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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코다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무코다 이발소

작은 시골 마을 도마자와에서 벌어지는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과 크고 작은 사건들. 개인적인 비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친근하면서도 불편한 전형적인 시골 사람들. 인구는 줄어들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한때 탄광도시로 번성했던 도마자와는 에너지의 대체로 자연스럽게 쇠퇴의 길을 걸었다―이 시골 마을은 오쿠다 히데오가 창조한 세계이지만 마을의 이름과 사람들의 이름만 바꾸면 한국 작가가 창조한 세계라 해도 믿을 만큼 우리나라와 닮아 있다. <무코다 이발소>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모순된 감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무코다 이발소> <축제가 끝난 후> <중국에서 온 신부> <조그만 술집> <붉은 눈> <도망자>는 작은 도마자와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상황들을 나타내며, 그 속에서 인간의 양면성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무코다 이발소> 가업을 이어 이발소를 운영하는 50대의 야스히코가 아들 가즈마사의 직장을 그만두고 이발소 가업을 이어가겠다는 선언에 고민하는 모습이나 야스히코와 달리 아들과 같이 지낼 수 있게 되어 내심 기뻐하는 아내의 모습, 부러워하는 주변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좀 더 큰 뜻을 품었으면 하고 아쉬워하며, 젊은 청년들 몇몇이 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하는 노력들을 비관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야스히코의 모습은 시골에 사는 50대 아버지의 마음 그 자체이며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 큰 불만은 없지만 자신―야스히코―에게 다른 인생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있는 생각이 쉰세 살이나 된 중년 남자를 여전히 괴롭힌다는 야스히코의 의문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각해봤을 현재의 삶과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 혹은 의문, 그렇기에 자식에 대한 부모의 걱정은 어쩔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드러낸다.

<축제가 끝난 후>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 많고 탈 많은 시골 특유의 풍경은 이발소의 단골 손님인 바바 할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에서 엿볼 수 있다. 해마다 아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심각한 고령화 동네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처럼 쓰러진 할아버지 바바 기하치와 그런 할아버지를 모셔야 하는 가족들을 걱정한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현실적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이자 남편인 기하치의 병세가 오랜 기간 지속될까 봐 불안해하는 가족, 남아있는 가족의 삶, 아버지를 독실로 모시고 싶지만 경제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다케시의 고민을 작가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한편 야스히코와 그의 친구 세가와, 다니구치는 자주 다니는 술집 다이코쿠에서 한잔하기로 한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역시 바바 할아버지와 그를 모시는 남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고, 그 걱정은 곧 자신들의 일이 될 것임을 50대의 남자들은 알고 있다.
특히 60대의 술집 여주인의 거침없는 말,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다가, 그다음에는 양로원에 들어가지 뭐. 그때까지 돈 벌어서 착착 모아야 하니까, 무코다 씨가 매일 같이 마시러 오면 되겠네.”에서 부모와 자식 모두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양로원은 제2의 고향이라는 만트라를 외는, 자식에게 짐이 될까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노인들과 자식들 나름의 고충―그들의 가장 큰 부담은 경제적 부담일 것이다―, 전세계가 겪고 있는 고령화 사회 그리고 노후에 대한 복지 시스템의 서글픈 현실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또한, 젊은 청년단 일행들이 다이코쿠에 나타나 술집 여주인의 부모 봉양에 대한 물음―“우리 젊은 사람들은 부모가 나이 들면 어떻게 할 거야?”―에 “앞일을 어떻게 알겠어요.”라는 퉁명스러운 대답과 대답을 거부하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버리는 자식들의 태도가 그저 세 명의 아버지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 뿐이라는 부분은, 오늘날 현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중국에서 온 신부> 결혼하지 못한 노총각은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신부를 찾지 못해 외국에서 데려와 함께 사는 가정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마흔 살의 노무라 다이스케가 중국에서 신부를 데려와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사랑에 대한 상처와 늦은 나이에 외국인 신부를 맞았다는 수치심에 사람들을 피하는 다이스케를 아니나 다를까 동네 사람들은 보고만 있을 수 없다. 프라이버시나 개인의 삶이 없는 곳에서의 불편함은 말할 수 없이 크겠지만, 당시에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해야 하는 싫고 짜증났던 일들이 결국 더 나은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변에 간섭하고 적극적인 사람들이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 말이다. 결국 그를 설득해 피로연을 열고, 우여곡절 많던 피로연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며 다이스케의 마음을 열게 만든다.

<조그만 술집> 한 명의 사람이 드는 것이 큰 행사인, 그런 작은 마을에 새로운 술집이 생긴다. 가게를 연 사람은 미하시 사나에라는 마흔두 살의 아름다운 여자. 그런 아름다운 여자가 나타나자 도마자와의 몇몇 남자들은 안달을 하고, 그녀가 연 술집은 남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녀를 우연히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평소와는 가지 않던 콘서트장에 각자의 이유를 대며 가는 50대 사내들 야스히코, 세가와, 다니구치의 행동, 사나에에 부탁을 받고 행복해하는 야스히코의 행동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중학생의 마음과 다르지 않은 50대 남자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게다가 사나에의 꿈까지 꾼 야스히코는 그동안 보여주었던 점잖았던 모습과 대비되면서 인간의 본성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중년의 남자들이 벌이는 귀여운 질투와 일탈은 결국 싸움으로까지 번지지만, 매일 얼굴을 보게 되는 시골에서는 시간이 해결해주기 마련이다. 마을은 한때 넋을 잃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붉은 눈> 도마자와에서 영화를 촬영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예년 같으면 봄이 올 때까지 무미건조한 나날이 계속되었겠지만 시골 사람들의 순수한 행복감은 매일 영화 촬영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운다. 하지만 영화 촬영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를 기대한 주민들은 사소한 갈등을 일으킨다. 생각지도 않은 수요에 다들 어떻게든 떡고물을 얻어먹으려는 것이다. 숙소 배분이나 도시락 납품 등 개인적 욕망을 드러내는 동시에, 마을 사람들은 물심양면으로 영화 촬영을 돕고, 단역 오디션에도 참여한다. 인간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과 순수한 기쁨을 동시에 보이는 양면성은 이 부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또한 모두가 기대했던 영화의 내용과 달리 영화는 시골 지역 사람들을 해학적으로 그린 범죄영화였고, 불쾌감을 표시하는 주민들과 그렇지 않은 주민들 사이에 또 다른 간극이 생긴다. 그러나 <붉은 눈>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제의 상을 휩쓸자, 영화를 비판했던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바꾼다. 이 역시 인간의 간사한 면과 순진하고 아이 같은 면이 동시에 보이는 부분이다. 그 외에도 영화 유치에 성공한 후지와라 과장과 마을 주민들의 사소한 의견 차이와 말다툼 등 주민들의 사소한 갈등과 해결을 통해 도마자와 사람들의 좌충우돌 살아가는 방식을 위트 있게 그려낸다.

<도망자> 마을 주민 히로오카의 아들 슈헤이가 지명 수배자가 되어 도마자와 사람들의 모든 이목이 집중된다.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 슈헤이의 부모를 걱정하는 동시에, 가택수사를 하는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자식 걱정과 자괴감에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히로오카 내외를 위해 먹을거리를 가져다주는 당번을 정하는 등 그들의 슬픔을 진심으로 공감하며 걱정한다. 동네가 조그맣다 보니, 한 사람의 슬픔이 모두에게 전염되는 것이다. 그러나 히로오카 부인이 평소 학부모회 모임에서 아들 자랑을 많이 했던 터라 몇몇 여자들은 그녀를 딱하게 여기지 않는 듯한 분위기도 있다는 소식을 야스히코의 아내 교코에게서 듣는다. 같은 상황을 놓고도 자신들이 겪은 경험에 의해 미묘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한편 경찰들은 스물네 시간 히로오카의 집 앞에 잠복을 하고,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야스히코와 세가와의 아들 가즈마사와 요이치로에 의해 일은 마무리된다. 슈헤이의 연락을 받고 체포되기 전에 슈헤이의 어머니를 만나게 해주고 자수를 권한 그들. 죗값을 치르고 나면 슈헤이를 받아들일 거라는 젊은 사람들, 그러니 아버지들도 히로오카를 받아들이라는 가즈마사의 말. “변화가 없는 동네잖아요. 조금은 변화를 불러일으키자 싶은 겁니다.” 아들에게 감동을 받은 50대의 남자들과 결국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데에 성공한 젊은 청년단들은 도마자와의 밝고 따뜻한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만든다.
간결한 문장으로 잔잔한 감동과 더불어 따뜻한 시골 사람들의 심정과 인간이라면 품을 수밖에 없는 이기심을 동시에 그려내는 오쿠다 히데오. 그가 창조한 시골 마을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도시에서의 메마른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사업의 성공으로 경제적 호황을 맞게 되거나 관광도시로서의 급부상 등의 변화는 없었지만, 따뜻하고 착한 심성을 소유한 도마자와 사람들에 의한 변화는 있었다. 그것이 우리에게 또 다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