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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 - 구십의 세월이 전하는 인생 수업
김욱 지음 / 서교책방 / 2024년 11월
평점 :
삶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다.
누구의 삶이든 어느 위인보다 거창하고,
그 어느 유명인만큼이나 잡재력을 타고났다.
꿈을 잃고 살아온 나는 모든 것을 상실한 일흔 살이 넘어서야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구십의 세월이 전하는~
삶의 끝이 오니 보이는 것들
나이 일흔에 시작한 번역일이 책으로 200권이 넘는다.
그 사이 몇 권의 에세이도 썼다. 인생에 큰 위로가 되어주었던 철학자 쇼펜하우어와 니체 책들을 엮어 편역한 책은 10만 부가 넘게 팔렸다.
퇴직 후에는 퇴직금과 주택을 담보로 한 투자에 실패해서 살 곳까지 잃었다. 그 끝자락에서 포기하지 않고 글쓰기를 시작해 건져 올린 것이 지금의 삶이고 희망이었다. 그의 삶을 담은 이야기가 때로는 어둡고 암울하지만 끝내는 ‘긍정’과 ‘사랑’으로 귀결되는 이유다.
작가는 나이가 드니 좋은 점으로 솔직해져도 부끄럼을 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보니 가감 없이 풀어낸 그의 고민과 생각에서 우리네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나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영원할 것처럼 사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삶은 다룰 수밖에 없다.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나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이 글에 어떤 가르침도 담아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저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뼈저리게 깨달은 것, 이제야 알게 된 것, 그리고 ‘오늘’을 사는 즐거움을 담았다
사람들은 구십 살이 되어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그를 노재(老才)의 시대를 연 문인이라 칭한다. 한 줄의 글이라도 더 쓰기 위해 매일 땅콩버터를 녹인 커피를 마시고 아흔다섯까지 쓸 글을 계획해놓았다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내 손으로 쌓아 올린 재산과 명예와 사회인으로서의 자격마저 상실했을 때, 그런 내 곁에 남아 있었던 것은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꿈, 그것 하나였다.
어리석게도 나는 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스무 살 시절로부터 반백 년의 세월이 더 흐른 뒤였다.
인간은 언젠가는 자신의 손으로 일군 모든 것을 잃는다.
하나뿐인 소중한 생명까지도 잃어야만 한다. 아마도 머잖
아 나는 죽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할 수 있다.
어쩌면 나는 진실을 말할 수도 있지 않은가,
뒷문에 숨어 또 다른 꿈을 꾸어보는 것이다.
부디 나를 아는 이들은, 우리의 만남이 비록 흰 종이 위에 흩어진 검은 글씨에 불과할지라도 나의 처참했던 심경을 조금이나마 헤아려줘서 그들이 스스로 잔인한 악마가 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 마지않는 꿈에 취해보고자 한다. 그리된다면 세상과의 작별이 조금은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내 목숨에 남겨진 최후의 자신감이다
산다는것의 의미는 꿈을 꾸는 것이라고.
꿈꾸는 법을 망각하지 않고 보존하기 위해
우리는 살아가는 거라고.
늙은 몸뚱이에서 강제로 소변을 끄집어내는 현실 속에서 나를 위로하는 유일한 희망은 그래도 아직 글을 쓸 수 있고, 나의 글을 읽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늘 낮설었고, 나는 끝내 나
를 미워하는 사람들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해
지지 못했다. 삶의 모든 순간에 '계획'이라든지, '순리'라는 자연발생적 법칙 같은 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생존과 종말이 찰나를 기회로 교차하는 치열한 긴장, 그 압박감을 이겨내고 다음 단계로 한발 나아갈 때면 어김없이 나의 얼굴은 타고난 표정 하나를 잃었다.
청년의 반응은 나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는 씩
웃으며 자랑하듯 말했다. "병원에서 퇴원하면 휠체어를
타고 국토종단을 해보는 게 꿈이에요." 그러고는 또다시 아침밥이 나오기 전까지 침대에 엎드려 몸뚱이의 절반을 반복해서 일으켰다.
나는 그가 부러워졌다. 절망과 공포 앞에서도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내일이 궁금해지는 그 막연한 희망. 우리는
모두 이래야만 돼, 라고 지적했을 때 사람들의 시선 따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안 그래도 돼, 라고 외치고 싶어 견
딜 수 없는 삶을 항한 충돌이 청년의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모든 경험이 정답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경험만 술하게 겪
어본 자로서 내가 확신하는 유일한 정답은, 나를 따라다닌
그 많은 수치와 절망이 모든 이의 시간 속에서 불멸의 질
서처럼 되풀이될 거라는 즐거운 기대뿐이다.
당신의 절망을 즐기겠다는 뜻이 아니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언제나 끝이 아니었다.”
‘90세 현역 작가, 김욱의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인생 고찰
나는 내 인생과 꿈을 사랑한다.
그런 내 모습이 사랑스럽다.
나는 이런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생물이다.
나마저 나를 미워하면 그땐 정말 모든 게 끝난다는 걸,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뼈저리게 배웠다.
결국 그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저절로 삶과 자신을 사랑하는 자세를 배우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아흔의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잘 살았다’는 평가는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시간만이
내 편이 되어주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확장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내가 살아온 날들이다.
두 번째는 '이자'라는 녀석이다.
정확히는 내가 갚아야 할 부채에서 파생되는 이자들이다. 이 또한 달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우리는 저 보름달로부터 인력을 빌려 대지에 발붙이고 살아가며, 대기로부터 산소를 빌려 호흡하고 있다. 일상에 광범위하게 퍼진 손때 묻은 집기와 가구들은 내 손으로 만들어낸 것들이 아니다. 누군가의 노동이 이룩한 결과물을 돈이라는 약속된 가치를 지불하고 빌린 데 불과하다. 구입과 소비라는 과정에 공찌는 없다. 공짜를 바란다면 탈세가 되고, 비리가 되고, 강탈이 되고 만다.
꿈에서 깨어나 눈을 떠보니 나는 얼굴 표피마다 빛진 횟
수를 알려주듯 주름이 가득한 백발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여전히 빚을 지며 살아가는 까닭은 끝이라
고 생각했던 때가 언제나 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감사합니다 @younar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