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발가락 사이로
이광이 지음 / 삐삐북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속을 읽다 보면 피식 웃게 되는 단어들로 웃게 된다 .작가님은 특별한 유머 감각으로 깨닫는 순간을 기록하고 무언가를 전해지는 순간 전달한다.

삶은 고고하지 않다, 베토벤 작곡에 이미자 노래 같은 것

일상의 소란 속에서 잠시 멈춰 서면, 비로소 보이는 찰나의 깨달음

작가는 행복이란 ‘퇴근하고 소주 한 잔 하는 것, 밥 먹고 담배 한 대 깊게 피우는 것, 그리고 아름다운 어떤 것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상의 소란 속에서 잠시 멈춰 서면, 그제야 보이는 찰나의 순간을 성찰하도록 한다. 그러고는 그 순간 느낀 위안에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여름 소나기 소 잔등을 가르고, 가을비는 할아비 수
염 밑에서도 피하는 법이여.
그냥 가자는 말을 저렇게 멋지게 할 수 있을까?
문을 나서 비 맞고 걷는데, 몇 걸음 안 가 비가 그치고 해가
나는 것이 아닌가.
과연 조부님 수염 밑에서도 피할 비로구나. 소나기가 소 잔등을 가른다는 말은 소 등뼈를 기준으로 좌측에는 비가 오고 우측에는 비가 안 온다는 뜻이다. 여름 소나기는 국지적으로 내린다. 앞마을에는 비가 오고 뒷마을은 맑고 그런 것을, 소 잔등으로 압축하여 말하는 것이 지혜가 듬쑥 담긴 아포리즘 같다.


『행복은 발가락 사이로』는 〈한겨레〉 ‘삶의 창’에 연재하며 인기를 끌었던 작가의 글과 10여 년 동안 써 놓은 글들을 모은 것이다. 삶의 희로애락을 종일 열심히 뛰어다닌 양말 속 발가락의 구릿함으로 승화시키고 ‘탱탱하던 삶의 테두리가 서서히 오그라드는 그 궁한 틈’을 예리한 통찰력과 찰진 언어로 맛깔나게 풀어냈다.

작가는 인생의 늦가을 중년의 마음에 쓰나미처럼 휘몰아친 고독과 쓸쓸함을 능청스럽게 펼쳐 보인다. 또한 본가로 내려가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는 노모와 함께하며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은 순간의 다정한 기록이기도 하다.

장자의 말씀이다. 하루살이는 내일을 모르고, 여름살
이는 가을을 모른다. 그런데 거북에게는 봄이 500년이
고, 나무에게는 가을이 8,000년이다.

ㅡ헤어소수자의 길ㅡP16
여러 날 열심히 쓰고 다녔다. 몰라보게 젊어졌다거나
동생이 온 줄 알았다는 덕담도 받고. 그러나 잠시, 달라
진 것은 없었다. 나는 진짜 젊어진 것일까? 거울 앞 나
모습이 낮설고 불편하다. 가발 밖으로 덧자란 머리칼을
수시로 다듬어야 하고, 운동하고 나면 가르마가 틀어져
있기도 했다. 아무도 내 헤어스타일에 관심을 갓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단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저 흐
를 뿐 여인의 눈길은 머물지 않았고, '다음 역에서 내려
요' 하고 넌지시 말을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마침내 벗었다. 불교에서 머리칼을 심검책체으로
베어 버리듯, 나는 본래의 나로, 오할스님으로 돌아왔
다. 벗고 보니 그것은 번뇌였다
꼭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달라거나, '모트가 부족한
데요' 하는 말들은 초추의 양광처럼 우리를 슬프게 한
다. 나는 용기를 내어 모트밍아웃'을 하면서, 사회적 편
견과 차별이 걷히는 그날까지 '헤어 소수자'로서의 삶을
묵묵히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 밤에도 바람이
두피에 직접 스치운다. ㅡP17

아침 손가락과 저녁 발가락 사이에서 하루를 얘기했
더니, 뻘뺄빨뺄 도망가는 칠게의 달음질에서 일 년을
얘기한다.
일을 많이 한 것이 짧고, 냄새나고 그런 것이므로, 아침 손가락의 향긋한 커피는 저녁 발가락의 구릿한 냄새 덕분이겠네, 불교의 연기처럼, 그래서 좋은 시간들은 발가락 사이에서 시작되는 것이로구나,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노모, "그 손가락 발가락 애기는 아침에 세수하고 나서 저넉때까지 많이 걸으라는 애기 같다" 하신다.

인생의 입동에 접어들어, 지난가을 삶의 모서리에
서 반짝거리던 순간들, 강변의 일몰과 산사의 아침, 어
머니와 스님과의 애기들, 그리고 퍼덕거리는 물고기를
쥐었을 때 같은 비릿한 순간들, 그때그때 산문이라는 이
름으로 써 놓았던 조각들을 한데 엮어 책을 모았다.

인간사 행이며 불행이며, 즐거움이며 노여움은 무엇이
냐? 나고 죽음까지 다 뜬구름 같은 것이로되! 무룻, 천
지는 내게 형체를 주어 태어나게 하고, 삶으로 나를 수
고룹게 하고, 늙음으로 나를 한가롭게 하고,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하네! 그런 시도 있다,

⁠  매 순간들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종종 서둘러 지나가 버리고 만다. 이 책은 은행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노화에 대한 고요한 성찰 등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순간 속으로 남아있다. 책 추천합니다

*이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감사합니다 @younarich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