서 읽어나가는 재미는 두 권의 소설을 동시에 읽는 듯한 느낌을 주고, 소설의 중후반부를 지나면서 ‘토니와 에드워드’, ‘토니와 수잔’이라는 기이한 입장에 몰입된다. 수잔과 토니의 감정과 의식이 흐르는대로 나열된 문장과 불안에 떨게 만들고 알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을 불어넣으면서도 결혼과 사랑과 복수에 대한 아이러니하며 현실적이며 위트 있는 문장들의 향연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이야기는 기억처럼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스쳐지나가는 순간들을 보관할 작은 방들을 시간을 두고 쌓아 올린 것이다.


 이처럼 위험하고도 황홀한 그의 이야기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독자를 토니와 수잔처럼 무력하게 매료시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내를 죽였습니까 버티고 시리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헐 정말이네요,,,캐롤의 그 ,,분인가요??
그 페이지마다 보이는 오탈자와 작품 자체를 바닥으로 내던진 번역자분인가요,, 유일하게 번역때문에 100자평 쓴 게 "캐롤"이었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
마크 월린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


 트라우마와 유전의 관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였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어떻게 외상을 겪지도 않은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이 책은 많은 사례와 과학적 근거로 대답해준다.


 과거는 결코 죽지 않았다. 심지어 지나가지도 않았다.

   -윌리엄 포크너 William Faulkner, <어느 수녀를 위한 진혼곡 Requiem for a Nun>


 또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 우울함, 강박관념, 두려움 등 정서적 문제를 단순히 ‘내 문제’로만 여겨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며 치유과정과 치유방법,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나의 문제를 부모와 조부모를 비롯해 그 윗세대의 일까지 들여다봐야 한다니…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참전 용사나 세계무역센터 테러를 겪은 사람들 등 엄청난 비극적 사고를 겪은 사람들의 스트레스와 관련된 정신 질환과 코르티솔(트라우마를 경험한 뒤 우리 몸이 정상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주는 스트레스 호르몬)수치가 세포생물학적으로, 후성유전학적으로 그들의 자녀에게 유전된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겪는 고통에는 윗세대의 고통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그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2대, 3대에 거친 후손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들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하는 말들…. ‘끔찍한 죄를 저지르면 3대가 망한다.’ ‘부모가 지은 죗값을 자식이 치를 것이다.’등의 말들이 이 책에서는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이야기로 드러난다.

윗세대의 잘못으로 인한 비극은 가려져 있을 뿐 결코 사라지지 않고 다음 세대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무시무시한 이론.


 무의식은 들어달라고 보채고, 되풀이하고, 말 그대로 문을 두드려 부숴버린다.

   -애니 로저스 Annie Rogers, <말할 수 없는 것 The Unsayable>


 어린 시절 어머니(양육자)와의 단절된 관계를 어머니의 어머니, 더 윗세대까지 들여다보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이론은 어머니가 나에게 주지 않았던 것들이 어쩌면 어머니 역시 받아보지 못했기에 줄 수 없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또한 부모와의 틀어진 관계가 평생의 인간관계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말해 부모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만으로도 생기 넘치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내용에서는―그것이 비록 부모를 잘 모셔야 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부모와의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의미일지라도,―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문화 효(孝)가 얼마나 중요한지, 사라져가는 그 정신이 결국 자기 자신까지 병들게 만들게 될 것임을 모르는 현실이 안타까우면서 무섭기도 했다.

 책에서 나온 여러 사례들(내담자의 문제가 윗세대에서 야기된 것임을 고통 받는 당사자가 아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과정들)은 놀랍기도 하고, 일부 믿기 어렵기도 했지만, 임신 기간에 받은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생애 초기에 부모와의 단절이 미치는 영향 등은 여러 가지 다른 책에서도 나왔던 이야기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다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자신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들이 묘사하는 각기 다른 방식의 언어 표현. 즉 핵심 언어를 파악해야 한다. 바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일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핵심 불평어, 핵심 묘사어, 핵심 문장, 핵심 트라우마를 파악하여 치료하는 과정이 우리의 괴로움을 벗어나게 해줄 유일한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면의 어떤 상황을 의식으로 포착하지 못하면 그것은 외부에서 운명으로 펼쳐진다.

   -카를 융, <아이온: 자아의 현상학에 대한 연구 Aion: Researches into the Phenomenology of the Self>


 핵심 묘사어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핵심 문장으로 내면에 박힌 두려움의 최초의 주인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게 가족과의, 부모와의 관계를 치유하고 나아가 자기에게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치유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분리해야 알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것, 관계를 회복해야 알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것.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법,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자기 안에 혼돈이 있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카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선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카


 특별한 욕심 없이 일상을 성실히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가장인 혼마 다카오. 그에게 숨어있던 욕망을 부추기는 사카이 마사시. 그로 인해 우연히 알게 된 리카.

 후배인 사카이로부터 메일을 통해 여자들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혼마는 그의 집요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만남 사이트’에 접속하게 된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일상에선 알 수 없었던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서로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은 커지게 된다. 그렇게 한 여자와 육체관계를 몇 번 가지게 되지만 아내와 딸에 대한 죄책감에 실제 만남까지는 가지 않으면서 은밀한 감정은 즐길 수 있는 메일 연애만 계속 하기로 스스로를 설득한다.


 메일은 본인들 이외에 아무도 없는 두 사람만의 세계다. 그곳에서는 어떤 말도 할 수 있고 상대를, 그리고 자신을 미화할 수 있다.


 그렇게 1년 뒤, 혼마는 승진을 앞두고 다시 한 번 꿈틀대는 욕망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일탈하지 않고 꾸준히 걸어온 길이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무료한 길이었다는 생각에 단 한 번만 만남을 전제로 메일을 주고받을 상대를 찾는다. 그렇게 알게 된 간호사 리카. 메일에서 알 수 있는 그녀는 배려심이 넘치며 여성스럽고 소녀 같은 순수함을 지닌, 만나기에 최적의 조건인 여자다.

 하지만 리카의 연락을 받지 못할 때 그녀가 보인 반응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끝없는 전화와 집착, 협박, 애원, 간청, 읍소, 눈물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화를 받아달라는 리카의 요구에 혼마는 그녀와의 만남을 취소하고 연락을 끊는다.

 그렇게 리카의 스토킹은 시작되고, 혼마의 삶은 서서히 무너져간다.


 상대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압도적으로 유리한 사람은 그 여자다. 그 여자에게는 지켜야 할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길리언 플린의 <나는 언제나 옳다>를 제외하면 내가 읽어본 공포, 호러 소설은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게다가 영미소설에 비해 일본소설은 잘 읽지 않았는데 <리카>를 읽고 새로운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표지는 정말 멋졌고, 여성 스토커인 ‘리카’라는 캐릭터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가장 먼저, ‘리카’라는 캐릭터가 너무 무서웠다. 내가 읽은 대부분의 영미소설에서 여성 사이코패스, 스토커, 살인마는 오히려 눈부시게 아름답거나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로 그려지며 내면에서만, 혹은 사건을 일으킬 때에만 그녀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하지만 망상 속에 살아가는 ‘리카’는 자신을 쉽게 숨기지 못하고, 외적으로도 최악(?)으로 그려진다. 키가 크고 야윈 모습에 계절과는 맞지 않는 옷차림, 진흙탕 같은 얼굴색, 텅 빈 눈을 하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악취를 풍기는 리카는 원초적인 공포를 계속 몰고 다녔다. ‘누구나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아름다운 여인, 항상 친절하고 인자한 아저씨, 돈과 명예를 모두 쥐어 쥔 성공한 남성 등 악인들은 겉으로 판단할 수 없다’라는 공식이 진부하게 느껴질 때 ‘리카’는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가 벌이는 엽기적인 행각들도 일본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 그 자체였다.

 혼마 다카오를 생각하면 또 다른 공포가 고개를 든다.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한 남자가 한 순간, 익명으로 주고받는 메신저를 통해 자신과 가족, 그의 주변 사람들을 위험으로 몰고 가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환상으로 만들어 낸 인물로 누군가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 악의를 품고 접근한 상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인터넷, 채팅, 만남 어플 등 일상으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파고들어 그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 소설의 공포는 배가 된다. 우리가 위험을 감지하기도 전에, 혹은 위험을 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리카’의 접근을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르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