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다운 소설이라 실망은 덜 했다. 언제나처럼 매정하리만치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문구들. 나같이 그 작가다움을 원하는 사람들은 기대치에 부흥해서 좋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때때로 기분이 변하는 뜨내기 독자인 면도 갖고 있기에 이런 사실적 묘사와 감정이 섞이지 않은 매마른 문장들을 접할때면 씁쓸하고 마음이 스산해진다.
'정약용'의 형제들이 천주에 눈을 뜸과 동시에 천주교 박해에 희생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 중에서도 정가 형제들 중 '흑산'으로유배되어 갔던 '정약전'의 시선이 주를 이루며 그와 동시에 천주를 믿음으로 인해 박해받는 이들의 숨가쁜 상황을 번갈아가며 제시하고 있다. 소제목마다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이 인물들의 등장은 결국 하나의 사건과 연결되거나 혹은 사람과의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이런 구조의 소설은 뒤에 언떤 연결식일지 빤히 보이는 듯 해 사실 싱겁긴 하지만 작가 그만이 가지는 독특한 문체와 스토리 전개방식이 지루함을 조금은 덜어준다.
조정에서 천주교의 핵심인 '황사영'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고 그를 숨기기 위해 애쓰는 천인 신분의 '육손이'나 '김개동'을 보면 글을 알지 못하고 이 땅에 존재하는 유교사상을 알지는 못하지만 하늘아래 모든 사람은 평등해야 한다는 인간의 근본적 자질을 들여다 보는데 종교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당시 신분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했으므로 천민이나 서민층들이 천주에 더 심취했을 것이다. 작가도 얘기하듯이 실존했던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살을 붙이고 실존지 않는 인물을 더해서 온전한 실제인물들이 아니고 허구속 인물들이라 밝힌다.
이른바 천주교 최고의 신봉자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듣기만 해도 오금이 저린 '능지처참'이니 '군문효수'니 하는 형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조카사위인 황사영을 닮은 아이를 흑산에서 만난 정약전은 갈 수 없는 바다끝 어딘가를 그리워하기를 멈추고 고기의 생김새를 보고 특이점을 살피며 글을 쓰는데 그렇게 탄생한 것이 <자산어보>이다.
조선 말 정치적으로 위태롭고 새로운 사상으로 새 세상을 열려던 지식인부터 많은 천주의 신봉자들은 그렇게 죽음과 맞서며 바다 밑에 혹은 강 바닥에, 구덩이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채로 사라져 갔다. 서양사에 등장하는 피의 전쟁 대부분은 종교에 의한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길 바라는 신을 앞세워 전쟁을 한다니.
참 아이러니 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에 뿌리깊게 내린 종교사를 보면 맞서기 보다는 이해와 설득을 요했던 것 같다.
'이차돈의 순교'도 그랬고 많은 사람의 희생을 보고 자수한 중국인 신부 '주문모'가 그랬다. 씁쓸한 여운과 더불어 많은 이의 희생이 눈에 아른거린다.