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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
마크 월린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6년 11월
평점 :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
트라우마와 유전의 관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였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어떻게 외상을 겪지도 않은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이 책은 많은 사례와 과학적 근거로 대답해준다.
과거는 결코 죽지 않았다. 심지어 지나가지도 않았다.
-윌리엄 포크너 William Faulkner, <어느 수녀를 위한 진혼곡 Requiem for a Nun>
또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 우울함, 강박관념, 두려움 등 정서적 문제를 단순히 ‘내 문제’로만 여겨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며 치유과정과 치유방법,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나의 문제를 부모와 조부모를 비롯해 그 윗세대의 일까지 들여다봐야 한다니…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참전 용사나 세계무역센터 테러를 겪은 사람들 등 엄청난 비극적 사고를 겪은 사람들의 스트레스와 관련된 정신 질환과 코르티솔(트라우마를 경험한 뒤 우리 몸이 정상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주는 스트레스 호르몬)수치가 세포생물학적으로, 후성유전학적으로 그들의 자녀에게 유전된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겪는 고통에는 윗세대의 고통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그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2대, 3대에 거친 후손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들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하는 말들…. ‘끔찍한 죄를 저지르면 3대가 망한다.’ ‘부모가 지은 죗값을 자식이 치를 것이다.’등의 말들이 이 책에서는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이야기로 드러난다.
윗세대의 잘못으로 인한 비극은 가려져 있을 뿐 결코 사라지지 않고 다음 세대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무시무시한 이론.
무의식은 들어달라고 보채고, 되풀이하고, 말 그대로 문을 두드려 부숴버린다.
-애니 로저스 Annie Rogers, <말할 수 없는 것 The Unsayable>
어린 시절 어머니(양육자)와의 단절된 관계를 어머니의 어머니, 더 윗세대까지 들여다보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이론은 어머니가 나에게 주지 않았던 것들이 어쩌면 어머니 역시 받아보지 못했기에 줄 수 없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또한 부모와의 틀어진 관계가 평생의 인간관계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말해 부모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만으로도 생기 넘치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내용에서는―그것이 비록 부모를 잘 모셔야 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부모와의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의미일지라도,―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문화 효(孝)가 얼마나 중요한지, 사라져가는 그 정신이 결국 자기 자신까지 병들게 만들게 될 것임을 모르는 현실이 안타까우면서 무섭기도 했다.
책에서 나온 여러 사례들(내담자의 문제가 윗세대에서 야기된 것임을 고통 받는 당사자가 아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과정들)은 놀랍기도 하고, 일부 믿기 어렵기도 했지만, 임신 기간에 받은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생애 초기에 부모와의 단절이 미치는 영향 등은 여러 가지 다른 책에서도 나왔던 이야기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다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자신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들이 묘사하는 각기 다른 방식의 언어 표현. 즉 핵심 언어를 파악해야 한다. 바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일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핵심 불평어, 핵심 묘사어, 핵심 문장, 핵심 트라우마를 파악하여 치료하는 과정이 우리의 괴로움을 벗어나게 해줄 유일한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면의 어떤 상황을 의식으로 포착하지 못하면 그것은 외부에서 운명으로 펼쳐진다.
-카를 융, <아이온: 자아의 현상학에 대한 연구 Aion: Researches into the Phenomenology of the Self>
핵심 묘사어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핵심 문장으로 내면에 박힌 두려움의 최초의 주인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게 가족과의, 부모와의 관계를 치유하고 나아가 자기에게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치유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분리해야 알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것, 관계를 회복해야 알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것.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법,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자기 안에 혼돈이 있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