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선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카


 특별한 욕심 없이 일상을 성실히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가장인 혼마 다카오. 그에게 숨어있던 욕망을 부추기는 사카이 마사시. 그로 인해 우연히 알게 된 리카.

 후배인 사카이로부터 메일을 통해 여자들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혼마는 그의 집요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만남 사이트’에 접속하게 된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일상에선 알 수 없었던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서로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은 커지게 된다. 그렇게 한 여자와 육체관계를 몇 번 가지게 되지만 아내와 딸에 대한 죄책감에 실제 만남까지는 가지 않으면서 은밀한 감정은 즐길 수 있는 메일 연애만 계속 하기로 스스로를 설득한다.


 메일은 본인들 이외에 아무도 없는 두 사람만의 세계다. 그곳에서는 어떤 말도 할 수 있고 상대를, 그리고 자신을 미화할 수 있다.


 그렇게 1년 뒤, 혼마는 승진을 앞두고 다시 한 번 꿈틀대는 욕망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일탈하지 않고 꾸준히 걸어온 길이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무료한 길이었다는 생각에 단 한 번만 만남을 전제로 메일을 주고받을 상대를 찾는다. 그렇게 알게 된 간호사 리카. 메일에서 알 수 있는 그녀는 배려심이 넘치며 여성스럽고 소녀 같은 순수함을 지닌, 만나기에 최적의 조건인 여자다.

 하지만 리카의 연락을 받지 못할 때 그녀가 보인 반응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끝없는 전화와 집착, 협박, 애원, 간청, 읍소, 눈물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화를 받아달라는 리카의 요구에 혼마는 그녀와의 만남을 취소하고 연락을 끊는다.

 그렇게 리카의 스토킹은 시작되고, 혼마의 삶은 서서히 무너져간다.


 상대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압도적으로 유리한 사람은 그 여자다. 그 여자에게는 지켜야 할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길리언 플린의 <나는 언제나 옳다>를 제외하면 내가 읽어본 공포, 호러 소설은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게다가 영미소설에 비해 일본소설은 잘 읽지 않았는데 <리카>를 읽고 새로운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표지는 정말 멋졌고, 여성 스토커인 ‘리카’라는 캐릭터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가장 먼저, ‘리카’라는 캐릭터가 너무 무서웠다. 내가 읽은 대부분의 영미소설에서 여성 사이코패스, 스토커, 살인마는 오히려 눈부시게 아름답거나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로 그려지며 내면에서만, 혹은 사건을 일으킬 때에만 그녀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하지만 망상 속에 살아가는 ‘리카’는 자신을 쉽게 숨기지 못하고, 외적으로도 최악(?)으로 그려진다. 키가 크고 야윈 모습에 계절과는 맞지 않는 옷차림, 진흙탕 같은 얼굴색, 텅 빈 눈을 하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악취를 풍기는 리카는 원초적인 공포를 계속 몰고 다녔다. ‘누구나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아름다운 여인, 항상 친절하고 인자한 아저씨, 돈과 명예를 모두 쥐어 쥔 성공한 남성 등 악인들은 겉으로 판단할 수 없다’라는 공식이 진부하게 느껴질 때 ‘리카’는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가 벌이는 엽기적인 행각들도 일본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 그 자체였다.

 혼마 다카오를 생각하면 또 다른 공포가 고개를 든다.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한 남자가 한 순간, 익명으로 주고받는 메신저를 통해 자신과 가족, 그의 주변 사람들을 위험으로 몰고 가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환상으로 만들어 낸 인물로 누군가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 악의를 품고 접근한 상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인터넷, 채팅, 만남 어플 등 일상으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파고들어 그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 소설의 공포는 배가 된다. 우리가 위험을 감지하기도 전에, 혹은 위험을 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리카’의 접근을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르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